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MBC 코미디언)] ||<-2> '''{{{#FFF {{{+1 황기순}}}[br]黃基順|Hwang Gi-sun}}}'''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황기순.jpg|width=100%]]}}} || ||<|2> '''출생''' ||[[1963년]] [[12월 7일]] ([age(1963-12-07)]세) || ||[[대전광역시]][* 당시 충청남도 대전시 및 대덕군] || || '''신체''' ||170cm, 72kg, [[B형]] || || '''직업''' ||[[코미디언]], [[배우#s-2.1|영화배우]], [[기업인|사업가]] || || '''가족''' ||아내, 아들 황동현 || || '''학력'''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 {{{-2 (졸업)}}}[br][[동신대학교]] {{{-2 (다중매체연기영상학 / [[학사]])}}} || || '''종교''' ||[[개신교]][* 최근 고양시 일산동구 소재 충정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것이 확인되었다.[[http://youtu.be/tBhQHlY0B10|#]]] || || '''데뷔''' ||[[1982년]] [[문화방송|MBC]] 개그 콘테스트 2기[* MBC 공채가 아닌 개그 콘테스트이며, 당시에는 개그 콘테스트 1기(1981년)부터 라디오로 개최되었다.]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겸 [[기업인|사업가]]. == 생애 == 유년시절 개그맨이 되고 싶은 막연한 꿈만 있었고, 어떻게 개그맨이 되는 줄은 몰랐다고 한다. 그러다가 고등학생 시절 우연히 교내에서 개그를 했는데 당시 학교 탐방 프로그램 담당 PD가 연락처를 물어 집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고 한다. 이후 대입 시험을 망치고, 그 PD에게 연락해 약 4개월 정도의 트레이닝을 받고는 개그 콘테스트에 첨가해서 금상을 타며 개그맨이 된 것이라고 한다.[* 이 때 대상은 [[최병서]], 동상은 [[이원승]] 모두 충청남도 출신이다.] 어찌보면 운이 매우 좋은 케이스다. [[청춘행진곡]] 등에서 많은 활약을 보여줬으며, "'''척보면 애~ㅂ니데(압니다)!'''"라는 [[유행어]]를 히트시키기도 했다. 전성기 시절 때는 혹사에 가까울 정도로 스케줄을 소화하며 떼돈을 벌었었다. 하지만 이른 성공에 도취된 나머지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황기순 본인이 강연에서 밝힌 바로는 본인은 바쁜 스케줄에 결혼식은 못가고 돈만 보낸 경우가 많지만, 장례식은 꼭 챙겨서 갔는데, 이유가 바로 '''그 놈의 [[고스톱]]이 너무 재밌어서'''였다고 한다. 주변인들은 그게 도박이 된다고 얘기했는데 황기순은 그걸 깨닫지 못했다.[* 또한 여기에는 직업인 [[개그맨]]의 태생적인 취약함이 있었다. 개그맨들은 모여서 콩트를 짜기 위한 아이디어회의를 매주 마감에 맞춰 해야하는데, 하다보면 어느 순간은 서로 아이디어도 안 나오고 막히게 된다. 기본적으로 희극은 절대로 술 마시고 짜서는 안 된다, 술을 마시면 웃음의 포인트가 이상하게 바뀌기 때문에, 냉정하게 평가를 할 수 없기 때문. 거기에 기본적으로는 코미디언도 방송을 하는 연기자라 외모를 어느 정도는 관리해야 하니 술을 마시면 안되고, 당시에는 놀이 문화가 발달한 시절도 아니었어서 딱히 여가시간에 할 것도 없었다. 그렇다보니 같이 즐기고 쉬면서 머리도 좀 식히고 이야기 나누다보면 또 무언가 떠오를지도 모르니 고스톱같은 보드게임류를 많이 즐겼다.] 그나마 대화를 하면서 즐길 수 있는 여가인 [[당구]] 등이 있었는데, 이건 당구장에 돈을 내고 쳐야 하니, 주머니 사정이 다들 뻔한 당시 개그맨들이 길게 할 수는 없다. 그나마도 [[통금]]이 있던 시절이라 밤에는 문을 닫는다. 이러다 보니 할 수 있는 게, 결국 간단한 카드게임류나 보드게임 밖에 없었다고. [[윷놀이]] 에서 [[부르마블]] 같은 게임들도 꽤 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 큰 어른들이 보드게임 등을 계속 하는것도 결국 한계가 있어서 자연스레 고스톱이 여가의 메인이 되는데, 남녀모두 즐기기 쉽고, 모르는 사람도 배우기 쉬운 룰이라, 금방 배워서 다 같이 하기 좋고, 하다 보면 분위기 전환도 좀 되고 순간적으로 아드레날린이 돌며 머리회전도 되고, 돈을 딴 사람이 다른데 안쓰고 바로 간식 좀 사고 하는 식이니 팀웍 증진에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몇 판 하다 바로 접을 수 있으니, 잠깐하고 다시 아이디어 회의하고 콩트 짜는 식으로 많이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보통 자취방 등에서 모여 아이디어 회의를 하다,지겨워 지니 분위기라도 좀 바꿔보기 위해 목욕탕도 가고, 약수터도 가고 거기서 한판 하다 보면 어느순간 주변에서 외부인 한 두명이 같이 하자고 붙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렇게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으나, 점차 빠져들면서 더 큰 자극을 찾아 주 종목이 판돈이 커지기 힘든 여가 성향에 가까운 고스톱에서 [[섯다]]로 바뀌게 된다.[* 참고로 고스톱에서도 큰 돈을 잃을 수 있기는 하다. 설계된 패로 사냥감을 노리는 속칭 '탄' 하지만 이 탄을 통한 사기도, 그럴싸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최소 3인이 빠르게 서로 상호작용하며 수십번을 패를 선택하고 치는 특성상 이 와중에 단 한가지만 변수가 발생해도 시나리오가 무너진다, 그렇게 어그러지고 나면 사기완 거리가 먼 평범한 일반 게임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사기를 치기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 손재주를 쓰기 좋은 섯다, 포커 등이 도박 사기에 애용된다.] 그리고 곧 수억원의 돈을 잃게 된다.[* 강남 아파트 한채가 5~6천만원 이던 시절에 수억원이다.][* 이 시기 황기순보다 도박을 더 좋아하던 개그맨도 많았으나, 황기순이 유독 타겟이 된 것은, 그가 다른 개그맨들에 비해 승부근성이 강하고, 행사 수입이 워낙 많아 주머니에 현금이 많았기 때문.] 이렇게 어느 순간 황기순을 노린 전문 도박꾼들이 그를 제대로 빨아먹었다고 한다. 그렇게 도박에 빠져들자 점차 주업인 방송과 행사를 등한시 하게 되고,[* 고스톱을 치기 위해 생방송을 펑크를 내는데, 뒤에 정신차리고 거짓말로 넘어가 보려고 사고가 났다고 가짜로 기브스를 하고 피디를 찾아간다, 그러자 화가난 피디는 몸도 안좋으니 푹 쉬시라며 방송에서 빼버리는 식이었다고 한다.]점차 신뢰를 잃어 일이 끊기게 된다. 이렇게 금전적으로 위기인 상황에서도 도박은 계속하고, 빚을 지게 되었고 이를 극복해 보고자 고향인 [[대전광역시]]에 나이트클럽을 열었으나, 사기를 당하면서 2억원의 빚을 채무로 받게 된다. 그러나 황기순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돈을 갚으려면 카지노에서 벌어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 1997년에 [[필리핀]]으로 원정 도박을 떠났다가 파산하고 [[이혼]]까지 당했다.[* 이 때 부인과 [[나훈아]]와의 [[불륜]]설이 떠돈 적이 있지만, 황기순 본인이 강하게 부인했다.] 그 때의 고생이 [[추적 60분]]에 소개되어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다. 황기순은 [[필리핀]]에서 거의 [[노숙자]]로 지내며 몇 년간 귀국하지 못하고 있다가 지인들의 도움과 정부의 해외 도박사범 사면 조치에 따라 귀국하게 된다.[* 당시 한 방송에서 [[이봉원]] 등 황기순의 지인들이 그를 찾아 필리핀까지 직접 갔는데, 모자 눌러쓰고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르고서는 빗자루로 자판기 밑 동전을 줍고 있었다.] 특히 황기순에게 [[이봉원]]이 금전적으로 굉장히 크게 도와줬는데 당장 황기순의 귀국 비용을 [[이봉원]]이 전담했다. [[KBS 2TV]]에서 "실패열전 장밋빛 인생"을 방영할 당시 그의 거지꼴을 재현한 에피소드가 황기순의 허락 아래 그가 보는 가운데 방영되었다. 이 때 대역을 맡은 연기자가 [[필리핀]] 빈민굴에서 그야말로 거지 꼴로 지내다가 [[김정렬(코미디언)|그를 알아본 한국인 지인]]이 찾아오자 모른 척하면서 피하던 게 나왔다. [[김정렬(코미디언)|그 지인]]이 거듭 설득하면서 비로소 마음을 돌리게 되었다고.[* 동료 [[양종철]] 역시 이 때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양종철]]은 2001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걸 보던 황기순은 눈시울을 붉혔다고. 여기에 [[주병진]]도 그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귀국한 후 여러 공연과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활동함으로써[* 당시 [[iTV]]에서는 이경래, [[성창수]], 구수한, [[이봉원]], 최형만, [[김구라]] 등 타 방송사([[한국방송공사|KBS]], [[SBS]]) 출신 코미디언들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이들 중 김구라가 고정 MC로 활동한 [[문화방송|MBC]] [[명랑 히어로]] '이경규 두 번 살다'에서는 본인(황기순)이 게스트로 나왔었다.] 재기에 성공한 그는 2005년에 재혼하였으며, 2009년에 득남했다. 활동 초기에는 자신의 치부로 개그의 소재를 삼았지만,[* 2006년 설날특집 [[개그콘서트]] [[사랑의 가족(개그콘서트)|사랑의 가족]] 326회에서 할아버지 역할로 출연했는데 2번이나 자폭했다. 효도 관광을 시켜줄테니 어디로 가고 싶냐는 [[박준형(코미디언)|박준형]]의 말에 '''"필리핀만 아니면 돼(…)."'''라고 말했고, [[진실게임#놀이]]을 하자는 [[정종철]]을 시작으로 각자 진실게임을 한 뒤 마지막으로 "내가 너희들 태어난 거 몰랐다고 그랬지? 사실은 너희들 태어난 거 알고 '''필리핀으로 도망간거야(…).'''"라고 [[http://www.youtube.com/watch?v=-NrktBQtQic|말했다.]]] 요즘에는 식상해졌다고 느꼈는지 다른 컨셉을 모색 중이다. 봉사 활동에도 열중하여 2005년에 [[보건복지부]] 장관 이웃돕기 표창을 받았으며,[* 2010년 [[공감토크쇼 놀러와|놀러와]]에 나와 밝힌 바로는 본인은 도박으로 인한 물의를 일으켜 이미지 쇄신코자 쇼로서 봉사 활동을 시작했고, 봉사 활동 당시 관심이 없었고, 얼마 모이지 않은 돈으로 휠체어 기부 당시 큰 감동을 받아 남든이 뭐라하던 상관없이 계속 봉사 할동을 진행한다고 하며 할 때까지 해서 죽을 때 웃으면서 죽을 수 있는 삶을 살려고 한다고.] 당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패자부활전에서 성공한 삶'''"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이 외에 영화 쪽에서도 활동을 한 적이 있었는데, 2004년 영화 "[[클레멘타인(영화)|클레멘타인]]"에 카메오로 출연했고, 이후 2009년 영화 "바람만 안 불면 괜찮은 공기"에 출연하여 [[신상옥]] 영화제의 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같은 도박 동지 [[김준호(코미디언)|김준호]]와 개식스에서 도박 드립을 치기도 하여 [[도박 중독]] 치료 강연을 위해 [[강원랜드]]에 방문한 적이 있으며, 2016년 5월부터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1336 TV 광고의 메인 모델로 발탁되어 지상파를 타고 있다. 그래서 [[신정환|이 사람]]과 많이 비교당하고 있다.[* 특히 [[신정환]]은 무단으로 방송을 펑크낸 데다가 [[뎅기열]] 거짓말까지 한 것이 문제였다.] [[SNL 코리아]] [[윤상현(배우)|윤상현]] 편에 "나쁜 녀석들" 스케치에 등장했다. 다만, 같이 나온 나머지 [[곽한구|두]] [[김상혁|명]]이 비하면 시간이 좀 지났던지라 상대적으로 묻힌 감이 있다는 후문.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아침마당 황기순 출연.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기분 좋은 날 황기순 출연.jpg|width=100%]]}}} || || '''{{{#FFF ▲ KBS1 '아침마당' 中}}}''' || '''{{{#FFF ▲ MBC '기분 좋은 날' 中}}}''' || 2017년 11월 8일부터 2023년 4월 26일까지 [[KBS 1TV]] "[[아침마당]]" 수요일 코너 "전국이야기대회 - 도전! 꿈의 무대"에 감상위원[* 방송에서 딱히 도전자들을 평가하지는 않았지만, 단순히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했다.] 겸 패널로 출연했고, 이 외에 [[문화방송|MBC]] "[[기분 좋은 날]]"에도 패널로 출연했다. 2022년부터 [[전주방송|J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와글와글 시장가요제]]"의 MC를 맡고 있으며,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에 방송된다. == 수상 == * 1982년 제2회 MBC 개그콘테스트 금상 * 1988년 [[MBC 연기대상]] 코미디 신인상 * 2005년 복지부장관표창 이웃돕기 공로상 * 2009년 제3회 공주신상옥청년영화제 우수남자연기상 == 여담 == * 방송 활동 외에도 본인 명의의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개업하여 체인점도 제법 낼 정도로 성공했다. 칼국수와 돈까스를 전문으로 하는데 [[창렬|여타 연예인들이 본인의 이름을 팔아 말도 안되는 가격을 매기는 경우]]와는 달리 [[혜자|칼국수 한 그릇에 2016년 기준 3,500원의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2014년]] [[8월]] 말에 [[고려대학교]]에도 분점이 생겼다. 맛없는 학식과 비싼 외식비에 지친 고려대학교 학생들의 희망이 되고 있다나 뭐라나(…).] 가격대비 음식 맛도 괜찮은 편. 본인의 이름을 걸고 하지만 과거에 유명했던 개그맨이었다는 점을 딱히 부각시키지는 않아 오히려 20, 30대 정도의 젊은 고객 층들 중에는 황기순이 유명한 칼국수 요리사인 줄 알고 오는 경우도 제법 있다고. 그리고 황기순을 많이 닮은 후배 개그맨에 [[문세윤]][* 심지어 [[김대희]]는 일반인 시절 방송국에 들어갔던 [[문세윤]]을 황기순으로 착각하고 먼저 90도로 인사했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자 되려 화를 냈던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이때 김병만이 후배들을 쫙 세워놓고 김대희에게 인사를 시키는데 일반인 참가자로 개콘에서 무대에 섰던 문세윤 역시 인사를 시킨 것이다.(개그맨 지망생이고 아직 데뷔를 못 한 것이니 꿔다놓은 보릿자루 취급 안하고 후배로 취급해준건 오히려 배려해준 셈) 문세윤도 당시 잘나가던 김대희를 동경하고 있었기에 군기 바짝 들어 인사를 하려던 순간 김대희가 "선배님 안녕하십니까!"하고 먼저 인사했다고. 자세히 본 김대희가 "에이씨! 황기순 닮았어!"라고 하고 김병만이 '일반인 참가자입니다"라고 설명하자 "왜 일반인이 황기순 닮았어?!"라고 했다고 한다. 꼰대희에 출연한 문세윤이 이 일화를 풀면서 "일반인이 황기순 닮으면 안돼?"라고 따졌다.]이 있는데 그도 김장을 잘 담그는 등 요리 실력이 좋다. 얼굴만 닮은 게 아닌 셈. * 6살이던 [[1969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후로 47살이던 [[2010년]]에 모친상 소식이 들려왔다.[* 황기순의 어머니는 [[1925년]]생으로, 사인이 낙상이라 밝혀진 바 있다.] * [[2009년]]부터 [[2010년]]까지 [[KBS 1TV]] "[[6시 내고향]]"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지역 시장을 알리는 코너의 진행을 맡은 적이 있다. * [[강남스타일]]의 패러디인 [[강남스타일/패러디|하자스타일]]에도 [[허경영]]과 함께 등장했다. * 2023년 기준으로 기러기 아빠 생활을 6년째 하고 있다고 한다. [[http://www.news1.kr/articles/?5166684|#]] * [[이상운]]과 닮은꼴이다. 그래서인지 이상운이 '''황기순은 양식 메기, 나는 자연산 메기'''라고 했던 바 있다. [[분류:한국 남성 코미디언]][[분류:1963년 출생]][[분류:1982년 데뷔]][[분류:대전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 출신]][[분류:동신대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