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상위 문서, top1=한파/대한민국)] [목차] == 개요 == [[19세기]]에 [[한반도]]([[대한민국]], [[북한]])에 찾아온 [[한파]]를 나열한 문서. [[19세기]], 특히 [[구한말]] 당시에는 아직 [[대한민국]]에서 공식 기상 관측이 없었던 시기였기에 [[서울특별시|서울]]의 자세한 날씨 기록을 알기 어렵지만, [[인천광역시|인천]]의 비공식 기록을 참고하면 당연히 현대보다 매우 추운 [[겨울]]이 많았다.[* 하지만 [[서울특별시|서울]]에서 [[1월]] 평균 기온 -7~-9℃는 몇 번 기록된 것으로 추정([[1855년]], [[1856년]], [[1861년]], '''[[1862년]],''' [[1864년]], [[1874년]], [[1876년]], '''[[1893년]],''' [[1900년]] [[1월]] 등)되지만, [[조선시대|조선]] 후기나 [[구한말]] 시절이라도 [[19세기]] 중후반에는 '''-10℃'''까지 기록했을 가능성은 요원해보인다. [[소빙하기]]의 절정이던 [[17세기]]와 [[18세기]] 초, 그나마 덜 올라가도 [[181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월평균 기온 -10℃ 이하를 기록한 [[1월]]이 있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1880년대|1880]]~[[1890년대]] 사이에는 특히 [[2월]] [[한파]]가 강한 양상을 보여 [[12월]]보다 [[2월]]이 더 추웠다. 물론 [[1884년]]과 [[1892년]], [[1897년]] [[12월]]이 있기는 하지만 [[2월]]은 '''[[1886년]], [[1895년]], [[1897년]]'''이 압도적으로 낮았고 나머지 해들도 [[2월]]이 따뜻하지 않은 편이었다. == 목록 == === [[1870년대]] === * [[1876년]] [[1월]] - 일본측 기록에 의해 한파가 확인되었다. 1월 중순이 시작되자마자 도쿄의 기온이 급락하는 현상이 발생하였고, 12일과 13일에 각각 '''-8.6℃''', '''-9.2℃'''[* 한기의 축이 일본 관동에 집중되지 않았다면, 서울은 무려 '''{{{#blue -25℃~-26℃}}}'''라는 뒷날에 다시 없을 대한파가 덮쳤다는 가정이 세워질 수 있다. 참고로 1900년, 1902년, 1904년에 도쿄가 -6℃선까지 떨어졌는데 서울로 치면 -20℃~-21℃선까지 떨어진 것과 비슷하다.]까지 떨어지며 한파가 극에 달하였다. 일평균도 현대 도쿄 겨울과는 정반대로 '''11일~15일까지 4일 동안 영하를 기록'''하였다. -9.2도 기록은 현재까지도 도쿄의 역대 최저 기온으로, 그 악명높은 [[1915년]], [[1917년]], [[1922년]] 1월 등도 이를 넘지는 못했다. 후술할 [[1885년]] 1월이 그나마 근접했다. 이를 토대로 당시 조선에는 도쿄보다 하루 빠른 1월 10일경에 기온이 급락하고 그 다음날부터 '''못 해도''' -20℃ 이하인 한파가 며칠 동안 머무른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을 보면 짧고 굵은 형식의 한파였던 듯. 다만 3월 상순에도 서울 '''-13~15℃'''로 의심되는 강한 한기가 남하한 것을 보면 1월 중순만의 문제는 아니었을 듯하다. * [[1878년]] [[12월]]~[[1879년]] 1월 - 역시 일본측 기록에 의해 한파가 확인되었다. 나가사키의 자료에 의하면 12월 26일 최고기온이 1.9℃에 머물렀으며, 최저 역시 26일과 28일에 -2.6℃와 -2.4℃가 기록되었다. 이는 1916년 12월, 1976년 12월과 비슷하게 나타난 것이다. === [[1880년대]] === * '''[[1884년]] [[10월|10]]~[[12월]] [[한파]]'''[br][[한파/대한민국 외]] 문서에서 [[1884년|1884]]~[[1885년]] [[겨울]] [[일본]]의 [[한파]] 문단을 읽고 [[한반도]]는 얼마나 추웠을지 궁금하지 않았는가? 다행히 [[한반도]]에서 [[1884년|1884]]~[[1903년]] 사이에 관측한 [[부산광역시|부산]]과 [[인천광역시|인천]], [[원산시|원산]], 그리고 [[1887년|1887]]~[[1890년]]에 관측된 [[서울특별시|서울]]의 비공식 관측 기록이 남아있다! [[한반도]]의 근대적인 공식 기상 관측의 시작은 [[1904년]] [[4월 8일]]에 [[전라남도]] [[목포시|목포]][* 의외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당시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 해상 교통의 요지인 항구도시는 [[서울특별시|서울]] 이상으로 매우 중요했다. [[목포시|목포]] 이후 [[부산광역시|부산]], [[인천광역시|인천]], [[원산시|원산]]에서도 [[1904년|같은 해]]에 공식 기상 관측을 시작했다. [[서울특별시|서울]]과 [[대구광역시|대구]], [[평양시|평양]]은 약간 더 늦은 [[1907년]], [[강릉시|강릉]]은 [[1911년]], [[울산광역시|울산]]은 [[1932년]], [[광주광역시|광주]]는 [[1939년]]에 시작되었다. 참고로 [[대전광역시|대전]]은 한참 늦은 [[1968년]]에 시작되었다.]에서 처음 시작되었지만, 그 이전에도 [[개화기]] [[일본 제국|일제]] 세력에 의해 [[부산광역시|부산]], [[인천광역시|인천]] 등의 해관에서 비공식적으로 관측을 해왔다. * [[1884년]]은 [[10월]]부터 이미 [[이상 저온]]의 기세가 남달랐는데, [[https://blog.naver.com/hahnsudang/20029259394|한반도 기상학의 역사를 다루는 블로그]]에 따르면 [[1884년]] [[10월]] [[부산광역시|부산]]의 월평균 기온은 '''14.9℃'''에 달했다고 한다. [[부산광역시|부산]]의 [[10월]] 평균 기온은 15℃ 후반대[* [[서울특별시|서울]] 기준으로는 [[2013년]], [[2021년]] 수준의 나름 [[이상 고온]]이지만, 기후가 따뜻한 [[부산광역시|부산]]은 평년이 17.9℃, [[19세기]] 당시 기준으로도 16.4~16.8℃ 정도이다.]여도 상당한 [[이상 저온]]일 만큼 따뜻한 시기이다. 그런데 이해 [[10월]]은 14℃대를 기록했으니 [[가을]]부터 이미 찬바람이 매서웠던 셈이다. [[부산광역시|부산]]의 [[1904년]] 최초 관측 사상 [[10월]] 평균 기온 역대 최저 1~3위가 [[1926년]] [[10월]](14.6℃), [[1947년]] [[10월]](14.7℃), [[1931년]] [[10월]](14.8℃)이므로, [[1884년]] [[10월]]은 이들 다음으로 낮은 수치이다! 사실 월평균 기온 기록만 보면 '춥기는 하지만 [[19세기]]인 것을 감안하면 그렇게까지 심각한 [[이상 저온]]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1884년]] [[10월]]은 일별 기록으로 뜯어보면 가히 충격적인데 무려 [[한글날]] 연휴 직전인 [[10월 7일]]이라는 이른 시기에 [[한반도]]와 가까운 [[일본|서일본]]의 해안 도시 [[나가사키시|나가사키]]가 11.6℃를 기록했다.[* [[한반도]]의 기온 자료를 설명하면서 왜 갑자기 [[일본]] 이야기가 나오는지 의아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1884년]]의 일별 자료를 [[한반도]]에서 분석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기상 관측 자료의 부재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웃 국가이면서도 그나마 [[한반도]]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 [[나가사키시|나가사키]]의 자료를 토대로 하여 분석하는 것은 차선책의 방법이다. 실제로도 [[나가사키시|나가사키]]는 [[한반도]]만큼은 아니어도 [[겨울]]에 한기가 자주 내려오는 지역이기도 하다.] [[서울특별시|서울]]의 [[10월]] 상순 역대 최저 기온인 [[1911년]] [[10월 10일]] 0.1℃를 기록했을 때 [[나가사키시|나가사키]]의 최저 기온은 11.3℃였다. 즉 [[1911년]]보다 사흘 이른 시기에 그에 거의 필적한 추위가 찾아온 것인데, 이는 가히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10월]] 중순에는 [[한파]]가 더욱 심화되어 [[나가사키시|나가사키]]에서 [[10월 16일]] '''7.9℃,''' [[10월 17일]] '''8.9℃'''를 기록할 정도로 [[10월]] 중순에도 간헐적으로 한기가 남하했는데,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서울특별시|서울]]의 [[10월]] 중순 역대 최저 기온을 기록한 [[1924년]] [[10월 20일]](-1.5℃)에도 [[나가사키시|나가사키]]는 10℃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다! 즉 한기의 중심이 어지간히 [[일본]] 쪽으로만 치우치지 않는 이상 [[한반도]] 역시 [[20세기]] 이후의 그 어느 [[10월]] 중순의 추위보다도 혹독한, 압도적인 최저 기온 기록을 세웠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하순에도 역시나 [[한파]]는 이어졌다. 특히 [[10월 22일]]부터 [[10월 31일]]까지 [[나가사키시|나가사키]]는 '''열흘 연속으로 단 한 번도 11℃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을 정도였다.''' 이 기록이 의미하는 바는, 위에 서술한 사실로부터 [[서울특별시|서울]] 역시 [[10월]] 하순 내내 아침 최저 기온이 0℃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으로 계속적인 [[겨울|초겨울]] [[한파]]가 이미 [[10월]] 하순부터 쉬지 않고 몰아쳤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나가사키시|나가사키]]는 [[10월 26일]]에 절정에 달해 최저 기온 '''5.1℃'''를 기록, 이것은 [[서울특별시|서울]]의 [[10월]] 역대 최저 기온을 가져오게 만든 [[한파]]인 [[1942년]] [[10월 24일]][* 당일 [[서울특별시|서울]]은 [[12월]] 하순의 평년 아침 최저 기온과 맞먹는 '''-5.1℃'''라는 가공할 만한 수치를 기록했다.]의 5.8℃보다도 더 낮은 기록이다. [[나가사키시|나가사키]]로 살펴보았듯이 [[1884년]] [[10월]]은 '''상순, 중순, 하순 모두''' 기록적인 [[한파]]가 포진해 있는 아주 이례적인 케이스의 달이다.[* 하다못해 그 [[한파]]가 심했다는 [[1912년]] [[11월]], [[1917년]] [[1월]], [[1917년]] [[12월]], [[1936년]] [[3월]] 등도 상순, 중순, 하순까지 한 달 내 모든 시기에 골고루 역대급 [[한파]]가 찾아오지는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했을 때, [[1884년]] [[10월]]은 [[10월]]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아예 기상 관측 이래 모든 달을 대조해보아도 유례를 찾기가 힘든, 한 달 내 모든 시기에서 '''초기록적인 [[이상 저온]]과 [[한파]]'''가 찾아온 놀라운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기상학적인 [[겨울]] 역시 [[10월]]에 시작되어 [[1912년]]보다도 일찍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이런 자료들을 감안하면, [[부산광역시|부산]]의 월평균 기온 14.9℃는 실제보다 다소 높게 측정되었을 가능성이 크고[* 기록에 의하면 [[19세기]] 당시에는 오전 9시, 오후 3시, 오후 9시로 일 3회 측정에 대한 평균치가 바로 일평균 기온을 산출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에는 오전 0시, 오전 3시, 오전 6시, 오전 9시, 오후 12시, 오후 3시, 오후 6시, 오후 9시로 일 8회에 걸쳐 측정된 시간대별 기온을 합산하여 일평균 기온을 산출해낸다. 하루 중 기온이 대체적으로 가장 낮은 시간은 늦은 밤~새벽 사이인 오전 0~9시 사이인데, [[19세기]] 일평균 기온 산출 과정에서는 오전 0~9시 사이(0시, 3시, 6시)를 모두 빼먹었으니 당연히 현대와 같은 산출 방식보다는 수학적으로 높게 산출될 수밖에 없는 방식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주석에 설명한 이유 때문에 실제로는 14℃ 전후, 즉 13℃대 후반~14℃대 초반일 가능성이 유력해보인다.[* [[부산광역시|부산]]이 이 정도였으니, [[서울특별시|서울]]은 당시 [[10월]] 평균 기온이 '''9~10℃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4월]]도 9℃대이면 엄청난 [[이상 저온]]인데 그보다 높은 [[10월]]이므로 말할 것도 없다. 이 추측대로라면 [[서울특별시|서울]]은 공식 기상 관측 이후 [[10월]] 평균 기온 역대 최저 1위인 [[1912년]] [[10월]](11.1℃)보다 훨씬 낮을 가능성이 높다.] 이 추측이 사실이라면 [[1884년]] [[10월]] 평균 기온은 [[1926년]] [[10월]]보다도 낮을 가능성이 높다! * 다음 달인 [[11월]] 역시 가히 전설이다. 이달 역시 [[19세기]] [[개화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1,500개가 넘는 모든 달을 통틀어 가장 [[이상 저온]]의 편차가 심한 달로 추정된다. 우선 [[1884년]] [[11월]] [[부산광역시|부산]]의 월평균 기온은 7.8℃로 [[1917년]] [[11월]]과 같고, 오로지 [[1912년]] [[11월]]의 7.4℃만이 이보다 낮을 정도로 추웠다. 하지만 위의 각주에서 서술했듯 당시의 일평균 기온 산출 방식이 하루 중 가장 기온이 낮은 시기인 오전 0~9시가 완전히 빠지고 오전 9시, 오후 3시, 오후 9시로 고작 일 3회에 측정된 기온에 대한 평균이기 때문에, 현대의 방식으로 다시 계산하면 7℃ 초반일 가능성이 높으며 '''심지어는 6℃대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인천광역시|인천]]의 경우 [[1884년]] [[11월]]의 월평균 기온이 1.7℃인데, [[1904년]] 기상 관측 시작 이래 공식 최저 기록인 [[1912년]] [[11월]]의 2.4℃보다 0.7℃나 더 낮다.[* [[1912년]] [[11월]]도 [[1904년]] 이후 공식 기록 중에서는 압도적으로 낮은 1위인데, 그보다 0.7℃나 더 낮다는 것은 놀라운 기록이다.] [[1912년]] [[11월]] [[서울특별시|서울]]이 1.4℃였음을 생각해볼 때, [[인천광역시|인천]]이 이 정도면 [[서울특별시|서울]]은 [[11월]] 평균 기온이 [[1912년]] [[11월]]보다 낮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0℃대 중후반 추정) 심하면 [[1981년|1981]]~[[2010년]] '''[[12월]]'''보다도 낮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해당 블로그에 기록된 자료가 실제 추정치에 비해 다소 높게 기록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천광역시|인천]]은 1℃ 전후, [[서울특별시|서울]]은 0℃ 전후로 추정된다.[* 비슷한 시기에 [[이상 저온]]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 [[교토]]는 [[11월]] 하순에 최저 기온 -3℃ 이하가 사흘이나 기록된 것을 보면, [[교토]]와 기온 차가 기본적으로 많이 벌어지는 [[서울특별시|서울]]은 [[11월]] 하순에 최저 -10℃ 이하의 기온이 며칠씩이나 기록되어 월평균 기온까지 급격하게 낮아졌을 확률이 있다. 위도에 비해 그렇게 춥지 않은 [[하코다테시|하코다테]]에서도 [[11월]] 하순에 최저 기온이 '''-12.1℃'''로 측정되거나, [[11월]]에 아무리 추워도 0℃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와카야마시|와카야마]]조차도 [[11월]] 하순에 '''-0.6℃'''로 내려갔다. 당연히 두 지역 모두 각각 [[11월]] 역대 최저 기온이다. [[도쿄도|도쿄]] 역시 월평균 기온이 7.6℃로 역대 최하위이고([[서울특별시|서울]]의 평년 [[11월]]보다 조금 높았다), [[중국]]도 예외가 아니라는 듯 [[상하이시|상하이]]의 월평균 기온이 8.5℃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다만 아쉽게도 수도인 [[베이징시|베이징]]은 [[1884년]] '''[[10월]]'''부터 관측 기록이 끊겨 있어서 정확한 값은 영영 알 수 없다. 단지 [[한파]]의 규모나 [[상하이시|상하이]]의 강력한 [[이상 저온]]을 볼 때 [[베이징시|베이징]] 역시 막강한 [[한파]]가 들이닥쳐 [[1850년]] [[11월]], [[1947년]] [[11월]]처럼 0℃대, 심하면 영하를 기록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렇듯 이해 [[11월]]부터 내려온 [[한파]]의 규모가 심상치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https://data.giss.nasa.gov/gistemp/maps/|이곳]]에 접속해서 [[1991년|1991]]~[[2020년]] 기준 [[1884년]] [[11월]] 평균 기온을 보면 [[한반도]] [[대한민국|남한]] 지역, 특히 내륙 지역은 '''-4℃'''가 한계인 파란색을 넘어 '''보라색(최소 -4.1℃ 이하)'''으로 도배되어 있다. 관측 사상 가장 추운 [[11월]]인 [[1912년]] [[11월]]조차도 보라색 없이 파란색으로만 도배된 것을 보면 아연실색할 장면. 이것으로 [[1884년]] [[11월]] 평균 기온이 [[1912년]] [[11월]]보다 '''압도적으로 낮은 것'''은 확실하며, 그래도 0℃대였으냐, 아예 '''-0℃대'''였느냐로 갈릴 것으로 보인다.] 추측이기는 하지만 당시 [[11월]] [[한파]]의 강도를 감안하면, [[11월]]에 [[한강]]이 결빙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일단 [[한반도]]와 비교적 가까운 [[일본|서일본]] 지역[* [[교토시|교토]]와 [[오사카시|오사카]]는 [[한반도]]와 가깝지 않으므로 논외. 아쉽게도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쓰시마 섬]]의 [[이즈하라]]는 [[1886년]] [[여름]]이 다 지나고서야 관측이 시작되었다.] 중 유일하게 [[1884년]] [[11월]]에도 관측이 진행되었던 [[히로시마시|히로시마]]에서는 '''[[11월 15일]]'''에 이미 일평균 기온이 5.0℃[* 참고로 [[일본|서일본]]보다 평균 기온이 낮은 우리나라에서도 일평균 기온이 이 정도까지 내려가면 [[겨울]]이 시작된 것으로 본다.]까지 떨어졌고, [[11월 26일]]에는 4.0℃까지 떨어진 기록이 있어서, [[한반도]]에서는 아무리 늦어도 이미 [[11월]] 중순 초반([[11월 11일|11월 11]]~[[11월 14일|14일]])부터 체감상 [[겨울]]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당시 [[나가사키시|나가사키]]의 기록을 참고하면, [[11월 27일]]이나 [[11월 28일]][* [[서울특별시|서울]]과 [[나가사키시|나가사키]]의 거리상 찬 공기가 남하하는데 시간이 걸리기에 둘 중 하나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 시기가 마지막으로 [[11월]]에 한파일수를 충족시킨 사례로 추정되기도 한다. 하술할 [[1891년]] [[11월]]의 사례는 정말로 -12℃ 이하를 기록했는지는 모호하기 때문.]에 반드시 최저 기온 '''-12℃ 이하'''를 기록했을 것이며, 한낮에도 기온이 크게 오르지 못해 일교차도 10℃를 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 [[12월]]은 더 심해서 [[1884년]] [[12월]] '''[[부산광역시|부산]]의 월평균 기온'''은 '''0.2℃'''이다. 참고로 [[1904년]] 공식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낮은 [[부산광역시|부산]]의 [[12월]] 평균 기온이 [[1944년]] [[12월]]의 0.8℃이다. 즉 기상 관측 이래 역대 가장 낮은 [[12월]] 평균 기온보다도 [[1884년]] [[12월]]이 낮다. 심지어 전술된 주석을 참조하면 실제로는 '''아예 영하권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해서 [[서울특별시|서울]]의 월평균 기온까지 대략적으로 추정해보면, 역대 가장 낮은 [[12월]] 평균 기온을 기록한 [[1944년]] [[12월]]이 -5.8℃였으므로 '''[[1884년]] [[12월]]은 -6℃ 이하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우연찮게도 이 시점에 [[갑신정변]]의 [[삼일천하]]가 벌어졌다. [[나가사키시|나가사키]]의 최저 기온을 대조해 본 결과 [[1944년]] [[12월]]의 심화판인, 비교적 고른 장기 [[한파]]였음을 보여주고 극점은 하순에 존재한다. 의외로 [[부산광역시|부산]]의 [[1885년]] [[1월]] 평균 기온은 1.4℃로 [[12월]]보다 높아 그리 추운 [[1월]]은 아니었던 듯하다.[* 반면 [[일본]] [[도쿄도|도쿄]]는 [[1885년]] [[1월]] 평균 기온이 0.6℃로 [[1922년]] [[1월]]과 함께 역대 최하위를 기록하였으며, 최저 기온 극값도 무려 -9.1℃로 역대 최저 2위를 기록할 정도로 추웠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 한기 남하의 축이 [[일본]] 쪽으로 치우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일본]]이 가까워보이지만 동서로 꽤 긴 나라라서 [[한반도]] 중부 지방과 [[도쿄도|도쿄]]간의 동서 직선 거리는 '''1,160km'''에 달할 정도로 제법 멀다. 오히려 더 멀 것 같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서울특별시|서울]] 간의 거리는 '''746km''' 정도로 더 가깝고, [[도쿄도|도쿄]]와는 '''1,067km'''로 100km 정도 더 가깝다.] [[부산광역시|부산]]은 [[1885년]] [[4월]]도 10.8℃로 역대 최저 2위이고[* 1위는 [[1936년]] [[4월]]의 10.5℃] [[5월]]도 15.6℃로 상당히 낮은 [[이상 저온]]을 나타낸 것으로 보아, [[겨울]] 추위가 [[1885년|다음 해]] [[봄]]까지도 [[이상 저온]]의 형태로 계속 이어진 듯하다. 일단 [[나가사키시|나가사키]]에서는 [[12월 7일]]과 [[12월 10일]]에 각각 -0.9℃와 '''-1.4℃'''까지 떨어진 기록이 있는데, [[1926년]] [[12월 8일]]에 -2.6℃까지 떨어질 때 [[서울특별시|서울]]은 [[12월 9일|다음 날]]에 '''-16.9℃'''까지 떨어진 적이 있다. 따라서 단순 비교로 치면 '''[[12월]] 상순에''' [[서울특별시|서울]]은 '''-14~-16℃'''까지 떨어졌다고 예상할 수 있다.[* 참고로 [[서울특별시|서울]]의 기상 관측 이후 [[12월]] 상순의 역대 최저 기온은 [[12월 7일]]까지 -11~-13℃ 정도이다. 그런데 비슷한 날짜에 이보다 3℃나 더 낮은 기온을 기록한 셈이다. ~~이런 날씨에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은 악마인가?~~][* 그 외에 [[1880년]], [[1883년]], [[1891년]] [[12월]] 상순에도 앞서 서술한 [[12월]] 상순의 역대 최저 기온보다 낮은 기온을 기록했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나가사키시|나가사키]]보다 [[서울특별시|서울]]에 한기가 도달하는 것이 하루 정도 빠르다. === [[1890년대]] === * [[1891년]] [[11월]]~[[1892년]] [[2월]] [[한파]][br]이해 [[여름]]은 [[이상 저온|7월 상순, 중순을 중심으로 시원했으며]][* 비공식 기록으로 [[1891년]] [[7월]]과 [[8월]] 둘 다 월평균 기온이 22.8℃라고 한다. 뒤이어 서술될 [[겨울]]과 연관을 지어보면 [[1980년]] [[여름]]~[[겨울]]의 상위호환 격이다. 다만 [[1980년]] [[11월]]은 [[이상 고온]]이 있었다. 인천의 해관자료를 보면 7월은 매우 시원하긴 했으나 8월은 그맘때 여름 날씨였고 더위도 존재했다.] 시간이 지나 [[11월]] 하순에 [[대한민국 기상청|기상청]]의 '''한파일수[* 아침(3~9시) 최저 기온이 -12℃ 이하인 날을 한파일수로 정의한다. 반대로 폭염일수는 일 최고 기온 33℃ 이상. 한파일수와 폭염일수를 셀 때는 특보와는 다르게 [[체감온도]]와 기온 급락 사례를 거르고 오로지 기온 요소로만 판단하는 것이 흥미롭다.]'''를 충족시키는 엄청난 추위가 찾아왔다. [[https://m.blog.naver.com/hahnsudang/20053429846|한반도 기상학의 역사를 다루는 블로그]]에 의하면, 당시 [[한반도]]에 정착해서 비공식적으로 기상 관측을 한 [[귀스타브샤를마리 뮈텔|뮈텔 주교]]의 일기에 [[10월 24일]] '처음 [[서리(날씨)|서리]]가 내렸다'라는 기록을 시작으로, [[11월 24일]] -6℃, [[11월 25일]] -9℃, [[11월 26일]] -11.5℃, '''[[11월 27일]] -13.5℃[* 아무리 추운 [[11월]]일지라도 [[서울특별시|서울]]이 영하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것은 굉장히 드물며 '''매우 기록적인 것이다.''' 공식적으로 기록된 [[서울특별시|서울]]의 [[11월]] 역대 최저 기온은 [[1970년]] [[11월 30일]]의 '''-11.9℃'''이다.]'''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 다음 기록은 [[11월 28일]]이 아닌 [[11월 29일]]에 나오는데[* 정황을 보았을 때 [[11월 28일]]도 [[11월 27일|전날]]처럼 비슷하게 추웠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경악을 금치 못할 [[11월 29일|다음 날]]의 멘트도 이런 맥락으로 나온 듯.] 이날 [[귀스타브샤를마리 뮈텔|뮈텔 주교]]의 일기에 ''''-9℃, 추위가 많이 풀렸다\''''라는[* [[2022년]] [[11월 30일]]에 [[서울특별시|서울]]이 '''-8.1℃'''까지 내려갔을 때 [[1993년]] 이후 '''29년 만에 가장 낮은 [[11월]] 최저 기온'''이라는 타이틀을 가져갔다. 그런데 저 당시에는 -9℃가 '''추위가 많이 풀린 수준'''이라는 것이 현대와 기후의 차이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멘트가 등장한다. 현대의 [[서울특별시|서울]]은 [[겨울]] 전체 최저 기온조차도 -13.5℃보다 높은 겨울이 널렸는데[* [[21세기]] 기준 [[2001년|2001]]~[[2002년]] [[겨울]], [[2004년|2004]]~[[2005년]] [[겨울]], [[2006년|2006]]~[[2007년]] [[겨울]], [[2007년|2007]]~[[2008년]] [[겨울]], [[2008년|2008]]~[[2009년]] [[겨울]], [[2013년|2013]]~[[2014년]] [[겨울]], [[2014년|2014]]~[[2015년]] [[겨울]], [[2016년|2016]]~[[2017년]] [[겨울]], [[2020년 1~3월 이상 고온|2019~2020년 겨울]]로 총 9해] [[11월]]에 저런 기록이 나왔다는 것은 현대의 관점에서는 놀라운 일이다.[* 다만 [[소빙하기]]가 이어졌던 [[19세기]] 중반([[185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의 사건은 흔했을 것이고, 더한 적도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장 이해로부터 불과 7년 전인 [[1884년]] [[11월]]도 이와 비슷하거나 더 낮았을 가능성이 높다.] 기상자료개방포털 해관기상관측자료를 확인해보면, [[11월 27일]] [[인천광역시|인천]]도 -10.3℃까지 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서울특별시|서울]]과 달리 역대 최악의 수준은 아니지만 이 역시 매우 기록적인 수치이다.[* 보통 [[11월]] 하순에 [[한파]]가 올 때 [[인천광역시|인천]]이 [[서울특별시|서울]]보다 1~2℃ 정도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 바, 실제 [[서울특별시|서울]]의 기온은 -12℃ 전후([[1922년]], [[1947년]], [[1970년]]과 비슷)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922년]] [[11월 27일]]에도 [[인천광역시|인천]]이 -10.6℃를 기록할 때 [[서울특별시|서울]]은 -11.6℃였고, [[1947년]] [[11월 27일]]에도 인천이 -10.1℃일 때 [[서울특별시|서울]]은 -11.8℃, [[1970년]] [[11월 30일]]에 [[인천광역시|인천]]이 -9.8℃일 때 [[서울특별시|서울]]은 -11.9℃였다.] [[겨울]]도 [[한파]]가 심했다. [[1891년|1891]]~[[1892년]] [[겨울]]은 [[12월]], [[1월]], [[2월]] 모두 강한 [[한파]]가 존재하지만 특이한 점은 각각 [[한파]]가 1개월 간격으로 떨어져있다는 것이다. 상술했던 [[11월]]의 비정상적 [[한파]]는 그저 그해 [[겨울]]의 전주곡에 불과했던 것 같다. [[https://data.kma.go.kr/cdps/original/selectOriginalMaritimeList.do?pgmNo=202|기상자료개방포털 해관기상관측자료]]에 의하면 [[인천광역시|인천]]은 [[12월 16일]] 최저 기온 -15.0℃, [[12월 18일]] 최저 기온 -15.5℃ 등 [[12월]] 중순 치고는 매우 강력한 [[한파]]가 찾아온다. 그 후 [[한파]]는 사라지고 [[성탄절]]과 따뜻한 연말이 지속된다. [[1월]]이 되어도 [[1월]] 상순은 별 추위가 없었다. 중순이 되자 분위기가 바뀌게 되는데, [[인천광역시|인천]]의 최저 기온이 [[1월 13일]] -10.5℃, [[1월 14일]] -10.0℃, [[1월 16일]] -10.0℃로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1월 18일]] -11.6℃, [[1월 19일]] -15.5℃, [[1월 20일]] -14.5℃, [[1월 21일]] -15.5℃, [[1월 22일]] -11.4℃ 등으로 추운 날씨가 이어진다. 심지어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뮈텔 주교]]의 일기에 의하면 [[1월 21일]]에는 [[서울특별시|서울]] 최저 기온이 무려 '''-21℃'''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후로 심각한 추위는 없다가 [[2월]] 중순이 되어서야 뜬금없이 그해 [[겨울]] 중 가장 강한 [[한파]]가 찾아오는데, [[인천광역시|인천]]의 최저 기온이 [[2월 11일]] -16.4℃를 기록하였다가 [[2월 13일]]에 잠시 나아진 후 다시 추워져서 [[2월 15일]] -12.4℃, [[2월 16일]] '''-16.6℃'''로 [[겨울]] 내 최저 기온을 기록하게 된다. [[인천광역시|인천]]이 [[2월 16일]]이라는 날짜에 -16.6℃를 보인 것은 매우 기록적인 수치이다. '''[[2월]] 중순에 저 정도로 기온이 떨어진 적은 [[1904년]] 공식 기상 관측 이래 전무하다.''' 시기를 고려할 때 비정상적인 [[한파]]라고 말할 수 있겠다. * '''[[1892년]] [[12월]]~[[1893년]] [[2월]] [[한파]]'''[br]앞서 [[한파/대한민국 외|세계의 한파 문서]]에서 서술했듯이 이 [[겨울]]은 '''관측 사상 가장 강한 [[라니냐]]'''가 있었던 해인데[* [[북반구]] 대다수의 지역에서 강한 [[라니냐]]의 여파로 [[이상 저온]]이 발생하였다. 그중에서도 [[라니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지역은 [[시베리아|서시베리아]], [[카자흐스탄]], [[중국]] 남부 등지로, 이들 지역에서는 기상 관측 사상 역대급으로 강력한 [[한파]]가 찾아왔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혹독한 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반면 [[일본]]과 [[한반도]]는 후술할 자료들을 참조하면 '''상대적으로''' [[한파]]의 강도가 덜했던 것으로 보인다.], [[https://m.blog.naver.com/hahnsudang/20053429846|한반도 기상학의 역사를 다루는 블로그]]에 따르면 서양의 선교사인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뮈텔 주교]]의 일기에 [[서울특별시|서울]]의 최저 기온 기록이 '''[[12월]]에 28번, [[1월]]에 26번, [[2월]]에 27번'''으로 거의 매일 최저 기온을 작성했다고 한다.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뮈텔 주교]]가 특히 추웠던 날에 집중적으로 최저 기온을 작성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거의 한 달 매일을 작성했다는 것인데, 이와 같은 횟수는 역대 [[겨울]] 중에 가장 많다.''' 다만 비공식 자료이기는 하나 [[개화기]] 시절에 관측된 [[1893년]] [[1월]] [[인천광역시|인천]]의 월평균 기온이 '''-5.5℃'''로 동시기 다른 연도들보다는 확연히 낮았으나 기록적인 수준까지는 아닌데[* 비슷하게 강한 [[라니냐]]를 보였던 [[1917년]] [[1월]]의 [[인천광역시|인천]] 월평균 기온을 생각해보자. 무려 '''-8.0℃'''로 관측 사상 역대 최저 1위이다.], [[1893년]] [[1월]] [[중국]] [[베이징시|베이징]]의 월평균 기온이 '''-8.1℃'''로 역대 최하위를 기록했고, [[일본]] [[도쿄도|도쿄]]에서도 [[1893년]] [[1월 26일]] 최저 기온 '''-7.1℃'''로 매우 강력한 [[한파]]가 찾아왔다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야 [[서울특별시|서울]] 기준 -7℃ 정도는 매년 [[겨울철|겨울]]마다 기록하는 최저 기온이지만([[2020년]] [[1월]] 제외), [[일본]]은 [[2018년]] [[1월 25일]] [[도쿄도|도쿄]] 최저 기온 -4.0℃ 기록만으로도 '''[[https://www.yna.co.kr/view/AKR20180125142500073|엄청난 한파라며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실제로 '''[[도쿄도|도쿄]]는 [[대한민국]]보다 [[겨울]]에 훨씬 온화하며, 아무리 추워도 최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일이 드물 정도로 [[대한민국]]에 비해 [[겨울]]이 따뜻하다.''' 예시로 [[도쿄도|도쿄]]의 [[1875년]] 최초 기상 관측 사상 역대 최저 기온은 [[1876년]] [[1월 13일]]의 '''-9.2℃'''에 불과하다. [[서울특별시|서울]]의 [[1907년]] 최초 기상 관측 사상 역대 최저 기온인 [[1927년]] [[12월 31일]]의 -23.1℃와 비교해보면 무려 14℃나 높다. 기본적으로 이 지역은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이 직격타로 들어오는 곳인데 -7℃의 한기를 머금은 칼바람이 불어대면... 게다가 [[일본]]의 기상 관측 자료를 살펴보면 [[1893년]] [[1월]]은 다른 날에도 거의 최저 기온이 영하권이었으며, 대부분 0~-4℃ 사이를 기록한 날이 많았다. 비슷한 환경이 갖추어진 [[1917년]] [[1월]]의 [[도쿄도|도쿄]] 최저 기온과도 비교하였을 때 [[1893년]] [[1월]]이 '''확연히 낮은 기록이다.'''] '''당연히 두 지역 사이에 위치해 있어 지리적으로 크게 멀지 않은 [[서울특별시|서울]]에서도 엄청난 [[한파]]가 있었을 것이 분명한데''' 기록상으로는 그다지 기록적인 수준은 아니니 정말 의문스러운 [[겨울]]이 아닐 수 없다.[* 여러가지 말이 많고 의문점이 드는 [[겨울]]인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한 이유를 추측해보자면 [[1893년]] [[1월]]이 [[1945년]] [[1월]]같은 스타일의 [[겨울]]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1945년]] [[1월]]은 월평균 기온만 보면 -7.8℃로 역대 최저 5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매우 낮았다. 그렇지만 월 최저 기온 극값은 -19.1℃로, [[한파]]가 강하게 찾아오면 -20℃ 이하로도 자주 내려가던 [[일제강점기]] [[겨울]]들에 비하면 크게 기록적인 수준이 아니었다. 즉 [[1893년]] [[1월]]도 [[서울특별시|서울]]이 아침 최저 기온 -10℃ 이하의 추위가 계속 이어져서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뮈텔 주교]]가 계속 일기에 기온을 적었고, 다만 [[1945년]] [[1월]]처럼 기록적인 수치는 없었다는 추측이다. 사실 [[도쿄도|도쿄]]의 [[1월 26일]] -7.1℃ 기록이 단일 기록으로서는 매우 낮은 것이 사실이지만, 막상 월평균 기온 자체는 2.6℃로 의외로 기록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1900년]] [[1월]]이 1.6℃로 더 낮을 정도이다. [[인천광역시|인천]]도 [[1900년]] [[1월]]이 -6.1℃로 더 낮다. 즉 [[1893년]] [[1월]]은 [[일본]]과 [[한반도]] 둘 다 추운 [[겨울]]을(월평균 기온이 기록적이지는 않은) 보내다가 [[1월 26일]] 쯤에 한 번 한기가 정말 강하게 왔는데 그때의 한기가 유난히 [[일본]] 쪽으로 치우치는 시나리오라면 이와 같은 현상이 가능하다. 정확히 비유할 사례를 찾기는 힘드나, [[2019년]] [[1월]]과 [[2월]] 상순에 [[대한민국]]은 [[이상 고온]]이 찾아왔지만 [[일본]] [[도호쿠]]와 [[홋카이도]]는 매우 추웠던 사례를 생각해보면 될 듯하다. 참고로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뮈텔 주교]]의 일기에서는 [[1895년]] [[2월 2일]]에 [[서울특별시|서울]]이 -22℃로 [[1891년|1891]]~[[1895년]] 기간 중 가장 낮았다고 적혀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1893년]] [[1월]]은 최저 기온이 -22℃보다 높았을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지만, 그 말은 반대로 생각해보면 [[1893년]] [[1월]]도 -21℃ 정도는 갔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엄청 기록적이지는 않지만 이것도 분명한 강력 [[한파]]이다. 더군다나 [[1893년]] [[1월]] [[도쿄도|도쿄]]의 최저 기온 극값(-7.1℃)보다 더 낮은 극값(-8.1℃)을 기록한 [[1922년]] [[1월]]의 경우 같은 달에 [[서울특별시|서울]]의 최저 기온 극값이 -21.0℃였던 것을 보면, [[1893년]] [[1월]] [[서울특별시|서울]]의 최저 기온 극값은 -20~-21℃ 정도에 그쳤을 가능성이 더 높아보인다. 허나 기록적인 혹한이 없이 그냥 꾸준히 추운 정도였다고 쳐도 일기를 매일 적을 정도였다면 [[인천광역시|인천]]이 최소 월평균 -6~-7℃ 정도는 되었어야 할텐데 이상한 점이 많다. 사실 해당 자료의 출처인 블로그에 적힌 기록들이 추정치에 비해 다소 높게 기록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천광역시|인천]]의 실질적인 월평균 기온은 -6~-7℃ 정도로 추정되며, 이에 따라 [[서울특별시|서울]]의 [[1893년]] [[1월]] 평균 기온은 '''-7~-8.5℃,''' 최저 기온 극값은 '''-20~-21℃''' 정도였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특히 [[2월 12일]]에는 [[일본]]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한낮에도 5℃ 이하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고, 당시 [[일본|서일본]]은 물론 [[일본|동일본]] 지역인 [[도쿄도|도쿄]], 심지어 [[홋카이도]]에서도 이날 평균 기온이 가장 낮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한반도]] 전체 역시 이날이 연중 가장 추운 날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일본]]의 [[한파]] 강도를 보면[*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쓰시마 섬]]의 [[이즈하라]]의 이날 최고 기온이 불과 '''-0.2℃'''였다. 참고로 이 지역은 한낮에 영하로 잘 내려가지 않는 지역이다. [[오키나와]]의 [[나하시|나하]]에도 찬 공기가 도달했는지 이날 최고 기온이 불과 12.8℃에 불과했다.], [[서울특별시|서울]]이었으면 최고 기온이 '''-10℃ 이하'''를 못 벗어났을 가능성도 크다. [* 1월이면 최고기온 -10도 이하인 한파가 현재에도 많지만 기온이 매우 가파르게 올라가는 2월 중순에 저 정도 한파가 온다고 생각을 하면....] * '''[[1895년]] [[1월|1]]~[[2월]] [[한파]]'''[br]아래에서 후술할 [[1897년]] [[1월|1]]~[[2월]]과 비슷한 느낌을 가진 [[겨울]]로, 추위가 매우 길게 이어지고 추위 강도도 기록적인 [[겨울]]이었다. 기상자료개방포털 해관기상관측자료에는 상세하게 일별 기온이 나와있다. [[인천광역시|인천]]을 살펴보면, [[1894년]] [[12월]]은 따뜻한 편이었고 [[1895년]] [[1월]]에는 추워졌으나 극단적인 [[한파]]까지는 없었다. 다만 [[1월]] 내에서 -10℃ 이하를 기록한 날이 무려 18일에 달하고, [[1월 29일]]에 최저 기온 -14.5℃를 기록하는 등 비교적 추웠다. 피크는 [[2월]]에 이루어졌다. [[인천광역시|인천]]의 최저 기온은 [[1월 31일]]에 -3.5℃까지 잠시 올랐던 기온이 바로 급하강, [[2월 1일]] -9.5℃, [[2월 2일]] '''-18.5℃[* [[1904년]] [[인천광역시|인천]]의 공식적인 기상 관측 시작 이래 [[2월]] 역대 최저 기온은 [[1913년]] [[2월 9일]]의 -18.4℃이다. 앞서 서술했듯이 당시에는 소수점 단위를 어림잡아서 0.5 단위로 기록했기 때문에 정확한 기온은 -18.5℃에서 ±0.2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즉 -18.3~-18.7℃ 사이의 오차 범위가 있기는 하나 '''[[2월]] 역대 공식 최저 기온과 비슷하거나 더 낮은, 그야말로 기록적인 [[한파]]가 닥친 셈.'''],''' [[2월 3일]]에도 '''-18.5℃'''를 기록하는 등 [[2월]] 역대 공식 최저 기온보다 낮은 수준의 기록적인 [[한파]]가 닥친다. [[북한]] [[동해|동해안]]에 위치한 [[원산시|원산]]의 최저 기온도 [[2월 2일]] -18.0℃, 최고 기온 -10.0℃를 기록하더니 [[2월 3일]] 최저 기온 -19.0℃를 기록하며 마찬가지로 [[2월]] 역대 최저 수준에 근접하게 된다.[* [[원산시|원산]]의 공식적인 [[2월]] 역대 최저 기온은 [[1920년]] [[2월]]에 기록된 -19.2℃이다.] [[2월]] 중순에 접어들자 [[한파]]는 소강 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나 하순을 앞두고 다시 찾아와 [[인천광역시|인천]] 기준 최저 기온이 [[2월 19일]] -12.5℃, [[2월 20일]] -12.0℃, [[2월 21일]] '''-16.0℃'''를 기록한다. 굵은 글씨 처리한 이유는 해당 온도가 [[인천광역시|인천]] 역대 [[2월]] 하순 최저 기온보다 훨씬 낮기 때문으로, [[1981년]] [[2월 26일]]의 -14.4℃가 [[인천광역시|인천]]의 [[1904년]] 공식 기상 관측 이후 [[2월]] 하순의 역대 최저 기온이다. [[인천광역시|인천]]이 이 정도였다면 [[서울특별시|서울]]은 [[2월]] 하순에 -17~-18℃까지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1907년]] 공식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2월]] 하순 역대 최저 기온인 [[1981년]] [[2월 26일]]의 -15.6℃를 가볍게 밑돌았을 듯하다. [[2월]] 전체 기온 경신을 노린 것도 모자라 [[2월]] 하순 기록까지 혼자 싹쓸이해버리는 대단한 [[2월]]이었다. [[원산시|원산]]도 [[2월 21일]] 최저 기온 -17.0℃, 최고 기온 -10.0℃로 [[2월]] 하순의 [[한파]]라고는 믿기 힘든 수준이었다. 추위는 [[2월 25일]]까지 [[인천광역시|인천]]이 -11.5℃를 기록하며 이어졌고 [[3월]]이 다 되어서야 풀렸다. 그러나 [[한파]]가 가신 이후에도 한기의 영향을 자주 받아 [[3월 18일]]에 [[인천광역시|인천]]의 최저 기온이 -7.5℃까지 떨어지는 등 강한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서울특별시|서울]]의 경우 해관기상관측자료에는 없지만 역사적 자료를 통해 당시의 [[한파]]를 일부 추정할 수 있다. [[https://m.blog.naver.com/hahnsudang/20053429846|한반도 기상학의 역사를 다루는 블로그]]에 따르면, 서양의 선교사인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뮈텔 주교]]의 일기에 [[1895년]] '''[[2월 2일]]''' [[서울특별시|서울]]의 최저 기온이 '''-22℃'''에 달했다고 쓰여있다고 한다. [[서울특별시|서울]]의 공식적인 [[2월]] 역대 최저 기온은 [[1910년]] [[2월 2일]], [[1913년]] [[2월 9일]]의 -19.6℃이다. 만일 저게 사실이라면 기상 관측 이래 [[2월]] 역대 최저 기온보다 '''2℃ 이상 압도적으로''' 낮은 셈이다. * '''[[1897년]] [[1월|1]]~[[2월]] [[한파]]'''[br]'''[[2월]] 장기 [[한파]]가 이례적으로 심했던 [[겨울]]이다.''' 장기간 매우 추운 날씨가 이어졌다. 특히 [[2월]]에 이어진 [[한파]]는 시기상 [[2월]]에는 장기 [[한파]]가 이어지기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파]] 지속 기간이 이례적으로 길었다. 워낙 장기간 추웠던 탓에 공식 기록이었다면 [[1947년]] [[2월]]을 넘어 [[2월]] 평균 기온 역대 최저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대단히 추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우선, [[1월]] 상순~중순 중반까지는 큰 추위가 없이 평범한 [[겨울]]이었다. 그러나 [[인천광역시|인천]] 기준 [[1월 18일]]에 갑자기 최저 기온 -15.0℃, 한낮 기온 -9.4℃로 곤두박질치더니 [[1월 19일]] 최저 기온 '''-18.0℃,''' 최고 기온도 '''-10.6℃'''에 머무는 초강력 [[한파]]로 변모한다.[* 그리고 바로 옆의 [[서울특별시|서울]]은 [[겨울]]에 [[인천광역시|인천]]보다 1~2℃ 낮은 경향이 있어서 같은 날 [[서울특별시|서울]]은 -19~-20℃를 기록했을 것으로 보인다. 대략 [[1922년]] [[1월 19일]]과 비슷한 수준으로 추정. 단 일교차는 내륙인 [[서울특별시|서울]]이 더 크기에 최고 기온은 -10.6℃보다 조금 더 높았을 것이다.] [[대한(24절기)|대한]]인 [[1월 20일]]에도 최저 기온 -17.0℃인 것으로 보아 어지간히도 추웠을 듯. [[부산광역시|부산]]도 [[1월 19일]] 최저 기온이 -10.6℃, 물론 [[북한]]이지만 [[동해|동해안]]에 위치해서 [[겨울]]이 따뜻한 [[원산시|원산]]조차도 [[1월 18일]] 최저 기온 '''-20.0℃'''에 최고 기온도 '''-13.0℃'''로 엄청나게 추웠다. -10℃ 안팎의 추운 날씨는 [[1월 25일]]까지 이어지다가 월말에 완전히 사라지는 듯했으나, [[입춘]]이 되자마자 거짓말처럼 다시 추워져서 [[인천광역시|인천]]의 최저 기온이 [[2월 3일]] -13.5℃, [[2월 4일]] -14.0℃, [[2월 5일]] -15.0℃, [[2월 6일]] -16.5℃, [[2월 7일]] '''-17.0℃'''까지 떨어져 절정을 기록한다. 이는 [[2월]]임을 고려할 때 굉장히 추운 것으로, 만약 이것이 공식 기록이었으면 [[인천광역시|인천]]의 [[2월]] 역대 최저 기온 공동 4위에 해당하는 매우 낮은 값이다.[* 1위는 [[1913년]] [[2월 9일]]의 -18.4℃, 2위는 [[1910년]] [[2월 2일]]의 -18.0℃, 3위는 [[1910년]] [[2월 1일]]의 -17.3℃, 그리고 공동 4위가 [[1931년]] [[2월 11일]]과 [[1897년]] [[2월 7일]]의 -17.0℃. 다만, [[1897년]] [[인천광역시|인천]]은 소숫점 단위를 어림잡아서 0.5 단위로 기록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오차 범위가 -16.8~-17.2℃ 사이로 -17℃보다 약간 높을 수도 혹은 약간 낮을 수도 있다.] 그 후, [[2월 8일]] 최저 기온이 -11.0℃까지 오르면서 추위가 조금씩 나아졌다...가 아니고 다시 한기가 강하게 몰려와 [[2월 9일]] -12.0℃, [[2월 10일]] -13.5℃, [[2월 11일]] '''-16.5℃'''로 2차 절정을 맞이한다. [[2월 13일]]까지 -10℃ 이하의 추운 날씨는 계속되었고, [[2월 14일]]부터는 -10℃ 이하의 날씨는 물러났으나 [[2월 17일]]에도 -9.5℃를 기록하는 등 추운 날씨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원산시|원산]]도 [[2월 5일]] 최저 기온 -19.0℃, 최고 기온 -12.0℃, [[2월 6일]]에 다시 최저 기온 '''-20.0℃'''를 찍으며 가히 기록적인 [[한파]]임을 입증하였다.[* 이를 공식 기온이라고 간주할 경우 [[원산시|원산]]의 [[2월]] 역대 최저 기온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원산시|원산]]의 [[2월]] 역대 공식 최저 기온은 [[1920년]] [[2월]]의 -19.2℃에 불과하다.] 이렇게까지 [[2월]]에 길게 [[한파]]가 이어지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2월 3일|2월 3]]~[[2월 13일|13일]]까지 [[인천광역시|인천]]이 11일 연속 -10℃ 이하를 기록했다. [[인천광역시|인천]]이 이렇게 장기간 -10℃ 이하를 기록한 것은 기상 관측 사상 [[2월]] 내에서는 전무하며, 연 전체로 확대해도 [[1963년]] [[1월 11일|1월 11]]~[[1월 26일|26일]]까지 16일 연속 -10℃ 이하를 기록한 것과 함께 유일하다. 그리고 이 [[이상 저온]]의 영향은 [[4월]]까지 이어져 다른 해에 비해 [[4월]] 평균 기온이 유달리 낮게 기록되었다.[* [[이상 저온/사례]] 문서에서도 나와있듯, [[홋카이도]]를 제외하고 [[한반도]]보다 [[한파]]의 영향을 덜 받는 [[일본]]도 열도 전역에 걸쳐 [[4월]] 평균 기온이 다른 해보다 낮게 나왔다. 옆 나라 전체가 이랬으니 하물며 한기의 영향을 다이렉트로 받는 [[한반도]]는...] * [[1899년]] [[1월]] [[한파]][br][[1월]] 상순까지 큰 [[한파]]가 없었다가 [[1월 13일]] 오후 3시 이후[* 오후 3시만 해도 기온이 37℉(2.8℃)였는데 오후 9시에 '''19℉(-7.2℃)'''로 급격하게 떨어져 있었다.]부터 한기 남하가 이루어졌다. 이 여파로 하룻밤 사이에 [[서울특별시|서울]]에서 [[한강]]이 결빙된 것으로 추정되나[* [[1899년 한국 중부 지진|다음 날에 발생한 중부 지진]] 때 [[한강]]의 얼음이 갈라졌다는 기록이 있다.], 당일 [[인천광역시|인천]]에서는 -13.5℃[* 한낮에도 -8.6℃에 그칠 정도로 낮 추위는 강력했다. [[서울특별시|서울]] 기준으로는 최저 기온 -15℃, 한낮 기온 -7℃ 정도로 추정되나, 같은 [[한파]]여도 [[인천광역시|인천]]과 [[서울특별시|서울]]의 공식 최저 기온이 5~6℃ 이상 차이가 벌어진 경우도 있어서, [[인천광역시|인천]]이 -13.5℃에 그쳤다고 해도 [[서울특별시|서울]]이 이와 비슷한 수준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대략 -16~-17℃, 더 낮으면 -18℃ 정도까지 떨어졌을 가능성도 있다.]에 그쳤고, 이후 [[1월 17일]]과 [[1월 22일]]에야 -14.0℃를 기록할 정도로 [[한파]]의 강도만 놓고 보면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2월]]에도 -8℃ 이하의 [[한파]]가 관측되지 않았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한파/대한민국, version=2712)] [[분류:한파]][[분류:대한민국의 재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