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샤름엘셰이크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파일:샤름 아랍.jpg|width=860]] 나아마 만 해변 [[파일:샤름 이집트.jpg|width=860]] 샤름의 리조트 [목차] == 개요 == [[아랍어]]: {{{+1 شرم الشيخ }}} [[영어]]: Sharm el-Sheikh [[이집트]] 동북부 남시나이 주의 도시. [[시나이 반도]] 동남부에 위치한 휴양도시로, 티란 해협을 두고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 신도시와 마주하고 있다. 인구는 8만명으로 남시나이 주 최대의 도시이지만, 주도는 서북쪽으로 60km 떨어진 유서깊은 도시 [[엘토르]]이다. 이집트의 다른 휴양도시인 [[후루가다]]나 [[메르사 마트루]]처럼 시가지는 해안가를 따라 22km 가량 늘어선 리조트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관광 외에도 외국인들이 많아 샤름 영국 학교, 세인트 조세프 학교 등 국제 학교들과 이집트에서 드문 골프장까지 있다. 시가지 동북부에는 샤름엘셰이크 국제공항이 위치한다. 지명인 샤름 엘 셰이크는 '셰이크의 만'이란 뜻이다. 별칭인 마디네트 엣 살람 --[[바그다드]]--, 즉 평화의 도시로도 불리는데 여러 국제 평화 협정이 체결된 곳이기 때문이다. 현대에 들어 16년간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고 2005년 테러를 겪는 등 굴곡진 이집트 현대사의 상징인 곳이기도 한다. 더불어 관광지라서 물가가 엄청 비싸다. 론리 플래닛 이집트에서도 이집트 으뜸가는 수준이라고 서술했었다. 1990년대 ~ 2000년대에 걸쳐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회담과 중동평화회담 등이 열렸고, 2022년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개최하였다. == 역사 == 본래 샤름은 한적한 어촌에 불과하였고, 오스만 지배기에는 샤름 웃 셰이흐라 불렸다. 그러다 1940년대 들어 [[이스라엘]]이 생기고 [[중동전쟁]]이 벌어지자, [[홍해]] 방면에 있어 이스라엘의 유일한 항구인 [[아카바]]를 봉쇄할 수 있는 샤름의 전략적 가치가 주목되었다. 또한 선박이 정박하기에 좋은 지형 조건이었기에 이집트 해군 기지로 개발되었다. 다만 [[2차 중동전쟁]] 중인 1956년 이스라엘이 점령하였고, 이듬해 반환한 후 유엔 평화유지군이 주둔하였다. 그러나 [[3차 중동전쟁]]기인 1967년 재차 이스라엘이 점령하였고, 1982년에 반환할 때까지 15년간 지배하였다. 이스라엘은 샤름을 [[구약성경]]에서 [[솔로몬]] 시대의 황금 산지로 거론된 오피라에서 유래된 오피르 (אופירה)로 개칭하고 1969년부터 주민들을 정착시켰다. [[4차 중동전쟁]]기에는 이집트와 이스라엘 공군 간이 공중전이 벌어졌고, [[안와르 사다트]]의 이복동생 아테프가 전사하였다. 이스라엘 정부는 나아마 만 일대에 호텔과 마리나 등 휴양 시설을 세우고 1968-76년에는 비행장을 건설하는 등 영구 지배를 꾀하였다. [[골다 메이어]] 내각은 샤름엘셰이크와 이스라엘 본국을 잇는 회랑의 영유권을 인정받는 조건으로 이집트에게 수에즈 운하와 나머지 시나이 반도를 반환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사다트는 완고하게 거부했다. [[제4차 중동전쟁]]에서 매운 맛을 본 이스라엘은 더욱 전향적인 태도가 되어 결국 1982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으로 [[시나이 반도]]를 이집트에 반환, 오피라 주민 역시 철수하였다. 다만 시나이 반도의 다른 정착촌인 야미트와 달리 오피라는 파괴되지 않았고, 그대로 넘겨져 이집트인들이 정착하였다. 이에 이집트 대통령 [[호스니 무바라크]]는 샤름을 평화의 도시로 지정하였고, 국내외 투자를 유치하여 대대적인 개발에 나섰다. 모스크는 물론 교회도 지어지는 등 건설 당시부터 국제성을 고려하였고, 고도 제한을 두어 주변 경관을 헤치지 못하게 하였다. [[파일:아랍 이스라엘.jpg|width=860]] 2010년 샤름에서 미국의 중재로 열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회담 --환하게 웃는 [[힐러리 클린턴]]-- 사우디령 티란 섬을 향해 설치되었던 해안 포대는 다이빙 장이 되었다. 다만 2005년에 이집트 역사상 2번째로 큰 테러가 발생하여 87명이 사망하고 200여명이 부상당하는 참극이 있었다. 그럼에도 샤름의 평화 교섭장 역할은 지속되어 1999년 9월 [[가자 지구]]의 자치 복구 합의, 2000년 10월의 [[제2차 인티파다]] 협상, 2005년 8월 아랍권-이스라엘 분쟁 논의, 2007년 이라크 재건 논의, 2010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직접 회담 등이 열렸다. 그외에도 2006년과 2008년 중동 평화 회담이 샤름에서 개최되었다. 한편 2011년 [[2011 이집트 혁명]] 당시 시위가 격화되자 이집트 대통령 무바라크는 자신이 사랑한 도시 샤름으로 떠나 2월 11일 그곳에서 사임을 발표하였다. 여러모로 이집트 현대사에 중요한 장이 된 것이다. 2022년 11월에는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개최하였다. [[분류:이집트의 도시]][[분류:휴양지]] 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