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류화석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 '''류화석의 역임 직책'''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대한민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 역대 감독)] ---- ||<-5> '''선경 인더스트리/SK케미칼 역대 감독''' || || 후국기[* [[후인정]]의 아버지.] [br] (1992~1994) || {{{+1 →}}} ||<#FFF> '''류화석''' [br] '''(1994~1998)''' || {{{+1 →}}} || 해체 || ---- [include(틀: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역대 감독)] ---- [include(틀: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역대 감독)] }}} ||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DDDDDD 0%, #FFFFFF)" {{{+1 {{{#000000,#e5e5e5 '''대한민국의 배구인'''}}}}}}}}}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류화석.jpg|width=100%]]}}} || ||<-3> '''{{{+1 류화석}}}[br]柳花錫''' || ||<-2><|2> '''{{{#000000 출생}}}''' ||[[1952년]] [[8월 3일]] ([age(1952-08-03)]세) || ||[[전라남도]] [[고흥군]] || ||<-2> '''{{{#000000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 ||<-2> '''{{{#000000 신체}}}''' ||177cm, 75kg || ||<-2> '''{{{#000000 직업}}}''' ||[[배구 감독]] || ||<-2> '''{{{#000000 학력}}}''' ||[[대경상업고등학교]] {{{-2 (졸업)}}}[br][[남산공업전수학교]] {{{-2 (졸업)}}}[br][[명지대학교]] {{{-2 (학사)}}} || || '''{{{#000000 소속}}}''' || '''{{{#000000 감독}}}''' ||송산중학교 배구부 (1979~1984)[br]일신여자중학교 배구부 (1984-1986)[br][[일신여자상업고등학교]] 배구부 (1986~1994)[br][[SK케미칼 배구단|선경 인더스트리-SK케미칼 배구단]] (1994~1998)[br][[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현대건설 배구단-마산 현대건설 그린폭스]] (1999~2006)[br][[수원시청 배구단]] (2008~2009)[br][[대한민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여자 대표팀]] (2009)[br][[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2010~2013 / ^^총감독^^)[br][[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2013~2014)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배구인]]. == 지도자 경력 == === 실업 시절 === 대경상업고등학교와 남산공업전문학교, 명지대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 1979년, 송산중학교 감독을 시작으로 일신여중 - 일신여상 감독을 거쳐 1994년, [[SK케미칼 배구단|선경 인더스트리]]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선경 감독 선임 당시에는 [[GS칼텍스 서울 KIXX|호남정유]]가 슈퍼리그를 꽉 잡고 있을 정도로 왕조를 구축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당시 류화석 감독은 SK케미칼 배구단의 주축 멤버였던 [[류연수]] - [[강혜미]] - 김연 - 김지연 - [[장소연(배구)|장소연]] 등을 내세워 1995년 1월 3일 호남정유의 92연승을 저지시켰으며 1997년에는 SK를 준우승으로 이끌었지만 이듬해 [[IMF]] 사건의 여파로 결국 구단이 해체되고 말았다. 1999년에는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현대건설 배구단]]의 감독으로 부임하였고 이 때부터 그의 전성기가 찾아온다. 부임 첫 해부터 2006년까지 현대건설에서 감독을 맡는 동안 슈퍼리그 5연패를 이뤄내면서 지도력을 인정받기 시작한다. 이전까지는 호남정유 - LG정유가 한 시대를 풍미하고 그 뒤를 한일합섬, SK케미칼 등이 뒤를 잇는 형국이었던 탓에 현대건설은 리빌딩이 한창 진행중이었는데, 류화석 감독 부임 후 당시 한일합섬의 거포 [[구민정]], SK케리칼의 세터 [[강혜미]]와 센터 [[장소연(배구)|장소연]] 등을 한꺼번에 영입하면서 전력이 급상승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탈고교급 유망주로 평가받던 세터 [[이숙자(배구)|이숙자]]와 1999년 세계 청소년 배구대회에서 대한민국을 3위로 이끈 박선미, [[정대영]], [[한유미]] 등의 신인 선수들까지 싹쓸이하면서 2004년까지 현대건설 왕조를 이룩했다. 또한 1998년 아시아 청소년 배구 선수권 대회, 2001년 그랑프리 세계여자배구대회, 2002년 세계여자배구선수권 및 아시안게임 등 많은 국제대회에서도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명장으로 우뚝 서게 된다. '''일단 여기까진 정말 좋았는데'''... === 프로 출범 이후 === 그러나 [[V-리그]] 출범 이후 현대건설은 구민정, 강혜미, 장소연 등이 줄줄이 [[은퇴]]하면서 그저 그런 중위권 팀으로 처지게 되었다. 결국 이숙자, 정대영, 한유미, 박선미, 윤혜숙 등을 중심으로 팀을 재편했지만, 프로 원년 시즌인 2005 시즌엔 5개 팀 중 3위, 2005-06 시즌엔 4위로 떨어져 [[플레이오프]] 진출에도 [[실패]]하였고, 결국 류화석 감독은 현대건설 감독직에서 물러난다. 잠시 야인으로 지내다 2008년엔 실업 팀 수원시청 배구단의 감독을 역임하였으며, 2009년에 잠시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내다 2010년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의 총감독으로 선임되었고 [[세화여자중학교|세화여중]], [[세화여자고등학교|세화여고]] 배구부도 관리하면서 총감독을 지내다가 2013년 흥국생명의 감독으로 부임했는데, '''이 커리어는 그의 [[퍼펙트]]한 [[흑역사]]가 되고 말았고, 또한 흥국빠들에게 있어서도 당장 잊고 싶은 세월'''이었다. 류화석 체제의 흥국생명은 그야말로 [[불가리아]] 출신 용병 바실레바 원맨팀에 불과할 정도로 선수층이 처참했는데, 그가 지명한 선수들은 팀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총감독으로 지내던 시절 박성희를 지명하라며 추천했지만 결과는 처참했으며, 감독 부임 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고도 2013-14 시즌 신인왕을 차지한 [[고예림]]과 [[대구여자고등학교|대구여고]] 시절 공수 양면에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던 [[고유민]]을 거르고 세화여고 출신이라는 이유로 [[공윤희]]를 지명하는 사고를 터트렸다. 허나 공윤희는 신인 시절이던 2013-14 시즌 당시 무릎 부상으로 시즌 내내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했고 도리어 [[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성남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제니스]]가 지명했던 고예림이 펄펄 날며 신인왕을 차지했다. 더욱이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가 지명한 고유민은 부상도 없었고 이로 인해 시즌 도중 출전 기회되 꾸준히 받아 그 경험으로 2014 [[KOVO컵]] 대회에 호성적을 냈다. 설상가상으로 FA로 풀린 [[김사니]]까지 [[아제르바이잔]] 리그로 떠나면서 세터진도 파탄이 났다. 그나마 팀에서 믿을 만한 선수로는 [[김나희(배구선수)|김혜진]]과 박성희 정도였지만 이들조차 바실레바를 돕는 들러리 신세로 전락해버렸을 정도로 국내 선수 육성도 너무 등한시했다. 류화석 감독은 개막전부터 용병 바실레바에게 엄청난 [[몰빵배구]]를 자행했는데, 바실레바는 이미 전반기부터 타 팀 외국인 선수들을 멀찍이 따돌리며 득점부문 1위를 차지하였고, 2013년 12월 19일에는 무려 바실레바 혼자 '''57득점'''이라는 희대의 기록이 탄생했다.[* 이것은 2012-13 시즌 도로공사 소속이던 [[니콜 포셋]]이 기록한 55점을 갈아치워버린 희대의 기록이다.] 더 가관인 것은 이렇게 몰빵을 시켜놓고 득점부문 1위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실레바에게 근성이 없다며 [[개드립]]을 치는 [[막장]] 행각을 보이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2년 뒤, [[대전 KGC인삼공사|여기]]에서 그의 행보를 뛰어넘은 [[이성희(배구)|강화판]]이 등장했지.~~ 이 바실레바의 57득점 경기 이후 바실레바는 불가리아 국가대표팀 차출로 잠시 팀을 떠나게 되었는데, 3~4라운드에서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10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전반기에만 5승 13패를 거두며 일찍이 최하위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데다 후반기에도 겨우 2승을 거두는 데 그치면서 7승 23패 승점 19점으로 최하위의 성적을 내고 시즌 종료 후 자진[[사퇴]]했다. 화려했던 실업 시절 감독 때와는 달리 드래프트 뻘짓과 국내 선수 육성 전무, 심각한 몰빵배구 등의 온갖 [[단점]]들만 다 드러낸데다가 후임으로 들어온 [[박미희]] 감독이 팀을 빠르게 재건하여 2016-17 시즌과 2018-19 시즌에 정규 리그 [[우승]]을 거둠으로써[* 특히 18-19 시즌은 정규 리그는 물론 챔결까지 우승했다.][* 그러나 20-21 시즌 막판, [[이재영-이다영 학교폭력 논란]]과 [[김연경-이다영 갈등 논란]] 두 가지가 터지면서 이 업적들도 몽땅 평가절하당하고 있다.], ~~2017-18 시즌은 넘어가자.~~ 류화석 감독은 흥국생명 팬들에게 있어서는 [[빼박]] [[금지어]]로 낙인찍혔다. 흥국생명 팬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든 것은 나락으로 떨어진 팀을 적어도 재건해 보려는 노력조차도 1도 없었다는 것. ~~이 사람은 [[걍]] 프로와는 안 맞는 게 아닐까?~~ == 관련 문서 == * [[배구 관련 인물]] [[분류:1952년 출생]][[분류:고흥군 출신 인물]][[분류:대경생활과학고등학교 출신]][[분류:리라아트고등학교 출신]][[분류:명지대학교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구 감독]][[분류: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역대 감독]][[분류: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역대 감독]]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