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드-외스트 SO.30 브르타뉴(Sud-Ouest SO.30 Bretagne)''' [목차] == 개요 == SO.30 브르타뉴는 프랑스 공군과 에어프랑스가 사용한 수송기/여객기이다. == 제원 == 초도비행 : 1945년 2월 26일 설계자 : 피에르 메시에(Pierre Mercier), 쟈크 르캄(Jacques Lecarme) 전장 : 18.95 m / 전폭 : 29.60 m / 전고 : 5.90 m / 익면적 : 86.20 m2 최대이륙중량 : 19,500 kg 동력 : [[프랫&휘트니]] [[R-2800]]-CA18 공랭식 18기통 엔진(2,400 hp) 2기 최대속도 : 430 km/h 순항고도 : 6,500 m 항속거리 : 1,330 km 생산수 : 45대 운용 : 프랑스 공군, 프랑스 해군, 에어프랑스, 알제리 항공 == 나치 점령 == [[나치 독일]]은 [[프랑스]]를 침공한 이후 모든 군수산업체들을 손에 넣고 감독하게 되는데, 항공기 생산업체들에는 [[게슈타포]] 장교까지 정기적으로 파견하며 감시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독일]] 제국항공성은 프랑스 항공기 공장들의 실태를 파악한 다음, 몇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관리하게 된다. 우선 첫 번째로 독일제 항공기를 생산라인에 올리는 그룹이 있었고, 둘째로는 기존에 만들던 제품들을 계속 생산하여 독일과 [[비시 프랑스]] 정부에 납품하는 그룹, 마지막으로 전쟁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아 필요없다고 판단되는 업체들은 문을 닫게 했는데, 사실 이와 같은 조치는 [[식민지]] 철권 통치나 다름없었다. [[1936년]]에 프랑스 정부가 전국 각지에 흩어진 항공업체들을 통합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블레리오(Blériot), [[다쏘|블로흐]](Bloch), 올리비에(Lioré et Olivier : LeO)처럼 프랑스 남서부에서 영업하던 업체를 통합시켜 탄생한 '''쉬드-외스트(Sud-Ouest)'''는 두 번째 그룹으로 분류되었다. 즉, 쉬드-외스트는 독자적인 설계와 개발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였는데, 덕분에 그 직원들은 자신들이 원래 하던 작업들 중에서 전투용 항공기를 제외한 기종은 개발을 계속할 수 있었고 그중에는 훗날 [[콩코드]]를 탄생시키는 주역 류시앵 세르방티(Lucien Servanty : 1909~1972) 같은 유능한 설계자들도 포함되었다. 이 회사는 통합 이후 공장 부지는 168,000 m2에 달했고 직원은 7,000명에 달해 프랑스 남부에서는 가장 큰 항공기 생산업체였지만, [[2차 대전]] 개전 이후 그 규모가 더욱 커져 직원이 11,000명에 달하고 있었던 탓에 [[독일]]로서도 이용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던 것이 당연하다. == 독일 공군도 탐낸 수송기 == 프랑스는 개전 직전에 남부의 항공기 생산 기반을 전부 한 개의 업체로 통합시키려 했는데, 이것은 일부 프랑스 기업가들의 입맛에도 들어맞는 정책이어서 [[1941년]] 1월 1일부로 쉬드-외스트는 생나제르와 이시레뮬리노 공장을 다른 용도로 전용하는 대신 [[칸(프랑스)|칸]]로 옮겨 '''SNCASO'''(Société nationale des constructions aéronautiques du Sud-Ouest)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엔지니어를 포함한 핵심 인력들은 독일이 프랑스를 함락시키자 [[이탈리아]]나 [[스페인]] 같은 피점령지로 달아났지만, 대부분 체포되어 제 자리로 돌려졌다. 독일 감시하에서 SNCASO의 설계부는 경비행기, 대형기, [[수상기]], 특수항공기 부서를 계속 유지하며 제국 항공성이 허락한 기종한 개발을 진행할 수 있었다. '''SO.30 Bretagne'''는 제국항공성이 보기에도 썩 괜찮은 쌍발 다목적 항공기로, 전술 [[수송기]]로 쓰임새가 기대되어 개발을 허가받은 것이다. 1941년 5월부터 [[칸(프랑스)|칸]]에 있던 엔지니어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 전금속제 쌍발기는 전선을 확장시켜나가고 있어 수송기 수요가 커진 [[제3제국]]으로서는 아주 구미가 당기는 기종이었다. 독일 본토의 공장들은 [[폭격기]]와 [[전투기]]를 쏟아내느라 정작 수송기 같은 비전투 항공기를 생산할 여력이 딸렸던 탓이다. 그렇지만 프랑스인들로서는 독일을 도울 이유가 없었으니 고의적으로 작업을 늦추기도 했고, 전쟁으로 인하여 자재가 제때 공급되지 않아 생산 라인은 자주 멈췄다. 한 대의 비행기가 아쉽던 독일은 프랑스 국내 생산업체에게 공급할 알루미늄마저 가로채갔기 때문이었다. == 개량과 발전 == [[에콜 폴리테크닉]]에서 항공역학을 전공하고 LeO 사에서 근무하던 설계자 피에르 메시에(Pierre Ernest Mercier)가 이끄는 개발진들에 의해 SO.30N이라고 불리던 이 [[프로토타입]]은 [[파리(프랑스)|파리]]가 [[1944년]] 8월 25일에 해방되고도 거의 반년이나 지난 [[1945년]] 2월 26일에야 첫 비행에 나설 수 있었다. 테스트 파일럿은 SNCASO에 적을 두고 있던 다니엘르 라스텔(Daniel Rastel : 1907~1969)이었는데, 원형기에 달린 프랑스제 Gnôme-Rhône 14R-5 엔진이 힘이 딸린다는 단점을 빼면 대체로 좋은 평가를 했다. 개발주임 메시에가 작업을 진행하다가 병으로 죽자, 그 뒤를 이어 메시에의 학교 후배이기도 했던 쟈크 르캄(Jacques Lecarme : 1906~1986)이 바톤을 넘겨 받았다. 항공역학을 공부하는데 그치지 않고 [[테스트 파일럿]]을 병행했을 정도로 비행 실무에 밝은 쟈크 르캄이 이끌게 되자 브르타뉴의 개발에는 속도가 붙었고, 마침 프랑스가 해방되어 [[미국]]으로부터 출력이 2,000마력을 훌쩍 넘기는 최신형 공랭식 엔진까지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 취역 == 원형기의 테스트 이후 엔진을 바꾼 생산형은 SO.30P로 분류된다. 브르타뉴는 5명의 승무원에 의해 운용되고, 30명에서 43명의 승객을 태우거나 23명의 승객을 태우고 화물 1.2톤을 함께 실어나를 수 있었다. 화물 수송기 형식인 SO.30C는 동체 내부를 화물실로 바꾸고 후방에는 아래로 열리는 도어가 마련되어, 여기에 램프를 걸치면 차량이 드나들며 싣고 내릴 수 있어서 전술 수송기답게 면모를 일신했다. 따라서 브르타뉴는 [[에어 프랑스]]와 [[알제리]] 항공에서는 여객기로 취역했지만, 프랑스 공군과 해군에서는 중형 수송기로 이용되었다. 또한 이 쌍발기는 안정성이 높아 날으는 실험실로 이용하기에도 알맞았다. 2차 대전 이후 제트 엔진의 독자 개발에 나선 프랑스는 [[영국]]으로부터 건네받은 [[롤스로이스]] 닌 엔진이나 자체 개발한 [[스네크마]] 아타 101, 그리고 툴보메카 팔라스(Turbomeca Palas) 같은 소형 [[터보젯]] 엔진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제트 엔진을 날개 밑에 달고 테스트하는데 이용되며 프랑스의 제트 엔진 국산화에 크게 공헌했다. == 파생형 == SO.30N : 원형기 S.O.30R 벨라트릭스(Bellatrix) : 노즈 기어를 갖춘 사양으로 2대만 제작 SO.30P-1 : R-2800-B43 엔진을 장비한 초기형 SO.30P-2 : 엔진을 R-2800-CA13으로 교체하여 출력을 보강한 개량형 SO.30C : 전술 수송기 형식 SO.30 닌(Nene) : S.O.30R을 엔진 실험용 테스트베드로 개조한 특수 사양 [[분류:수송기]][[분류:항공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