夏侯光姬 (? ~ 307) [include(틀:진서)] [목차] == 개요 == [[하후연]]의 증손녀이자 낭야공왕 [[사마근]]의 왕비이며, 진원제 [[원제(동진)|사마예]]의 생모. == 생애 ==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지혜로웠으며 하후씨의 집안 또한 [[하후연]], [[하후위]]부터 이어져내려온 뼈대있는 가문이라, 하후광희가 성년이 되었을 때 황족인 사마근과 맺어졌다. 그리고 276년에 [[허난성|하남군]] [[뤄양시|낙양]]에서 훗날 [[동진]]의 황제가 되는 사마예를 낳았다. 283년, [[사마주]]가 죽고 낭야왕에 오른 사마근은 하후광희를 왕비, 그녀 소생의 아들 사마예를 왕세자로 삼았다. 290년, 사마근이 사망하고 그 뒤를 이은 사마예가 어머니 하후광희를 왕태비로 모셨다. 이후 17년 뒤인 307년에 하후광희 또한 죽었고, 그녀의 시신은 낭야국에 안장되었다. 참고로 그녀가 사망하고 10년 뒤에 아들인 사마예가 동진의 황제가 된다. == 여담 == [[위서(역사책)|위서]]에 아들인 사마예 출생에 관한 일화가 하나 수록되어 있다. [[조위(국가)|조위]] 말기 당시 세간에서는 《현석도(玄石圖)》라는 참언서가 유행하고 있었다. 여기에 "소가 말의 뒤를 잇는다."는 구절이 있었는데, 사마의는 소는 우(牛)씨, 말은 사마(馬)씨를 뜻하므로, 사마씨 국가가 망하고 우씨가 집권한다 해석하였다. 그래서 유명한 점쟁이에게 가 자신의 후손들의 운세를 점쳐달라 했지만, 점괘는 사마의가 예상한 것과 조금도 틀리지 않게 나왔다. 이에 사마의가 [[우금(조위)|우금]]을 독살했으나, 훗날 방탕한 하후광희는 [[우금(서진)|우금]]과 통정하여 사마예를 낳았으니, 결국 참언이 들어맞았다는 식의 이야기이다. 이 일화의 최초 출처인 위서는 북조 25사 중에서도 질이 나쁘기로 악명이 높고, 남조측의 정통성을 깎아내리기 위해 지어낸 참언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다.[* 다만 《현석도》라는 참언서 자체는 실제 존재했는지, [[사마광]]의 《[[자치통감]]》이나 허숭(許嵩)의 《[[건강실록]]》에서 그 내용의 일부분을 엿볼 수 있긴 하다.] [[진서]]에는 또다른 내용의 참언이 실려있다. [[서진]] 초에 "동마(銅馬)가 바다로 들어가 업(業)을 세울 것이다."라는 참언이 유행했다고 한다. 하후광희의 아명이 동환(銅環)이고 사마는 본래 말(馬)을 가리키므로, 동마인 사마예가 바다와 가까운 건강에 들어가 동진의 황제에 올랐으니 참언대로 되었다. [[분류:서진의 인물]][[분류:307년 사망]][[분류:초군 하후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