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 ---- ||<-2> '''{{{#ffc723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br]{{{+1 프리드리히 빌헬름}}}[br]Friedrich Wilhelm,[br]Großherzog von Mecklenburg-Strelitz}}}'''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Friedrich_Wilhelm_Grand_Duke_of_Mecklenburg-Strelitz.jpg|width=100%]]}}} || || '''이름''' ||프리드리히 빌헬름 카를 게오르크 에른스트 아돌프 구스타프[br](Friedrich Wilhelm Karl Georg Ernst Adolf Gustav)|| || '''출생''' ||[[1819년]] [[10월 17일]][br][[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국]] [[노이슈트렐리츠]] || || '''사망''' ||[[1904년]] [[5월 30일]] (향년 84세)[br][[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국]] [[노이슈트렐리츠]] || ||<|2> '''재위''' ||<#e7e7e7,#1f2023>[[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국|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대공(작위)|대공]] || ||[[1860년]] [[9월 6일]] ~ [[1904년]] [[5월 30일]] || || '''배우자''' ||케임브리지의 어거스타 공녀 ,,(1843년 결혼),,|| || '''자녀''' ||프리드리히 빌헬름, [[아돌프 프리드리히 5세]]|| || '''아버지''' ||[[게오르크(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 게오르크]] || || '''어머니''' ||헤센카셀의 마리 공녀 || || '''형제''' ||루이제, 카롤리네 마리아네, 게오르크 아우구스트|| || '''종교''' ||[[루터교회]] || [목차] [clearfix] == 개요 ==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국|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대공(작위)|대공]]. == 생애 == 1819년 10월 19일 [[게오르크(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 게오르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843년 6월 28일 [[영국]] [[버킹엄 궁전]]에서 [[조지 3세]]의 손녀 케임브리지의 어거스타와 결혼했다. 1860년에 대공이 되고 몇년 뒤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발발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공은 중립을 지키고 싶어했다. [[프로이센 왕국|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1세]][* 두 사람은 사촌지간이다.]은 그 뜻을 존중했지만 프로이센 총리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대노하여 프로이센의 편에 서서 싸우지 않으면 대공국을 침략하겠다고 협박했다. 대공은 하는 수 없이 참전해 오스트리아와 맞서싸웠다. 원하지 않은 전쟁이였지만 후에 여러 국가들이 프로이센에 합병되는 과정에서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국은 안전할 수 있었다. 이후 [[북독일 연방]]에 가입했다. 재위기간 동안 대공국의 부실한 재정 확충을 위해 노력했다. [[독일 통일]]은 대공국에 큰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전쟁이 끝나고 빚에 몰린 나라를 매각하며 수입을 올렸다. 덕분에 그는 [[독일 제국]]에 속한 군주들 중 가장 부유한 군주가 되었다. [[분류: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분류: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가문]][[분류:1819년 출생]][[분류:1904년 사망]][[분류:노이슈트렐리츠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