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미국의 랜드마크]][[분류:미국의 교량]][[분류:1977년 건설]][[분류:2024년 해체]][[분류:미국의 없어진 건축물]] [include(틀:운행중단)] [include(틀:미국 관련 문서)] ||<-4> {{{+2 '''프랜시스 스콧 키 대교'''}}} [br]Francis Scott Key Bridge || ||<-4>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x-1dd.jpg|width=100%]]}}} || ||<-4>{{{#!wiki style="margin: -6px -10px"= [include(틀:지도, 장소=Francis Scott Key Bridge, 너비=100%, 높이=225px)]}}}|| ||<-4> '''분류''' || ||<-4> 자동차 전용 도로 || ||<-4> '''관리''' || ||<-4> 메릴렌드 교통국 || ||<-2> '''길이 · 폭''' ||<-2> '''차선 수''' || ||<-2> 2,632.3m(1.6마일) · 56m ||<-2> 왕복 4차선 || ||<-4> '''착공''' || ||<-4> [[1972년]] || ||<-4> '''개통일''' || ||<-4> [[1977년]] [[3월 23일]] || ||<-4> '''붕괴일''' || ||<-4> [[2024년]] [[3월 26일]] || ||<-4> '''구조형식''' || ||<-4> [[트러스 구조|트러스]] 아치교[br]{{{-3 (Truss arch bridge)}}} || [목차] [clearfix] == 개요 ==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위치했던 길이 2.6km의 대교. == 상세 == [[볼티모어]] 인근의 파탭스코 강하류를 관통하는 다리였다. 볼티모어 항구 항 외부를 연결하는 [[트러스 구조|트러스 교량]]을 관통하는 강철 아치교로 건설되어 운영되었다. 호킨스 포인트와 미국 메릴랜드의 던독(Dundalk) 사이에 메릴랜드 국도 695번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다리 이름은 [[미국 국가]] 가사를 작사한 프랜시스 스콧 키의 이름을 땄다. 가사의 배경이 볼티모어 소재 맥헨리 요새(Fort McHenry)이므로 이유가 있는 작명이다. 이 다리에는 연간 약 1,150만 대의 차량이 통행했다. 근처의 맥헨리 요새 터널은 위험물 운반 차량의 통행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이 다리가 유일한 통행 경로였다. == 역사 == 1960년대에 메릴랜드 교통국은 1957년 볼티모어 항만을 연결하는 터널이 개통된 후 추가로 도로가 더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결국 메릴랜드 교통국은 볼티모어 항만 터널의 남동쪽 하류에 있는 패탭스코 강 하구를 관동하는 도로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제안된 부지는 외항의 호킨스 포인트와 솔러스 포인트 사이에 해저 터널을 건설하는 계획이였다. 1931년 초에 페닝턴 애비뉴를 가로지르는 도개교를 대체하여 호킨스 포인트와 솔러스 포인트를 연결하기 위해 커티스 크릭 남쪽에 도개교를 건설하는 계획도 진행 중이였다. 동시에 볼티모어 항구 근처 도시를 통과하고 동부 해안을 통과하는 추가 고속도로 구간에 다리가 계획되었다. 결국 1968년 10월 체서 피크 만 다리와 함께 2억 2천만 달러의 채권 발행으로 건설 자금이 조달되었고 1969년 봄에 외항 바닥과 선박 수로공사를 하고 계획된 외항 터널 건설을 위한 업체 입찰은 1970년 7월에 시작되었지만 업체들이 제시한 공사비용은 당초 메릴랜드 교통국이 예상한 비용보다 훨씬 높았다. 이에 메릴랜드 교통국은 1971년 4월 주 정부가 승인한 4차선 다리를 포함한 대안 계획을 계획했다. 메릴랜드 교통국이 내린 결론은 다리는 1억 1천만 달러의 건설 비용으로 터널보다 더 넒은 도로와 낮은 유지 보수 비용으로 인한 이점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미국 해안 경비대는 1972년 6월에 교량 건설 허가를 내줬고 1972년에 착공되어 완공 예정일보다 몇년더 늦은 1977년 3월 23일에 개통되었고 당초 계획한 예산보다 3,300만 달러를 더 초과했다. === 상세 === [[1960년대]]부터 [[볼티모어]] 시의 교통망 확충을 위해 해당 교량의 건설이 제안되었고 [[1968년]] 체셔피크 베이 브리지 교량 건설채권과 함께 건설채권이 발행되었다. 이후 [[1971년]] 의회의 인준을 받아 4차선 교량으로 계획되었고 5년 후인 [[1976년]] [[미영전쟁]] 현장 근처에 있는 점을 인정받아 [[미국 국가]]의 작사가 이름을 따와 다리 이름이 결정되었다. [[1977년]] 다리가 개통되고 화물선이 다리를 들이받아 파손될 뻔했지만 다행히 사고를 피하였다. 기본적으로 4차선 교량이지만 건설 비용을 줄이기 위해 2차선 진입로를 차용하였는데 이후 [[1983년]] 남측 진입로가 확장되고 나머지 북측 구간도 예산 확보가 완료된 [[1999년]]에 개량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변모하였다. == 사건사고 == '''[[2024년]] [[3월 26일]], 붕괴 사고로 인해 착공한지 약 50년, 개통한 지 47년 만에 붕괴되고 말았다.''' 자세한 내용은 [[볼티모어 교량 붕괴 사고]]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