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유서깊은 [[피아노]] 브랜드. 피아노의 시인 [[프레데리크 쇼팽]]이 애호했던 브랜드로 유명하다. 오스트리아 출신 프랑스 작곡가 이그나츠 요제프 플레옐(1757 - 1831)[* [[요제프 하이든]]의 제자였으며, 프랑스에 건너가서 이냐스 조셉 플레옐이라는 프랑스식 이름으로 음악 활동을 하였다. 이그나츠 요제프 플레옐의 아들 카미유는 1831년 23살 연하의 피아니스트 마리 모크와 결혼하였으나 1836년 이혼하였다. 마리 모크는 하필 [[엑토르 베를리오즈]]의 약혼녀였으나 모크의 어머니의 강권으로 베를리오즈와 헤어지고 카미유 플레옐과 결혼하였고, 베를리오즈는 이에 격분하여 마리 모크와 카미유 플레옐, 모크의 어머니까지 암살하기 위해 짐을 싸서 [[니스]]까지 쫓아갔으나 니스의 아름다운 풍광에 매료되어 살인 계획따위는 집어치우고 휴양하고 왔다(...). 그외에도 마리 모크는 [[프란츠 리스트]]와 애정행각을 벌이기도 했는데, 한번은 쇼팽의 집에서 (쇼팽이 부재중을 틈타) 리스트와 그런 짓을 벌이다가 쇼팽에게 들통나는 바람에 리스트와 쇼팽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에 의해 창안되었다. 특징은 건반이 가벼웠다는 것, 그래서 병약한 쇼팽도 무리 없이 연주할 수 있었다. == 역사 == 1807년 이그나츠 요제프 플레옐이 파리에서 플레옐 피아노를 설립했다. 1815년에는 플레옐의 장남 카미유(1788~1855)를 공동대표로 이름을 '이냐스플레옐에피스에네'로 한다. 1855년 카미유가 죽고 그의 사위인 오귀스트 볼프(1821~97)가 플레옐의 경영자가 되어 이름을 플레옐볼프사로 개칭한다. 볼프가 죽은 후에는 그의 사위인 귀스타브 리용(1857~1936)이 회사를 이끌었고 그는 다시 회사의 이름을 플레옐리용사로 바꾸었다. 2013년 경영악화로 생산중단을 선언했다.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3111409280882037|쇼팽의 피아노 佛 플레옐 문 닫나]] [[분류:프랑스의 악기 제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