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프랑스의 남성 정치인]][[분류:1884년 출생]][[분류:1944년 사망]][[분류:프랑스령 기아나 출신 인물]][[분류:팡테옹 안장자]][[분류:화폐의 인물]] ||<-2> '''{{{+1 펠릭스 에부에}}}[br]Félix Éboué'''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felix_eboue.jpg|width=100%]]}}} || || '''본명''' ||아돌프 실베스트르 펠릭스 에부에[br]Adolphe Sylvestre Félix Éboué|| ||<|2> '''출생''' ||[[1884년]] [[12월 26일]]|| ||[[프랑스령 기아나]] 카옌|| ||<|2> '''사망''' ||[[1944년]] [[3월 17일]] (향년 59세)|| ||[[이집트 왕국]] [[카이로]]|| || '''국적'''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width=25]] [[프랑스 제3공화국]](1884 ~ 1940)[br][[파일:자유 프랑스 국기.svg|width=25]] [[자유 프랑스]](1940 ~ 1944)|| || '''묘소''' ||[[팡테옹]] {{{-2 (1949년 안장)}}}|| || '''배우자''' ||유지니 텔|| [목차] [clearfix] == 개요 == [[프랑스령 기아나]]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식민지]] 행정관[* 이름만 봐서는 낮은 직책 같지만 각 식민지 [[행정부]]를 이끄는 장관급의 직책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행정관은 정확히 말하면 governor로 식민지 주둔군 통수권이 없는것을 제외하고는 [[총독]]과 권한이 동일했다.]이자 [[자유 프랑스]]의 일원이다. == 생애 == 할아버지가 [[노예]]였다. 기아나에서 태어난 뒤 [[보르도]]로 유학을 갔다. 축구선수로 활동했고 [[벨기에]]와 [[잉글랜드]]에 경기를 하러 가기도 했다. [[파리(프랑스)|파리]]에서 [[그랑제콜]]을 나온 뒤에 [[우방기샤리]], [[마르티니크]] 등에서 근무했다. 1936년 [[과들루프]] 행정관으로 임명되었고 1939년에는 [[프랑스령 차드]]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프랑스 흑인으로서는 최초의 식민지 총독이었다.]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항복하고 나치의 괴뢰국인 [[비시 프랑스]] 정부가 설립된 후 대부분 프랑스의 식민지가 [[비시 프랑스]]를 지지한 데 반해 그는 [[샤를 드골]]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를 지지했다. 1940년 8월 자유 프랑스에 가담한 직후 그는 [[프랑스령 콩고]], [[프랑스령 카메룬]], [[우방기샤리]]를 설득하여 이들이 자유 프랑스에 가담하도록 하였다. 11월 자유 프랑스군이 아직까지 비시 프랑스에 충성하던 가봉을 점령하면서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 전체가 자유 프랑스의 통제 하에 들게 되었다.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는 이후 [[횃불 작전]] 전까지 자유 프랑스군의 아프리카 내 근거지로 사용되었다. 또한 본인은 [[아프리카]] 태생이 아닌 [[남아메리카]] 출신이었고 프랑스 식민정부에 협조하는 입장이긴 했지만 자신의 흑인성(négritude)을 자각하고 있는 편이어서 아프리카인들의 권익을 증진하려고 노력하였다. 1944년에 그는 세상을 떠났고 프랑스가 파리를 탈환한 후 그의 유해가 1949년 [[팡테옹]]에 묻혔다. [[프랑스 흑인]] 명사로는 처음이었다.[* 뒤에 1870년에 죽은 [[알렉상드르 뒤마]]가 2002년에 팡테옹으로 이장되는 일도 있긴 하지만 이장 시점은 그가 앞이다.] 프랑스 입장에서 보면 자유 프랑스 운동에 참여하고 프랑스 관료로 일하는 등 애국자이자 식민지인 입장에선 같은 식민지 출신으로 식민지인들의 권리증진에 나서는 등 상당히 복합적인 인물이었다. 현재 그의 고향인 [[프랑스령 기아나]]의 관문 공항인 [[카옌 펠릭스 에부에 국제공항]]에 그의 이름이 붙어 있다. 그의 딸 중 하나는 [[세네갈]]의 초대 대통령이자 시인으로 흑인성을 강하게 얘기한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와 결혼하였다. == 기타 == [[파일:100-Francs.jpg]] 적도아프리카 프랑[* 현 [[중앙아프리카 프랑]]의 전신.] 지폐 도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