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Skai TV 선정 위대한 그리스인)]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5bff 0%, #0000 10%, #0000 90%, #005bff)" '''[[의사|{{{#fff 고대 그리스의 의사}}}]][br]{{{#fff {{{+2 히포크라테스}}}}}}[br]{{{#fff Hippocrates}}}'''}}}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히포크라테스.png|width=100%]]}}}|| || '''{{{#white 이름}}}''' ||'''히포크라테스 2세'''[br]{{{-2 (Ἱπποκράτης Β΄; Hippocrates II)}}}[br]'''코스[*A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폴리스). 코스는 에게 해에 접한 섬으로, [[아테네]]와 함께 델로스 동맹을 구성했다. 발칸 반도 가운데에 있는 라리사는 페르시아 전쟁 당시에는 친 페르시아 성향의 폴리스로 동맹에 참가하지 않았으나, 이후 아테네와 함께 반 펠로폰네소스 연합에 참여했다.]의 히포크라테스'''[br]{{{-2 (Ἱπποκράτης ὁ Κῷος; Hippocrates of Kos)}}} || || '''{{{#white 시대}}}''' ||[[고대 그리스]], [[페리클레스]] 집권기 || ||<|2> '''{{{#white 출생}}}''' ||[[기원전 460년]]경 || ||그리스 [[코스]][*A] 섬[br]{{{-2 (현 그리스 공화국 남에게주 코스)}}} || ||<|2> '''{{{#white 사망}}}''' ||[[기원전 370년]]경 (약 90세) || ||그리스 [[라리사]][*A]{{{-2 (추정)}}}[br]{{{-2 (현 그리스 공화국 테살리아주 라리사)}}} || || '''{{{#white 직업}}}''' ||[[의사]], 학자 || || '''{{{#white 가족}}}''' ||할아버지 히포크라테스 1세[br]아버지 헤라클리데스[br]양자 테살루스, 드라쿠스 || || '''{{{#white 종교}}}''' ||[[그리스 신화|그리스 다신교]] || [목차] [clearfix] == 개요 == [[고대 그리스]] 시기 활동했던 [[의사]]. 당시까지만 해도 종교적 신비주의의 일환으로 다루어졌던 의술을 학문적 개념으로 분리하는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서양에서 '''[[의학]]의 아버지(Father of Medicine)'''로 불리고 있으며, 그의 이름을 따 오늘날에도 전 세계 [[의과대학]]의 졸업식에서 시행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로도 유명하다. 다만, 현재 낭송되고 있는 선서문은 히포크라테스가 선서한 원문이 아니라 [[1948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22차 세계의사협회 개정 선언문이다. 하기 단락 참조. 초승달 구적법을 증명한 수학자 히포크라테스와는 [[동명이인]]으로 출신지를 붙여 의사 히포크라테스는 '코스의 히포크라테스'로 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키오스]]의 히포크라테스'로 구분한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조상이라는 야사도 있다. 그 또한 고대 그리스의 의술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이자 의술의 신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야사가 퍼진 듯 한데, 동시기의 사람이었던 [[플라톤]]도 그런 언급을 했다. == 생애 == 히포크라테스의 생애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간략하게 정리한 그의 삶은 이와 같다. 히포크라테스는 [[코스]] 섬에서 태어나 [[소아시아]], [[그리스]], [[이집트]] 등을 여행하여 학식을 쌓았다. 이후 그는 코스 섬에 돌아와 학교를 세워 제자들에게 그의 [[의학]]을 가르쳤으며 의학서를 남겼다. 그의 의학서는 이후 <히포크라테스 문헌>으로 엮여 후대에 전해지게 되었다. == 히포크라테스 문헌과 히포크라테스 의학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280px-ASCLEPEION_COS_Franck_Devedjian.jpg|width=100%]]}}}|| || {{{#000000,#e5e5e5 {{{-2 히포크라테스가 의술을 행했던 코스의 아스클레피온.[br]아스클레피온은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를 모시는 신전이었다.}}}}}} || >Medicine is a science and an art. >'''[[의학]]은 학문이고 기술이다.''' 히포크라테스 문헌은 히포크라테스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 의해 쓰여진 저작들이 집성되어 후대에 히포크라테스가 쓰여진 것으로 널리 알려진 고문서들을 이른다. 그 중 어느 것이 히포크라테스가 직접 쓴 것인가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으나, 히포크라테스를 중심으로 한 모종의 학문적 공동체에 의해 향유된 것은 분명하다. 히포크라테스 문헌의 여러 저작은 어떤 공통적인 특징을 공유하고 있는데, 바로 '[[의학]]을 학문의 영역으로서 연구하였다'는 점이다. 히포크라테스 문헌에는 '''"[[의학]]은 과학이다"'''라는 일관된 사고방식이 드러나 있다. 각 문헌에는 질병의 본성과 원인에 대해, 인체와 [[우주]]에 관해, 나아가 처방과 치료의 원리에 관하여 나름의 관점, 즉 어떤 자연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저자들이 질병에 관해 사색하였던 사상가나 철학자였든 아니면 당시에 환자들을 치료했던 내과의사였든, 이들은 모두 자연철학과 치료기술의 교차점에 서 있었던 것이다. 기본적으로 히포크라테스 파는 환자가 가진 고유의 치유력을 통한 치료를 중시했다. 그리고 악령이 들어 병이 드는 것이란 사고에서 벗어나 환경과 병의 연관성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져 환자에 대한 임상 관찰을 중요시했다는 점에서 큰 발전을 가져왔다. 그러나 당시의 [[의술]]은 전반적으로 매우 미성숙한 것으로, 인체의 4가지 체액의 밸런스가 무너져 병이 발생한다는 체액론을 중심으로 환자를 치료하였고, 히포크라테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피를 뽑아내 치료한다는 [[방혈]] 개념을 [[의술]]에 도입한 것이 히포크라테스였다. 열이 높은 환자에게 이뇨제와 하제를 투입하여 "불순물"을 제거한 후에도 차도가 없으면 피를 뽑았다. 히포크라테스는 방혈에 크게 의존하진 않았으나 후대로 가면서 이에 대한 믿음이 너무 확고해졌고,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방혈은 주요한 치료법이 되어 남용되었다. 물론 이것 모두 [[미신]]에 가까웠으며 병에 걸린 사람에게 이뇨제와 하제를 투입해 탈진하게 한 뒤 대량으로 방혈하게 만드는 것은 치료는커녕 죽음으로 끌고 가기 쉬웠다. 감정이 [[뇌]]에 기반한다는 생각을 처음 한 사람이기도 하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감정이나 생각이 [[심장]]에서 생겨난다고 믿었는데, 머리를 다친 환자를 많이 봐왔던 히포크라테스는 감정, 생각, 기쁨, 고통이 전부 뇌에서 생겨난다고 주장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723143| p11 참고]] == 생명과학사에서의 히포크라테스 == == 어록 == >Ὁ βίος βραχὺς, ἡ δὲ τέχνη μακρὴ, ὁ δὲ καιρὸς ὀξὺς, ἡ δὲ πεῖρα σφαλερὴ, ἡ δὲ κρίσις χαλεπή.[br]Δεῖ δὲ οὐ μόνον ἑωυτὸν παρέχειν τὰ δέοντα ποιεῦντα, ἀλλὰ καὶ τὸν νοσέοντα, καὶ τοὺς παρεόντας, καὶ τὰ ἔξωθεν. >'''인생은 짧고, 의술(의 길)은 멀며, 기회는 순식간에 지나가고, 경험은 불완전하고, 판단은 어렵다.[br]따라서 의사는 스스로 옳은 일을 할 뿐만 아니라, 환자와 수행원, 외부인 모두가 협조하도록 준비해야 한다.''' >---- >《Aphorisms》Section 1, Line 1. 위 문장은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가장 [[명언|유명한 말]]로 그의 저서 《잠언집(Aphorisms)》의 머릿말에 실려 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 생긴 [[오역]] 때문에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명언으로 잘못 받아들어져 마치 히포크라테스가 인생을 불사른 예술가였던 것처럼 오인되는 결과를 낳았다. 위 문장의 'Ὁ βίος βραχὺς, ἡ δὲ τέχνη μακρὴ(O víos vrachýs, i dé téchni diarí)' 부분이 바로 오역의 대상인데, 이를 [[라틴어]]로 바꾸면 'Vīta brevis, ars longa', 영어로는 'Life is short, (and) art long,'이 된다. 그런데 영한사전에서 'Art'의 첫 번째 의미는 곧 '[[예술]]'이므로 번역가가 작가의 정체와 '''[[의학|책의 맥락]]'''을 '''[[문맥을 무시한 인용|파악하지 못한 채]]''', 문장 하나만 보고 '예술은 길다'고 번역한 것이 [[왈도체|그만 세간에 퍼져 버린 것]]이다. 문장 그리스어 원문을 보면 'techni'라는 어휘는 영어 'technique', 'technology'의 어원으로, 영어 단어 '[[아트|art]]' 역시 '예술' 뿐만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기술'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손자병법]]의 영문명인 'The Art of War'가 '[[전쟁]]의 예술'이 아니라 '전술(병법)'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인문학]] 역시 'art'로, 인문학사를 B.A(Bachelor of Arts)라고 하며, [[리버럴 아츠]] 역시 '자유 예술'이 아니라 수학과 자연과학을 포함한 '순수과 학문'을 뜻한다. 결론적으로, 히포크라테스 자신이 의학자라는 것을 고려하면, 문맥상 'ars(techni)'는 예술이 아니라 '''의술'''이며 "사람의 인생은 짧은데, 의술을 익히는 것은 오래 걸린다."는 의미로, '소년이로 학난성(少年易老 學難成. '소년은 늙기 쉬우나 학문을 이루기는 어렵다[* [[주자(철학자)|주희]], 《주문공문집(朱文公文集)》].)'에 가깝다. 그 뒤의 문장까지 알면 더 명확해지는데, '기회는 순식간에 지나가고'(혹은 '위기는 순식간에 찾아오고'로 번역한 학자도 있다.), '판단은 어렵다.' 이는 의료 현장이 매 순간 실전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문장이다. >Everything in excess is opposed to nature. >'''모든 과도한 것은 자연에 반하는 것이다.''' >---- >《Catholic Morality》 : Selected Sayings and Some Account of Various Religions (1915) by E Comyns Durnford, p. 90. >ἀσκεῖν περὶ τὰ νοσήματα δύο, ὠφελεῖν ἢ μὴ βλάπτειν. >'''질병을 대할 때는 두 가지를 명심하라. 처치를 하거나, 적어도 해를 끼치지는 말라.''' >---- >《Of the Epidemics》Book I, Ch. 2. W. H. S. Jones.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868. [[https://el.wikisource.org/wiki/%CE%95%CF%80%CE%B9%CE%B4%CE%B7%CE%BC%CE%B9%CF%8E%CE%BD|#]] 일명 '해로움이 없게 하라(Primum non nocere; First, Do no harm.)' 는 격언의 유래로, 이 말이 유명하여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일부인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으나 그보다 《Of the Epidemics(전염병에 관하여)》에 먼저 등장한 구문이다. 선서에는 이와 비슷하게 "환자가 해를 입거나 올바르지 못한 일을 겪게 하기 위해 그것을 쓰는 것은 금할 것이다." 라는 문장이 있다. 긍정적인 효과를 주지 못할 것 같으면, 적어도 처치를 함으로써 환자의 용태가 나빠져서는 안 된다는 뜻인데, 사실 통념에 비해 '''현대 의학에서는 이 격언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https://www.health.harvard.edu/blog/first-do-no-harm-201510138421|#]] [[https://archive.is/adtUN|@]] 오늘날에는 환자에게 잠재적인 리스크가 예견되더라도, 그것보다 검사나 처방을 함으로써 얻을 잠재적 이익이 더 크다면 시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수술 전 부작용 등에 대한 환자 동의서를 받는 경우가 그러하며, 신약을 사용할 때도 그렇다. >ὕπνος, ἀγρυπνίη, ἀμφότερα μᾶλλον τοῦ μετρίου γινόμενα, νοῦσος. >'''수면과 각성은 모두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때 질병을 일으킨다.''' >---- >《Aphorisms》Section 7, Line 72. >To do nothing is sometimes a good remedy. >'''때로는 아무 처치도 하지 않는 것이 최상의 처치이다.''' >---- >《A New Dictionary of Quotations on Historical Principles from Ancient and Modern Sources》, H. L. Mencken, 1942. == 히포크라테스 선서 == || [[파일:HippocraticOath.jpg|width=100%]] || || 12세기 [[동로마 제국]]의 히포크라테스 선서 사본 || 원전에 가까운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 나는 [[의술]]의 [[신]] [[아폴론]]과 [[아스클레피오스]]와 휘기에이아와 파나케이아[* 휘기에이아와 파나케이아는 아스클레피오스의 딸들이다. 휘기에이아는 위생의 여신, 파나케이아는 약학의 여신이다. 위생학을 뜻하는 영단어 '하이진(hygiene)'과 만병통치약을 뜻하는 영단어 '파나세아(panacea)'의 어원도 각각 이들의 이름이다.]를 비롯한 모든 남신들과 [[여신]]들을 증언자들로 삼으며 이 신들께 맹세코 나는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다음 선서와 서약을 이행할 것이다. > > 내게 이 기술을 가르쳐준 스승을 내 부모와 똑같다고 여기고 삶을 함께 하며 그가 궁핍할 때에 나의 것을 그와 나누고, 그의 자손들을 내 형제와 같이 생각하고 그들이 이 기술을 배우고자 하면 보수와 서약 없이 가르쳐줄 것이다. 의료지침과 강의 및 그 밖에 모든 가르침은 나의 아들과 나를 가르친 스승의 아들 및 의료 [[관습]]에 따라 서약하고 선서한 학생들 말고는 어느 누구에게도 전해주지 않을 것이다. > > 나는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환자를 이롭게 하기 위해 섭생법을 쓰는 반면, 환자가 해를 입거나 올바르지 못한 일을 겪게 하기 위해 그것을 쓰는 것은 금할 것이다. > > 나는 그 누가 요구해도 치명적인 약을 주지 않을 것이며, 그와 같은 조언을 해주지도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여성에게 임신중절용 페서리(pessos)를 주지도 않을 것이다. > >나는 나의 삶과 나의 의술을 순수하고 경건하게 유지할 것이다. > > 나는 절개를 하지 않을 것이고 결석환자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맡길 것이다. > > 나는 어느 집을 방문하든 환자를 이롭게 하기 위해 방문할 것이지만, 고의로 온갖 올바르지 못한 행위나 타락 행위를, 특히 자유인이든 노예이든 남자나 여자와의 성적 관계를 금할 것이다. > > 치료하는 중에는 물론이고 치료하지 않을 때조차도 사람들의 삶에 관해 내가 보거나 들은 것은 무엇이든 결코 발설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서, 나는 그러한 것들을 성스러운 비밀이라고 여겨 누설하지 않을 것이다. > > 이 선서를 이행하고 어기지 않으면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평판을 받고 나의 삶과 기술을 향유할 수 있길 기원하고, 내가 선서를 어기고 거짓 맹세를 하는 것이라면 이와 반대되는 일이 있길 기원한다.[* 히포크라테스, <히포크라테스 선집> (여인석·이기백 역, 나남)] 그의 문헌 중 <선서>는 어느 시기에 쓰여진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기원전 6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까지 여러 주장이 나왔으나, 대개 기원전 5세기나 4세기의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밖에도 현재 전해져 오는 것이 과연 원본인가 하는 점이나 훼손이나 가필되었을 가능성, 또 그것이 의무 이상의 구속력을 가졌는지, 누구에 의해 작성된 것인지, 누가 선서를 하였는지, 또 선서를 한 이가 모두 [[의사]]였는가 하는 여러 의문들이 남아 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중 [[외과]] [[수술]]이나 낙태용 약을 금지하는 내용은 왜 제시되었는가는 이해하기 어려운데, 이에 에델슈타인은 <선서>는 히포크라테스의 코스 학파가 아닌 [[피타고라스]] 학파에서 만든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으며, 많은 히포크라테스 연구자들은 에델슈타인의 관점을 받아들이고 있다. >나는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맹세합니다. (중략) 나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맹세하며, 또한 하나님의 선지자들에게도 맹세합니다. > ㅡ 중세 의사이자 역사가이던 이븐 아비 우사이비아 중세 이슬람 사회에서 그리스 문헌들이 번역되며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중세 아랍 사회에도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 히포크라테스 선서라는 이름으로 널리 사용하고 있는 것은 1948년도에 세계[[의사]]회 총회에서 채택된 '[[제네바 선언]]'으로,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현대적 관점에서 개정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기존의 선서 내용은 [[고대 그리스]] 시대의 관점에서 작성한 글이다 보니 현대의 도덕 윤리나 사회 요소와는 어긋날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의료직에 입문하면서 다음과 같이 서약한다. > >-나는 [[인류]]에 [[봉사]]하는 데 내 일생을 바칠 것을 엄숙히 맹세한다. >-나는 마땅히 나의 스승에게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나는 [[양심]]과 [[위엄]]을 가지고 의료직을 수행한다. >-나는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하여 고려할 것이다. >-나는 알게 된 환자의 비밀을 환자가 사망한 이후에라도 누설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능력이 허락하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의료]]직의 [[명예]]와 [[위엄]] 있는 [[전통]]을 지킨다. 동료는 나의 형제며, 자매다. >-나는 환자를 위해 내 의무를 다하는 데 있어 [[나이]], [[질병]], [[장애]], [[교리]], [[인종]], [[성별]], [[국적]], [[정당]], [[종족]], [[성적 지향]], [[사회]]적 [[지위]] 등에 따른 [[차별]]을 하지 않는다. >-나는 위협을 받더라도 인간의 생명을 [[태아|그 시작]]에서부터 최대한 존중하며, 인류를 위한 법칙에 반하여 나의 의학지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나는 이 모든 약속을 나의 명예를 걸고 [[자유의지]]로서 엄숙히 서약한다.[* 세계의사회, <의료윤리지침> (대한의사협회 역)] 비슷한 것으로 [[한의사]]들의 허준 선서와 [[약제사]]들의 [[디오스코리데스]] 선서 및 [[간호사]]들의 [[나이팅게일 선서]], 그리고 [[수의사]]들의 선서인 [[http://www.kvma.or.kr/kvma_Veterinary_society?num=8|수의사의 신조]]가 있다 == 기타 == [[가나다순]] 덕분에 [[한국어]]로 출간된 세계인명[[사전]]을 펴보면 무조건 맨 나중으로 나오는 사람이다.[* 맨 처음에 실리는 사람은 [[유리 가가린|가가린]].] [[팀 포트리스 2]]의 [[메딕(팀 포트리스 2)|메딕]]은 ''''해로움이 없게 하라''''라고 쓰인 [[메딕(팀 포트리스 2)/무기 목록#s-3.5|그의 흉상]]을 무기로 쓴다. 이 무기는 적의 체력을 보여준다. 이미 세계관부터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는 히포크라테스의 '''선택적 제안 사항'''으로 그 위상이 떨어진 상태. [[메딕(팀 포트리스 2)/도전 과제|도전 과제]] 중에는 아예 [[메딕(팀 포트리스 2)/도전 과제#s-2.10|'히포'''[[구라]] '''테스 선서'(Hypocritial Oath, 위선의 맹세)]]까지 있다. 내용은 변장한 [[스파이(팀 포트리스 2)|스파이]]를 회복해주다가 '''처치하는 것'''. --[[의사양반|누구]] 또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내던진 듯한 태도로 17년 넘게 [[심영(야인시대)|자기 환자]]를 [[병신을 만들어주마|후려패고 있다]]-- [[분류:의사]][[분류:고대 그리스/과학자]] [include(틀:포크됨2, title=히포크라테스, d=2022-07-10 04:4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