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1차세계대전기의 독일 제국군 장성급 장교)] [include(틀:1차세계대전기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장성급 장교)] ---- ||<-2> '''프로이센 왕국의 왕자[br]{{{+1 하인리히 폰 프로이센}}}[br]Prinz Heinrich von Preußen''' || |||| {{{#!wiki style="margin:-6px -10px" [[파일:Prince Henry of Prussia.png|width=100%]]}}} || || '''이름''' ||알베르트 빌헬름 하인리히 폰 프로이센[br](Albert Wilhelm Heinrich von Preußen)|| || '''출생''' ||[[1862년]] [[8월 14일]][br][[독일 연방]] [[프로이센 왕국]] [[베를린]]|| || '''사망''' ||[[1929년]] [[4월 20일]] (향년 66세)[br][[바이마르 공화국]]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바르켈스비 헤멜마르크 성|| || '''배우자''' ||[[헤센의 이레네|헤센의 이레네 공녀]] ,,(1888년 결혼),,|| || '''자녀''' ||발데마어, 지기스문트, 하인리히|| || '''아버지''' ||[[프리드리히 3세(독일 제국)|프리드리히 3세]]|| || '''어머니'''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 || '''형제''' ||[[빌헬름 2세]], [[빅토리아 엘리자베트 아우구스테 샤를로테|샤를로테]], 지기스문트, [[프로이센의 빅토리아|빅토리아]], 발데마어, [[프로이센의 조피|조피]], [[마르가레테 폰 프로이센|마르가레테]]|| || '''서명''' ||[[파일:China_Under_Empress_Dowager_(1914,_p_015).svg.png|width=150]]|| ||<-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8px" {{{#!folding [ 군사 경력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복무''' ||[[독일 제국군]] || || '''최종 계급''' ||[[원수(계급)|해군 원수]] ([[제독]]) || || '''주요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 || '''주요 서훈''' ||백엽 [[푸르 르 메리트]][br]검은 독수리 훈장 ||}}}}}}}}} || [목차] [clearfix] == 개요 == [[독일 제국]]의 [[프리드리히 3세(독일 제국)|프리드리히 3세]]와 [[빅토리아 애들레이드 메리 루이자|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의 2남으로, [[독일 제국 해군]]의 대제독이다. == 생애 == === 초기 === 1862년 8월 14일, 하인리히는 베를린에서 프리드리히 황태자의 셋째이자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872년, 15세의 나이에 하인리히는 독일 제국 황립 해군에 사관 후보생으로 입대하였고, 1878년부터 1880년까지 전세계를 여행하며, 1884년부터 1886년까지 프로이센의 해군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 독일 제국 해군 === 하인리히는 프로이센 왕국의 왕자로서 금방 독일 제국 해군에서 계급을 올렸고, 1887년 어뢰정을 지휘하였다. 정장을 거쳐 어뢰정 편대가 신설됐을 때 초대 편대장도 맡았다. 1897년부터는 여러 해군 기동 부대를 지휘했다. 동아시아에 배치되었던 부대에 하인리히도 포함되어 있었다. [[청나라]]에도 파병되었으며, 이곳에서 외교적인 성공도 거두었다. 이후 [[의화단의 난]] 이후 독일에 사죄하러 온 [[순친왕]]과 만나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법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1899년에 그는 공식적으로 동아시아 함대의 사령관이 되었으며, 동년에 [[대한제국]]을 방문하여 한국 역사상 두 번째 서양 국빈이 됐다.[* 첫 번째는 1895년 방한한 이탈리아 왕국의 [[아마데오 1세#s-5.2|아브루치 공작 루이지 아메데오[[https://en.wikipedia.org/wiki/Prince_Luigi_Amedeo,_Duke_of_the_Abruzzi|#]] 실록에는 이탈리아 국왕의 조카 아부리 공작이라고 나온다.]]][* 하인리히는 이때 조선의 전투 기술을 보여달라고 청하였는데, 이 중 궁술을 매우 마음에 들어 했고 조선의 [[국궁]]을 쏴 보기도 했다. 다만 하인리히 일행에 대한 평판은 별로 좋지 않았다. 독일에게도 이권을 달라며 땡깡을 부리고 폭력사태까지 일으키는 등, 많은 물의를 빚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kkumi17cs1013&logNo=221721449479&referrerCode=0&searchKeyword=%ED%94%84%EB%A1%9C%EC%9D%B4%EC%84%BC|참고]] 하인리히 왕자와 [[이레네 루이제 마리아 안나|이레네 공녀]] 부부는 모두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주들이었기에 영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잘 구사했지만, 정작 대한제국 측 통역관([[민상호]])의 한계 때문인지 대화는 피상적이었다고 한다.[[https://jmagazine.joins.com/art_print.php?art_id=280661|#]] 심지어 방한 중에 정신병자 한 명이 난입해 고종에게 자신은 천주교 신자인데, 황제가 되어야 한다는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며 국가를 자신에게 인계하라고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실록에는 영어식으로 발음해 헨리 친왕이라고 나온다.[[https://sillok.history.go.kr/id/kza_13606009_001|#]] 그에 대한 대접은 극진했고, 하인리히 왕자도 고종 황제에 대해 호평을 했지만 동시에 여러 사건 때문에 동정심을 자아낸다고 평하기도 했다. 이후 하인리히 왕자가 출국할 때 고종황제는 여러가지 선물을 줬다.[[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30619/119842140/1|#]] 1904년에는 [[대한제국 훈장#s-3.1|대훈위 금척대수장]]을 수훈받았다. 나중에는 주력 함대의 사령관이 되었고 1903년에는 발트해 해군기지의 사령관이 되었다. 1906년부터 1909년까지 [[대양함대]]의 사령관이었으며, 1909년에는 대제독으로 진급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하인리히는 발트해 함대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하인리히는 [[러시아 제국 해군]]에게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독일 해안을 향한 공격을 저지하였다. 전후 군주제가 사라지자 하인리히는 해군을 떠났다. 이후 혁명을 피해 살다가 아버지처럼 [[후두암]]으로 인해 사망하였다. == 성격과 사생활 == 하인리히는 독일 제국에서 가장 먼저 파일럿 면허를 받은 사람 중 한명이었다. 그는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으며, 노년에도 자동차를 이용한 스포츠를 즐겼다고 한다. 하인리히는 동시에 용감하고 우수한 선장이었다고 한다. 현대 기술에 능통하였으며, 요트 타기를 즐겼다. 이외에도 하인리히는 '하인리히 왕자' 모자를 유행시켰다. || [[파일:Prinz-Heinrich-Muetze.jpg]] || || 하인리히 왕자 모자 || == [[호엔촐레른 가문|가족관계]]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호엔촐레른 가문)] 둘째 이모 [[앨리스 모드 메리|헤센 대공비 앨리스]]의 3녀로 이종사촌인 [[이레네 루이제 마리아 아나|헤센의 이레네 공녀]]와 결혼했는데, 이레네는 외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에게 물려받은 [[혈우병]] 보인자여서 장남과 3남이 혈우병 환자로 태어났다. 참고로 이레네의 둘째 언니 [[엘리자베트 알렉산드라 루이제 알릭스|헤센의 엘리자베트 공녀]]는 하인리히의 형인 [[빌헬름 2세]]의 구애를 받았으나 거절했다. 만약 둘이 결혼했으면 [[겹사돈]]이 될 수도 있었다. 슬하에 3남을 두었는데 앞서 말했다시피 장남 발데마어와 3남 하인리히는 [[혈우병]] 환자였다. 하인리히는 4살에 요절했고, 발데마어는 56세까지 비교적 장수한 편이지만 자손이 없었다. 자녀를 둔 건 혈우병이 없던 차남 지기스문트 뿐이지만 [[코스타리카]]로 이민 가서 살았다. 차남 지기스문트는 [[에른스트 2세(작센알텐부르크)]]의 맏딸 샤를로테와 결혼해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지만 장남 알프레드가 자녀 없이 죽어서 대가 끊겼다. 장녀 바바라는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국|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마지막 대공 프리드리히 프란츠 4세의 2남 2녀 중 차남 크리스티안 루트비히와 결혼해서 슬하에 2녀를 두었는데, 프리드리히 프란츠 4세의 장남 프리드리히 프란츠는 자녀 없이 사망했고, 바바라와 결혼한 크리스티안 루트비히 역시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메클렌부르크슈베린 가문 역시 단절된다. 하인리히 왕자의 직계 자손의 대가 끊어지면서 [[빌헬름 1세]] 이후의 [[호엔촐레른 가문]]은 [[빌헬름 2세]]의 자손들만 대를 이어나가게 된다.[* [[프리드리히 3세(독일 제국)|프리드리히 3세]]와 [[빅토리아 애들레이드 메리 루이자|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의 아들들 중 비교적 오래 살았지만 대가 끊긴 하인리히나 일찍 요절한 지기스문트와 빌데마르와 달리, 빌헬름 2세는 거꾸로 엄청난 아들 부자(6남 1녀)였고 빌헬름의 아들들과 손자들도 아들을 많이 낳아 현재까지 후손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메클렌부르크 가문 역시 슈베린의 직계 자손의 대가 끊어지면서 메클렌부르크 가문은 슈트렐리츠 계열의 자손들만 대를 이어나가게 된다. 다만 아들부자 호엔촐레른 가문과 달리 이쪽은 남자 계승자가 3명[* 아들 2, 손자 1]밖에 없어서 자손 수가 별로 없다. 얼굴을 보면 알겠지만 형인 빌헬름 2세와는 달리 친척들인 [[조지 5세]], [[니콜라이 2세]]와 닮았다. === 조상 === ||<#FFA3A5,#5c0001> 본인 ||<#FFDBAE,#512c00> 부모 ||<#FFFFAE,#505100> 조부모 ||<#AEFFC6,#005118> 증조부모 || ||<#FFE4E1,#330500><|13> [[프로이센]]의 하인리히 왕자[br]{{{-2 (Heinrich von Preußen)}}} ||<#FFF3E4,#331c00><|6> [[프리드리히 3세(독일 제국)|프리드리히 3세]][br]{{{-2 (Frederick III)}}} ||<#FFFFE4,#323300><|3> [[빌헬름 1세]][br]{{{-2 (William I)}}} || ||<#E4FFEC,#00330f>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br]{{{-2 (Frederick William III)}}} || ||<#E4FFEC,#00330f>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루이제]][br]{{{-2 (Duchess Louise of Mecklenburg-Strelitz)}}} || ||<#FFFFE4,#323300><|3>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아우구스타|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아우구스타 공녀]][br]{{{-2 (Princess Augusta of Saxe-Weimar-Eisenach)}}} || ||<#E4FFEC,#00330f>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br]카를 프리드리히[br]{{{-2 (Charles Frederick, Grand Duke of Saxe-Weimar-Eisenach)}}} || ||<#E4FFEC,#00330f> [[마리야 파블로브나 로마노바|러시아 제국의 마리야 파블로브나 여대공]][br]{{{-2 (Grand Duchess Maria Pavlovna of Russia)}}}[* [[파벨 1세]]의 3녀이다.] || ||<#FFF3E4,#331c00><|7> [[빅토리아 애들레이드 메리 루이자|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br]{{{-2 (Victoria,[br]Princess Royal)}}} || ||<#FFFFE4,#323300><|3> [[앨버트 공|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앨버트 공자]][br]{{{-2 (Prince Albert of Saxe-Coburg and Gotha)}}} || ||<#E4FFEC,#00330f> [[에른스트 1세|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에른스트 1세]][br]{{{-2 (Ernest I, Duke of Saxe-Coburg and Gotha}}} || ||<#E4FFEC,#00330f> 작센고타알텐부르크의 루이제 공녀[br]{{{-2 (Princess Louise of Saxe-Gotha-Altenburg)}}} || ||<#FFFFE4,#323300><|3> [[빅토리아 여왕]][br]{{{-2 (Victoria)}}} || ||<#E4FFEC,#00330f> [[에드워드 어거스터스|켄트와 스트래선 공작 에드워드 왕자]][br]{{{-2 (Prince Edward,[br]Duke of Kent and Strathearn)}}}[* [[조지 3세]]의 4남이다.] || ||<#E4FFEC,#00330f> [[마리 루이제 빅토리아|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빅토리아 공녀]][br]{{{-2 (Princess Victoria of Saxe-Coburg-Saalfeld)}}} || === 자녀 === || '''자녀''' || '''이름''' || '''출생''' || '''사망''' || '''배우자 / 자녀''' || || '''1남''' || 발데마어 왕자[br]{{{-2 (Prince Waldemar)}}} || [[1889년]] [[3월 20일]] || [[1945년]] [[5월 2일]] || 리페비스터펠트의 공녀 칼릭스타 || || '''2남''' || 지기스문트 왕자[br]{{{-2 (Prince Sigismund)}}} || [[1896년]] [[11월 27일]] || [[1978년]] [[11월 14일]] || 작센알텐부르크의 공녀 샤를로테[br]슬하 1남 1녀 || || '''3남''' || 하인리히 왕자[br]{{{-2 (Prince Henry)}}} || [[1900년]] [[1월 9일]] || [[1904년]] [[2월 26일]] || || [[분류:프로이센의 왕자]][[분류:제1차 세계 대전/군인]][[분류:독일 제국의 군인]][[분류:독일의 해군 제독]][[분류:독일의 원수]][[분류:1862년 출생]][[분류:1929년 사망]][[분류:후두암으로 죽은 인물]][[분류:호엔촐레른 가문]][[분류:베를린 출신 인물]][[분류:가터 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