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김종성(1906)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남성 기업인]][[분류:1906년 출생]][[분류:2005년 사망]][[분류:박천군 출신 인물]][[분류:대한제국의 인물]][[분류:일제강점기의 인물]][[분류:국민훈장 석류장]] [목차] == 개요 == 김종성(金琮成)은 [[학교법인]] [[육하학원]]의 설립자이자 초대 이사장이다. == 사업가 김종성 == [[1906년]] [[평양시]] [[https://www.siminilbo.co.kr/news/newsview.php?ncode=179511167499222|출생]]의 사업가, 교육인이다. 김종성은 해방 전 [[평안북도]] [[박천군]] 양가면 영미역([[경의선]]) 인근에서 일대 최대 규모였던 삼일백화점의 경영자, 기업가였다. 광복 이후 일제가 남긴 조선제약을 인수하면서 평양 최대의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김일성]]의 공산정권이 득세한 후, 모든 재산을 몰수당해 항의했으나 돌려받지 못했다. 이후 공산정권 하에 여섯 식구들의 신변을 위협받은 김종성은 [[1949년]] 두 아들과 함께 [[https://www.joongang.co.kr/article/3348161|월남]]한다. [* 정확히는 아들들은 브로커를 통해 미리 내려보내고, 본인은 1년 뒤에 따로 어선을 타고 강원도 [[주문진]]으로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30908017002|월남]]한다.] 남겨둔 가족[* 처와 세 자녀들]에게는 수년내에 데려오겠다고 약속했으나, [[6.25 전쟁]]이 발생하는 탓에 데려올 수 없는 것은 물론 연락까지 두절 되게 된다. == 월남 이후 == [[월남]] 후 그는 친누나가 살던 [[충청북도]] [[충주]]에서 먼저 [[월남]]시킨 두 아들과 재회한다. 서울의 친구에게 밑천이 될 돈을 빌려, [[1950년]] 부산에서 행상업을 하며 사업자금을 마련한다. 평양에서 [[백화점]]을 운영했던 경험을 살려 사업이 번창했다. 그러나 동업자가 [[부도]]하면서 다시 월남 당시와 다를 바 없는 무일푼이 된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상경해 [[공무원]] 뱃지 공급 계약을 체결해 당시로서는 큰 사업자금이 될 수 있는 금액인 500만원을 확보한다. 이후 [[1955년]]에 장남의 결혼을 준비하며 큰 지출이 있었지만, 전쟁통에 [[고무신]] 장사를 성공했던 그의 경험을 살려 경제가 어려웠던 50년대에 폭등하는 고무신 수요에 대응하여 사업을 벌였다. [[1960년]]에는 상경하여 [[마포구]] 등지에 [[주유소]]를 차리고, 운수업 등으로 사업을 확장시켰다. == 재단 설립 == 그렇게 사업을 확장시켜나가며 마련한 자금으로 '사회를 위해 무언가 남길 만한 일을 하자'는 생각이 들어 [[1978년]]에 [[육하학원]]을 설립하였다. [[1979년]]에 [[상일여자중학교|상일여중]][* 현재는 [[상일중학교(서울)]]로, [[남녀공학]] 전환 및 교명변경이 되었다.],[[1980년]] [[상일여자고등학교(서울)|상일여고]], [[1984년]] [[상일미디어고등학교|상일고]][* 현재의 [[상일미디어고등학교]]]를 개교하여 명문사학재단을 일구어낸다. == 여생 == * [[1996년]] 3월 육하학원통일교육장학재단을[* 북한실상 바로알기 등의 주제로 우수작에 선정된 중고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논문대회 등의 사업을 주관하는 장학재단이다.] 설립하였다. 동년 11월 3일에는 당시 기준 [[공시지가]] 80억상당의 토지(마포구 상수동)를 재단에 [[https://www.joongang.co.kr/article/3348161#home|기탁]]하였다. 이후 인터뷰에서 그는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에게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것이 여생의 목표'라고 [[https://www.joongang.co.kr/article/3348161|밝혔다.]] * [[1997년]] 12월 9일 '대학생이 보는 북한 실상' 이라는 책을 장학재단에서 발행하여 학생들에게 배부하고 독후감을 쓰는 행사를 했으나, 논란이 되어 [[https://www.hani.co.kr/arti/legacy/legacy_general/PRINT/136586.html|회수]]했다. * [[1998년]] [[http://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622|남북이산가족 특집 MBC다큐스페셜-상봉]]에 출연하였다. * [[2002년]] 4월 10일 김종성 이사장의 1억원 기탁으로 육하지원재단이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2/04/09/2002040970410.html|발족]]하였다. 재단은 원금의 이자증식분으로 [[https://www.siminilbo.co.kr/news/newsview.php?ncode=179511167499222|운영]]되며, 상일동 인근 저소득 주민 등의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 운영된다. 그 밖에도 김종성 이사장은 [[강동구]] [[상일동]] 외에 일전에 사업을 하던 [[마포구]] [[상수동]] 등에서도 각종 지원사업을 운영해왔다. * [[2003년]] 2월 11일 교육부장관으로부터 [[국민훈장]] 석류장을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0302120074746776|받았다.]] == 타계 == * 2005년 2월 23일 [[https://m.cafe.daum.net/lww777/DfrK/168|타계]] (향년 98세) 하였다. * 2005년 2월 25일 오전 10시 [[서울아산병원]]에서 영결식 후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에 마련된 장지에 하관했다. * 2005년 2월 27일 삼일제를 마쳤다.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