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광주광역시의 건축물]][[분류:광주광역시의 관광]] ||[[파일:희경루 복원.jpg|width=100%]]|| ||2023년 9월 20일 희경루 복원 준공식|| [목차] == 개요 == 희경루(喜慶樓)는 1451년(조선 문종 1년) [[광주읍성]] 내에 세워졌던 누각으로, 1907년 철거되었다가 2023년 9월 20일 광주광역시 남구 구동 [[광주천]]변에 복원되었다. == 내용 == 조선 [[세종(조선)|세종]] 12년 노홍준이라는 자가 광주목사 신보안을 구타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것이 강상죄에 걸려 광주목은 무진군으로 강등되었다. 그러다가 [[문종(조선)|문종]] 1년에 광주목으로 다시 회복되자 이것을 기념하여 광주목사 안철석이 광주읍성 내에 누각을 세운 것이 희경루이다. 본래 위치는 [[충장로(광주)|충장로]] 현 충장우체국 자리로 이전에 공북루라는 누각이 있었다가 화재로 무너진 자리에 세웠다고 한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대규모 누각으로, 중건 직후 [[신숙주]]가 방문하여 그 위용에 찬탄하여 宏敝壯麗 甲於東方(넓고 장려한 것이 동방에 제일이다)라고 희경루기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으며, 그 후로도 광주의 [[랜드마크]]로 기능하였다. [[파일:hgimg_20210529135743.jpg]] [[대한민국의 보물/1801~2000호|대한민국 보물 제1879호 희경루방회도]]는 1546(명종)의 증광시 문·무과 합격 동기생 5명이 1567년(선조 즉위) 전라도 광주의 희경루에서 만나 방회(榜會)를 갖고 제작한 기년작(紀年作) 계회도(契會圖)로 알려지고 있으며 이 그림을 통해 희경루의 구조를 알 수 있었다. 1533년 화재로 무너졌다가 1534년 신한(申瀚)때 다시 지어졌고, 그 후에도 1686년 이항(李恒)과 1866년 안응수(安膺壽)에 의해 중수되었다. 신숙주 외에도 [[소세양]], [[송순]], [[임억령]] 등이 희경루를 찬탄하는 글을 남긴 바 있다. 1907년 [[광주읍성]]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사라졌다. == 복원 ==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가 2009년부터 시작한 전라도 정도 1000년 기념 사업 대상으로 선정되어 복원이 결정되었다. 원래 장소이던 현 충장우체국 자리는 희경루 철거 후에도 구 광주우체국으로써 많은 광주 시민들에게 만남의 장소로 100여년 동안 기능한 충장로의 상징이 되어있어 그 자체로 문화재적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원래 장소 대신 [[광주공원]]과 [[광주향교]]가 만나는 지점인 [[광주천]]변 중앙대교 남쪽 기슭 언덕 위에 복원하기로 결정하고 2018년부터 5년간 60억원을 들여 복원하여 2023년 9월 30일 준공식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