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경산 임당동 금동관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파일:경산 임당동 금동관1.jpg]] [[http://blog.daum.net/yescheers/8598632|사진 출처 : 압독국(押督國)과 주선국(州鮮國)은 같은 나라]] [목차] == 개요 == 1982년 7월부터 12월까지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경상북도]] [[경산시]]에 위치한 [[임당동 고분군]]에서 발굴 작업을 하던 중 압량 7A호분에서 발견한 5세기 경 [[신라]]시대 출자형 금동관. 현재 [[영남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파일:경산 임당동 금동관5.png]] 1982년 [[임당동 고분군]]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금동관으로, 유물의 제작 연대는 발굴 당시 임당 고분군이 4세기~6세기 사이에 조성된 관계로 그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었으며, 실제 연구 결과 5세기 경에 제작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임당동 고분군은 원래 [[6.25 전쟁]]의 여파로 오랜 세월 동안 많은 고분이 훼손된 상태로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는데, 1982년 2월에 그중 임당동 2호분이 [[도굴]]되어 순금제 귀걸이 및 장신구, 은제허리띠, [[곡옥|곱은옥]], [[환두대도|고리자루큰칼]] 등 중요한 문화재가 해외로 유출되기 직전 당국에 적발되면서 그제서야 학계는 임당동 고분군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에 긴급히 1982년 7월부터 12월까지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는데 그 때 출토된 것이다. [[파일:경산 임당동 금동관3.jpg]] [[http://blog.daum.net/yescheers/8598632|사진 출처]] [[파일:경산 임당동 금동관4.jpg]] [[http://gumgu.invil.org/index.html?menuno=2204&lnb=40400|사진 출처 : 경산 금구맛대추마을 압독과 신라]] [[파일:경산 임당동 금동관6.jpg]]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70316/83347996/1|사진 출처 : 동아일보 - 경산 신라 임당동 고분서 빈장 행해졌을 가능성]] [[파일:경산 임당동 금동관2.png]] 당시 임당동 7A호분에서 금동관과 함께 발견된 유물 중 일부를 찍은 사진들. 이 금동관이 발견된 7A호분에서는 이 외에도 금동관편(金銅冠片), 금제귀걸이, 금동제귀걸이, 금은제반지, 금제장식, [[곡옥|곱은옥]], 금은제구슬, 유리구슬, 대롱옥(管玉), 은제허리띠, 금동제신발, 금동제고리자루큰칼(金銅製環頭大刀), 철제큰칼(鐵製大刀), 쇠투겁창(鐵矛), [[삼지창]], 백화수피편(白樺樹皮片), 주검받침(屍床), 흙구슬, 토제구(土製球), 그릇받침, 각종 토기, 뼈장식품, 비단조각, 청동말종방울(靑銅馬鐸), 금동제마구류, 철제마구류, 쇠화살촉, 쇠도끼, [[숫돌]], 쇠손칼, 각종 토기류, 삼두마고배(三頭馬高杯), 붉은긴목항아리(赤色長頸壺), [[상어]]·[[생선]]·[[돼지]]·[[사슴]]과 [[닭]]의 뼈 및 각종 조개껍질류, 사람뼈 등 2,000여점의 고신라시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600여년 전 [[경상북도]] [[경산]] 지역의 신라인이 사용하던 위세품으로, 당시 한국의 금속공예술 및 정치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분류:신라의 금제유물]] [[분류:영남대학교박물관 소장품]] [[분류:경산시의 문화재]]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