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이 문서는 라이베리아의 휘그당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미국의 휘그당, rd1=휘그당(미국), other2=영국의 휘그당, rd2=휘그당)] True Whig Party [목차] == 개요 == [[라이베리아]]에 존재했던 [[흑인 보수주의]] [[정당]]. [[1869년]] 창당되어 [[1878년]]부터 [[1980년]]까지 장기집권하다가 해체되었는데, 무려 '''102년을 집권하여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집권한 정당이었다.''' [* 트루휘그당보다 먼저 [[콜로라도당(우루과이)|우루과이 콜로라도당]]이 [[1865년]]부터 [[1958년]]까지 93년을 집권하는 기록을 세웠으나, [[국민당(우루과이)|우루과이 국민당]]에게 정권을 빼앗기며 100년이 넘는 집권 기록을 세우진 못했다. 이후에는 [[소련 공산당]]([[1922년]]~[[1991년]] [[소련|집권]])과 [[멕시코]] [[제도혁명당]]([[1929년]]~[[2000년]] 집권)이 각각 71년을 집권하며 트루휘그당의 기록에 도전했으나, 전자는 [[8월 쿠데타]] 실패, 후자는 [[2000년 멕시코 대통령 선거|대선]] 패배로 인해 실각하여 기록 달성에 실패했다. 현재 [[여당|집권하고 있는 정당]] 중에서는 [[베트남 공산당]]([[1945년]] [[베트남 민주 공화국|집권]])과 [[조선로동당]]([[1948년]] [[남북분단|집권]]), [[중국공산당]] ([[1949년]] [[국공내전|집권]])이 [[일당독재|각각 78년, 75년, 73년 동안 집권하며 트루휘그당의 기록에 도전하고 있는데]]~~어째 셋다 [[공산당]]이다~~, 해당 정당들이 [[2047년]], [[2050년]], [[2051년]]까지 정권을 유지하는데 성공하면 트루휘그당과 타이기록을 이루게 된다.] 약칭은 TWP이다. == 역사 == [[1869년]] [[라이베리아]] [[농촌]] 지역을 기반으로 창당됐다. 당의 구성원과 지지층은 아메리코 라이베리안(Americo-Liberian)이라 불리는 [[미국 흑인|미국 출신]] [[해방노예]]들이었으며, 창당된 그 해 선거에서 [[에드워드 제임스 로이]]가 기존의 [[여당]]이었던 공화당을 꺾고 제5대 [[라이베리아 대통령|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집권당이 됐다. 당시 공화당은 [[조셉 젠킨스 로버츠]]와 같은 [[흑백혼혈]] [[이주민]]의 지지를 받고 있었고, TWP는 상대적으로 [[검은 피부]]의 주민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1878년]] 선거에서 앤서니 가디너(Anthony Gardinor)가 당선된 것을 계기로 TWP는 [[1980년]]까지 '''102년''' 동안 라이베리아를 통치하게 됐고, 그에 따라 공화당은 지지 기반을 잃어 [[1890년]] 자진 해산하여, 한 세기 가량 이어진 TWP [[일당독재|일당 독주 체제]]의 서막을 알렸다. TWP 장기집권 기간에도 공식적으로 [[야당]]이 불법화된 적은 없었다. 그러나 TWP 정권은 재산에 따른 [[투표권]] 제한[* 당시 라이베리아 [[헌법]]은 [[부동산]]을 가진 국민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했다. 그런데 토착 원주민이 살던 전통 [[오두막]]은 부동산으로 인정하지 않아 사실상 아메리코 라이베리안만이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었고, 그 수는 전체 라이베리아 인구의 1% 남짓 했다.], 그리고 [[원주민]]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월한 경제적, 문화적 입지를 바탕으로 아메리코 라이베이안 그룹의 이익을 대변했고, 이는 [[원주민]] 출신 [[군인]] [[새뮤얼 케니언 도]]가 [[1980년]] 쿠데타를 일으켜 TWP 일당 통치를 전복할 때까지 이어졌다. TWP 출신 대통령 중 대표적인 인물들로는 찰스 D. B. 킹(Charles. D.B. King), [[윌리엄 터브먼]], [[윌리엄 톨버트]]가 있다. 윌리엄 터브먼은 [[1944년]]부터 [[1971년]]까지 27년간 집권하며 라이베리아의 경제개발을 주도했고 토착 원주민과 아메리코 라이베리안 사이의 균형, 조화를 지지했다. 터브먼의 [[러닝메이트]]로서 [[부통령]]을 역임한 톨버트는 터브먼 사후 대통령직을 승계했고, 터브먼 시기의 [[반공]], 외자 유치 정책에서 탈피해 친아프리카, [[자유주의]]적 개혁을 추진했다.[* 대표적인 것이 대통령의 임기를 최장 8년까지로 제한한 개헌이었다. 이전까지 라이베리아 헌법은 [[아이젠하워]] 이전 [[미국]]처럼 대통령 임기의 제한을 두지 않았고, 때문에 [[윌리엄 터브먼]]은 아메리코 라이베리안의 지지를 등에 업고 27년간 대통령직을 이어갔다.] 이 시기 야당이 새로 창당되고 [[동구권]], [[중국]] 등 [[공산권]] 국가와 수교를 맺었으며, 토착 원주민 출신을 내각에 기용하는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족벌주의]]와 경제 침체 등으로 지지를 잃어가던 톨버트 정권은 쌀값 인상을 계기로 촉발된 [[쌀]] [[폭동]],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유혈 진압으로 라이베리아 국민의 신뢰를 상실했다. 그러한 정치적 혼란 속에서 [[새뮤얼 케니언 도]]가 이끄는 원주민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TWP 정권을 전복했고, 102년에 이르는 휘그당 치세는 막을 내렸다. == 성향 == 당 이름 자체가 [[휘그당(미국)|미국 휘그당]]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휘그주의 철학을 모방했으며 [[흑인 보수주의]] 성향을 띠고 있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보호무역]]을 지지했으나, [[윌리엄 터브먼]] 집권 이후 [[몬로비아]]를 [[자유무역]] 항구로 개방하고 외자를 유치하는 등 개방경제로 전환했다. 지지층 절대 다수가 아메리코 라이베리안이었기에 [[친미]] 성향에 경도됐고,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서아프리카]]의 대표적인 [[반공주의]] 정당 중 하나였다. 그러나 [[1960년대]] [[미국 흑인 민권운동|미국에서 흑인 민권이 이슈가 되었고]], [[아프리카]] [[탈식민화|국가들이 잇따라 독립하여]] 노선변화의 필요성이 생겼다. 그런 가운데 [[윌리엄 톨버트]] 취임 이후에는 [[공산권]] 국가와 수교하고 토착 원주민들의 [[참정권]]을 확대하는 등 중도 온건 성향으로 바뀌었으나 이는 전통적인 지지층으로부터 환멸을 사는 계기로 되기도 했다. == 여담 == [[라이베리아 달러]]에 새겨진 대통령 중 10달러의 [[조셉 젠킨스 로버츠]][* 초대 대통령을 역임할 때는 무소속이었으나 1872년 제7대 대통령으로 재취임했을 때는 라이베리아 공화당 당적을 보유하고 있었다.]와 50달러의 [[새뮤얼 케니언 도]]를 제외한 세 명의 [[라이베리아 대통령|대통령]]이 모두 TWP 소속이다. [[분류:라이베리아의 정당]][[분류:과거의 독재정당]][[분류:보수주의 정당]][[분류:고전적 자유주의 정당]][[분류:1869년 정당]][[분류:1980년 해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