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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 '''{{{+3 Type 97 Automatic Cannon}}}'''[br]''九七式自動砲''[br]''97식 자동포''}}}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Japanese_Type_97_20_mm_anti-tank_rifle.gif|width=100%]]}}}|| || '''종류''' ||[[대전차 소총]] || || '''원산지'''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width=23]] [[일본 제국]] || ||<-2> {{{#!folding 【펼치기 · 접기】 ||<-2>
{{{#White '''이력'''}}} || || '''역사''' ||[[1939년]]~[[1945년]] || || '''개발''' ||코쿠라 조병창 || || '''개발년도''' ||[[1935년]]~[[1938년]] || || '''생산''' ||코쿠라 조병창 || || '''생산년도''' ||[[1939년]]~[[1943년]] || || '''생산수''' ||1,108정 || || '''단가''' ||6,400엔[* 1940년 기준] || || '''사용국'''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width=23]] [[일본 제국]] || || '''사용된 전쟁''' ||[[중일전쟁]][br][[소련-일본 국경분쟁]][br][[제2차 세계 대전]] || ||<-2> {{{#White '''세부사항'''}}} || || '''탄약''' ||[[20 mm|20×125mm]] || || '''급탄''' ||7발들이 박스탄창 || || '''작동방식''' ||[[가스 작동식]][br][[오픈 볼트]] || || '''총열길이''' ||1,065mm || || '''전장''' ||2,090mm || || '''중량''' ||52kg || || '''발사속도''' ||12RPM || || '''탄속''' ||790m/s || || '''최대사거리''' ||2,000m ||}}} || [목차] [clearfix] == 개요 == {{{+1 [ruby(九七式自動砲, ruby=97식 자동포)]}}} (きゅうななしきじどうほう) [[일본 제국]]이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사용한 [[대전차 소총]]. == 상세 == 해외권에서는 Type 97 Anti-tank Rifle(97식 대전차 소총)로 알려져있다. [[제2차 세계 대전]]시 [[일본군]]이 사용하던 [[대전차 소총]]. 악세서리로는 포 방패가 있지만 장착시 중량이 68kg로 무거워져 불편했기 때문에 잘 쓰이지는 않았다. 근데 포방패 없이도 자체 59kg라는 무게는 만만치 않으며 비교삼아 삼각대를 장착하고 3명이 운반해야 하는 M2 중기관총 무게가 58kg이다. 물론 M2는 12.7mm고 이건 20mm다. 7발짜리 탄창으로 급탄하며 빠른 사격속도와 재장전이 간편하며 관통력도 우수한 편이다. 다만 대전차 소총 탄환으로는 큰 20mm급 탄환을 쓰는데 아무래도 보병휴대용이다 보니[* 20mm급은 보통 대공포에 쓰이는 구경으로 대표적으로 독일 Flak38처럼 '''총열이 길고 대형화되어 있어''' 탄속이 빨라 철갑탄을 쓴다면 보통 97식보다 관통력이 좋다.'''하지만 이놈은 절대 보병이 들고 수송이 불가능'''하며 트럭 등에 싣고 다녀야된다.] 관통력이 상대적으로 약한데다가 대전차총 총 자체 중량이 무거운데도 불구하고 구경이 크다보니 발사시 심한 반동이 일어나는 것이 단점이다. 사실 대전차총이라고는 해도 무게도 그렇고 포가에 포방패까지 달린 것도 그렇고 소구경 대전차포와 구별하기 힘들 정도의 물건. 대전차총이기 때문에 관통력이 약하게 보이지만 그 당시 많이 쓴 일본 [[전차]]였던 57mm [[치하]]의 구형 주포인 57mm 포보다도 관통력이 뛰어날 정도였다. 물론 57mm 포는 보병이나 토치카를 상대하는 저압 곡사포이니 예상 용도가 다르긴 하다. 어쨌든 스펙상으로는 당시 스튜어트 전차의 측후면 정도는 거리를 두고도 무리없이 잘 관통할 수 있었다. 또한 스태그하운드같은 중장갑차나[* 중장갑차인 [[M6 스태그하운드|스태그하운드]]는 가장 두꺼운 포탑장갑이 31.7mm로 좀더 근거리로 접근하면 관통가능했다. 전면장갑은 22mm로 다른 어느 부분과 마찬가지로 여지없이 관통가능했다.] 스튜어트같은 경전차까지는 상대할 수 있었지만 셔먼[* 셔먼의 측후면 장갑이 38.1mm인데 초근거리로 접근한다면 관통할 수 있다.]같은 본격적인 중형전차 이상급은 상대하기 힘들었다. 다만 제대로 활용됐다면 경장갑차량과 경전차에게는 효과를 좀 봤을 것 같긴 한데, 전시생산에서 품질저하가 있었는지 미군의 노획 후 테스트에서는 250m에서 30mm 수직장갑 정도를 관통하는 성능으로 평가했는데, 정작 일본군은 [[할힌골 전투]] 이후 [[BT 전차]]의 22mm 두께인 전면장갑도 관통하기 힘들었다는 평을 내렸다고 한다. [[https://www.forgottenweapons.com/japanese-type-97-20mm-anti-tank-rifle/|#]][* 당연한 것이 혼란스러운 실전에서 정확히 90도 입사각으로 맞추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수평으로만 입사각이 45도만 되어도 관통해야 할 두께가 1.4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후에 이것을 원형으로 Ho-1, Ho-3 등을 만들었다. 보급창에서 이 총을 일선부대에 지급하면서도 사용법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거나, 전용 총탄 없이 총만 지급하는 등 여러가지로 개그일화가 있었다. 상황이 이러니 예비 부품 또한 제대로 지급될 리가 없었다. 또한 대전차포 지급을 요구했던 일선 부대에 이걸 던져주니 '대포를 달라니까 총을 주네? 장난해?' 라는 식으로 미덥지 않게 생각해 제대로 활용도 안했다고 한다. 1940년 기준으로 가격대는 6400엔으로, 때문에 1943년까지 총 1200문[* 이전에 400문이라고 적혀있었는데 38년에 50문, 39년에 250문, 40년에 450문, 41년에 300문을 생산했다가 잠시 생산 중단하고 43년에 100문을 생산한 게 끝이었다.]의 97식 자동포들이 생산되었으며, 그래서 양산된 [[보병]]용 [[화기]]치고는 박물관에서도 만나보기 어려운 기종이다. [[고바야시 모토후미]]가 태국의 박물관에서 이놈을 발견하고 놀라기도 했다. == 둘러보기 == [include(틀:2차 세계대전/일본 보병장비)] [include(틀:2차 세계대전/태국 보병장비)] [include(틀:보병장비 둘러보기)] [[분류:대전차 소총]][[분류:반자동 소총]][[분류:보병 무기/세계 대전]][[분류:1939년 출시]][[분류:1943년 단종]][[분류:20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