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궁재]][[분류:창업군주]][[분류:프랑크인의 왕]][[분류:714년 출생]][[분류:768년 사망]][[분류:카롤루스 가문]][[분류:생 드니 대성당 안장자]][[분류:일드프랑스 출신 인물]] [include(틀:역대 프랑크인의 왕)] ---- || '''휘''' ||<(> 소(小) 피핀 (Pepin the Younger), 단신왕[* '''단구왕(短軀王)'''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피핀 (Pepin the Short) || || '''생몰년도''' ||<(> 714년 ~ 768년 1월 28일 || || '''재위기간''' ||<(> 751년 11월[* 즉위 장소는 수아송.] ~ 768년 9월 24일 || || '''출생지''' ||<(> 불명 || || '''사망지''' ||<(> [[프랑크 왕국]] 생 드니 || [목차] == 개요 == || [[라틴어]] || Pippinus III (피피누스 3세) || || [[독일어]] || Pippin der Jüngere (단신왕 피핀) || || [[프랑스어]] || Pépin le Bref (단신왕 페팽) || || [[네덜란드어]] || Pepijn de Korte (단신왕 프페인) || [[프랑크 왕국]] [[카롤루스 왕조]]의 개창자이다. 피핀 3세 이전에도 카롤루스 가문의 [[킬데베르 3세]][* 피핀의 6촌 종조부로 피핀 3세의 조부 [[피핀 2세]]의 외숙부인 그리모알드 1세의 아들이 실데베르 3세였다.]가 프랑크 왕국의 왕으로 즉위한 바 있으나 실데베르 3세는 폐위된 후 메로빙거 가문이 다시 왕위에 복귀하여 왕위가 이어지지 않았고 피핀 3세가 즉위한 이후에야 아들인 카롤루스 대제가 왕위를 세습하여 왕조가 이어지기 시작했으므로 카롤루스 왕조의 실제 창시자는 피핀 3세라고 인정된다. 그 유명한 [[카롤루스 대제]]의 아버지이며, 프랑크 왕국을 이슬람으로부터 지켜냈던 궁재 [[카롤루스 마르텔]]의 둘째 아들이다. == 생애 == [[프랑크 왕국]]의 [[궁재]]로서 왕국의 실권자였던 아버지 [[카롤루스 마르텔]]이 741년 숨을 거두자 형인 카를로만과 함께 [[궁재]]직을 나눠받았다. 그래서 카를로만과 함께 프랑크 왕국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들을 진압하다가 747년 카를로만이 아들 드로고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수도원]]으로 은퇴해버리자 곧바로 조카인 드로고를 [[수도원]]으로 유폐시키고 모든 전권을 장악했다. 이후 왕위를 노렸는데 여기에 [[교황]]을 회유해서 끌여들였다. 당시 교황 [[자카리아]]에게 >"실력은 있는데 왕이 되지 못한 자가 왕이 되어야 합니까? 아니면 왕이면서도 실력이 없는 자가 통치를 해야 합니까?" 라는 내용의 서신을 보냈고[* 사실 이 서신이 답정너식인게 가톨릭이 국교인 프랑크 왕국에서 교황에게 이런 내용의 서신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반역을 하겠다고 통보하는 것이다. 즉 피핀은 교황에게 승인을 받고 쿠데타를 일으킨게 아니라, 이미 쿠데타 준비를 다 완료한 상태에서 교황에게 통보를 한 것이다. 즉 서신의 속뜻은 '''"[[답정너|이 서신을 보낸시점에서 쿠데타 준비가 다 되었으니 답은 정해져 있고 교황 성하께서는 승인만 해주시면 됩니다.]]"'''] 교황 자카리아가 그를 왕으로 인정하면서[* 언급했듯이 이미 피핀은 쿠데타 계획을 전부 마친 상태였기에 자카리아는 굳이 자신이 아니더라도 피핀이 언젠가 왕위를 차지할 작정임을 눈치챘고, 괜히 척 져서 적이 되는 것보다 그를 왕으로 인정해주고 거기서 나오는 이득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서로에게 이득이 된 셈.] [[메로베우스 왕조]]의 [[킬데리크 3세]]를 [[찬탈|폐위시키고]] 751년 11월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후 피핀은 [[랑고바르드 왕국|롬바르드 왕국]]의 위협을 받는 교황을 도와 ''''로마인의 수호자'(patricius Romanorum)'''라는 칭호를 받았고, 756년 교황에게 자기가 점령한 옛 [[라벤나 총독부]] 지역을 기증하게 된다. 이게 유명한 '''<피핀의 기증>'''이며 이는 곧 [[교황령]]의 기원이 되었다. [[작센]] 원정을 준비 중이던 768년, [[생드니]]에서 건강이 악화되어 세상을 떴다. 유해는 [[생 드니 대성당]]에 안치됐다. 여러모로 《[[삼국지]]》 [[조비]]와 비슷한 점이 있다. 마르텔의 궁재직을 이어받은 것은 [[조조]]가 조비에게 위왕의 자리를 물려주고 조비가 [[헌제]]로부터 [[선양]]받아 [[위(삼국시대)|위나라]]를 열었듯이 피핀도 결국 [[메로베우스 왕조]]로부터 선양을 받아 [[카롤루스 왕조]]를 개창한 점이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