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블라디슬라프 아르진바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역대 압하지야 대통령)] ||<-2> '''{{{#fff 압하지야 공화국 제1대 대통령[br]{{{+1 블라디슬라프 아르진바}}}[br]Владислав Григорьевич Ардзинба | Vladislav Ardzinba}}}'''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Владислав_Ардзинба_в_Москве.jpeg.jpg|width=100%]]}}} || || '''본명''' ||블라디슬라브 그리고리이파 아르즌바[* 압하스어 이름으로, 러시아어 이름은 '블라디슬라프 그리고리예비치 아르진바(Владислав Григорьевич Ардзинба)'.][br]Владислав Григори-иԥа Арӡынба || ||<|2> '''출생''' ||[[1945년]] [[5월 14일]] || ||[[소련]] [[그루지야 SSR]] [[압하스 ASSR]] 에셰라 || ||<|2> '''사망''' ||[[2010년]] [[3월 4일]] || ||[[러시아]] [[모스크바]] || ||<|6> '''재임기간''' ||압하스 SSR 최고소비에트 의장[* 압하스 ASSR은 1992년에 폐지되지만 아르진바는 전임 발레리안 코바히야의 자리를 압하스 ASSR 최고소비에트 의장이 아니라 압하스 SSR 최고소비에트 의장이라는 직함으로 승계했다.] || ||[[1990년]] [[12월 24일]] ~ [[1992년]] [[7월 23일]] || ||압하지야 최고소비에트 의장 || ||[[1992년]] [[7월 23일]] ~ [[1994년]] [[11월 26일]] || ||압하지야 대통령 || ||[[1994년]] [[11월 26일]] ~ [[2005년]] [[2월 12일]] || ||<-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부모''' ||아버지 그리고리 콘스탄티노비치 아르진바[br]어머니 나데즈다 샤아바노프나 야지치바 || || '''배우자''' ||스베틀라나 제르게니야 || || '''자녀''' ||딸 마디나 아르진바 || || '''학력''' ||수후미 국립사범대학교[br]트빌리시 국립대학교 ||}}}}}}}}} || [목차] [clearfix] == 개요 == 블라디슬라프 아르진바는 [[압하지야]]의 역사학자, 정치인으로, 초대 압하지야 대통령을 지냈다. [[압하지야 전쟁]] 당시 압하지야 반군을 이끌었다. == 생애 == 1945년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났다. 수후미 국립사범대를 졸업하고 트빌리시 국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히타이트]] 학자로 활동하다 1989년 [[소련 최고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고 이후 압하지야의 강경 분리주의자로 활동했다. 1990년 압하스 SSR 최고소비에트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현 [[압하지야군]]의 모태인 압하지야 방위군(Abkhaz National Guard)을 조직했는데 압하스인만 이 조직에 참여할 수 있게 하였다. [[그루지야 SSR]] 최고소비에트의 조지아 내 민족자치 청산 선언에 맞서 압하지야를 조지아와 연합한 공화국으로 규정한 1925년 헌법 원복을 선언했다. 또한 소련의 유지를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소련 붕괴 후 1992년 8월 [[압하지야 전쟁]]이 벌어지자 수후미에서 구다우타로 탈출해 시간을 벌고 캅카스 산악민족연합과 해외 압하스인 디아스포라에 지원을 요청했다. 이들의 참전과 러시아의 지원에 힘입어 조지아군을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1994년 압하지야 최고소비에트가 독립을 선언하고 신헌법을 채택했다. 최고소비에트의 결정에 따라 의장인 아르진바가 즉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1999년 실시된 압하지야 최초의 대선에도 단독 출마하여 98.9%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압하지야 독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나 국정 운영은 미숙했다. 권위주의적으로 국가를 통치했고 1995년 [[여호와의 증인]]을 불법화했다. [[조지아인]] 정책은 강경했는데 조지아인 [[난민]]의 귀환을 거부하고 잔류 조지아인은 가혹하게 탄압했다. 재임기간 중 압하지야 재건에 실패했고 창궐하는 부패 문제와 극심한 [[치안]] 악화도 대응하지 못했다. 이에 반(反)아르진바 여론이 점차 힘을 얻었고 [[세르게이 바갑시]] 등 고위공직자들과 압하지야 전쟁의 베테랑들마저 아르진바 반대파에 합류했다. 2005년 2월 12일 대선 당선인 바갑시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여생은 휴양도시 피춘다의 다차에서 은거하면서 보냈다. 2010년 사망했다. 향년 64세. [[분류:압하지야 대통령]][[분류:1945년 출생]][[분류:2010년 사망]]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