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자강도 희천시 희천역으로부터 약 6km 떨어진 곳에서 위치 하고 있으며 ‘기계 공업의 어머니 공장’이라고도 불리우는 북한 최대의 공작 기계공장으로 기계 공업성 공작 기계 공업 관리국에서 관리한다. 총 설비대수는 4,864대이며 이중 생산 설비는 2,238대이고 가공 절삭 설비는 1,481대이며 소재 생산 설비는 86대이고 굴안 설비는 469대 이고 공무 보수 설비 69대며 동력 설비는 482대이다. 주물 설비는 39대로 추정되고 있다. 주요 생산 품목은 범용 선반과 유압 모방 선반과 터렛 선반, 밀링 머신과, CNC 밀링 머신과 CNC 종합 가공반과, 함유연 생산 세포와 함유연생산 체계 등 공작 기계와, 극좌표 로봇과 겐트리 로봇과 다관절 로봇등 그외의 로보트와 그리고 선반 베드 자동 가공 흐름선 등 생산 설비 등을 생산을 하고 있음을 알수가 있다. 특히 함유연 생산 체계와 CNC 만능 중심 가공반과 CNC 수직 가공 중심반과 새로 건설된 CNC 분 공장에서 생산되는 고성능 공작 기계를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조직은 가공 직장, 치차 직장, 1주물 직장(전기로 작업반 등), 2주물 직장(조형 작업반), 단조 직장, 중가공 직장, 평가공 직장, 축가공 직장,가공 중심 직장, 목형 직장, 열처리 직장, 연마반 직장, 절단 직장, 정밀 직장, 규격품 직장, 선반 조립 직장, 제관 직장, 연신 직장, 케블 직장,5.7 직장, 대보수 직장, 부대 설비 직장, 자력 갱생 직장, 분건설 사업소와 생필 직장, 열처리 직장, 기술 발전과, 공무 직장, 동력 직장, 설계사업소(유연 체계실, 조종 장치 연구실 등), 공업 시험소, 공구 생산과 그리고 산하에 2분 공장(CNC 1∼4직장)과 희천 고리끼 합영 회사가 있다. 체코의 지원으로 건설 공사에 들어 갔으며 1954년 초보적인 공작 기계 생산을 시작 하였다. 1963-4년에는 대형 공작 기계 직장을 건설 하고 공작 기계와 축가공 자동 흐름선을 완성하는 등 시설 확장에 역점을 두었다. 1972년에는 2차 공작기계 새끼치기 운동으로 인하여 결국 연간 생산 능력 1만 대 수준으로 성장 하였다. 1980년대에는 주물 소재 생산 능력을 강화하는 등 수차례에 걸친 시설 확장과 보완으로 북한 제1의 공작 기계 생산 공장으로 성장 하였다. 1984년에는 현대적인 CNC 밀링 머신을 개발하였으며 제작을 하기까지 하여 생산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를 계열 생산하기 위하여 황삭 가공 라인과 정삭 가공 라인과, 앞치마 종합 정면 가공 라인, 측면 가공 라인과, 보내기 함 가공 라인을 새로 만들었다. 특히 변속함 가공 라인은 종래 변속함을 개별 기계공이 보링으로 가공할 때는 6시간이 걸리던 것을 10분으로 단축 하였으며, 다축함 머리가 6개나 달려 종전의 반자동 가공 라인보다 작업 능률이 6배 높고 유압 원동기로 함으로써 정밀도도 훨씬 올렸다고 한다. 1989년에는 만능 공작기계 가공 공정에 가공 중심반과 CNC 공작 기계를 제작 도입 하였다. 1992년 경에는 수직, 수평 작업을 할 수 있는 보다 만능화된 종합적인 기계로 유연 가공 세포를 새로 형성함으로써 제품 가공과 교체는 물론이고 공구 교체를 완전히 무인화하게 되었다고 한다. == 규모와 위상 == 희천 공작기계 종합 공장의 부지는 107만㎡는 생산 능력은 만능 선반 기준 1만 5천대 수준을 예상하고 있으며 각종 CNC 공작 기계만 생산하는 기반은 5,000대 수준으로 생산을 하고 있다. 종업원은 1만 5천 명을 채용하고 있다고 하고 일부는 줄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특히 북한은 고난의 행군으로 인하여 타 공작기계 공장과 마찬가지로 가동 중단이 한동안 진행이 되었고 다만 1998년 김정일이 방문을 하여 이공장의 생산의 정상화가 되면 전국의 공장이 생산을 더욱 활성화 할수 있다며 모든 조치를 취하여 주었고 100만 달러 투자를약속을 하였다. 그이후 설비 보강을 하였으며 생산 정상화가 지속이 되었음을 알수가 있었다. 2002년에는 가공 중심 직장에 설비들을 CNC 선반과 CNC 밀링 머신과 CNC 가공 중심반들로 새로 교체 하는 데 주력을 하고 있었으며 특히 2003년 들어서는 공장의 현대화를 명령하여 특히 실현 계획을 수립을 하였고 중가공 직장과 치차 가공 직장, 축가공 직장의 현대화를 기본으로 중가공 직장의 선반 함류 공정에 유연 생산 체계를 받아들이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희천-5호 CNC 선반을 셀로 하는 북한식 공작기계 조종 체계를 치차 직장과 축가공 직장에 도입을 하였음을 알수가 있었으며 특히정밀 직장과 평가공 직장에 가공 부문의 여러 직장에 수십대의 CNC 선반과 밀링 머신을 새로 생산하여 설치를 하였으며 대보수를 진행을하였다. 1주물 직장과 2주물 직장 그리고 단조 직장과 절단 직장의 소재 부문 에서는 이미 마련된 설비들을 언제든지 만가동 시킬수 있도록 전반적인 설비를 보수하는데 주력하였다. 2006년에 들어서 열처리 직장등 온도, 습도 조절을 자동 온도 조절 장치를 설치 하였으며 유연 생산 체계를 도입을 기본적으로 완성을 하였다. 이와 함께 선반 조립 직장의 주축 조립 공정을 현대화하여 선반의 정밀도를 한계단 끌어 올렸다. 2008년 들어서는 주물 직장 현대화와 가공 직장들의 건물 건축 공사를 진행하였다고 한다. 2010년 12월에는 생산 건물을 개건 하였으며 생산 설비를 소위 CNC화하여 CNC 전문 생산 시설을 완공하였다. 2010년 [[김정일]]의 현지지도 때에는 CNC 조립장과 CNC 가공 공장을 돌아 보았으며 1년도 안되어 국산화 비중을 크게 늘렸다고 알려져있다. CNC 전문 생산 시설은 CNC 1직장 부터 CNC 4직장까지 구성이 되었다고 알려져있다. 그리고 1월 18일 기계 종합 공장과 장자강 공작기계 공장에도 보급이 되어 있음을 알수 있고 전부 무인화가 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었으며특히 겐트리 로봇과 산업용 로봇으로 전부 소재 공급 뿐만 아니라 공구 교환도 되게끔 개발하며 생산중임을 알수가 있었다. 그리고 [[승리자동차연합기업소]]와 [[금성트랙터종합공장]]에서도 CNC 크랭크축 연삭기와 함가공 유연 생산 체계를 전면적으로 공급을 하게 되었음을 알수가 있었다. == 기타 == 1차 공작기계 새끼치기 운동과 2차 공작기계 새끼치기 운동[* 3차 공작기계 새끼 치기 운동때는 희천 공작기계 종합 공장과 구성 공작기계 종합 공장이 나서지 않았다. 룡성, 금성, 승리, 락원이 궐기를 하여 생산을 하게 된다. 결국 그래서 5만 대 생산에 미달한 23,000대밖에 생산을 못하는 실체가 되었다. 이것도 순전히 김정일의 잘못이다.]때는 엄청나게 생산을 많이 하여 많은 공작기계를 기계 공장등에 보급을 하여많은 기계 산업이 발전을 하게 되었다. 특히 유연 생산 체계와 특히 자동 가공 라인 혹은 반자동 가공 라인을 [[승리자동차연합기업소]]와 [[금성트랙터종합공장]]에도 공급을 하였으며 특히 공작기계 핵심 공장에는 전부 희천 공작기계 종합 공장의 유연 생산 체계를 보급하여 무인화가 전격적으로 되는데 일조를 하였다. 그리고 희천-5호와 희천-10호, RV-25, RV-50, RM-30A, RM-50등 유명한 공작기계는 대부분 희천 공작기계 종합 공장에서 제작한 공작기계고 북한에서 엄청 쓸모있게 쓰고 있다. 심지어는 유연 가공 체계를 통하여 겐트리 로더를 설치하는 엄청 유용하게 쓰이고 있음[* 장자강 공작기계 공장과 강동 정밀기계 공장 그리고 1월 18일 기계 종합 공장에서 특히 CNC 공작기계를 겐트리 로봇을 설치하여 유용하게 쓰고 있다.]을 알수가 있었다. [[분류:자강도]][[분류:북한의 기업]][[분류:1954년 설립]][[분류:공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