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골품제)] [[四]][[頭]][[品]] [목차] == 개요 == 신라의 신분 계급 중 하나로, [[귀족]] 중 가장 신분이 낮은 계층이었다.[*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에서도 귀족계층 중 가장 낮은 계급은 4두품으로 나온다.] == 상세 == [[5두품]]의 기원이 초기 신라에 편입된 부족장들이나 촌장들이었다면 이들 4두품의 기원은 그 부족장, 촌장들을 모시던 가신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흥덕왕]] 때 제정된 [[골품제]] 세칙에 의하면 5두품과 겉옷과 신는 신발의 종류는 같았으나 복장의 색, 집의 규모 등에 대해서는 엄격한 구별이 있었다. 하지만 5두품과의 구별과는 달리 ---4두품에게는 억울하게도--- [[평민]]과는 인상착의에만 차이가 있을 뿐 다른 부분에서는 큰 구별이 없었다. 하지만 하급 귀족이라 해도 이들도 엄연히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귀족 계층이었기 때문에 하급 관료직, 기술직의 대다수를 이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처럼 신라 고위층과 평민을 연결해주는 [[중간관리직]]의 역할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신라 말대로 갈수록 이를 이용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지위가 상승한다. 이런 점을 보면 조선시대의 [[중인]] 계층과 여러모로 닮아있다. 차이가 있다면 중인 계층은 귀족계층을 이루던 양반과 달리 결코 귀족층이라고 볼 수 없었으나 4두품은 말단이라 그렇지, 귀족은 귀족이었다는 점이다. [[삼국사기]]에는 진촌주(眞村主)를 5두품에, 차촌주(次村主)를 4두품에 상당하는 것으로 보았다. 진촌주는 촌락의 장으로서 여러 개의 촌을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에 4두품은 [[5두품]]의 보좌역을 주로 수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분류:관직]][[분류: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