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의 대외관계)] [include(틀:중국의 대외관계)] [include(틀:베트남의 대외관계)]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1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중국 국기.svg|width=1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베트남 국기.svg|width=100%]]}}}|| || [[대한민국|{{{#fff {{{+1 '''대한민국'''[br]{{{#fff {{{-3 ''大韩民国[br]Đại Hàn Dân Quốc[br]Republic of Korea''}}}}}}}}}}}}]] || [[중국|{{{#ffff00 {{{+1 '''중국'''[br]{{{#fff000 {{{-3 ''中华人民共和国[br]Cộng hòa nhân dân Trung Hoa[br]People's Republic of China''}}}}}}}}}}}}]] || [[베트남|{{{#ffff00 {{{+1 '''베트남'''[br]{{{#fff000 {{{-3 ''Cộng hòa xã hội chủ nghĩa Việt Nam[br]越南社会主义共和国[br]Socialist Republic of Vietnam''}}}}}}}}}}}}]] || [목차] == 개요 == [[동아시아]] 국가 '''[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include(틀:국기, 국명=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 '''[include(틀:국기, 국명=베트남)]'''의 [[삼각관계]]. [[국력]]에 따라 대한민국은 [[지역강국]],[* [[이탈리아]], [[인도]]와 함께 [[강대국의 최소]]로 봐야한다는 의견도 있으나, [[지중해]] 일대에 일정부분 패권을 행사하는 이탈리아와 [[남아시아]]의 유일무이한 패권국인 인도와는 달리 대한민국은 [[미중러일]] 4강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입지로 인해 역내 5위에 머물러 지역강국 정도로 여겨진다.] 중국은 [[강대국]],[* [[미국]] 다음가는 확고한 2위 자리를 수성중이며 다른 강대국들인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과는 체급을 달리한다.] 베트남은 [[중견국]]으로 평가받는다. 경제개발 수준에서 대한민국은 [[선진국]], 중국은 [[신흥공업국]], 베트남은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된다. == 역사 == === [[고대]] ~ [[냉전]] 시대 === * [[한중관계]] : 고대엔 한중 간 충돌이 잦았다. [[한민족]] 최초의 국가 [[고조선]]은 [[전한]] [[무제(전한)|무제]]의 침공으로 멸망했고, [[고구려]]와 [[백제]]는 [[신라]]와 동맹을 맺은 [[당나라]]의 침공으로 멸망했다. 또한 당나라는 고구려·백제 멸망 이후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는 야욕을 드러내어 신라와의 [[나당전쟁]]으로 이어졌다. 고구려의 후신을 자처한 [[발해]]는 건국 초기에 당나라 [[산둥 반도]]를 공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세에 접어들면서 [[통일신라]]와 발해 모두 당나라와 무난한 관계를 구축하기 시작했고, 많은 신라인/발해인이 당나라로 유학을 가거나 당나라와 무역을 하며 중국의 선진 문물을 수용하였다. [[후삼국시대]]의 최종 승자 [[고려]]는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등 북방 유목민족 국가들과는 숱한 전쟁을 치렀지만 중원의 [[송나라]]와는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광종]] 치세엔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 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고려 말 중원에 들어선 [[명나라]]와는 갈등을 빚어 고려 [[우왕]]이 [[랴오둥 반도]] 침공을 기획하기도 했으나 이것이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어 [[조선]] 건국으로 이어졌다. 고려와 달리 조선은 명나라에 철저히 사대하였다. 16세기 말 [[임진왜란]]에서 명나라는 조선을 돕기 위해 참전했고, 이 때문에 전후 조선 사대부들은 명나라를 '재조지은(再造之恩)의 나라'로 칭송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왜란 이후 명나라가 급격히 쇠퇴하고 [[청나라]]가 부상하면서 조선은 외교적으로 매우 난처한 입장에 놓였다. [[광해군]]은 어느 정도 중립적인 외교를 추구했지만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끌어내리고 즉위한 [[인조]]는 친명배금(親明排金) 외교로 회귀했고, 결국 청나라를 자극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촉발하였다. 인조가 청 황제에게 [[삼전도의 굴욕]]이라는 항복 의식을 치른 후 한중관계는 강압적인 주종관계로 변했고, 조선의 지배층은 공식적으로는 청나라에 사대했지만 멸망한 명나라에 대한 [[사대주의]]를 고수하였다. 이러한 관계는 1897년 [[고종(조선)|고종]]이 [[러시아 제국]]과 밀착해 [[대한제국]]을 수립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제국주의 열강으로 떠오른 [[일본 제국]]은 1910년 대한제국을 병합해 식민지로 삼았고, 1930년대부턴 중국 대륙에 진출하기 위해 [[중화민국]]과 전쟁을 시작하면서 한중 양국은 항일(抗日)을 위해 연대하였다. 1945년 일제의 패망 이후 한반도에선 남북에 각각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이 들어섰다. 중국에선 [[국공내전]] 끝에 대륙엔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 건국되었고 중화민국은 [[타이완 섬]]으로 옮겨 갔다. 1950년 [[6.25 전쟁]]에서 중국은 임진왜란 때와 유사하게 [[순망치한]]을 내세우며 북한을 돕기 위해 참전했고, 이로 인해 전선이 고착화된 상태에서 정전 협정이 조인되어 오늘날까지도 남북분단이 지속되고 있다. 전후 중국은 북한과 이른바 [[혈맹]] 관계로 발전했고, 한국은 [[냉전]]이 종식될 때까지 중국과 외교 관계를 맺지 않고 적대하였다. * [[한국-베트남 관계]] : 같은 [[한자문화권]]에 속함에도 근대까진 양국 간 접점이 적었고, 공식적인 외교 관계도 없었다. 1965년부터 1973년까지 [[대한민국]]은 [[미국]]과 함께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을 지원하기 위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으나 1975년 북베트남이 적화통일에 성공하여 관계가 단절되었다. 다만 한국 성씨 중 [[화산 이씨]]가 베트남에서는 [[국성]]이기 때문에 베트남에서는 한국인 중에서 화산 이씨 한정으로 자국 국민으로 인정한다. * [[중국-베트남 관계]] : 기원전 202년 중국 대륙에 [[전한]]이 건국되었고, 기원전 196년 전한의 [[고제(전한)|고제(유방)]]는 [[남월]]의 [[조타(남월)|무제(조타)]]를 남월왕(南越王)으로 봉하여 중월 양국 간 조공·책봉 관계를 수립했다. 그러나 기원전 111년 전한의 [[무제(전한)|무제]]가 남월을 침공해 멸망시키고 해당 지역에 9군을 설치함으로써 천여 년에 걸친 중국의 베트남 지배가 시작되었다. 전한에 복속된 이후에도 베트남인들은 [[쯩 자매]]의 반란 등 지속적으로 중국에 저항하였고, 이 때문에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중국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 현대에 들어서 베트남 북부엔 [[베트남 민주 공화국]]이, 중국 대륙엔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면서 [[사회주의]] 국가인 양국은 긴밀한 협력 관계로 발전하였다. 특히 [[인도차이나 전쟁]], [[베트남 전쟁]]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이 [[베트남 인민군]]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통일 후 [[반중]] 정책을 펼치는 베트남에 분노한 [[덩샤오핑]]이 베트남을 침공하여 [[중국-베트남 전쟁]]이 발발했으나 이 또한 베트남의 승리로 끝났다. === [[탈냉전]] 시대 ===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1990년 [[독일 재통일]], 1991년 [[소련 붕괴]]가 이어지며 50여 년에 걸친 미소 [[냉전]]이 종식되자 [[대한민국]]은 1992년 8월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했고, 동년 12월엔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과도 수교했다. === [[신냉전]] 시대 === == 경제 == 중국과 베트남은 [[냉전]] 시기부터 지금까지 [[사회주의]] [[일당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20세기 후반 [[공산당]] 정권이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하는 개혁·개방을 단행해 성공적인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자본주의]]/[[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한 대한민국도 이들과 체제는 다르지만 [[군사독재]] 시대에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유사하다. == 문화 == 3국 모두 고대 [[한나라]] 때부터 [[한자문화권]]의 일원이다. 한자문화권에는 [[중화권]]([[중국]]+[[대만]]), [[한반도]]([[대한민국]]+[[북한]]), [[베트남]], [[일본]]이 속하는데 이 중 일본은 [[유교]]의 영향력이 약해 다소 이질적인 편이다. 다시 말해 한국은 전통적인 면에서 일본보단 중화권, 베트남과 더 많은 문화적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다.[* 다만 현대 한국 문화는 중화권, 베트남보다 일본과 더 비슷한데, 이는 한국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일본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 정치 체제/경제 체제에서 [[일당제]]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베트남보단 [[민주주의]]/[[자본주의]] 국가인 일본과 공통점을 가졌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적인 부분을 떠나 언어와 관련해서 [[한국어]]는 [[중국어]], [[베트남어]]보다 [[일본어]]와 훨씬 비슷하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주어-목적어-동사 순에 성조가 없는 반면 중국어와 베트남어는 주어-동사-목적어 순에 성조가 있다.] || || [[중화권]]/[[한반도]]/[[베트남]] || [[일본]] || || 정치 체제 || [[중앙집권제]] || [[봉건제]] || || 권력 구조 || 일원적[* [[고려]]의 [[무신정권]] 시대처럼 이원적 구조였던 때도 있긴 했으나 백여 년에 불과한 비교적 짧은 기간이었다.] || 이원적[* 12세기 [[가마쿠라 막부]] 성립 이후 19세기 [[에도 막부]] 종식까지 700여 년간 [[천황]]([[상징적 국가원수]])과 [[쇼군]](최고실권자)이 정통성과 실권을 나누어 갖는 이원적 구조였고, 현대에도 쇼군이 [[일본국 내각총리대신|내각총리대신]]으로 바뀌었을 뿐 이러한 구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 || 지배 계층 || [[문인#s-1|문인(文人)]][* 지방 [[절도사]]들이 [[군웅할거]]하던 중국의 [[오대십국시대]], [[고려]]의 [[무신정권]] 시대처럼 무인(武人)이 지배층이던 시기도 있긴 했으나 일반적으론 [[위진남북조시대]]~[[수당시대]]의 [[문벌귀족(중국)|문벌귀족]], [[송나라]]의 [[사대부]], [[고려]]의 [[문벌귀족]] 및 [[신진사대부]], [[조선]]의 [[양반]]처럼 문인(文人)이 사회 지배층으로 자리했다.] || [[무인#s-2|무인(武人)]] || || [[사농공상]] || ○ || △[* [[에도 막부]] 시대 일본에도 [[사농공상]]의 구분이 도입되었으나 한국, 중국, 베트남에 비해 [[상인]]의 힘이 강했다. "오사카의 상인이 대노하면 전국의 [[다이묘]]가 벌벌 떤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다. 일본엔 [[미쓰이 그룹]], [[스미토모 그룹]] 등 이 시대부터 이어져온 [[재벌]]들도 존재한다.] || || [[과거 제도]] || ○ || X[* [[헤이안 시대]]에 도입되어 잠깐 시행된 적이 있으나 [[율령제]]가 붕괴된 이후엔 한번도 시행된 적이 없다.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까지 과거 제도가 유지되었던 한국, 중국, 베트남과 대조된다.] || || 관학[* 官學; 전근대에 [[한자문화권]] 국가에서 운영한 교육기관으로 주로 [[유학(학문)|유학]]을 가르쳤다. [[고구려]]의 [[태학]], [[수나라]]~[[청나라]]와 [[고려]] 및 [[베트남]]의 [[국자감]], [[신라]]의 [[국학]], [[발해]]의 [[주자감]], 고려~[[조선]]의 [[성균관]], [[향교]] 등이 있었다.] || ○ || X[* [[헤이안 시대]]에 [[과거 제도]]가 도입되면서 '대학료'(大學寮)라는 관학이 설치되었으나 일본에선 사학(私學)이 대세였기에 관학은 하급 관리를 양성하는 데에 그쳤다. 그마저도 헤이안 시대 말기 [[율령제]]가 붕괴되고 과거가 더 이상 시행되지 않으면서 관학도 기능하지 않게 되었고, 1177년 대학료가 화재로 전소된 이후엔 재건조차 되지 않았다.] || || [[성씨]] || 단성이 다수[*예시1 [[박정희|'''박'''정희]], [[김대중|'''김'''대중]], [[마오쩌둥|'''모'''택동]], [[덩샤오핑|'''등'''소평]], [[호찌민|'''호'''지명]] 등.][br]특정 성씨에 편중[* 한국의 [[김씨]]+[[이씨]]+[[박씨]](=인구의 45%). 중국의 [[왕씨]]+[[이씨]]+[[장씨]](=인구의 20%). 베트남의 [[응우옌]]+쩐+레(=인구의 58%).] || [[복성]]이 다수[*예시2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 [[아베 신조|'''안배'''진삼]] 등.][br]성씨가 고르게 분포[* 일본에서 제일 많은 성씨인 [[사토]]는 인구의 2%도 되지 않는다.] || || [[장례]] || [[매장]][* [[유교]]의 영향으로 인해 전통적으로 매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했'''었'''다. 그러나 한국은 [[2000년대]]부터 좁은 국토를 소모하는 매장 문화가 문제시되며 화장이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고, 중국의 경우 1956년 [[마오쩌둥]]이 '장묘문화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인민이 사후에 화장할 것을 의무화하였다. 다만 한국은 정계/재계에서 여전히 매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 21세기 들어서도 [[김대중]](2009년 卒), [[김영삼]](2015년 卒), [[신격호]](2020년 卒), [[이건희]](2020년 卒) 등 매장된 유력 정치인/기업인이 흔한 반면 중국은 [[저우언라이]], [[덩샤오핑]], [[시중쉰]], [[장쩌민]] 등 대부분의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해 화장되었다. --정작 화장을 의무화한 마오쩌둥은 [[모주석기념당|박제되었다]]--] || [[화장(장례)|화장]][* [[불교]]의 영향으로 인해 일본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화장이 매우 익숙하다. 덕분에 장례 방식에서 화장이 '''99.97%'''라는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현대 일본에선 매장이 [[천황]]을 비롯한 [[일본 황실]]의 구성원만을 위한 특권으로 남아있기에 한국과 달리 [[아베 신조]] 같은 최고위급 정치인도 당연히 화장되었다.] || || [[제사]] || [[유교]]식[* 전통적으로 [[조상]] 숭배 경향의 유교식 제사를 지내왔다. 다만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현대 중국, 베트남에선 한국에 비해 제사가 크게 간소화되었고, 북한에선 아예 금지되었다.] || [[신토]]+[[불교]]식[* [[유교]]식 제사가 아닌 [[신토]]+[[불교]]식 제사를 지내며, 유교와 달리 매년 지내는 것이 아니라 33년간 총 8번만 지낸다.] || || [[중화사상|중화 질서]] 참여 || 적극적 || 소극적[* 중화 질서를 주도한 중국과 매 왕조가 조공·책봉 관계를 맺은 한반도 및 베트남과 달리 일본은 중화 질서에 편입되는 데 대단히 소극적이었다. [[야마타이국]](→[[후한]]/[[위나라(삼국시대)|위나라]]), [[아스카 시대]]/[[나라 시대]]/[[헤이안 시대]](→[[수나라]]/[[당나라]]), [[무로마치 막부]](→[[명나라]]) 정도만이 중국에 조공했다. 하지만 [[헤이안 시대]] 중엽에 들어 [[당나라]]가 쇠퇴하고 일본의 [[율령제]]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일본은 외부와의 교류를 중단하고 국풍 문화를 추구하였다. 13~14세기 [[가마쿠라 막부]]는 [[송나라]]/[[고려]] 등 주변국과 일절 외교관계를 맺지 않았고, 16~18세기 [[에도 막부]]는 [[조선]]과의 국교를 정상화했지만 [[청나라]]와는 외교관계를 맺지 않았다. 19세기 중엽 출범한 [[일본 제국]]은 1871년 청일수호조규를 맺어 [[청나라]]와 대등한 외교관계를 수립했고, 1895년 [[청일전쟁]] 승리 후 청나라가 [[조선]]을 독립국으로 인정케 하며 중화 질서를 무너뜨렸다. 이러한 경향은 [[중화인민공화국]]이 [[미국]]에 대적하는 G2로 부상한 현대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친미/친서방 국가이지만 대중국 경제 의존도가 매우 높은 [[대한민국]], 같은 [[사회주의]] 국가로서 이념적으로 궤를 같이하는 [[베트남]]은 현실적 필요에 따라 어느 정도 [[친중]]적인 면을 보이기도 하지만, 일본은 외교적으로 [[반중]] 기조를 거의 항상 유지해왔다.] || == 관련 문서 == * [[대한민국/외교]] * [[베트남/외교]] * [[중국/외교]] / [[중국-다른 아시아 국가 관계]] * [[한중관계]] * [[한국-베트남 관계]] * [[중국-베트남 관계]] * [[한자문화권]] * [[대한민국/역사]] * [[베트남/역사]] * [[중국/역사]] * [[대한민국/경제]] * [[베트남/경제]] * [[중국/경제]] * [[대한민국/문화]] * [[베트남/문화]] * [[중국/문화]]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동아시아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동남아시아 국가]] [[분류:동아시아 국가]][[분류:동남아시아 국가]][[분류:대한민국의 외교]][[분류:중국의 외교]][[분류:베트남의 외교]][[분류:한중관계]][[분류:한국-베트남 관계]][[분류:중국-베트남 관계]][[분류:나무위키 외교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