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용과 같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캐릭터, rd1=한준기(용과 같이 시리즈))] [목차] == 개요 == [[파일:external/news.donga.com/41152453.1.jpg]] 韓俊基 [[1927년]]~[[2011년]] [[10월 15일]] [[대한민국]]의 전 [[철도]] 공무원. 흔히 알려진 '''경의선 마지막 기관사'''로 유명하다. == 생애 == 1927년 [[일본]] [[후쿠오카현]] 출신으로, [[1943년]]부터 [[1945년]] 10월까지 일본에서 [[철도 기관사]]로 근무했다. 당시에는 일본이나 한국 모두 [[증기 기관차]]가 운행하던 시점이었던 만큼 귀국 후에도 이 경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해방 후인 [[1945년]] [[11월]]에 귀국해 [[1946년]] 2월부터 서울철도국 수색기관차사무소(現 [[한국철도공사 서울본부]] [[수색차량사업소]])에서 근무하면서 [[서울역]]에서 [[개풍역|토성역]]까지의 80km [[경의선]] 구간을 담당했다. 당시 이 기록은 상당히 빠른 편으로, 1946년을 기준으로 봐도 19세. 대한민국 철도 공무원 역사상 최연소 기록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증기기관차를 운전한 때는 무려 17세이다. --어떻게 청소년 때 할 수 있었던 거지-- 증기기관차는 주 기관사 외에도 화부가 1~2명 더 필요하기 때문에, 보조원으로 들어가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또한 당시는 [[구제중학교]]나 [[구제고등학교]] 진학 인원은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일부였으며, 나머지는 10대 때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또한 이때는 '''전쟁중'''이었다. [[태평양전쟁]]이 격화되며 일본은 일반 농민이나 상점 종업원 같은 인력뿐만 아니라 공장 숙련인력까지 뽑아다 전선에 밀어넣기 시작했기 때문에, 철도기관사 같은 분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거꾸로 말하자면 철도에 17세 인력까지 써야 할 정도로 막장으로 돌아갔다는 뜻. 북한도 철도인력은 군부에 준하는 조직이자 중요인력으로 군 계급을 주어 대우한다. 한국은 군 계급을 주진 않지만 철도 인력은 별도의 편제되어 있으며, 예비군 훈련도 면제된다.(정확히는 면제가 아니라 별도의 훈련을 받는다.) 그러나 [[1950년]]에 발생한 [[6.25 전쟁]]은 [[경의선]]의 운행을 중단시켰고, 1950년 12월 31일 [[한포역]]에서 내려오던 열차를 마지막으로 그는 경의선 열차에서 내렸다. 경향신문 기사에 의하면 1967년까지 기관사로 근무한 후 행정직으로 전환했다고 한다. 주 근무지는 경의선, [[경원선]]이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곳 다 [[남북 분단]]으로 끊어진 곳이다. 이후 1985년 [[대한민국 철도청|철도청]]에서 은퇴, 은퇴 후에도 철도 관련 행사에 참가하였고 2000년 [[국토교통부|건설교통부]]에서 만든 경의선 관련 자료집에서 '''경의선 마지막 기관사'''로 공식 인정했다. 당시 경의선 남북연결사업 기공식에서 직접 열차를 시운전했고, 2007년 경의선 시험운전때 초대받은 뒤에 개성을 둘러보기도 했다. 이후 2009년 [[마터형 증기기관차]] 전시식에 참가한 후 노환으로 병원에 있다가, 2011년 10월 15일에 별세했다. 장지는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이다. == 장단역에 멈춰선 [[마터형 증기기관차]] == [[장단역]] 문서에 있는 '장단역과 한국전쟁' 부분 참고. 장단역에 있다가 지금 [[임진각]]으로 옮겨진 열차는 1950년 12월 31일 군수물자로 싣고 북진하던 열차였으나, 당시 [[중국 인민해방군|중공군]]의 개입으로 [[한포역]]에서 남하하던 상황. 이 이후의 내용은 고인의 인터뷰를 참조하자. > [[개성역]]에 도착해 거기서 기차 차량을 정리해 기관차 2대에 매달아 먼저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도 출발했다. 밤 10시쯤 장단역에 [[마터형 증기기관차|우리 기관차]]가 도착하자 [[미군]]들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이미 그 때 [[조선인민군|북한군]]이 쓰지 못하게 모든 차량을 불태우라는 명령이 떨어졌던 것이다. 그렇게 장단역에 기관차를 버리고 우리를 태우러 온 다른 기차를 이용해 후퇴했다. 당시 철도 기관사들은 군수물자나 식량을 수송하던 상황이었고, [[대한민국 국군|국군]]의 진군과 후퇴에 따라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만큼 위험한 상황에 있었고 병력 수송도 이뤄지고 있었다.[* 순직한 [[김재현(철도 기관사)|김재현 기관사]] 문서에 그 상황이 잘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움직였으니 볼 거 다 본 셈. == 관련된 기사 ==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009241916251&code=100201|#]] 경향신문 2000년 기사. 일부가 짤렸다. * [[http://news.donga.com/3/all/20111017/41149495/1|#]] 동아일보 2011년 10월 16일 기사 * [[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611685|#]] 경인일보 2011년 10월 16일 기사 [각주] [[분류:후쿠오카현 출신 인물]][[분류:1927년 출생]][[분류:2011년 사망]][[분류:대한민국의 철도종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