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9b5f66d12736ca5552b50702756a3cda.jpg]] '''프리드리히카를 뮐러(Friedrich-Karl "Tutti" Müller : 1916. 12. 25~1944. 5. 29)''' [목차] == 서훈 == 2급 [[철십자 훈장]] (1940년 4월 17일) 1급 철십자 훈장 (1940년 6월 20일) 1941~1942 [[동부전선]] 동계 기장 4급 국방군 근속장(Wehrmacht-Dienstauszeichnung) 기사 철십자훈장 (1942년 9월 19일) 곡엽기사철십자 훈장 제126호 (1942년 9월 23일) [[독일 십자훈장|독일 황금십자장]] (1943년 11월 15일) 공군 명예컵 (1943년 12월 13일) 공군 최전선 비행 황금기장 (500회 출격) 국방군 보고 방송 (1944년 4월 19일) == 대전 초기 == [[2차 대전]] 초기, [[베를린]] 태생의 프리드리히카를 뮐러는 [[독일 공군]]에서 사관 생도로 훈련을 마치고 제53전투항공단([[JG 53]]) 예하 제8비행중대에 소속되어 있었다. 뮐러 소위는 [[1940년]] 5월 27일에 [[프랑스]] 공군의 [[P-36 호크]] 전투기를 격추했는데, 이것이 그의 첫 전과였다. [* 일설에는 [[M.S.406|MS.406]]이었다고도 한다.] 그 후, [[배틀 오브 브리튼]]에 참전하며 3대의 [[스핏파이어]]를 격추시킨 그는 [[프랑스 침공]] 이래 8대의 스코어를 기록하고 있었다. [[1941년]] 6월에 [[바르바로사 작전]]이 발동되자 그에 따라 [[동부전선]]에 전개한 뮐러는 9월 초까지 20번째 적기를 격추시켰다. 실전 경험과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11월에는 제53전투항공단의 선임 중대장에 취임했다. 그 무렵 선임 중대장은 계급은 위관급이더라도 중령급 사령관과 소령급 비행단장들이 참석하는 작전 회의에 동석하는 중요한 보직이었다. == 격추, 또 격추! == [[1942년]] 봄, 제1비행중대는 [[시칠리아]]에 전개해 있던 독일 공군의 [[지중해]] 기지로 옮겨 갔고 뮐러와 부하들은 [[몰타]] 항공전에 참가하게 된다. 1중대장은 몰타 섬 상공에서 3대의 [[호커 허리케인]]을 격추시켰다. 5월에 다시 러시아 전선으로 복귀한 뮐러는 8월 1일에 42번째, 9월에는 67번째 승리를 거두며 순조롭게 격추를 거듭했다. [[중위]]로 진급한 그는 9월 16일에 4대, 17일에 5대, 18일에 7대, 그리고 9월 19일에 101번째 승리가 되는 2기를 더하는 고농도 격추 행진을 보이며 그 무공으로 기사철십자훈장을 받게 되었다. 프리드리히카를 뮐러 중위는 항공전 역사를 통틀어 23번째로 100대 격추를 달성한 슈퍼 에이스가 되었다. 뮐러에게 기사철십자장이 주어지느라 행정 처리되는 동안 이만큼이나 더 무공을 세우자 9월 23일에는 전군에서 126번째로 곡엽기사 철십자장이 서훈되었다. == 강제 휴가 == 11월에 [[대위]]가 된 뮐러는 제53전투항공단의 제 I 비행단 지휘관으로 취임했다. 1943년 4월까지 그는 12대를 더 보탰고, 그의 스코어는 어느덧 115대에 도달했지만 그간의 반복된 임무와 격렬한 교전으로 인해 신경쇠약 증세가 극심해졌다. 5월에 항공단장에 의해 강제로 휴가를 보내진 그는 한동안 교전에 참가할 일이 없어졌다. == 독일 본토 항공전 == 1944년 2월에 뮐러의 어깨에는 [[소령]] 계급장이 올려졌다. 영관 장교가 된 그는 [[JG 3|제3전투항공단]] 예하 제IV비행단장으로 전속을 가게 되었고, 이 부대는 마침 주간의 [[독일 본토 항공전]]에 참가하며 [[연합군]]의 폭격기 대편대와 싸우고 있었다. 3월 8일까지 비행단장 뮐러는 [[미 공군|미 육군항공군]]의 4발 중폭격기를 3대 격파시켜 합계 격추수는 122대가 되었다. 3월 23일에 항공단 사령관이자 뛰어난 에이스인 [[볼프-디트리히 뷜케|뷜케]]가 [[P-51]]에게 격추당해 전사해버리자, 그 다음 날 후임으로 [[JG 3]]의 사령관에 취임했지만, 뮐러 또한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중령]]이 되어서도 출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활약상은 국방군 보고(Wehrmachtbericht)를 통해 전 유럽에 라디오로 방송되었다. 1944년 5월 29일, 임무를 마치고 잘츠베델(Salzwedel) 비행장으로 돌아오던 뮐러의 탑승기 [[Bf 109]]G-6가 갑자기 15미터 고도에서 실속을 일으켜 지상에 충돌했다. 전투기가 지면에 격돌할 때의 충격으로 기수에 실려있던 [[메르세데스-벤츠|다임러-벤츠]] 엔진이 조종석까지 밀려들어왔고, [[폭격기]] 요격의 달인이었던 역전의 베테랑 지휘관은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다. 프리드리히카를 뮐러가 사고로 죽었을 때, 그는 프랑스와 해협 전투에서 8기, 동부전선에서 89기, [[서부전선]]에서 24대의 중폭격기를 포함해 55기, 합계 140대의 적기를 떨군 상태였다. [include(틀:2차 세계대전/전투기 에이스 31~50위)] [[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에이스 파일럿]][[분류:1916년 출생]][[분류:1944년 사망]][[분류:베를린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