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동남아시아의 민족]][[분류:중국계 싱가포르인]][[분류:중국계 태국인]][[분류:중국계 말레이시아인]][[분류:중국계 인도네시아인]] Peranakan 峇峇娘惹 (Baba Nyonya) [[파일:500px-Wedding_portrait_of_a_Peranakan_couple.jpg]] 20세기 초반의 프라나칸 결혼식 [목차] == 개요 == 프라나칸은 [[동남아시아]]의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 사는 [[화교|화인]] 또는 화인 혼혈 가운데 현대 이전에 정착한 이들의 후손을 가리킨다.[* 순혈도 포함하는 경우는 19세기 말 이전에 온 중국계들에 한정. 대부분 혼혈을 가리킨다.] 이들과 19세기 말 또는 20세기 초부터 동남아시아에 새로 진출한 [[중국인]]들의 후손은 구별된다. 현재 이들은 대부분 말레이인, 몬크메르인, 인도네시아 토착민(pribumi) 혈통이 일부 있다. '프라나칸/페라나칸(peranakan)'은 [[마인어|말레이어]]로 원래 '[[자궁]]', '후예'라는 뜻으로, 오늘날에는 의미가 '고향은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지역이지만 종족적 토착민은 아닌 사람' 내지 '혼혈' 정도로 변천을 겪었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화인 이주민/혼혈 집단은 '중화 페라나칸(peranakan Cina/Tionghoa)'로 칭할 수 있고, 비슷하게 [[튀르크인]] 이주민/혼혈 집단은 '투르크 프라나칸(peranakan Turki)', [[네덜란드인]] 이주민/혼혈 집단은 '벨렌다 프라나칸(peranakan Belanda)' 등의 식으로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페라나칸(peranakan)으로 계속해서 불리는 인구 집단 가운데 가장 유력한 집단이 화인 이주민/혼혈이므로, 페라나칸/프라나칸(peranakan)이 많은 맥락에서 주로 화인 이주민/혼혈 집단을 가리키게 되었다. == 역사 == [[한족]] 중국인들은 [[15세기]]경 [[명나라]] 때부터 [[동남아시아]]에 진출했다. 이때 대부분 남자들만 갔는데 이들 중 현지인들과 결혼한 이들의 자녀들이 프라나칸 1세들이다. 이들은 주로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에 있으며 [[필리핀]]에 있는 이들은 [[상글레이]]라 한다.[* 상글레이는 필리핀판 프라나칸이다.]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 현지 사회에 동화되었다. 특히 태국과 인도네시아에 있는 이들은 어떤 [[중국어]] 방언도 거의 구사하지 못한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수마트라]]와 [[보르네오]]에 사는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은 중국어를 어느 정도 구사한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의 프라나칸들은 19세기 이후의 [[중국계 싱가포르인]]/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의 영향을 받아 중국어를 조금이라도 구사한다.[* 물론 완전 동화되어 [[영어]]나 [[마인어]]밖에 못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이들은 [[불교]][*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이슬람]][*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개신교]][* 인도네시아, 싱가포르[[https://en.wikipedia.org/wiki/Christianity_in_Singapore#Protestantis|#]]]를 믿는다. 싱가포르의 경우 일찍이 영어를 배운 식자층들이 많아서 이들은 중립적인 종교로 기독교를 택하여 [[성공회]] 및 [[감리회]], [[장로회]], [[가톨릭]]을 믿는 사람들이 많게 되었다. 이들의 공동체는 [[영국]], [[네덜란드]] 등 서양 열강이 프라나칸 공동체의 장으로 임명한 명망 높은 프라나칸인 [[카피탄]](kapitan, capitan, Kapitan Cina/China)[* 말레이어로, 어원은 [[포르투갈어]] '카피탕'(capitão, capitan)이다.]이 어느 정도의 자치권을 누리며 다스렸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카피탄은 [[네덜란드령 동인도]]와 [[영국령 말라야]]의 행정 체계에 완전히 통합되어, 식민 정부 상급 관료로 대우받게 되었다. 특히 19세기와 20세기 초의 네덜란드령 동인도에서는 [[자카르타|바타비아]], [[수라바야]], [[스마랑]] 등 대도시들마다 도시 화인 공동체의 카피탄이 별도의 공관(公館, Kong Koan)에서 집무하였고, 카피탄 공관은 간접 통치되는 화인 공동체에서 행정·사법의 중심이었다. 화인 공동체의 역사가 깊은 바타비아의 공관은 [[자바 전쟁]]이 진행되던 1742년부터 인도네시아 공화국이 수립된 후인 1950년대까지 존속하였는데, 마치 [[청나라]] 지방 관아(아문, 衙門)처럼 기능하였다. 이후 [[수카르노]] 시기 말기인 [[1960년대]] 말에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의 중국어 사용 및 중국식 명명을 금지시키면서 사실상 이런 문화도 이 때 쯤에 사라졌다. 그 여파로 [[자카르타]] 등 자바섬의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은 [[1970년대]] 이후로 사실상 [[인도네시아인]]으로 굳어졌다. 어차피 이들은 [[루터교]] 및 네덜란드 개혁교회 신자들이 대다수였기에 종교적으로도 구분되었다. 물론 자카르타와 멀리 떨어진 수마트라와 칼리만탄 등지의 화교들은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의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처럼 [[표준중국어]]를 구사하기도 하며 이름에 중국식 성명을 가진 경우도 있다. 종교 면에선 수마트라와 보르네오 등은 기독교와 불교가 혼재되어 있으며 자바는 거의 루터교 및 네덜란드 개혁교회 그리고 일부 [[가톨릭]] 신자들이다. [* 수마트라 화교 기독교도도 많다. 일단 정도가 아니고 상당수를 넘는다.] 이 때문인지 자바 섬 화교와 수마트라 보르네오 화교들은 대립 관계기도 했는데 서로 이질적으로 봤다고 할 수 있다.[* 현재는 [[인도네시아인]]이라는 공통 정체성이 생겨서 수마트라/보르네오 화교와 자바 화교의 통혼도 잦아 서로 결혼도 하는 모습은 요즘에는 많이 늘어나는 편이다. 그리고 예전보단 관계가 상당히 좋아졌다.] 반면 싱가포르의 페라나칸은 오늘날 그냥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이다. 이들 중 식자층은 일찍이 기독교로 개종하고 영어를 배워 중립적인 언어로 사용했다. == 관련 문서 == * [[상글레이]] * [[크리스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