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893년 설립]][[분류:1894년 해체]][[분류:사관학교]][[분류:없어진 교육기관]] ||[[파일:강화 통제영학당 사진.jpg]]|| || 강화 통제영학당의 모습 || 統制營學堂 [목차] == 개요 == [[조선]] 말기([[개화기]])의 [[해군]] [[장교]]와 [[수병]]을 양성하던 [[해군사관학교]]. 조선수사해방학당(朝鮮水師海防學堂)[* 수사(水師)는 [[수군]]을 뜻하고 해방(海防)은 해상방어를 뜻한다.], 총제영학당(總制營學堂)이라 부르기도 했다. 현재 '''지번'''주소로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 1061번지이다.[* 도로명주소가 할당되어 있지 않다!] 통제영학당지라고 인천광역시에서 지방기념물로 지정했다. 이 문서의 표제어는 통제영학당이나 당시에는 수사해방학당이나 총제영학당이란 말이 쓰였다. [[http://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8415|자세한 관련 기사]] == 배경 == 조선 후기에 등장한 이양선들 때문에 [[조정]]은 해양전력을 양성하는데 관심을 가졌다. 이에 따라 1883년에 연안해군 부대인 기연해방영(畿沿海防營)이 신설되었다. 기연(畿沿)은 [[경기도]]를 말한다. [[지휘관]]은 기연해방사무라고 불렸는데 민영목(閔泳穆)이 보임되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1884년]]에 [[갑신정변]]이 실패하고 [[청나라]]의 간섭으로 군제 개편이 진행되면서 기연해방영은 [[친군영|통위영]]으로 흡수당하고 조선의 연해는 [[청나라]] 북양해군이 사실상 방비하게 된다. 이후 1893년 [[고종(대한제국)|고종]]은 삼도수군통어영[* 경기, 황해, 충청 삼도의 수군을 통솔하는 군영으로 [[교동도]]에 본영을 두고 있었다.]을 해연총제영(海沿總制營)으로 바꾸고 민응식(閔應植)을 지휘관인 해연총제사로 임명하였다. 해연총제영의 지위는 1품 아문으로 이는 당시 조선 조정이 해연총제영을 단순한 군영이 아닌 전국의 수군을 관할하게 하려는 속뜻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해연총제사는 강화유수를 겸임했다. 강화부에 해군동영(海軍東營)을 설치하고 해군 장교와 수병을 양성하기 위해 수사해방학당을 설치했는데 통제영학당을 말한다. 허나 해연총제영은 설립 1년만인 1894년 6월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이후 해체되고 만다. == 역사 == [[1893년]]에 설립되었다. 위치는 [[강화도]] 갑곶진이었으며 설립예산은 [[청나라]]로부터 들여온 1천원이었다. [[양반]] 자제를 대상으로 18세에서 26세의 [[사관생도]][* 사관생도는 15세에서 20세 사이로 모으려고 했다.]와 수병을 모집했다. 근데 단순히 사관학교라고만 부를 수가 없는 게 최초 모집 인원이 사관 50명에 수병 300명으로 해군사관학교에 [[해군기초군사교육단]]을 합친 모양새였다. 처음에는 장교 50명에 수병 500명을 모으려고 했지만 충원이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수군이라는 일이 신량역천[* 양인 신분이지만 천역, 즉 고되고 힘든 일에 종사하는 부류를 일컫는 말]에 해당될 정도로 힘든 일이다보니 기피현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군사교육에 들어가기 전에 영어교육부터 먼저 시켰다. 1893년 9월부터 영어교육이 이뤄졌고 이듬해인 1894년 4월에 [[영국군]] 해군 출신인 콜웰(W. H. Callwell) [[대위]]와 커티스(J. W. Curtis) [[하사]]가 왔다. 교육 시작 후 3개월 뒤인 1894년 7월에 [[청일전쟁]]이 발발하고 해군총제영이 부대 해체되면서 그 휘하 기관이었던 통제영학당도 운영이 불투명해진다. 결국 1894년 10월에 폐지되었다. [[파일:external/ganghwado.co.kr/i1590.jpg]] 영어, 군사학, 항해학, 포술학 등을 가르쳤다. 서 있는 사람 중에 제일 오른쪽이 콜웰 대위이며 왼쪽으로 차례대로 조선인 장교, 조교인 커티스, 영국 총영사 힐러(Hiller), 영어교사 허치슨이다. == 대한민국 [[해군사관학교]]와의 관계 == 현재 [[대한민국 해군]]의 경우 [[해군사관학교]]의 전신을 통제영학당으로 삼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아예 무관한 조직이라고 볼 수 있으며, 대한민국 해군 또한 손원일 제독의 해사대, 해방병단, 조선해안경비대를 전신으로 삼지 대한제국 해군과의 관계성을 주장하지 않는다.] [[육군사관학교]] 역시 [[육군무관학교]]를 전신으로 삼지 않는다. 2009년 4월 13일 [[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은 통제영학당 옛터에 표지석을 세웠다. >〈[[개화기|개화]]〉와 〈[[쇄국정책|쇄국]]〉의 혼란스런 시대 상황을 겪으며 >오로지 조국의 바다를 지킬 구국의 인재를 양성하고자 >최초의 근대식 [[해군사관학교]]인 〈통제영학당〉이 >[[강화도|이터]]에 뿌리내렸다. >바야흐로 빛나는 [[대한민국 해군|대한민국해군]]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긍심을 고취하고자 여기 표지석을 세운다. >2009년 4월 13일 >[[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