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fff {{{+1 황정자}}}[br]黃貞子 | Hwang Jungja}}}'''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가수황정자.jpg|width=100%]]}}} || || '''본명''' ||황창순 || ||<|2> '''출생''' ||[[1927년]]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냉천동]] || ||<|2> '''사망''' ||[[1969년]] [[2월 27일]] (향년 41 ~ 42세)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천연동]][* 당시에는 현저동이었다.] || || '''가족''' ||3남 5녀 중 다섯째, [[배우자]] 김학곤[* 사별했다.] || || '''데뷔''' ||[[1959년]] '처녀 뱃사공'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민요가수. == 생애 == [[1927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냉천동]]의 가난한 집안의 다섯째로 태어났다. 유년시절, 그녀는 8살 때부터 순회극단 무대에서 노래를 시작했으며, 어려서부터 많은 민요가락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유년시절에 간간히 무대에만 출연하다가 13세가 되던 해에 조병암이 작사하고, 이봉룡이 작곡한 '살랑춘풍' 을 취입하면서 첫 곡을 얻게 되며, 데뷔하게 된다.[* 그러나 정식 데뷔는 '처녀 뱃사공' 을 발표한 [[1959년]]이다.] 순회극단에서 활동하며 학창시절은 하지 못했고, 악극단에서 열심히 노래불렀다. 이후 [[1955년]]에는 [[한복남]]이 작곡한 '오동동 타령' 을, [[1958년]]에는 한복남이 작곡한 '봄바람 님바람' 이, [[1959년]]에도 또한 한복남이 작곡한 '처녀 뱃사공' 이 히트를 치면서 단숨에 무려 세 곡의 히트곡을 가지게 되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 작곡가 김성근이 병을 앓던 황정자에게 신곡을 취입할 것을 제안했고, 황정자는 몸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신곡에 대한 열정을 보이며, '[[노래가락 차차차]]' 를 발표했는데, 이 곡도 대히트를 쳤다. 그러던 [[1969년]], 그녀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향년 41 ~ 42세의 젊은 나이로 타계했다. 사인은 장암.[[http://m.mk.co.kr/onews/1969/1397471|#]] == 대표곡 == * [[1940년]] 살랑 춘풍 * [[1956년]] 오동동 타령 - 2020년 가요무대 애창곡 공동 81위를 기록했다. * [[1958년]] 남원의 봄 사건 * [[1958년]] 봄 바람 님 바람 * [[1958년]] 처녀 뱃사공 - [[2020년]]에 발표된 [[가요무대]] 애창곡 100위 중 무려 6위를 기록하면서 대단한 인기곡이었음을 증명했다. * [[1962년]] [[노래가락 차차차]] [[분류:한국 여가수]][[분류:트로트 가수]][[분류:1927년 출생]][[분류:서대문구 출신 인물]][[분류:1959년 데뷔]][[분류:1969년 사망]][[분류:암으로 죽은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