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000> '''[[사도|{{{#ffffff 후한의 사도}}}]]''' || || 39대 충고 || {{{+1 ←}}} || '''40대 허허''' || {{{+1 →}}} || 41대 [[호광]] || ||||||||||||<:><#008000> '''[[사도|{{{#ffffff 후한의 사도}}}]]''' || || 44대 [[교현]] || {{{+1 ←}}} || '''45대 허허''' || {{{+1 →}}} || 46대 [[원외(삼국지)|원외]] || ||||||||||||<:><#008000> '''[[사공|{{{#ffffff 후한의 사공}}}]]''' || || 44대 [[유총]] || {{{+1 ←}}} || '''45대 허허''' || {{{+1 →}}} || 46대 [[유오]] || 許栩 생몰년도 미상 [목차] [clearfix] == 개요 == [[고대]] [[중국]] [[후한]] 말의 인물이며 자는 계궐(季闕)로 예주 영천군 언현 사람. == 생애 == 위위를 지내다가 163년 2월에 사도를 지낸 충고가 죽으면서 그의 후임으로 사도가 되었으며, 166년에 면직되어 후임으로 호광이 사도가 되었다. 이후 [[환제(후한)|환제]]가 죽고 [[두무]]가 실권을 잡아 당인의 금고를 해제해 청류당에 속한 사람들을 등용해 그들과 결탁해 환관을 일소하려고 하면서 168년에 제2차 [[당고의 금]]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인해 두무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이 때 [[유총]]이 사도가 되자 대홍려를 지내던 허허는 그의 후임으로 사공이 되었다. 169년 5월에 사공에서 면직되면서 그의 후임으로 유효가 사공이 되었으며, 171년 7월에 [[교현]]이 면직되면서 그의 후임으로 사도가 되었다가 172년 12월에 파직되었고 그의 후임으로 [[원외(삼국지)|원외]]가 사도가 되었다. 그는 [[허소]]와 같은 종족으로 명예와 이익에 빠졌는데, 온 집안을 통틀어 허허의 집에 찾아가 아부했다. 그의 의도에 영합하거나 뇌물로 벼슬을 받지 않는 자가 없었으나 허소는 그 집을 가지 않았다고 한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허허, version=39, paragraph=2)] [[분류:후한의 사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