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건사고)] ||<-3><:>{{{#ffffff {{{+1 115 Antioch earthquake 115년 안타키아 지진}}}}}}|| ||<:>{{{#ffffff 발생일시[br]^^(UTC+3)^^}}}||<-2><(>[[115년]] [[12월 13일]] 밤 TRT || ||<:>{{{#ffffff 진앙}}}||<-2><(>[[튀르키예]] [[안타키아]][br]36.1°N 36.1°E || ||<:>{{{#ffffff 규모}}}||<-2><(>'''M,,s,, 7.5'''|| ||<:>{{{#ffffff 진도}}}||<-2><(><#000000>{{{#ff0 '''XI(Extreme)'''}}} || ||<:><|6>{{{#ffffff 피해}}}||<(> '''260,000여명 사망''' || [목차] [clearfix] == 개요 == [[115년]] [[12월 13일]], [[튀르키예]] [[안타키아]] 지역에서 발생한 대지진. == 피해 == [[디오 카시우스]]의 로마사에 따르면 당시 [[트라야누스]]가 [[트라야누스의 파르티아 원정|파르티아 원정]] 도중 이 곳에서 겨울을 나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 제국|로마]] 각지에서 온 군인들과 시민들로 안타키아는 북적했다. 대지진으로 인해 건물이 붕괴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잔해에 깔려서 죽거나 갇혔고, 이로 인해 아사자들도 다수 발생했다. 뒤이어 이어진 [[여진]]으로 인해 많은 생존자들도 사망한다. 트라야누스는 창문을 타고 도망쳐 큰 부상없이 건물을 빠져나왔다고 전해진다. 여진이 계속해서 안티오키아 일대를 뒤흔들었기에, 트라야누스는 안티오키아 전차 경주 경기장에 마련된 임시 천막에서 며칠 동안 살아야 했다. 안타키아뿐만 아니라 인근 [[아파메아]]와 [[베이루트]] 또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카이사레아]]와 [[야브네]]는 [[쓰나미]]로 인해 피해를 입었으며, 항구 또한 파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총 260,000여명이 사망했다고 전해지지만, 사건 당시 기록이 아닌 [[1903년]] 아르반타키스의 기록에서 따온 것이라 확실한 피해 규모는 알려지지 않는다. == 이후 == 트리야누스는 지진 직후 곧바로 도시 재건설을 진행했으며, [[하드리아누스]] 시대에 와서야 도시가 완전히 재건설되었다. 도시의 부와 번영의 여신인 [[티케]]의 조각상을 [[에우티키데스]]가 제작해 도시 재건설을 기념하기 위해 새로 지어진 극장에 세워졌다. 또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현재 안타키아에서 발견되는 모자이크는 115년 이후에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526년]] 이 도시에서 다시 한 번 [[526년 안타키아 지진|대지진]]이 일어나 250,000명이 사망하고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 관련 문서 == * [[지진/튀르키예]] * [[526년 안타키아 지진]] * [[1939년 에르진잔 지진]] * [[1999년 이즈미트 대지진]] * [[2023년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분류:튀르키예의 사건 사고]][[분류: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