[목차] == 개요 == [[파일:Preti,_Mattia_-_Queen_Tomyris_Receiving_the_Head_of_Cyrus,_King_of_Persia_-_1670-72.jpg|width=300]] 키루스의 머리를 피에 담그는 토미리스 여왕[* [[근세]]에 스키타이에 대한 고고학적 지식이 전무한 상태로 상상해서 그린 그림이기 때문에 실제 스키타이인들과는 외모와 복식이 전혀 다르다. 대야를 받치고 있는 사람은 무슨 15세기 서유럽에서나 입었을법한 판금 갑옷을 입고 있다.] [[그리스어]]: Τόμυρίς [[영어]]: Tomyris 기원전 6세기 [[스키타이]][* 서쪽에서는 '스키타이', 동쪽에서는 '샤카'라고 불렀다.]계 [[마사게타이]]족의 여왕. == 상세 == [[페르시아]]의 대왕 [[키루스 2세]]가 구혼 요청을 빙자해서 사신을 보내자 마사게타이의 왕위를 노리는 것을 알아채고 거절했다. 이에 키루스 2세가 마사게타이를 여러차례 공격하면서 [[시르다리야 강|약사르테스 강]]을 건널 다리, 뗏목, 탑 등을 만들었다. 토미리스는 키루스 2세에게 마사게타이를 시험하는 것이라면 자신들이 강에서 3일 거리만큼 물러날 것이니 건너오라고 하면서 그대의 나라에서 맞이할 것이라면 그대가 3일 거리만큼 물러나라고 제안했다. 이에 키루스 2세는 고민을 하게 되었고, [[크로이소스]]의 제안대로 마사게타이로 넘어가기로 결정했다. 키루스 2세가 강을 건너기로 하자 토미리스는 약속대로 군대를 3일 거리만큼 퇴각시켰다. [[크로이소스]]는 또 넘어가서 하루 거리에 부대의 일부만 주둔시키고, 그곳에 산해진미와 포도주를 쌓아두도록 하며 강으로 물러나 있으라고 키루스 2세에게 조언했다. 그가 이 조언을 충실히 이행하고 물러나자 토미리스의 아들이 이끄는 부대가 공격하여 키루스 2세의 남겨진 부대를 도륙하고 남겨진 포도주에 취해 잠자던 중 포로가 되었다. 키루스 2세에게 아들인 스파르가피세스가 사로잡히자 토미리스는 아들을 돌려준다면 아무런 대가없이 나라를 떠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하면서 아들을 돌려보내지 않는다면 태양신의 이름으로 그대가 좋아하는 피를 실컷 맛보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키루스 2세에게 포로가 된 스파르가피세스는 묶여진 몸을 풀어줄 것을 애원했고, 이에 키루스 2세는 스파르가피세스를 풀어주었지만, 그는 포박을 풀어주자마자 자살해버렸다. 이에 광분한 토미리스는 [[페르시아]]군을 공격했고 다수의 공방을 거치며[* 헤로도토스는 이 전투가 비헬라스인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 중 가장 치열한 전투였다고 했다.] 전투를 이어나가던 와중에 결국 토미리스가 승리하게 되었다. 토미리스는 온 사방을 뒤져 키루스 2세의 시신을 찾아냈고 가죽 부대에 사람의 피를 가득 담은 뒤 키루스 2세의 머리를 거기에 담가 조롱하면서 >"그대는 계략으로 내 아들을 사로잡으면서 나를 망쳤지만, 나는 위협했던 대로 그대가 피에 물리게 해줄 것이오." 라고 말했다. 실제 이름은 불분명하고, 역사가인 [[헤로도토스]]가 [[그리스]]식으로 변형시킨 이름이며, 이때의 키루스 2세의 죽음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지만 헤로도토스는 이 이야기가 가장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고 했다.[[http://www.perseus.tufts.edu/hopper/text?doc=Perseus%3Atext%3A1999.01.0125%3Abook%3D1%3Achapter%3D205%3Asection%3D1|역사, 1권 214장]] == 미디어에서 == [[문명 6]]에서 [[스키타이]] 문명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문명 6 스키타이]] 참조. 마침 [[문명 6 페르시아]]에서 키루스도 나온다. 둘의 문명 특성은 완전히 극과 극. 서로의 문명에 관련된 [[문명 6/도전 과제|도전 과제]]도 있다. 2019년에 개봉한 카자흐스탄 영화 <토미리스: 전쟁의 여신>은 제목처럼 그녀를 주인공으로 했다. [youtube(xYUS6VWSvNg)] [[분류:아시아의 여왕]][[분류:스키타이의 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