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퉁구스)] '''黒水國''' [목차] == 개요 == 886년경([[헌강왕]] 12년) [[후기신라]]와 접촉하려 했던 소국 혹은 [[말갈]], 그 중 [[흑수말갈]]의 일파로 추정하는 세력. 당시 [[발해]]는 [[대현석]](재위: 871년 ~ 882년? / 894년?) 또는 [[대위해]](재위: 882년? /894년? ~ 906년?)가 통치하고 있었다.[* 대위해의 재위기간이 [[대현석]] 이래 국왕의 즉위년도가 기록되지 않아 정확한 연도가 아직 불명이다.] [[삼국사기]]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록되어 있다. == 상세 == >'''十二年, 春, 北鎮奏, “狄國人入鎮, 以片木掛樹而歸.” 遂取以獻, 其木書十五字云, “寳露國與黒水國人, 共向新羅國和通.''' >'''12년(886년) 봄, 북진에서 보고하길 [[북적|적국]]인이 진에 들어와, 진에 들어와 판자 조각을 나무에 걸고 돌아갔습니다.”라고 하고, 드디어 가져다 바쳤다. 그 나무 조각에는 글이 15자 쓰여 있었는데, “[[보로국]](寳露國)과 흑수국(黒水國) 사람이 함께 [[신라|신라국]]과 화친해 소통하고자 한다.”라고 하였다.'''[[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642721&categoryId=49615&cid=49615|#]] 발해 휘하에 속했던 말갈족들이 신라와 독자적으로 교류를 시도하려 했던 것을 보아 [[한반도]] 북방에 대한 발해의 영향력이 위축되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비록 몇십년 후 [[후삼국시대]]의 시기이긴 하나 고려 초기 921년 [[달고적]]들이 고려 국경을 넘어 공격한 점이나 말갈족 세력이 변방을 약탈했고 이를 [[유금필]]이 제압하였으며 [[고려]]와 [[후백제]] 최후의 결전 [[일리천 전투]]에 기병으로 동원시켰다는 것이 나온다. 꾸준히 고려와 가까운 지역의 말갈이 고려에 내투하는 것, 더욱이 '''[[발해/지리|발해의 최북단]]'''으로 비정되는 흑수말갈로 추정되는 흑수국이 신라까지 교류를 시도한 것을 비춰보면 [[만주]]에서 한반도 북방까지 있던 말갈에 대한 발해의 통제가 와해된 것을 미루어 추측해볼 수 있다. [[미스터리 관련 정보|단 이 시기 발해의 내정 관련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발해 내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불명.]] [[분류:말갈]][[분류:신라의 조공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