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柱 생몰년도 미상 [목차] [clearfix] == 개요 == [[고대]] [[중국]] [[후한]] 말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촉한]]의 관료. [[형주]] [[남양군]] 사람. == 행적 == 219년 [[유비]]가 [[한중왕]]이 되자 [[뇌공#s-1]]을 [[태상]], [[왕모#s-2]]를 [[소부]]로 삼을 때 황주는 [[광록훈]]이 되었다. 220년에는 황주를 포함해 [[허정(삼국지)|허정]], [[제갈량]], [[미축]], 왕모, 뇌공 등 120명이 함께 유비가 [[한나라]]([[촉한]])의 [[황제]]로 즉위하도록 간청하는 상주문을 올렸다. 왕모, 뇌공와 함께 그 사적이 전하지 않기 때문에 전을 만들지 못했다고 하며, 행적은 전해지는 것이 거의 없지만 광록훈을 한 것으로 볼 때 조정 내에 제사, 조회, 향연 등을 맡았을 것으로 보인다. 생몰년도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221년에 유비가 황제가 되면서 2년 만에 죽으면서 중도호를 지내던 [[이엄]]이 유비가 죽은 이후에 223년 도향후로 봉해져 가절을 받으면서 광록훈으로 되었다는 것으로 볼 때 황주의 후임으로 이엄이 광록훈이 된 것으로 보인다. == 대중 매체의 황주 == 소설 [[삼국지 마행처우역거]]에서 [[비관#s-2]]과 함께 [[오(삼국시대)|손오]]에 사신으로 갔다가 비관이 [[손권]]에게 온갖 기예를 선보이고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 사신의 품위를 훼손한다고 지적했다가 [[위(삼국시대)|조위]], [[오나라]]보다 작은 국가의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국가의 위엄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잔칫집에 온 하객으로 초대한 주인의 체면을 세워줘야 한다는 반박을 들었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황주, version=36)] [[분류:촉한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