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건국훈장 애족장]][[분류:보령시 출신 인물]][[분류:1866년 출생]][[분류:몰년 미상]] || 성명 ||한엇동(韓旕同) || || 생몰 ||[[1866년]] ~ ? || || [[출생지]] ||충청도 남포현 심전면 금당리[br](현 [[충청남도]] [[보령시]] 미산면 옥현리)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한엇동은 1866년 충청도 남포현 심전면 금당리(현 충청남도 보령시 미산면 옥현리)에서 태어났다. 한엇동은 [[상민]]으로 창고 제작업에 종사하다가 1908년 음력 4월 10일경 지순화(池順和) 의병장이 이끄는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그는 [[http://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mngNo=951917|최정보]](崔正甫) 등 50여명의 의병과 함께 총기로 무장하고 남포군 불은면(현 주산면)·습의면(현 주산면)·북외면(현 미산면) 일대에서 항일 의병투쟁을 전개하다 체포되었다. 그는 1909년 4월 12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소위 '폭도죄'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http://theme.archives.go.kr/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351612&evntId=0034986107&evntdowngbn=Y&indpnId=0000025866&actionType=det&flag=1&search_region=|#]] 한엇동의 이후 행적 및 사망년도, 최후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201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