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rr20240101판에서 저장되지 않은 문서입니다.자동으로 r20210301판 문서를 읽어왔습니다. 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송병직 (r0 버전으로 되돌리기) [[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청양군 출신 인물]][[분류:1864년 출생]][[분류:1921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 || 성명 ||<(> 송병직(宋秉稷) || || 생몰 ||<(> [[1864년]] [[6월 18일]] ~ [[1921년]] [[3월 31일]] || || [[출생지]] ||<(> [[충청남도]] [[청양군]] 적곡면 악지리 || || 사망지 ||<(> [[충청남도]] [[청양군]] ||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송병직은 1864년 6월 18일 충청남도 청양군 적곡면 악지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895년 12월 [[김복한]], [[안창식]], [[안병찬(1854)|안병찬]] 등이 일으킨 홍주 의병대에 가담해 홍주관찰사(洪州觀察使) 이승우(李勝宇)를 창의대장으로 삼고, 김복한을 수석으로 추대했다. 그러나 홍주관찰사 이승우는 거의의 뜻을 번복하고 김복한, [[이설(독립운동가)|이설]] 등을 비롯한 23명을 구금했다. 그 중 김복한, 이설, 홍건, 안병찬, 이상린, 그리고 송병직은 서울로 끌려갔고, 그는 1896년 2월 25일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날 밤 고종의 특지로 전원 사면되면서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고, 이후에는 고향에 은거하다가 1921년 3월 3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송병직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