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1929년 출생]][[분류:1986년 사망]][[분류:6.25 전쟁/군인]][[분류:울릉군 출신 인물]][[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분류:남양 홍씨(당홍)]][[분류:독도]][[분류:고문 피해자]] ||<-2> '''{{{+1 홍순칠}}}[br]洪淳七''' || [[파일:홍순칠행님.jpg]] || '''본명''' ||홍순칠|| || '''출생''' ||[[1929년]] [[1월 23일]] [[경상북도]] [[울진군]] [[울릉도]](현 경상북도 [[울릉군]]) || || '''사망''' ||[[1986년]] [[2월 7일]] (향년 57세) 서울중앙보훈병원|| || '''국적''' ||[[대한민국|[[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8]] 대한민국]]|| || '''가족''' ||아내 슬하 1남 3녀||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국가유공자]]. [[독도의용수비대]]를 조직하여 [[독도]] 수호에 앞장선 인물.[[https://m.blog.naver.com/lsblee34505/222723209300|#]] == 생애 == 1929년 일제강점기에 울릉도에서 태어났다. [[조선국방경비대]]에 입대해 군인이 되었고 [[6.25 전쟁]]에도 참전했다 부상을 당해 전역했다. 전역 후에는 1953~56년까지 [[독도의용수비대]]를 결성해 이끌었으며 [[독도대첩]] 당시 전투를 성공적으로 지휘해 [[일본]] [[해상보안청]]의 침공을 격퇴시켰다. 자세한 내용은 [[독도의용수비대]]와 [[독도대첩]] 문서 참고. 이때의 공로로 1966년에 5등 근무공로훈장을 받았다. 이후에도 독도는 대한민국의 땅임을 알리며, 경상북도에 독도개발계획서를 내는 등 꾸준히 독도 수호 운동을 진행했다. 하지만 [[박정희 정부]]는 그의 활동이 일본과의 관계에 악영향을 준다고 부담스럽게 여겼고, 결국 1974년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 부인 박씨에 따르면 다시는 글을 못 쓰게 오른손까지 부러뜨렸다고 한다. 심지어 이후 들어선 전두환 정부에서도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547295.html|#]] 말년에는 [[폐암]] 치료를 받으며 잡지에 글을 연재하기도 하다 1986년 서울중앙보훈병원 병상에서 사망했다. 사후에는 2005년 [[독도의용수비대 지원법]]이 제정되면서 홍순칠을 포함한 의용대원 모두 [[국가유공자]]가 되었으며, 1996년 [[보국훈장]] 삼일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