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모로코 피기그.jpg|width=800]] [목차] [clearfix] == 개요 == [[아랍어]] {{{+1فجيج }}} [[베르베르어]] ⵉⴼⴻⵢⵢⴻⵢ [[영어]] Figuig / Figig [[모로코]] 동부의 도시. 모로코 동쪽 끝부분의 오아시스에 위치한다. 알제리와의 국경과 남,동,북쪽으로 접하며 서남쪽의 [[베샤르]]와 90km 거리인 국경 도시이다. 고산 아틀라스 끝자락과 [[사하라 사막]]이 만나는 곳에 입지한 도시로, 전통적으로 대추야자 생산과 대상 교역을 행하였다. 근대 시기까지만 해도 모로코 동부의 주요 도시 중 하나였지만, 현대 들어 인구가 급감하여 현재는 1만 가량에 불과하다. 주민들은 제나타 베르베르인으로, 아그람이란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간다. == 역사 == [[파일:모로코 피기그 2.png]] 1903년 6월 피기그를 폭격하는 프랑스군 (르 쁘띠 파리지엥 수록 삽화) 선사 시대부터 벽화가 그려질 정도로 먼 옛날부터 인류가 거주하였다. 본래 제나타 베르베르 마을이었다가 10세기 [[페스]]에서 [[이드리스 왕조]] 왕가의 일원인 이사 빈 압델라흐만 앗-샤리프가 이주하여 궁전과 마드라사를 세워 본격적으로 이슬람화되었고 농업 기술 및 아랍 문화가 전래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현지 [[마니교]] / 기독교 수사들이 예루살렘 순례 중 이슬람을 접하고 개종하여 이슬람이 퍼졌다고도 한다. 13세기 중반 [[무와히드 왕조]]의 쇠퇴기에는 타들라 출신의 바누 자베르 아랍인들이 인근에 정착하였다. 14세기에는 성자로 추앙받게 된 시디 아흐메드 빈 무사 알-바르조지가 정착하였다. 17세기 [[알라위 왕조]]의 술탄 물라이 이스마일은 일대에 아랍 부족들을 정착시켜 개발하려 하였으나 현지 베르베르 인들이 강력히 저항하여 결국 그 성채를 파괴하였다. 19세기 프랑스측 기록에 의하면 피기그는 알라위 왕조와 [[오랑]]의 베이 양측에게 조공하며 자치를 유지하였다. 1903년 사하라 내부로 팽창하던 프랑스 군이 대포를 동원하여 피기그를 두 차례 공격하였고, 결국 패배한 주민들은 배상금을 내야 했다. 이후 프랑스는 피기그 주변의 배후지를 빼앗고 도시를 에워싸는 모로코-프랑스령 알제리 간의 국경이 세워졌고, 이는 1963년 모로코-알제리 간의 모래 전쟁 당시 국경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전쟁으로 많은 주민들이 희생되었고, 일대의 거대한 대추야자 농경지가 파괴되며 인구 감소로 이어졌다. 전후 방치되던 도시는 2009년 국왕 [[무함마드 5세]]의 지시로 루다게르 궁전이 재건되고 사회 복지 시설이 세워지는 등 재정비에 들어갔다. 2021년에는 알제리 군이 국경 너머에서 경작하던 모로코 농부들을 몰아내는 일이 있었다. == 볼거리 == [[파일:모로코 피기그.png|width=800]] * 북부 구도심 [[파일:모로코 피기그 1.png|width=800]] * 남부 구도심 [[분류:모로코의 도시]] [[분류:오아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