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아르샤쿠니 왕조 샤)] ||<-3><#000080> '''{{{#FFF 아르샤쿠니 13대 샤}}}''' [br] {{{+2 {{{#FFF '''Խոսրով | 호스로프 2세'''}}}}}} || ||<|3><#000080> '''{{{#FFF 제호}}}''' ||<#000080> '''[[한국어|{{{#FFF 한국어}}}]]''' ||호스로프 2세 || ||<#000080> '''[[아르메니아어|{{{#FFF 아르메니아어}}}]]''' ||Խոսրով || ||<#000080> '''[[영어|{{{#FFF 영어}}}]]''' ||Khosrov II || ||<-2><#000080> '''{{{#FFF 존호}}}''' ||[[샤]] || ||<-2><#000080> '''{{{#FFF 생몰 년도}}}''' ||미상 ~ [[258년]] || ||<-2><#000080> '''{{{#FFF 재위 기간}}}''' ||[[252년]] ~ [[258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아르메니아]] [[아르샤쿠니 왕조]]의 13대 [[샤]]. == 생애 == [[사산 왕조]] 초대 [[샤한샤]] [[아르다시르 1세]]의 침략으로부터 아르메니아를 지켜낸 [[티리다테스 2세(아르메니아)|티리다테스 2세]]의 아들로, 252년 부친이 사망한 후 왕위에 올랐다. 그에게는 아들 [[티리다테스 3세]]와 딸 호스라비 데크트(Khosravi Dekht)가 있었다. 258년, [[샤푸르 1세]]는 아르메니아를 공략할 야심을 품었다. 하지만 아르메니아의 방비가 워낙 굳건하고 [[발레리아누스]] 황제가 이끄는 [[로마 제국]]의 견제도 심한 상황에서 무력으로는 공략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호스로프 2세의 친척인 아낙에게 "왕을 시해하면 그의 지위와 재산을 그대가 갖는 걸 용인하겠다"라고 약속했다. 아낙은 이를 받아들여 바그하르샤파트에서 호스로프 2세와 그의 아내를 살해했다. 아르메니아 귀족들은 이에 분노하여 아낙과 일가족을 몰살시켰다. 아낙의 어린 아들 그레고리만이 보모 소피아와 예브타그의 도움으로 간신히 탈출하여 카파도키아의 카이세리아로 피신했다. 그 후 그는 기독교 신자가 되었고, 훗날 아르메니아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는데 크게 기여해 [[아르메니아 정교회]]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샤푸르 1세는 호스로프 2세의 암살로 혼란에 빠진 아르메니아를 전격 침공해 별다른 저항 없이 공략하고 아들 [[호르미즈드 1세]]를 아르메니아 왕위에 앉혔다. [[티리다테스 3세]]는 추종자들과 함께 로마로 망명했다. 283년 [[카루스]] 황제가 사산 왕조를 침공하여 크테시폰을 함락하고 메소포타미아를 파괴하는 등 심대한 타격을 입힌 뒤, 284년 [[바흐람 2세]]와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평화 협정을 체결하면서 서아르메니아는 티리다테스 3세가 통치하고 동아르메니아는 [[나르세스 1세]]가 다스렸다. 이후 나르세스 1세가 아르메니아 전체를 공략하고 [[샤푸르 1세]]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296년 로마 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지만, 298년 [[갈레리우스]]에게 참패한 뒤 아르메니아를 포기해야 했다. 이리하여 아르샤쿠니 왕조는 40년 만에 티리다테스 3세의 지도하에 아르메니아 전체를 다스리는 왕조로 복귀했다. [[분류:아르샤쿠니 왕조 샤]][[분류:258년 사망]][[분류:암살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