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송양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후한 말의 인물, rd1=송양(삼국지))] [include(틀:원삼국시대 군주)] ---- ||<#191970> '''{{{#white 국적}}}''' ||||<:> 비류국 → '''고구려''' || ||<:><#191970> '''{{{#white 작위}}}''' ||||<:> 다물도주(多勿都主)[br]→ 다물후(多勿候)[br]→ '''다물국왕(多勿國王)''' || ||<:><#191970> '''{{{#white 봉토}}}''' ||||<:> 다물도(多勿都) || ||<:><#191970> '''{{{#white 성씨}}}''' ||||<:> 송(松) || ||<:><#191970> '''{{{#white 휘}}}''' ||||<:> 양(讓) || ||<:><#191970> '''{{{#white 딸}}}''' ||||<:> 왕후 송씨 || ||<:><#191970> '''{{{#white 생몰연도}}}''' ||||<:> ? ~ ? || ||<:><#191970> '''{{{#white 재위기간}}}''' ||||<:> ? ~ 기원전 37년 || [목차] == 개요 == [[고구려]] 초기의 인물이자 외척. 본래는 고구려와 이웃하고 있던 [[비류국]]의 군주였다. == 생애 == [[부여]]를 탈출해 졸본 땅에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성왕]]이 비류수를 따라 나서서 비류국에 도착하였는데, 이때 동명성왕이 스스로를 '하늘의 자손'이라고 주장하자 심사가 뒤틀렸는지 '''"여긴 대대로 우리 땅인데 니들이 뭔데 함부로 나라를 세움? 그냥 내 밑으로 들어와라."''' 하면서 시비를 걸었다. >임금이 대답하였다. >“나는 천제의 아들로서 모처에 와서 도읍을 정하였다.” > >이에 송양이 말하였다. >“우리는 여러 대에 걸쳐서 왕노릇을 하였고, 땅이 작아서 두 왕을 용납하기엔 부족하다. 그대는 도읍을 정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우리에게 부용(附庸)함이 어떠한가?” > >임금은 그 말에 분노하여 그와 말다툼을 하다가 서로 활을 쏘아 재주를 겨루었는데, 송양은 대항할 수 없었다. >---- >'''《[[삼국사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42731&cid=49625&categoryId=49799|제13권 고구려본기 제1 시조 동명성왕]]''' 이에 화가 난 동명성왕이 송양에게 도전을 하여 활쏘기 등의 재주를 겨루었는데 동명성왕의 궁술이 워낙 뛰어난 탓에 처참히 발리고(...)는 패배하였기에 물러났고 한다. 애초에 동명성왕의 본명인 '주몽'이 부여 말로 '활을 잘 쏘는 사람'이니 처음부터 게임이 될 리가 없었다. 과거 전승을 가감 없이 기록한 《[[구삼국사]]》[* 《[[동국이상국집]]》의 동명왕편에 실려있다.]에는 어떤 대결을 했는지도 기록되어 있다. 송양은 사슴 그림을 그려놓고 100보 밖에서 활을 쏴 맞히려 했는데 사슴 배꼽에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힘겨워했다고 하며, 반면 동명성왕은 사람을 시켜 [[옥]]으로 만든 반지를 가져와 100보 밖에다 매달아 두고는 그걸 맞혀서 박살내버렸다고 한다. 한편 [[구삼국사]]에는 삼국사기에 나오지 않은 전승이 하나 더 기록되어 있다. 본래 비류국은 고구려보다 오래 전에 건국되었기 때문에 궁궐이 오래되었는데, 그걸 가지고 자기들이 나라가 더 오래되었다고 뻐기자, 동명성왕이 [[부분노]]를 보내서 궁궐 대들보를 털어왔다고 한다. 이후 동명성왕이 흰 사슴(혹은 향기 나는 사슴)을 붙잡고 제물로 바치자 하늘에서 큰 비를 내려 비류국에 홍수가 났는데, 동명성왕이 비류국의 국민들을 구해주자 모두 고구려에 복속되었다고 전해진다. 후에 비류국의 땅은 되찾은 땅이라는 의미에서 '[[다물]]도(多勿都)'[* 《삼국사기》에 직접 그 의미 설명이 나오는 몇 안되는 [[고구려어]] 단어이다.]라 이르게 되었고, '비류부'라는 이름으로 고구려에 편입된다.[* 중국 측 기록에서는 '소노부' 또는 '연노부'라 나온다.] 이후 [[동명성왕]]의 아들인 [[유리명왕]]에게 자신의 딸을 시집보냈는데, 불과 1년 만에 장남 [[도절태자]]를 낳고 죽었다. 그런데 유리명왕의 삼남인 [[대무신왕]] 역시 송양의 딸 소생이라고 하는데 이 기록과 나이가 맞지 않기 때문에 딸의 사망 기록이 잘못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대무신왕]] 시기에 우보로 임명된 [[송옥구]]가 그와 성이 같지만 송양과 연관이 있는지는 불명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6731|연노부]] 단락을 쓴 [[노태돈]] 교수는 송양이 단지 소노를 다르게 쓴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차대왕]]의 태자인 [[고추안]]은 [[신대왕]] 즉위 이후 양국군(讓國君)에 봉해졌는데 연관이 있는지는 불명이다. == 창작물에서 == [[파일:송양(주몽).png]] 사극 [[주몽(드라마)|주몽]]의 등장인물로 [[박종관(배우)|박종관]]이 연기한다. 비류부의 수장으로, 졸본의 대표 꼰대(...) 역할을 하고, 한나라의 양정과 결탁하는 등 계루부의 소서노와 척을 지고 살지만 결국 마음을 고쳐먹고 주몽을 주군으로 받들게 된다. [[분류:한국의 군주]][[분류:고구려의 외척]]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