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프랑스의 생물학자]][[분류:1762년 출생]][[분류:1833년 사망]] ||<-2> '''{{{+1 피에르 앙드레 라트레유}}}[br]Jean-Baptiste Lamarck'''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라트레유.png|width=100%]]}}} || ||<|2> '''출생''' ||[[1762년]] [[11월 29일]]|| ||[[프랑스]]|| ||<|2> '''사망''' ||[[1833년]] [[2월 6일]] (향년 70세)|| ||[[프랑스]]||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프랑스)]|| || '''직업''' ||[[생물학자]]|| || '''소속''' ||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 France|| [목차] [clearfix] == 개요 == 라트레유는 프랑스의 주로 절지동물을 연구하는 생물학자이다. == 상세 == 당시 최고의 곤충학자로 인정받았으며, [[갑각류]] 최대의 분류군인 [[십각목]]의 학명을 지었다. [[프랑스 혁명]]때 감옥에 갇힌 [[사형수]]가 된 적도 있었다. 당시 신부였던 라트레유가 국가에 대한 충성을 하지 않았다나 뭐라나. 하지만 다행히도 라트레유는 사형당할 위기에서 구출되었다. 우연히 감옥에서 ''Necrobia ruficollis''라는 희귀 딱정벌레를 발견해서 관찰하고 있는 라트레유를 어떤 한 감옥 의사가 우연히 봤기 때문. 라트레유는 이 딱정벌레가 희귀한 딱정벌레라고 설명을 하였고, 이를 인상깊게 본 의사가 라트레유를 살려주었었다. 천재 학자였던 라트레유는 안타깝게도 1833년 방광병으로 사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