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페르가몬 국왕)] ||<-3><#FF4500> '''{{{#FFF 페르가몬 왕국 초대 군주}}}''' [br] {{{+2 {{{#FFF '''Φιλέταιρος | 필레타이로스'''}}}}}} || ||<-3> [[파일:필레타이로스.jpg|width=300]] || ||<|3><#FF4500> '''{{{#FFF 제호}}}''' ||<#FF4500> '''[[한국어|{{{#FFF 한국어}}}]]''' ||필레타이로스 || ||<#FF4500> '''{{{#FFF 그리스어}}}''' ||Φιλέταιρος || ||<#FF4500> '''[[영어|{{{#FFF 영어}}}]]''' ||Philetaerus || ||<-2><#FF4500> '''{{{#FFF 존호}}}''' ||[[사트라프]] → [[바실레프스]](추존) || ||<-2><#FF4500> '''{{{#FFF 생몰 년도}}}''' ||[[기원전 343년]] ~ [[기원전 263년]] || ||<-2><#FF4500> '''{{{#FFF 재위 기간}}}''' ||기원전 282년 ~ 기원전 263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페르가몬 왕국]] 초대 군주. [[환관]] 출신 장군으로, [[리시마코스]]의 부관이었다가 [[셀레우코스 1세]]에게 귀순한 뒤 페르가몬 일대를 장악했다. == 생애 == 기원전 343년 흑해 연안의 티오스(Τῖον, 오늘날 터기 필요스 인근)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아탈로스는 마케도니아인이었고 어머니 보아는 파플라고니아인이었다. 그는 일찍이 [[환관]]으로서 [[알렉산드로스 3세]]의 궁정에서 일했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3세가 죽은 뒤 [[안티고노스 1세]] 휘하에서 복무하다가 기원전 301년 안티고노스가 [[입소스 전투]]에서 전사한 뒤 [[리시마코스]]에게 충성을 바치고 은 9천 달란트의 금고를 보관하고 있던 페르가몬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기원전 282년, 리시마코스는 전처 니케아와의 사이에서 낳은 장남 아가토클레스를 모반 혐의로 처형하고 후처 [[아르시노에 2세]]와의 사이에서 낳은 프톨레마이오스를 후계자로 삼았다. 이에 아가토클레스의 아내이자 아르시노에의 이복 누이인 리산드라는 아가토클레스의 지지자들과 함께 [[셀레우코스 1세]]에게 귀순했다. 이때 그 역시 리시마코스를 배신하고 셀레우코스에게 페르가몬를 바쳤다. 셀레우코스는 기원전 281년 2월 [[사르데스]] 인근의 코루페디온 전투에서 리시마코스를 전사시키고 그의 영토를 모조리 확보했다. 그 후 자신에게 협조한 그에게 페르가몬 일대에서 자치권을 누리도록 허용했다. 기원전 281년 9월, 셀레우코스 1세가 트라키아 원정에 착수했다가 리사마키아 인근에서 희생제를 치르고 있을 때 [[프톨레마이오스 케라우노스]]에게 암살당했다. 이후 셀레우코스 제국이 혼란에 휩싸이면서 자신에게 별다른 신경을 쓰지 못하는 틈을 타, 그는 페르가몬 너머로 영향력을 확장했다. 델포이와 델로스 신전을 포함하여 이웃 도시와 신전에 막대한 자금을 자금을 지원했고, [[켈트]]족의 침략에 대항하는 키지코스 시에 군대, 돈, 식량을 지원했다. 그 결과, 그는 소아시아와 그리스 일대에 상당한 지지자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는 40여 년간 통치하면서 페르가몬의 아크로폴리스에 데메테르 신전과 아테나 신전, 궁전을 건설했으며, 요새를 상당히 증축하는 등 기반을 탄탄히 다졌다. 다만 독립국을 세우지는 않고 셀레우코스 제국의 [[사트라프]]로 남았다. 기원전 263년 사망했을 때 환관이라서 아들이 없었고, 조카 [[에우메네스 1세]]가 뒤를 이었다. [[분류:페르가몬 국왕]][[분류:기원전 343년 출생]][[분류:기원전 263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