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일본 황후)] [목차] == 제74대 [[도바 덴노]]의 제1황후 == 藤原泰子 카야노인(高陽院). [[도바 덴노]]의 제1황후로 '야스코'라고도 한다. 후지와라노 타다자네(藤原忠実)의 장녀로 도바 상황의 황후가 되었다. 당시 도바 상황에겐 덴노 시절에 맞은 중궁 [[후지와라노 쇼시]]가 있었지만, 헤이안 시대에는 덴노에게 황후와 중궁이 있을 경우에는 황후가 중궁보다 높았다. 그러나 후에 입궁한 제2중궁 [[후지와라노 도쿠시]]가 도바 상황의 총애를 독점한 탓인지 자녀가 없었다. 나중에 도쿠시가 황후로 높여지면서 타이시는 제1황후가 되었다. 후지와라노 도쿠시는 후지와라노 쇼시 중궁이 타이시를 저주했다는 누명을 씌워 [[스토쿠 덴노]] 세력을 몰아붙이기도 했는데, 이 때 타이시가 그냥 이용당한 건지 도쿠시가 타이시와 협조해 누명을 씌운 건지는 알 수 없다. == 제76대 [[코노에 덴노]]와 제78대 [[니조 덴노]]의 황후 == 藤原多子 [[코노에 덴노]]와 [[니조 덴노]]의 황후. '마사루코'라고도 한다. 일본사에서 유일하게 두 덴노의 황후가 되었다고 하여 '''2대의 황후(二代の后)'''라고 불렸다. 아버지는 도쿠다이지 사네요시(徳大寺 実能), 양부는 후지와라노 요리나가(藤原 頼長)였다. 1148년 [[도바 덴노|도바 법황]]의 입궁 승낙을 받고, 후지와라노 타이시란 이름과 함께 종3위의 직위를 받았다. 1150년 11세의 나이로 원복을 마친 [[코노에 덴노]]의 후궁이 되었다. 후지와라노 타다미치는 양자 요리나가 대신 친아들 모토자네(基實)에게 섭관의 지위를 물려줄 생각으로 양녀 데이시를 입궁시켜 결국 마사루코는 황후, 데이시는 중궁이 되었으나, 타다미치와 요리나가의 불화는 회복 불가능하게 되었다. 1155년 [[코노에 덴노]]가 붕어하자 황후는 은거에 들어갔다. 1158년 태황태후가 되었지만, 천황의 조모도 아닌 터라 이름뿐인 직위였다. 그렇게 젊은 과부로 살아가는가 했지만, 1160년 21세의 나이에 다시 입궁하게 된다. 재입궁 시기가 '''헤이지의 난''' 직후라는 점에서 [[도바 덴노]]와 코노에 덴노 양측의 정통성을 [[니조 덴노]]가 이어받았다는 것을 천명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는 설도 있다. 태황태후는 니조 덴노의 깊은 총애를 받았으나 본인은 이게 오죽 서러운 팔자였는지 붕어했을 때 출가하지 않은 것을 한탄하였다고 한다. 당시 니조 덴노는 중궁이 둘이나 되었으니 실권도 덜했을 것이다. 니조 덴노마저 23세의 젊은 나이로 붕어하자 출가하였고, 덴노 2명의 명복을 빌다가 62세의 나이로 타계하였다. [[분류:일본 황후]][[분류:헤이안 시대/인물]][[분류:종3위]][[분류:1095년 출생]][[분류:1156년 사망]][[분류:1140년 출생]][[분류:1202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