旗田 巍 1908~1994 [목차] == 개요 == 하타다 다카시는 [[일본]]의 역사학자다. 기존의 일본 역사학계내에서 만연해있던 [[식민사관]]을 부정하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한국사]]를 연구하여, 일본에서의 한국사 연구의 선구자로 대우받고 있다. == 생애 == 1908년에 [[경상남도]] [[마산시]][* 현재 [[창원시]]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에서 태어났으며, 마산소학교와 부산중학교를 거쳐 구마모토 제5고, [[도쿄대학]] 문학부 동양사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졸업 논문은 <조선토지제도사>였다. 졸업 후에는 만철조사부에서 근무하였는데, [[중국]] 관행조사 관련 연구를 담당하였다. 패전후 동경도립대학 조교수와 교수를 거처, 1972년 정년퇴임하여 명예교수가 되었고, 그 뒤 [[센슈대학]]의 교수로서 교편을 잡은 뒤, 1979년 퇴직하였다. 고향인 [[마산시]]를 사랑하여 1985년 다시 방문하기도 하였다. [[중국]] 촌락공동체에 대하여 중요한 저작인 <중국촌락과 공동체이론>을 남기기도 하였으나 대부분의 생애는 [[한국사]] 연구에 매진하여 [[일본]]에서 한국사연구의 개척자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특히 [[일제 강점기|일본의 조선지배]]를 정당화하는 [[식민사관]]에 대한 비판하였고, "무엇보다도 [[한국인|조선인]]이 걸어온 [[한국|조선]]의 역사를 연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조선인의 고뇌를 자신의 고뇌로 삼는 것이 조선사 연구의 출발점"이라는 자세로 평생 일관하였다. 1959년에는 [[일본]]에서 [[조선사연구회]]를 만들어서 일본에서 [[한국사]]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 기타 == * 그에 관한 전기로 고길희, <하타다 다카시>(지식산업사, 2005)가 있다. * 제자로는 기무라 마코토가 있다. * 신라 일대를 약탈한 주체를 왜국의 정규군이 아닌 계절풍을 이용해 도해하여 식량을 약탈하고 사람을 약취하는 왜구의 성격으로 규정 하였다. [[분류:일본의 역사학자]][[분류:한국사학자]][[분류:도쿄대학 출신]][[분류:창원시 출신 인물]][[분류:히키아게샤]][[분류:1908년 출생]][[분류:1994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