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13093003239_0.jpg]] 玄在賢 [[1949년]] [[2월 12일]] ~ ([age(1949-02-12)]세)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기업인]]. [[동양그룹]] 전 회장. 본관은 [[연주 현씨|연주]](延州)[* 보공장군공파 27세 재(在) 항렬.]. [[현상윤]] 초대 [[고려대학교]] 총장이 할아버지이며,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역임한 현인섭의 아들이자, 동양그룹 창업주인 [[이양구]] 회장의 첫째 [[사위]]다. == 생애 == [[1949년]] [[2월 12일]] [[서울특별시]]에서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역임한 [[부친]] 현인섭(玄寅燮)과 [[모친]] [[의령 남씨]] 남기진(南基眞)[* 남여백(南汝伯)의 딸이다.] 사이의 3남 2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3학년 재학 중 제12회 [[사법고시]]에 합격했으며, 이듬해엔 사법연수원을 2기로 수료했다. 1974년에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민사법 전공으로 [[법학]] [[석사]]학위[* 석사 학위 논문 : [[http://www.riss.kr/link?id=T138181|準備金의 資本轉入에 關한 몇가지 考察 : 特히 株式配當 및 株式分割制度와 關聯하여]](준비금의 자본전입에 관한 몇가지 고찰 : 특히 주식배당 및 주식분할제도와 관련하여).]도 받았으며, 같은 해 [[대한민국 해군]] [[군법무관]]으로 입대하여 군복무를 잘 마쳤다. 이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법조인)|검사]]로 임용되면서 검사의 길도 걸었다. 물론 [[개인]]으로 보면 스펙이 완벽하며, 아무런 탈이 없어 보이는데… 2013년 그룹 위기 당시 불법 기업[[어음]](CP) 발행 혐의가 인정되어 2015년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구속되었다. == 경영 == 때마침 [[동양그룹]]의 창업주인 서남 [[이양구]] 회장과 인연을 맺으면서 동양그룹 이양구 전 회장의 [[장녀]] 이혜경(李惠卿)과 [[결혼]]하게 된다. 결혼 후 검사직을 그만두면서 [[변호사]] 직함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까지 [[서울지방변호사회]]에 적을 두고 있기도 한다. 하지만 [[동양시멘트]] 이사를 맡게 되면서 이 일을 계기로 결국 변호사 직을 그만두고 경제인의 길을 걷게 된다. [[경영]]을 위해 1979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수학을 시작한다. 타고난 머리는 훌륭했으니 경영학 공부도 거뜬하게 하여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고 나온다. 그렇게 잘 나가다가 1998년 [[1997년 외환 위기|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당시 동양그룹도 퇴출 위기에 놓이고 있었다. 동양그룹 주력이었던 금융계열사들이 부실로 존폐 위기에 몰리기 시작했다. [[정부]]는 주인 있는 금융사들에게는 공적자금 투입은 없다는 방침을 세웠으나 다른 그룹들과 다르게 통이 큰 동양그룹은 5,000억 원이 넘는 큰 돈을 금융계열사에 쏟아 붇고 위기를 탈출하여 나왔다. 훗날 이 일은 동양그룹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정부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구조조정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행운은 계속 이어가지 못했다. 2013년 동양그룹 위기 사태로 현재현 본인도 징역 7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고 [[서울남부교도소]]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동양그룹을 [[파산]]으로 들어가게 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40년 전, 그 중 처음 인수할 때부터 위태롭게 생각하던 [[동양시멘트]]가 원인이었다. 2021년 1월 달에 출소했으며, 현재는 지인의 빈 아파트에 임시로 거주한다고 한다. [[피자헛]] [[성신제]] 사장과 고교 동창이다. [[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분류:1949년 출생]][[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주 현씨]][[분류:동양그룹]][[분류:경기고등학교 출신]][[분류:서울대학교 출신]][[분류:해군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