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상법강사, rd1=황의영(강사))]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유공자|{{{#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br]{{{#ffffff '''{{{+1 황의영}}}'''[br]'''黃義瑛[* 장수황씨세보 권9 644쪽에는 黃義'''{{{+1 暎}}}'''으로 등재되어 있다.]'''}}}}}}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황의영.jpg|width=100%]]}}} || || '''창씨명''' ||나가미즈 기에이(長水義瑛) || || '''이명''' ||이원영(李元永)·이만녕(李萬寧) || || '''자 / 호''' ||학범(學凡) / 홍선(弘宣) || || '''본관''' ||[[황(성씨)|장수 황씨]](長水 黃氏)[* 열성공파(烈成公派)-장원군계(長原君系)-부사공(府使公) 문중 22세 의(義) 항렬.] || ||<|2> '''출생''' ||[[1919년]] [[9월 10일]] || ||[[전라남도]] [[완도군]] [[신지도|신지면]] 대곡리[* [[황(성씨)|장수 황씨]](長水 黃氏) 집성촌이다.] 대평마을 632번지 || ||<|2> '''사망''' ||[[2013년]] [[1월 20일]] (향년 93세) || ||[[광주광역시]] || ||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4묘역-579호 || || '''상훈''' ||건국포장 수훈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3년 건국포장이 수여되었다. == 생애 == 1919년 9월 10일 [[전라남도]] [[완도군]] [[신지도|신지면]] 대곡리 대평마을 632번지에서 아버지 황옥주(黃玉周, 1881. 9. 7 ~ 1954. 7. 22)[* 자는 대유(大有).]와 어머니 [[단양 우씨]][* 우인평(禹仁坪)의 딸이다.] 사이에서 3남 3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사립 도쿄제국상업학교(東京帝國商業學校)[* 지금의 도쿄가쿠인(學園)고등학교로 추정된다.[[https://ja.wikipedia.org/wiki/%E6%9D%B1%E4%BA%AC%E5%AD%A6%E5%9C%92%E9%AB%98%E7%AD%89%E5%AD%A6%E6%A0%A1|#]]]에 입학하였다. 1942년 3월 [[고학]] 끝에 졸업한 뒤 [[오사카시]]에서 회사에 취직하여 근무하던 중 1943년 12월 10일, 돌연 사직하고 귀국하여 이후에는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집에서 지냈다. 그러던 1944년 3월 22일 오후 4시경 완도군 신지면 신리 가와히가시 토쿠카이(河東德開)의 [[상갓집]]에서 조문객으로 온 마츠무라 에이슈(松村永鍾)·니야마 칸코(丹山還鎬)·이시카와 우켄(石川禹鉉)·가네우미 자이카(金海在夏)·니야마 에이후(丹山榮夫) 등에게, "[[대동아전쟁]]에서 [[미국]]과 [[영국]]은 물자가 풍부하지만 일본은 물자가 부족하므로 반드시 패할 것이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전하면 조선은 독립되고 정치는 회복될 텐데, 너희들은 집과 땅을 일본에게 빼앗겨도 좋다는 것인가."라고 말하며 [[일본 제국]]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할 것이라는 시국에 대한 소문을 유포했다가 이후 함께 자리에 있던 양 아무개가 이 사실을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58634|밀고하면서]] [[일본 제국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1944년 6월 15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이른바 조선임시보안령 위반 및 육·해군형법 위반, 사기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http://theme.archives.go.kr/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352470&evntId=0034992985&evntdowngbn=Y&indpnId=0000023945&actionType=det&flag=1&search_region=|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8.15 광복]] 후에는 [[초등교사]]로서 35년간 봉직하며 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뒤 퇴임했다. 퇴임할 때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199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포장이 수여되었으며, 이후 2013년 1월 20일 오후 7시 50분 [[광주광역시]]에서 [[https://www.hani.co.kr/arti/society/obituary/570627.html|사망하였다]]. 유해는 2013년 1월 22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4묘역에 안장되었다. [[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교사]][[분류:장수 황씨]][[분류:완도군 출신 인물]][[분류:1919년 출생]][[분류:2013년 사망]][[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분류:건국포장]][[분류:국민훈장 목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