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width=30&height=30]] '''[[서울특별시의 기념물|{{{#ffffff 서울특별시의 기념물}}}]]''' || || 1호 ||<|2> ← || '''2호''' ||<|2> → || 3호 || || [[잠실 뽕나무]] || '''화양동 느티나무''' || [[낙성대|강감찬 생가 터(낙성대)]] || ---- ||<-2>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width=28]] '''{{{#ffffff 서울특별시의 기념물 제2호}}}''' || ||<-2> {{{#fff {{{+1 '''화양동 느티나무'''}}}[br]{{{-1 華陽洞느티나무}}}}}} || ||<-2>{{{#!wiki style="margin: -10px"; margin-top: -5px; margin-bottom: 16px" [include(틀:지도, 장소=화양동 느티나무, 너비=100%, 높이=100%)]}}}|| || '''{{{#fff 소재지}}}''' || [[서울특별시]] [[광진구]] [[화양동]] 110-34번지 || || '''{{{#fff 분류}}}''' || 자연유산 / 천연기념물 / 생물과학기념물 / 생물상 || || '''{{{#fff 수량 / 면적}}}''' || 느티나무 1그루, 토지 367.1㎡ || || '''{{{#fff 지정연도}}}''' || [[1973년]] [[1월 17일]] || || '''{{{#fff 관리자[br](관리단체)}}}''' || [[광진구]]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화양동느티나무(봄).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화양동느티나무(여름).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화양동느티나무(가을).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느티나무(겨울).jpg|width=100%]]}}} || || '''{{{#fff 화양동 느티나무의 계절별 모습[* 사진 출처 - [[https://www.gwangjin.go.kr/_board-read.do?boardId=MLAXX34&boardNo=134881668160621&command=READ|광진구청 동주민센터.]]]}}}''' || [목차] [clearfix] == 개요 == 서울특별시 [[광진구]] [[화양동]]에 있는 [[느티나무]]. 현재 [[서울특별시의 기념물]] 제2호로 지정되어 있다. == 내용 == 화양 느티나무의 높이는 28m, 줄기 둘레는 3m이고 추정 수령은 약 700년이다. 이 느티나무가 서 있는 자리는 조선 [[세종(조선)|세종]] 때 조정에서 건립하였던 화양정(華陽亭) 터이고, [[세종(조선)|세종]] 임금의 태평성대와 [[단종(조선)|단종]] 곧 노산군(魯山君) 그리고 [[명성황후]](明星皇后) 민씨에 얽힌 사연 등 다채로운 곳이다. 궁궐지(宮闕志)에 따르면 세종은 1432년(세종 14) 이곳 조정 목장의 언덕 위에 정자를 짓고 방목한 말들이 떼 지어 노는 광경을 즐겼다고 했다. 또한, 금석일반(金石一斑)의 기록에 의하면 화양정을 세운지 불과 24년만인 1455년에 삼촌 세조(世祖)에게 쫓겨난 단종이 영월 땅으로 귀양 갈 때 내시 안로(安璐)의 전송을 받으며 하룻밤을 지새운 곳이 바로 이 화양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곳 화양정에 얽힌 이야기도 구전되고 있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壬午軍亂) 통에 장호원(長湖院)에 피신했다가 돌아온 명성황후는 피난길에 이곳 화양정에서 쉬어 갔었다고 한다. 이때 몰려든 동네 여인들이 가마 문을 열고 “아이고 예쁘기도 해라, 저토록 젊은 여자가 장안에 제 집 두고 민비라는 못된 왕비 북새통에 피난 가나본데 세상이 하도 뒤숭숭하니 언제 다시 돌아올 날 있을라구” 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화양정은 100여 칸 이상이 되고 기둥 둘레도 한아름이 넘는 큰 규모였으나 1911년 낙뢰를 맞아 없어졌다. 현재 화양동 느티나무의 주변에는 느티나무 공원이라는 명칭의 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근방에 화양동 동주민센터가 위치하고 있다. == 외부 링크 == * [[https://ko.wikipedia.org/wiki/서울_화양동_느티나무|한국어 위키백과: 화양동 느티나무]]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92683&cid=40942&categoryId=33651|두산백과: 화양동 느티나무]]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29005&cid=46640&categoryId=466405|한국민족문화대백과: 화양동 느티나무]] ==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5_2_1_0&ccbaCpno=2331100020000|문화재청 홈페이지: 화양동느티나무 (華陽洞느티나무)]] >느티나무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대만, 중국 등의 따뜻한 지방에 분포하고 있다. 꽃은 5월에 피고 열매는 원반모양으로 10월에 익는다. 예전부터 우리나라 마을에는 대개 큰 정자나무가 있었는데 가장 뛰어난 기능을 했던 것이 느티나무였다. > >화양동의 느티나무는 7그루가 한 곳에 모여 자라고 있으며, 나이는 7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는 약 28m이며, 7그루의 총 둘레는 7.5m이다. >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곳은 세종(재위 1418∼1450) 때 세워진 화양정이란 정자가 있던 자리로 고종(재위 1863∼1907)의 비인 명성황후가 임오군란(1882) 중에 피난길을 가다 잠시 쉬어간 곳이라 한다. > >화양동 느티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서 지내온 나무이며, 특히 커다란 느티나무는 전국적으로 많이 있으나 이곳처럼 7그루가 한 곳에 모여있는 광경은 보기 드물어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분류:나무]][[분류:서울특별시의 기념물]][[분류:광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