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백병옥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 '''[[지존파]]''' || || [[김기환(범죄자)|김기환]](리더) || [[강동은]] || [[김현양]] || [[문상록]] || [[강문섭]] || '''백병옥''' || 이경숙 || 송봉우(송봉은) || ||<-2>[[파일:백병옥.jpg|width=100%]] || || '''이름''' ||백병옥([[白]][[炳]][[玉]])|| ||<|2> '''출생''' ||[[1974년]][* 지존파 검거 당시 [[KBS NEWS|KBS 뉴스]]에서는 25세로 보도되었지만 다른 여러 매체들에서는 20세로 기록되었으므로 1974년이 그의 정확한 출생년도일 것이다.]|| ||[[전라남도]] [[영광군]] || ||<|2> '''사망''' ||[[1995년]] [[11월 2일]] (향년 20 ~ 21세)[* 만약 1969년생이 맞을 경우 25~26세.] ||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사형집행장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 ||<|1> '''학력''' ||중학교 중퇴 || ||<|1> '''종교''' ||[[무종교]] → [[기독교]]([[개신교]]) || [목차] [clearfix] == 개요 == 1993년에서 1994년까지 활동한 [[대한민국]]의 범죄 조직 [[지존파]]의 조직원 중 하나. == 생애 == === 유년기, 학창 시절 === 훗날 함께하한 다른 지존파 조직원들과는 달리 부모가 둘 다 있었고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부모가 품팔이를 하여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했다. 어린 시절부터 병약한 체질이라 [[국민학교]]에 재학하던 중 장기 결석으로 이미 학업에 대한 의욕을 잃었고 국민학교 5학년 때 “몸이 더럽다”는 이유로 선생님에 의해 발가벗겨지는 일을 당한 이후 학교가 아예 싫어졌다고 한다. 중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초졸|장기 결석으로 제적]]당한 뒤 방황하며 불량배들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절도 및 강도 전과마저 생겼다. === 청년기, [[지존파]] 가입 === 10대 후반에 [[특수강도]]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 같은 수용실 동기였던 [[강동은]]과 친분을 맺어 출소 후 강동은과 공사장에서 함께 일했다. [[천안시]]에서 막노동을 하던 중 강동은으로부터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며 조직 가입을 권유받아 강동은의 고향 선배인 [[김기환(범죄자)|김기환]]이 조직한 범죄 조직 [[지존파]] 일원이 되었다. 조직 내에서 맡은 역할은 [[범죄]] 대상을 물색하는 것이었다. 강문섭과 함께 막내였기 때문에 서열은 최하위였지만 선배들 못지않은 잔악함을 보였고 특히 두목인 김기환에게 절대 복종했다. === 체포 및 재판 === 지존파의 조직원 중 가장 마지막에 붙잡혔다. 같은 조직의 막내이자 동갑인 [[강문섭]]과 김기환이 소유하고 있던 조직의 아지트에 끝까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아지트를 포위하던 경찰관이 쏜 [[공포탄]]의 소리에 강문섭이 투항하고 체포되자 백병옥은 아지트 뒷편 야산으로 연결된 창문을 박살낸 뒤 그 곳을 통해 빠져나와 도주하여 [[대나무]] 숲에 숨어 있다가 몇 시간도 안 되어 [[경찰기동대]]원들한테 잡혔다고 한다. 같은 막내인 강문섭은 범죄 전과가 없는 것에 비해 백병옥은 이미 학창 시절부터 특수강도 등의 전과가 2건이 있기 때문인지 본능적으로 짐작 후 도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체포 이후로 수차례의 재판이 열렸고 이 재판들에는 백병옥의 가족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참석했는데 [[지존파]] 조직원의 가족 중 유일하게 재판에 온 이들이었다. 마지막 공판 때 출석한 백병옥의 부모는 허름한 차림을 하고 있었고 [[여관]]에 머무를 돈이 없어 법원의 대합실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그의 부모는 [[가난]]을 물려 준 자신들을 탓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판사에게 작성한 탄원서는 묻은 눈물로 인해 탄원서 종이가 모두 흐려져 글이 안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그의 어머니는 “제 아들이 사람을 죽이고 그런 짓을 할 애가 아닌데 사람을 잘못 만나게 되어 이런 짓을 하였습니다”라고 끝까지 판사에게 선처와 용서를 구했으나 직후 검사의 사형 구형에 백병옥의 어머니는 거의 실신 정도까지 갈 수준이었다고 한다. 백병옥은 경찰 조사에서 가난한 부모님을 위해 돈을 벌어 효도하기 위해 범죄를 했다고 밝혔지만 도리어 부모님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꼴이 되었다. 즉 효도하긴 커녕 천하의 패륜아가 된 셈 그나마 서울구치소에서 그는 잘못을 인정하고 참회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고 문장식 목사 등에게서 받은 영치금을 유년기의 자신처럼 가난한 수형자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등 모범수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1995년 11월 2일 다른 지존파 조직원들과 함께 서울구치소에서 처형되었다. 지존파 중 가장 마지막이며 그날 집행된 이들 중 마지막 순서였다.[* 즉 24번째로 사형이 집행되었으며 1997년 12월 29일 이전까지 가장 최근에 사형이 집행된 인물이기도 했다.] 15시 28분에 사형장으로 들어왔고 구치소 부소장이 인정심문 후 예배를 인도했는데 묵도 후 찬송가 291장 '날빛보다 더 밝은 천국'을 부르고 성경을 백병옥이 읽은 뒤 문장식 목사가 간단히 설교하고 기도 후 찬송가 188장 '만세 반석 열리니'를 부른 뒤 다시 축도로 예배를 마치고 나서 15시 52분 [[교수형]]을 집행해 16시 5분에 절명했다.[* 출처: 문장식 목사, <아! 죽었구나 아! 살았구나>] [[분류:지존파]][[분류:1974년 출생]][[분류:1995년 사망]][[분류:영광군 출신 인물]][[분류:교수형된 인물]][[분류:수원 백씨]]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