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파라오]][[분류:미라]][[분류:기원전 1510년 출생]][[분류:기원전 1479년 사망]] [include(틀:역대 이집트 파라오)]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DB76B 0%, #DECD87 20%, #DECD87 80%, #BDB76B)" {{{#A0522D '''고대 이집트 제18왕조 제4대 파라오[br]{{{+1 투트모세 2세}}}[br]Thutmose II'''}}}}}}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200px-Stone_block_with_relief_at_Karnak_Temple_Thutmosis_II.jpg|width=100%]]}}} || ||<-3> {{{-2 [[카르나크 신전]]에 새겨진 투트모세 2세의 부조}}} || ||<-2> '''이름''' ||투트모세 2세(Thutmose II) || ||<-2> '''출생''' ||미상 || ||<-2> '''사망''' ||미상|| ||<-2><|2> '''재위 기간''' ||이집트 파라오 || ||기원전 1493년/1513년 ~ 기원전 1479년/1499년 '''(약 13년)''' || ||<-2> '''전임자''' ||[[투트모세 1세]]|| ||<-2> '''후임자''' ||[[하트셉수트]] || ||<-2> '''부모''' ||[[아버지]] : [[투트모세 1세]][br][[어머니]] : 무트노프렛 || ||<-2> '''배우자''' ||[[하트셉수트]], 이제트 || ||<-2> '''자녀''' ||[[투트모세 3세]] || ||<-2> '''무덤''' ||[[왕가의 계곡]] KV42 || [목차] [clearfix] == 개요 == [[이집트 신왕국]] 제18왕조의 4대 [[파라오]]. 13년 정도 동안 이집트를 다스렸다. 아내인 [[하트셉수트]] 여왕이 투트모세 2세 뒤에서 대신 국가를 통치했다는 의혹이 있고, 후계자이자 아들인 [[투트모세 3세]]가 워낙 많은 업적을 남겼기에 존재감이 많지 않다. == 통치 == 투트모세 2세는 투트모세 1세와 후실인 무트노프렛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인 무트노프렛이 왕의 정실이 아니라 후궁이었기에 투트모세 2세의 왕권은 약한 편에 속했고, 이때문에 투트모세 1세와 정실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자신의 이복누이 [[하트셉수트]]와 결혼해 입지를 다지려 했다. 투트모세 2세가 즉위하면서 왕권 교체기로 인해 이집트 내부가 약간 뒤숭숭해지자 곧바로 남쪽의 [[누비아]]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반란군들을 이기지 못한 이집트 군대는 투트모세 1세가 지어놓은 요새로 후퇴했고, 누비아 반란군들은 요새에 공성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전령을 전해 들은 투트모세 2세는 바로 군대를 파견해 누비아인들을 진압하도록 시켰다.[* 당시 투트모세 2세는 너무 어린 나이였기에 직접 군대를 이끌지 않고 대신 아버지의 장군들에게 군대를 맡겼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투트모세 2세의 지휘력과 왕권이 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비아인들을 굴복시킨 이후에는 [[시나이 반도]]의 유목 [[베두인|베두인족]]들을 공격했다. 이집트 군대는 [[시리아]]까지 진출해 공적을 올리고 돌아왔다고 한다. 투트모세 2세의 미라는 [[데이르 엘 바하리]]에서 1881년 발견되었다. 제18왕조오 제19왕조의 파라오들과 함께 발견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아흐모세 1세]], [[아멘호테프 1세]], [[투트모세 1세]], [[투트모세 3세]], [[람세스 1세]], [[세티 1세]], [[람세스 2세]], [[람세스 9세]] 등의 파라오가 함께 안치되어 있었다. 가스통 마스페로가 1886년 7월 1일에 투트모세 2세 미라의 붕대를 풀었고, 부검 과정에서 투트모세 2세가 아버지인 투트모세 1세와 상당히 닮았던 것을 밝혀냈다. 투트모세 2세의 미라는 도굴군들에 의해 심각하게 파손된 상태였는데, 왼쪽 팔이 어깨에서 완전히 빠져 탈골된 상태였고 오른쪽 팔은 팔꿈치 아래로 아예 잘려버렸다. 흉곽과 갈비뼈 역시 도굴꾼들이 도끼 등으로 내려쳐서 아예 내려앉았으며 오른쪽 다리 역시 심각하게 파손됐다. 게다가 투트모세 2세가 생전 입은 수많은 상처와 수축된 근육[* 아마 걷거나 근육을 쓰는 일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한다.]으로 미루암아 31년의 짧은 생을 살다간 파라오가 생전에도 딱히 건강한 삶을 살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