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상위 문서, top1=1990년대)] || [youtube(8J3m-ao43Bs)] || [youtube(kXXFlw5n6LE)] || ||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 || 1995년 [[김건모]] <잘못된 만남> || ||
[youtube(Vyo8YI-S_yU)] || [youtube(nDpHhFjt5r0)] || || 1997년 쿨 <해변의 여인> || 1995년 [[룰라]] <날개 잃은 천사> || ||
[youtube(OPzoR-iTpuk)] || [youtube(r5ld0GMSY7o)] || || 1998년 [[H.O.T.]] <빛> || 1998년 [[젝스키스]] <커플> || [목차] [clearfix] == 개요 == [[1990년대]] 대한민국 가요계에 대해 설명하는 문서. 1990년대는 80년대까지의 트로트와 포크의 열풍이 끝났고, [[서태지와 아이들]]을 시초로 한 댄스 음악의 부흥이 일어난 시기로 평가되고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음악그룹)|듀스]] 등 댄스 그룹들의 등장 이후 댄스 음악이 주류로 떠올랐고, 1990년대 후반 데뷔한 [[H.O.T.]], [[젝스키스]], [[신화(아이돌)|신화]], [[god(아이돌)|god]] 등 1세대 아이돌들이 그 인기를 이어갔다. 또한 1997년 [[S.E.S.]]와 [[핑클]], [[베이비복스]]의 데뷔로 여성 댄스 그룹의 등장도 이어졌다. 이러한 댄스그룹들의 인기와 함께 [[김건모]], [[신승훈]], [[임창정]], [[유승준]], [[이정현(멀티 엔터테이너)|이정현]], [[김현정]], [[엄정화]] 등 솔로 가수들과 [[쿨(혼성그룹)|쿨]], [[룰라]], [[자자(혼성그룹)|자자]], [[투투(가수)|투투]] 등 혼성 그룹들의 인기도 굉장했다. 이 시기부터 [[2000년대]]까지는 댄스 음악으로 대표되는 아이돌 가수들과 솔로 가수들, 혼성 그룹, 밴드 등 여러 가수들이 가요계를 양분했던 시대였다. 반면 1980년대 인기를 끌었던 트로트와 포크는 90년대 중반부터 급속도로 인기가 사그라들면서, 한동안 주류 자리에서 밀려나 있었다. 2000년대 초반 [[태진아]]와 [[송대관]]의 히트로 명맥을 이어갔고, 2004년 [[장윤정]]의 <[[어머나]]>가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다시 가요계에서 생명력을 얻은 장르가 되었다. == 연도별 활동 == === 1990년 === [[1990년]]은 1980년대 가요계의 연장선과 같았다. 이 해 대상을 차지하며 큰 인기를 얻었던 대표적인 가수는 [[현철]]과 [[변진섭]]. 현철은 <싫다 싫어> 로 KBS 가요대상을, 변진섭은 <[[희망사항(노래)|희망사항]]>으로 MBC 최고인기가수상을 거머쥐었다. 특히 변진섭은 <희망사항>, <로라>, <너에게로 또 다시> 등 한 앨범에서 여러 곡을 히트시키면서 단숨에 인기가수로 떠올랐으며 작곡가였던 노영심 역시 작곡상을 수상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솔로 가수의 경우 변진섭을 포함해 <사랑일뿐야>의 [[김민우(가수)|김민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의 [[신해철]], <마지막 콘서트>의 [[이승철]][* 1990년 말에 대마초 사건이 터지면서 해당 년도 시상식에서는 제외.], <텅 빈 마음>의 [[이승환]], <잊지 말아요>의 [[최성수]] 등이 인기를 얻었고 여자 가수의 경우 <인디언 인형처럼>의 [[나미]], <보고싶은 얼굴>의 [[민해경]], <나만의 것>의 [[김완선]]의 3파전에 <[[보라빛 향기(노래)|보라빛 향기]]>의 [[강수지]]가 새롭게 부상하였다. 트로트 부문에서는 <싫다 싫어>의 현철, <잠깐만>의 [[주현미]] 양대산맥에 89년 <[[옥경이]]>로 자리를 잡은 [[태진아]]가 <거울도 안보는 여자>로 다시 한번 히트를 기록했고, 미국에서 돌아온 [[송대관]]이 <정 때문에>로 재기에 성공했다. 또한 영화 <[[비 오는 날 수채화]]>의 동명 OST가 큰 히트를 하면서 영화 음악치고는 높은 대중성을 얻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2월 4일에 가수 [[장덕]]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같은 해 11월 1일에는 [[김현식]]이 간경화 악화로 요절하면서 추모 열기가 강하게 불기도 했다. === 1991년 === 1991년은 그 유명한 [[신승훈]]이 데뷔한 해이다. 신승훈은 데뷔 앨범인 1집 <[[미소 속에 비친 그대(노래)|미소 속에 비친 그대]]>로 단숨에 밀리언셀러를 차지하면서 90년대를 대표하는 톱가수의 시작을 널리 알렸다. 또한 작곡가로만 활동하던 [[윤상]]이 <이별의 그늘>을 통해 가수로 데뷔하며 메이저 무대에 등장했다. 전체적으로 지난 해에 활동했던 변진섭, 신해철 등이 인기를 얻었고 [[이상우(가수)|이상우]]의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 역시 인기를 끌었다. [[심신]]의 <오직 하나뿐인 그대>, 태진아의 <미안 미안해> 등도 가요톱10에서 여러번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 해의 가요계의 가수왕은 바로 [[김현식]]. 김현식의 사후 발매된 6집 <[[내 사랑 내 곁에]]>가 추모 열기에 맞물려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면서, 1991 골든디스크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당시 김현식의 외동 아들인 김완제 씨가 김현식의 모친과 함께 대리수상하였다.] 또한 [[김정수(가수)|김정수]]의 <당신> 역시 내 사랑 내 곁에만큼 인기를 끌었고 그 해 KBS 가요대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여가수로는 [[노사연]]의 <만남>이 대 히트를 치면서 MBC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 가수상을 수상했다. 여가수로는 [[혜은이]] 이후 14년만에 차지한 대상이었다. 노사연 외에도 [[김완선]], [[강수지]], [[양수경]], [[조갑경]] 등이 인기를 끌었고, 특히 <나만의 것>,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가장무도회>가 수록된 [[김완선 5집]]은 여자 가수 앨범 최초의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 1992년 === 1992년은 그냥 '''[[서태지와 아이들]] 하나로 모든 걸 요약할 수 있다.''' 한국어로 랩이 되지 않는다는 당시 가요계의 편견을 완전히 깨부수며 파란많은 데뷔를 했으며, 타이틀 곡 <[[난 알아요]]>가 가요 프로그램에서 12주 연속 1위를 했고 각종 시상식에서 신인상과 본상, MBC와 서울가요대상에서는 대상까지 휩쓸면서 가요계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대한민국 댄스 음악의 역사를 서태지와 아이들을 시초로 잡고 그 이전은 잘 언급하지 않은 현재를 보면, 서태지와 아이들은 대한민국 댄스 음악과 그 부흥의 시초로 평가된다. 또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인기만큼이나 가요 시상식을 휩쓸었던 이는 바로 [[신승훈]]이다. 2집 <[[보이지 않는 사랑]]>의 메가히트로, KBS 가요대상과 골든디스크 대상을 모두 싹쓸이하며 인기몰이를 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처음 가요계에 나온 [[김건모]] 역시 1집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가 대히트하면서, 본격적인 신승훈과 김건모의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현진영의 <[[흐린 기억 속의 그대]]> 힙합 댄스곡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재미교포 출신인 [[이현우(가수)|이현우]]가 하우스 댄스 음악 <꿈>으로, 혼성그룹 [[철이와 미애]]가 강렬한 디스코 댄스 음악 <너는 왜>로 등장, 히트를 기록했다. 또한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무한궤도(밴드)|무한궤도]]의 음악적 후계 그룹인 [[넥스트(밴드)|넥스트]]와 [[015B]]가 큰 인기를 끌었고, 특히 015B는 당시 가요계에서 생소했던 객원보컬 시스템을 도입하여 특색을 줬다. 넥스트 이전까지 곱상한 아이돌 이미지였던 [[신해철]]이 본격적인 뮤지션으로서의 이미지를 얻으며 소위 '마왕' 소리를 듣기 시작한 것이 바로 넥스트 시절. 또한 [[김종서(가수)|김종서]], [[신성우]], [[임재범]] 등 록밴드 출신들이 솔로로 홀로서기를 하며 인기를 얻던 시기였다. 여자 가수 중에서는 [[김완선]]이 잠시 한국 가요계를 떠나 중화권에서의 활동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강수지]]와 같은 청순형 가수로 [[하수빈]]이 데뷔하였다. === 1993년 === 듀스가 데뷔곡 <[[나를 돌아봐]]>를 들고 나왔고 댄스음악의 전성기를 이어갔다. 또한 지난 해 데뷔했던 서태지와 아이들과 김건모가 본격적으로 가요계를 양분하기 시작하며 댄스음악의 전성기를 열었다. 특히 이 시기부터 1995년까지는 그냥 [[김건모]]와 [[서태지와 아이들]], [[신승훈]]이 가요계를 꽉 잡고 있었다고 과언이 아니며, 이 두 그룹이 모든 가요시상식의 대상을 나눠먹으며 인기를 끌었다. 먼저 시작을 연 1번 타자는 서태지와 아이들. 2집 <[[하여가(서태지와 아이들)|하여가]]>로 지난 해의 인기를 그대로 이어나가며 SBS 가요대전과 서울가요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또한 신승훈이 <널 사랑하니까>로 골든디스크 대상을 휩쓸었다. [[한동준]], [[김민종]], [[김원준]] 등이 인기를 끌었고 [[엄정화]]가 <눈동자>로 첫 솔로 데뷔를 했던 시절이었다. [[넥스트(밴드)|넥스트]], [[015B]], [[김광석]] 역시 여러 히트곡을 발표하며 인기였고 80년대 후반 인기밴드였던 부활이 새 보컬 [[김재기]]를 영입하고, 3집 <[[사랑할수록]]>으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이름 그대로 '부활'하는데 성공했다.[* 다만 앨범 녹음 진행 중 김재기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여 남은 녹음은 그의 친동생인 [[김재희(가수)|김재희]]가 대신하여 끝마쳤고 활동 역시 김재희를 보컬로 내세워 활동했다.] 반면 90년대 들어 조금씩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트로트는 1993년이 마지막 불꽃이었다. [[김수희]]의 <[[애모]]>가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했고, 그 해 KBS 가요대상을 차지하며 트로트의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이 후 2004년 장윤정이 <어머나>로 1위를 차지하기 전까지 11년동안 트로트는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지 못했고, 대상 역시 2000년 태진아가 수상하기 전까지 7년동안 무관이었다. 가요계의 세대 교체를 상징하는 모습 중 하나다. === 1994년 === 1994년 그야말로 [[김건모]]의 한 해였다. 직전 해 10월 발매한 <[[핑계(김건모)|핑계]]>가 메가히트를 기록하며, 가요 프로 18주 연속 1위라는 대기록과 함께 그 해 지상파 3사의 가요대상과 골든디스크, 서울가요대상까지 모두 싹쓸이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지상파 3사 트리플크라운은 이 후에도 [[H.O.T.]], [[god(아이돌)|god]], [[김종국]] 등 여러 가수들이 해냈지만 이 기록만큼은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또한 1994년 가요계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바로 혼성그룹들의 대거 등장이었다. [[룰라]], [[쿨(혼성그룹)|쿨]]이 처음 데뷔했고 [[마로니에(보컬 그룹)|마로니에]], [[투투(가수)|투투]] 등이 데뷔했다. 1994년 최고의 혼성그룹은 마로니에와 투투로, 각각 <[[칵테일 사랑]]>과 <[[일과 이분의 일]]>로 대히트를 기록했다. 김건모 이외에도 [[김현철(가수)|김현철]]의 <[[달의 몰락]]>, [[조관우]]의 <[[늪(노래)|늪]]>,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 [[김민교(가수)|김민교]]의 <마지막 승부> 등 여러 솔로 남자 가수들의 인기가 대단했다. 또한 <핑계>의 메가히트로 가요계의 전반적으로 레게 열풍이 불었는데, [[바비킴]]이 처음 데뷔했던 닥터 레게의 1집이 큰 인기를 얻었다. 트로트 음악은 본격적인 사양길을 타기 시작했으나, [[임주리]]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가 어느 정도 히트를 기록하면서 명맥을 이어갔다. === 1995년 === 김건모가 3집 <[[잘못된 만남]]>으로 280만장이라는 엄청난 음반판매량을 기록, 한국 기네스까지 받았다. 골든디스크 대상도 당연히 수상. 또한 서태지와 아이들이 연말 4집 <[[Come Back Home]]>으로 인기몰이를 하며 그 해 MBC 가요제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또한 지난 해 데뷔한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가 메가 히트를 기록하며, SBS 가요대전과 서울가요대상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혼성그룹 대상은 1995년 룰라의 수상과 2002년 쿨이 7집 <진실>로 수상한 2차례 밖에 없다.] 또한 솔로 여가수로는 [[이소라(가수)|이소라]]가 데뷔 앨범 <난 행복해>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화려하게 데뷔했으며, [[박미경]] 역시 <이브의 경고>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남자 가수로는 [[박진영]], [[서지원]]이 데뷔했으며 3인조 힙합댄스 그룹 [[DJ DOC]] 역시 <[[머피의 법칙(노래)|머피의 법칙]]>으로 큰 히트를 기록하며 가요계에 등장했다. 또한 R&B 열풍을 이끈 [[솔리드]]와 포크록 밴드 [[녹색지대]] 역시 각각 <[[이 밤의 끝을 잡고]]>와 <사랑을 할꺼야>로 인기를 끌었다. 한편 듀스는 95년 7월 고별콘서트를 끝으로 해체하고 두 멤버는 미국으로 떠났다. 이 중 멤버 [[김성재]]가 솔로 1집 <[[말하자면]]>을 발표하고 한국으로 귀국해 11월 19일 컴백무대를 가졌으나, 다음 날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이 터지기도 했다.[* [[이현도]]가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듀스의 해체는 작전상 해체이며, 프로듀서가 더 맞았던 자신이 김성재를 솔로로 내세우고 자신은 프로듀서로서 김성재의 앨범 작업을 하는 형태로 활동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김성재가 컴백 무대 다음 날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이 계획은 백지화 되었고 결국 이듬 해 이현도가 직접 자신의 솔로 1집을 듣고 활동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 1996년 === 연초부터 가요계 스타들의 죽음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새해 첫날 [[서지원]]이 향년 19세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5일 뒤에는 '가객' [[김광석]] 역시 서지원의 뒤를 따르면서 서 가요계는 충격에 빠졌다. 또한 몇주 뒤에는 잠적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가요계 은퇴를 선언하면서, 연초부터 가요계는 빅 뉴스들로 점철되었다. 이러한 혼란을 뒤로 하고, 1996년 상반기는 여러 인기 가수들이 한꺼번에 컴백하면서 소위 '별들의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는 [[1996년 가요계|1996년 별들의 전쟁]] 문서 참조. 또한 연말에는 1세대 아이돌의 시초인 [[H.O.T.]]가 데뷔하면서, 1세대 아이돌 시대의 서막을 알렸다. 이들의 1집 후속곡 <[[캔디(H.O.T.)|캔디]]>가 인기를 끌면서, 대한민국 가요계 역시 해외의 뉴 키즈 온 더 블록 같은 댄스 아이돌 그룹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 1997년 === 90년대 후반기로 접어든 97년부터는 본격적인 아이돌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그 중심에는 단연 [[H.O.T.]]가 있었다. 또한 1997년 4월 [[DSP미디어]]가 제작한 [[젝스키스]]가 데뷔하면서 단숨에 H.O.T.의 라이벌로 떠올랐다. H.O.T.는 2집 <[[늑대와 양(H.O.T.)|늑대와 양]]>으로 MBC 가요제전 대상과 SBS 가요대전, 골든디스크 대상, 서울가요대상 대상을 싹쓸이하며 가요계 정상의 위치에 올랐다. 한편 SM엔터테인먼트에서는 97년 11월, 3인조 걸그룹 [[S.E.S.]]를 런칭하고 히트를 기록했는데, 이는 한국 가요계에서 댄스 음악을 하는 걸그룹의 시초로 자리잡았다. S.E.S. 보다 5개월 전이었던 1997년 DR뮤직에서 [[베이비복스]]를 런칭했으나 이 때는 크게 반응이 없었다. 또한 솔로 남자 가수로는 [[임창정]]의 인기와 [[유승준]]의 등장이 화제였다. 임창정은 솔로 3집 <[[그때 또 다시]]>가 기록한 공전의 히트로, 1997 KBS 가요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H.O.T.가 모든 시상식을 싹쓸이하던 중 받은 유일한 대상이었던지라, 임창정 본인의 회고로는 본인이 앵콜곡을 하는 동안 H.O.T. 팬들이 다 퇴장해버려 조용한 앵콜무대를 가졌다고 종종 예능에서 이야기하곤 한다. 또한 유승준이 데뷔곡 <가위>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춤과 노래가 모두 가능한 올라운드형 솔로 가수로 인기를 얻게 된다. [[김경호]]가 2집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로 히트를 기록하면서 록 음악의 부흥을 이어가기도 했다. 부활 역시 4집에서의 침체를 딛고 보컬 [[박완규]]를 영입, 5집 <[[Lonely Night]]>으로 중박 정도의 히트를 기록했으며 김종서와 임재범이 각각 <[[아름다운 구속]]>과 <[[비상(임재범)|비상]]>, <그대는 어디에>로 인기를 끌었다. 한편 신해철이 이끌던 넥스트는 4집 앨범을 마지막으로 해체를 발표했으며 신해철은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버린다. 솔로 여가수로는 단연 [[양파(가수)|양파]]가 원탑이었다. 데뷔곡 <애송이의 사랑>으로 단숨에 가요계 정상에 올랐으며, 이 외에도 이소라와 리아 등이 인기였다. [[박지윤(가수)|박지윤]]과 [[진주(가수)|진주]]도 이 해에 데뷔했다. 룰라가 96년 표절파문으로 주춤한 틈을 타 혼성그룹 원탑의 자리를 차지한 이는 바로 쿨. 쿨이 발표한 <[[해변의 여인]]>은 지금도 여름을 대표하는 노래로 회자되고 있으며, 이 후 쿨은 5~6년 이상 쭉 전성기를 이어갔다. 또한 [[영턱스클럽]], [[R.ef]], [[DJ DOC]], [[언타이틀]] 등이 댄스음악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마이키를 영입한 [[터보(그룹)|터보]] 역시 3집 <[[회상 (December)]]>과 <[[Goodbye Yesterday]]>가 무려 H.O.T.를 누르고 가요톱10 정상에 올랐고, 서태지와 아이들 출신 [[양현석]]이 제작한 힙합그룹 [[지누션]]이 엄정화와 함께 부른 <[[말해줘(지누션)|말해줘]]>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1995년 데뷔한 [[삐삐밴드]]의 영향으로 본격적으로 다양한 혼성밴드가 데뷔하기 시작한다. 특히 96년 데뷔한 [[주주클럽]]은 <열여섯 스물>, <나는 나>로 1위 후보까지 올랐고, [[자우림]] 역시 데뷔곡 <[[Hey Hey Hey(자우림)|Hey Hey Hey]]>가 좋은 반응을 얻으며 가요프로 최고 3위까지 올랐다. 연말에 데뷔한 [[더더]] 역시 , <내게 다시>가 스테디셀러급 인기를 거뒀다. === 1998년 === 1세대 아이돌의 전성기였던 1998년에는 보이그룹은 [[H.O.T.]]와 [[젝스키스]]의 양강구도가 완전히 정착되었고 걸그룹의 경우 [[S.E.S.]]와 98년 4월 데뷔한 [[핑클]]의 양강구도가 형성됐다. 베이비복스 역시 2집 타이틀 곡 <[[야야야]]>로 조금씩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또한 국내 최장수 아이돌 그룹으로 알려진 [[신화(아이돌)|신화]]가 데뷔한 해도 바로 1998년이다. H.O.T.의 다음 타자로 런칭했고, 타이틀 곡 <[[해결사(신화)|해결사]]>의 반응이 심심했으나 후속곡 <[[으쌰!으쌰!]]>가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팬층을 확보하게 된다. H.O.T.와 젝스키스의 양강 구도가 이어졌으나, 가요 시상식에서의 승자는 H.O.T.였다. 3집 <[[빛(H.O.T.)|빛]]>, <[[열맞춰!]]>로 SBS 가요대전 대상과 KBS 가요대상 대상, MBC 가요제전 대상을 수상하며 시상식을 싹쓸이했으며 서울가요대상에서는 젝스키스의 <[[커플(젝스키스)|커플]]>과 공동수상했다. 또한 YG에서는 힙합 컨셉의 보이그룹 [[원타임]]을 데뷔시켰고, 소방차 [[김태형(1962)|김태형]]이 제작한 그룹 [[NRG]] 역시 인기를 끌었다. 남은 골든디스크 대상의 주인공은 누구냐하면.. 바로 [[김종환(가수)|김종환]]. 직전 해 발표했던 <[[사랑을 위하여]]>가 중장년층 사이에서 꾸준히 인기를 끌면서 높은 음반판매량을 기록, 골든디스크 대상의 자리를 차지했다. 당시 H.O.T.와 젝스키스의 팬들은 자기 가수가 대상을 탈 것이라 기대하며 시상식장과 집에서 가슴 조려하며 지켜보고 있었으나, 김종환의 이름이 호명되자 단체로 벙쪘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응답하라 1997]]에도 이 장면이 나온 적이 있다.] 남자 솔로 가수로는 [[조성모]]가 의 드라마형 뮤직비디오를 내세우며 데뷔했고 유승준, [[김정민(1968)|김정민]], [[김경호]], [[김장훈]] 등이 인기였다. 특히 김장훈은 4집 <[[나와 같다면]]>[* [[박상태(가수)|박상태]]의 원곡을 리메이크.]으로 7년만에 무명생활을 탈출하고 메이저로 올라왔다. 여자 솔로 가수 탑은 단연 [[김현정]]이었는데, 김현정이 직전 해 발매한 1집 <[[그녀와의 이별]]>이 상상치 못한 역주행을 기록하면서, 재발매까지 되며 대히트했다. 또한 [[소찬휘]]와 [[리아(1975)|리아]]가 인기였다. === 1999년 === 직전 해인 98년과 크게 변한 것은 없다. 보이그룹은 여전히 H.O.T.와 젝스키스의 양강구도에 걸그룹은 S.E.S.와 핑클의 양강구도였다. 특히 핑클은 2집 <[[영원한 사랑]]>으로 SBS 가요대전 대상과 서울가요대전 대상을 수상하면서, 걸그룹 최초 지상파 가요시상식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베이비복스의 경우 99년 새 멤버로 [[윤은혜]]를 영입하고 컨셉을 파워 여전사로 바꿔 컴백했고, 3집 타이틀 곡 <[[Killer(베이비복스)|Killer]]>로 인기를 끌면서 이들의 자리를 위협했다. 또한 국민그룹으로 불리는 [[god(아이돌)|god]]가 1월 초 데뷔했다. 1집 타이틀 곡 <[[어머님께]]>로 인기를 끌었지만, 이 당시만 해도 H.O.T.와 젝스키스에게 밀리는 신세였다. god 멤버들 말로는, 이 해에 유일하게 god만 신인상을 타지 못해 해체 위기였다고 한다. 신화는 2집 타이틀 곡 <[[T.O.P]]>로 가요 프로그램 첫 1위를 차지하면서 인기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남자 솔로 가수로는 단연 [[조성모]]가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인기를 이어갔다. 2집 <슬픈 영혼식>의 초대박으로 서울가요대상 대상과 MBC 10대 가수 가요제 대상, KBS 가요대상 대상, 골든디스크 대상까지 싹쓸이했다. 또한 이 해부터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의 전신인 Mnet Musicvideo Festival이 신설되었는데, 1회 대상의 주인공은 [[H.O.T.]]이다. 솔로 여가수는 김현정과 함께 [[백지영]]의 파격적인 등장으로 이어졌으며 연말에는 [[이정현(멀티 엔터테이너)|이정현]]이 테크노 컨셉으로 제작한 1집 <[[와#가요]]>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혼성 그룹으로는 쿨이 최정상의 자리를 지켰고 [[룰라]]의 경우 99년 마지막 앨범을 내고 해체수순에 돌입했다. 또한 [[코요태]]가 이 해 처음 데뷔해, 1집 타이틀 곡 <순정>과 후속곡 <만남>으로 큰 인기를 끌며 인기그룹 대열에 합류한다. 힙합씬에서 올라온 이 해의 뜨거운 감자는 바로 [[조PD]]로, 미국에서 인터넷으로 음반을 공개하며 얼굴도 까지 않은 체 화끈한 욕설 가사와 도발적인 비트로 순식간에 마니아 팬층을 형성하게 된다.[* 조PD가 계약한 회사에서 2년 뒤 [[싸이]]도 데뷔했다.] == 기타 == [[1990년대]] 가요계는 아직 음원시장의 개념이 없던 시절이라 음반시장이 주류였으며 가수들의 인기 척도 역시 음반판매량을 기준으로 평가했다. 90년대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대표적인 가수는 [[김현식]], [[변진섭]], '''[[서태지와 아이들]]''', '''[[김건모]]''', '''[[신승훈]]''', [[쿨(혼성그룹)|쿨]], [[룰라]], '''[[조관우]]''', '''[[터보(그룹)|터보]]''', '''[[H.O.T.]]''', '''[[조성모]]''', [[김종환(가수)|김종환]] 등이 있다.[* 볼드체로 작성된 가수 7팀은 4개 이상의 음반이 모두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음반을 듣는 매체는 [[CD]]와 [[카세트테이프]]였으며, 이 시기에는 [[MP3 플레이어]]보다는 워크맨으로 음악을 들었다. [[분류:음악사]][[분류:가요]][[분류:199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