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제주도의 법정동, rd1=화북동)] [include(틀:중국의 행정구역)] [목차] [clearfix] == 개요 == '''華北/华北''' [[중국]]의 지역. [[화남|정확한 영역이 없어]] [[황하]] 이북, [[회하]] 이북이라 하기도 하고 [[화중]] 이북이라 하기도 한다.[* [[https://researchgate.net/publication/268395385_Quantitative_Analysis_of_Land_Mammal_Zoogeographical_Regions_in_China_and_Adjacent_Regions|#1]] [[https://bbs.focus.cn/wh/93136/1e6d21c073489695.html|#2]]] [[화북 평야]]가 위치하고 있다. [[친링산맥]](秦嶺山脈)과 [[화이허]](淮河)를 기준으로 화북, 화남 등으로 나누는 건 지리학적인 구분을 위해 20세기 초 중국의 지리학자 장샹웬(張相文, 1867~1933)이 [[1908년]]에 정립한 것이다.[[https://www.thenationalnews.com/uae/china-s-unlikely-divide-over-home-heat-1.270578|#]] [[밀]] 재배에 적합한 기후라 밀로 만든 빵이나 국수가 주식이다. [[만터우]]나 [[꽃빵]] 등이 대표적. ||[[파일:qvTDkZn.png|width=100%]]|| || 서기 2년 [[전한]] 인구 밀도. 화북의 인구가 많았다.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중화민국 지역.png|width=70%]]}}} || || [[중화민국]]의 구분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지리 구분.png|width=70%]]}}} || || 화북(HB), 화남(HN), 장강 이북(BCH), 장강 이남(NCH) || 화북/화남이 없는 구분도 있다.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중국 지역 구분1.png|width=70%]]}}} || || [[중화인민공화국]]의 현대 구분.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중국 지역 구분2.png|width=70%]]}}} || || 중화인민공화국의 개발정책에 따른 구분. 화남/북 등 없이 동부, 서부, 동북, 중부 지구로 구분한다. || == 역사 == '''[[중국 문명]]의 발상지였으며, [[중국사]] 내내 정치적 중심지다.''' 상고 [[주나라]] 이래부터 [[고대]] [[한나라]]까지 이곳의 '오랑캐'들을 몰아내고 어느 정도 개발을 해놓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장강 주변과 몇몇 거점도시에나 확실하게 통치력이 미쳤고, 나머지 화남 지역 대부분은 과장 좀 보태서 야만족의 땅이었고 미지의 땅이었다. 이는 [[후한]]의 [[후한 13주|13주]],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당시의 [[오(삼국시대)|손오]]도 마찬가지였으며, [[촉한]]과 [[오나라]]가 힘을 합쳐도 [[위(삼국시대)|조위]]의 국력에 못 미치는 것을 보면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중세]] [[5호 16국]] 시대부터 [[한족]]들이 [[오호|북방 유목민]]에게 [[영가의 난|화북을 빼앗기고]] 대거 화남으로 이주하여 한족 [[왕조]]를 이어간 [[남북조시대]]를 열면서 본격적으로 개발이 시작되었고, 이후 [[천하통일]]을 이룩한 [[수나라]] [[대운하]]의 건설, 결정적으로 [[남송]] 시대를 거치며 장강 하류의 생산력이 급상승하여 [[근세]] [[요나라|요]]-[[금나라|금]]-[[원나라|원]]의 끊임없는 유목민 [[정복왕조]]로 피폐해진 화북을 앞질렀다. 단, 비록 화남이 장강 하류 개발로 생산력이 대폭 상승했더라도 인구면에서는 화북에 비해 수배 이상 부족했기 때문에 그 차이를 메꾸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그 상승된 생산력은 그대로 화남의 인구를 늘리는데 투입된 것이 아니라 화북의 인구를 먹여살리기 위해 운송됐다. 애초에 [[대운하]]를 만들어 장강과 황하를 연결한 이유가 화남의 생산물을 화북으로 옮기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화북은 비교적 한랭한 평원지대라서 강이 가득한 온난한 화남보다 [[기병]] 양병이 수월했기에 여전히 남북 두 지역 간에 군사적 대결이 발생할 경우 [[명나라]], [[중화민국]] 두 번을 제외하고는 늘 화북의 승리로 끝났다. 명나라의 [[홍무제]]가 근거지 [[난징]]에 도읍을 설치했지만 [[정난의 변]] 이후 [[영락제]]가 근거지 [[베이징]]으로 [[천도]]하였다. 그리고 명나라에 이어 [[현대]] [[중화민국]]의 [[장제스]]가 [[국민당의 2차 북벌]]로 [[북양정부]]를 물리치고 난징으로 [[환도]]함으로써 중국의 중추지가 화남[* 중화민국의 지역 구분으로는 [[화중]]지방]으로 이전하는듯 싶었지만 [[국공내전]]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승리하고 중화민국이 [[대만 섬]]으로 [[국부천대|피신하면서]] 중공이 다시 베이징으로 정도하여 현재도 화북은 중국의 중추지로 남아있다. == 같이보기 == * [[중화]] * [[화동]] * [[화중]] * [[화남]] * [[화서]] * [[화하]] * [[화인]] * [[24절기]][* 중국 화북지방의 날씨를 기준으로 고안된 것이다.] [[분류:중국의 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