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시카고(밴드) (r1 버전으로 되돌리기) || '''{{{#white 시카고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2> [[파일:5ARYZvK4L2afx8AcWcf6kF-1.jpg|width=60]] {{{+1 '''[[로큰롤 명예의 전당|{{{#DAA520 로큰롤 명예의 전당}}}]] {{{#DAA520 헌액자}}} ''' }}} || ||<-2><:><#ffffff>{{{#!folding [ 펼치기 · 접기 ] ||<:><#0C0000>'''{{{#ffd700 이름}}}'''||<:><#0C0000>'''{{{#ffd700 시카고[br]CHICAGO}}}'''|| || '''{{{#ffd700 헌액 부문}}}''' || '''{{{#ffd700 공연자 (Performers)}}}''' || ||<:><#0C0000>'''{{{#ffd700 멤버}}}'''||<:><#0C0000>'''{{{#ffd700 로버트 램, 리 러프넌, 제임스 팬코우, 월터 페러자이더,[br]테리 카스, 피터 세트라, 대니 세라핀}}}'''|| ||<:><#0C0000>'''{{{#ffd700 입성 연도}}}'''||<:><#0C0000>'''{{{#ffd700 2016년}}}'''|| ||<:><#0C0000>'''{{{#ffd700 후보자격 연도}}}'''||<:><#0C0000>'''{{{#ffd700 1995년}}}'''|| ||<:><#0C0000>'''{{{#ffd700 후보선정 연도}}}'''||<:><#0C0000>'''{{{#ffd700 2016년}}}'''||}}} || ---- [include(틀:역대 그래미 평생 공로상 수상자)] ---- [include(틀:UCR 선정 가장 위대한 미국 밴드)] ---- [include(틀:빌보드 차트 올타임 아티스트)] ---- [include(틀:빌보드 차트 올타임 아티스트(싱글))] ---- [include(틀:빌보드 차트 올타임 아티스트(앨범))] ---- ||||<-2><:><#dda0dd>'''[[할리우드 명예의 거리|{{{#ffd700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ffd700 입성자}}}'''|| ||||<-2><:><#ffffff>[[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로고.svg|width=250]]|| ||<:><#dda0dd>'''{{{#ffd700 이름}}}'''||<:><#dda0dd>'''{{{#ffd700 시카고[br]CHICAGO}}}'''|| ||<:><#dda0dd>'''{{{#ffd700 분야}}}'''||<:><#dda0dd>'''{{{#ffd700 음악}}}'''|| ||<:><#dda0dd>'''{{{#ffd700 입성날짜}}}'''||<:><#dda0dd>'''{{{#ffd700 1992년 7월 23일}}}'''|| ||<:><#dda0dd>'''{{{#ffd700 위치}}}'''||<:><#dda0dd>'''{{{#ffd700 6438 Hollywood Blvd.}}}'''|| }}} || ||<-2> [[파일:시카고(밴드) 로고.svg|width=70%]] || ||<-2>{{{#!wiki style="margin: -5px -10px -6px" [[파일:41E0749F-18FA-40B8-A891-A23BD84C846E.jpg|width=100%]]}}}|| ||<-2> {{{+5 {{{#white '''Chicago'''}}} }}} || || '''{{{#white 출신지}}}'''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 || '''{{{#white 현재 멤버}}}''' ||로버트 램 ^^([[키보드]])^^ [br] 리 러프넌 ^^([[트럼펫]])^^ [br] 제임스 팬코우 ^^([[트롬본]])^^ [br] 토니 오브로타 ^^([[기타]])^^ [br] 로렌 골드 ^^([[키보드]])^^ [br] 왈프레도 레예스 주니어 ^^([[드럼]])^^ [br] 레이 헤르먼 ^^([[색소폰]], [[플루트]])^^ [br] 닐 도넬 ^^([[보컬]],[[기타]])^^ [br] 에릭 베인스 ^^([[베이스]])^^ [br] 라몬 이슬라스 ^^([[퍼커션]])^^ || || '''{{{#white 활동기간}}}''' ||[[1967년]] ~|| || '''{{{#white 데뷔}}}''' ||[[1969년]] 앨범 'Chicago Transit Authority'|| || '''{{{#white 링크}}}''' ||[[https://www.instagram.com/chicagotheband/?hl=ko|[[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width=24]]]] [[https://twitter.com/chicagotheband/|[[파일:트위터 아이콘.svg|width=24]]]]|| [목차] == 개요 == [[파일:external/www.epicrights.com/3347_5976.jpg]] [[파일:FB48E8F8-B908-4B38-AD57-B89D60722A27.jpg]] 1967년 미국 시카고에서 결성되어 현재까지 활동 중인 [[록 밴드]]. == 상세 == 현재까지 23장의 골드 앨범과 18장 의 플래티넘 앨범, 8개의 멀티 플래티넘 앨범, 21개의 [[빌보드 핫 100]] 탑 텐 싱글, 미국에서만 앨범 4천만장을 판매하였고 전세계적으론 총 1억 2천만 장 이상의 앨범 판매량을 기록한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둔 밴드이다. 1967년 결성부터 1981년 초까진 프로듀서 제임스 윌리엄 구에르치오와 함께하며 록 음악에 관악기를 결합하는 [[재즈 록]], [[퓨전 재즈]]와 [[팝 록]] 음악 등의 다양한 음악을 중점으로 하였고 , 1981년 말을 기점으로 프로듀서 [[데이비드 포스터]]와 함께하게 되면서 그들만의 특징인 관악기의 비중이 전보다 비교적 감소하며, 그로 인해 198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진 관악기를 최대한 자제한 [[소프트 록]] 즉, 대중적이고 서정적인 노래들을 중점으로 노선이 변경됐었고 데이비드 포스터가 시카고 프로듀싱을 끝마치고 난 후 90년대 중반부턴 다시 밴드 본래의 스타일을 중점으로 이어나갔던 역사가 있는 밴드이다. 여러 상황으로 인해 멤버들의 변화가 많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음악적 색깔을 꽤나 고수하고 잘 잃지 않으려 했다는 특징이 있다. == 역사 == === 1967 - 1969: Big Thing 결성과 Chicago Transit Authority로의 정식 데뷔 === [[시카고]]의 [[드폴 대학교]]에서 [[클라리넷]] 연주를 전공하던 월터 페러자이더(Walter Parazaider)가 비틀즈의 곡에서 영감을 받아 [[관악기]] 세션이 있는 로큰롤 밴드를 위해 사람을 모은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페러자이더는 10대때부터 친구로 지냈던 [[기타리스트]] 테리 카스(Terry Kath)와 [[드러머]] 대니 세라핀(Danny Seraphine)과 함께 3인조 밴드를 결성했고, 페러자이더의 같은 대학 친구인 제임스 윌리엄 게르치오(James William Guercio)도 밴드 관리와 프로듀싱 제안을 받아 동참한다. 페러자이더는 이후 동문인 [[트롬본]] 연주자 제임스 팬코우(James Pankow), [[트럼펫]] 연주자 리 러프넌(Lee Loughnane), 루스벨트 대학교 학생이었던 [[키보드]] 연주자 로버트 램(Robert Lamm) 등을 더 모아 그룹을 만들기로 한다. 그리고 1967년 2월 15일, 월터 페러자이더의 집 지하실에서 '''월터 페러자이더, 제임스 팬코우, 리 러프넌, 테리 카스, 로버트 램, 대니 세라핀''' 총 6명이 모여서 그룹 '''빅 씽(Big Thing)'''을 결성한다. 제임스 윌리엄 구에르치오는 밴드 매니저 및 프로듀서로써 참여하게 된다. 빅 씽은 원래 키보드 담당인 로버트 램이 오르간 페달로 베이스 음도 겸해서 둘 다 연주했었으나 아무래도 다양한 베이스 음을 내기가 힘들다보니 확실한 베이시스트가 필요한 상황에서 1967년 후반에 밴드 The Exceptions의 멤버였던 [[베이시스트]] '''피터 세트라''' 도 참여하게 되어 7인조 밴드가 되었다. || [[파일:the-big-thing-orig_orig.jpg |width=n%]] || || 1967년 6인조 시절의 The Big Thing. 왼쪽부터 리 러프넌,테리 캐스,월터 페러자이더,로버트 램,제임스 팬코우,대니 세라핀 순이다. || 이후 인지도를 넓히고 1968년 여름에 [[로스엔젤레스]]로 주 무대를 옮긴 빅 씽은 콜롬비아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기에 이른다. 밴드의 이름은 프로듀서 겸 매니저 였던 제임스 윌리엄 구에르치오의 제안에 의해 '''시카고 트랜싯 어소리티(Chicago Transit Authority)''' 로 바뀌었다.[* 밴드 멤버 전원이 시카고 교통국에서 짧게라도 일했던 경험이 있었던 것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이후 야간 나이트클럽에서 공연을 하다가 타인의 음악만을 커버 연주하는것을 그만두고 자신들만의 음악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1968년부터 Wake Up Sunshine, Lonliness Is Just A Word, Liberation, Someday(데모버전), Listen 등의 자신들만의 창작곡들도 커버 음악들과 같이 경기장과 나이트클럽 등을 전전하며 연주하고 다녔다. || [youtube(0QTMUOrX88E)] || || '''시카고 트랜싯 오소리티가 데뷔 전인 1968년에 진행한 라이브 중 하나(여러 커버곡들도 포함되어있다.)''' || 1968년 후반에 제임스 윌리엄 구에르치오가 2집 프로듀서를 맏기도 했었던 같은 재즈 록 밴드인 Blood Sweat & Tears의 재즈 록 사운드를 시카고 트랜싯 오소리티가 베끼며 활동하는거 아니냐는 오해가 있기도 했었지만, 블러드 스웻 앤 티어즈가 재즈 사운드로 바뀐 1968년도 후반보다 더 전인 1967년 초반부터 이미 시카고 트랜싯 오소리티는 관악기와 록을 결합한 사운드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당되지 않던 시비였다. 그 후 1969년, 공연을 전전하던 시카고 트랜싯 오소리티는 1969년 1월 말 뉴욕 52번가에 있는 CBS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시작했다. 이때 그들이 처음으로 녹음한 곡은 1집 2번째 트랙인 'Does Anybody Really Know What Time It Is'라는 노래이다. 그렇게 녹음을 끝마치고, 1969년 4월에 1집 '''Chicago Transit Authority'''를 당시로선 획기적인, 심지어 신인 데뷔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더블앨범으로 발매하였다.[* 더블앨범은 비틀즈의 화이트 앨범 'The Beatles'부터 슬슬 널리 퍼지기 시작하였다. 69년에 데뷔앨범 즉, 신인 밴드가 첫번째 앨범을 더블 앨범으로 낸다는건 당시로도 파격적이었다.] 이 앨범엔 소개 겸 인트로를 장식하는 첫 곡 'Introduction'부터 시작해서 현대인의 바쁜 일상을 토대로 만든 'Does Anybody know What Time It Is?'와 'Beginnings', 'Question 67 & 68' 등의 재즈 느낌이 물씬 나는 [[재즈 록]], 'Free Form Guitar'로 선보이는 테리 카스의 당시로선 매우 신선했던 [[노이즈 록]], 'Poem 58', 'South California Purples' 등의 [[프로그레시브 록]]과 [[1968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1968년 8월 29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반전시위대가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라는 문구와 함께 시위를 했던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Prologue, August 29', 'Someday'와 같은 정치 사회적인 비판을 담은 곡, 마지막엔 풍부한 브라스와 기타연주가 돋보이는 하나의 14분짜리 대곡으로 끝나는 'Liberation'같은 실험 음악들로 가득 메워졌다. 첫 앨범은 발매 후 바로 히트를 치진 못했고 히트 싱글도 생산하지 못했으나(1969년, Question 67 & 68 싱글 차트 71위), 미국에서 [[빌보드 200]] 17위에 1970년까지 판매량 100만장 이상을 달성하며 신인으로서는 이례적인 히트를 쳤고, 올해의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하기까지 하는 등 파격적인 시작을 가졌다. 앨범 발매 후, 밴드 시카고 트랜싯 오소리티는 처음부터 Chicago Transit Authority 즉, [[시카고 교통국]]에게 상표권 침해에 대한 법적 소송을 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후에 밴드명을 '''Chicago''' 로 축약하여 바꾸었고, 이후 현재까지 이 이름으로 밴드 활동을 진행하는 중이다. || [[파일:tlzkrh.png |width=n%]] || || 피터 세트라가 합류하고 2년 뒤인 1969년의 7인조 시절의 시카고 || === 1970 - 1977: 전성기와 앨범들의 연이은 성공 === 1970년이 되며 시카고는 C.T.A 앨범을 발매한지 1년도 안되어서 1월 26일, 두번째 앨범인 '''Chicago'''를 발매하게 된다. 시카고는 두번째 스튜디오 앨범 또한 더블앨범으로 발매하였다. 두번째 앨범 Chicago에 담긴 음악들은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재즈 락]]과 최후반부는 클래식 음악의 느낌이 나는 음악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이 앨범의 핵심 음악은 7파트로 구성된 13분짜리 'Ballet for a girl in Buchannon'인데, 이 노래의 첫번째 파트인 'Make me smile', 5번째 파트인 'colour my world'[* 색깔이란 의미의 단어 '컬러'를 영국은 'colour', 미국은 'color'로 표기한다. 하지만 시카고는 항상 너래에서 colour을 사용한다.]가 히트하며 빌보드 핫 100 10위권에 들게 된다. 이 7파트로 구성된 "Ballet for a Girl in Buchannon" 을 본격적인 시작으로 제임스 팬코우는 작곡가로서의 뛰어난 면모가 더욱 부각되었고 앞으로도 쭉 보여주게 된다.[* Ballet for a Girl in Bucannon을 작곡한 트롬본 연주자 제임스 팬코우는 make me smile과 colour my world를 레코드사에서 각각 따로 떼서 편곡 후 발매한다고 하였을때 일곱 개 곡의 연결성이 흐트려진다며 별로 좋아하진 않았다고 한다. 허나 빌보드 핫 100 탑 10 안에 이름들이 올라갔을땐 꽤나 좋아했던 모양이다(....)]뿐만 아니라 2번째 디스크의 A면에 수록된 '25 or 6 to 4'[* 새벽 4시가 되기 25분 또는 26분 전, 즉 3시 35분 또는 34분을 뜻한다.][* 이 곡은 지금까지도 풍부한 브라스 구성과 테리 카스의 현란하고 세련된 기타 연주, 시원한 피터 세트라의 리드보컬로 시카고의 초기 곡들중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있다.]도 탑 5에 들어가며 성공한다. 앨범 'Chicago'는 [[빌보드 200]] 4위를 달성하였고, 앨범 발매 3개월 후엔 [[RIAA]](미국 음반 산업 협회)로부터 판매량 골드(10만장)를 인증받는다.(1991년엔 판매량 100만장 플래티넘 인증) 앨범 'Chicago'는 후에 1집 'Chicago Transit Authority'와 함께 시카고 최고의 명반들로 평가받는다. 그 후 시카고는 같은해 7월 21엔 시카고는 빌 그레이엄(Bill Graham)이 주최한 Tanglewood에서 공연도 하게 된다. 이 공연에선 1집, 2집의 주요 곡들을 연주하였고 'Mother','I Don't Want Your Money'등의 미발표곡들도 선보이게 된다. 위의 두 곡은 후에 발매될 3집 앨범에 실리게 된다. || [youtube(_oAoSZ2y1cw)] || || 1970년 탱글우드(Tanglewood)에서의 공연 || 데뷔부터 뛰어난 작곡능력을 보여주었던 로버트 램은 1970년에 작곡에 대한 여러 영감을 받기 시작했다. 램은 이 시기에 센트럴 파크 등지를 돌아다니며 개인적인 영상들을 찍어다녔는데, 이 필름들을 편집하고 보고 경험한것을 바탕으로 토요일의 공원 분위기에서 영감을 얻어 노래를 만들게 된다. 그 노래가 후에 5번째 앨범에 추가될 Saturday in the Park. 램은 1970년대 당시 미국의 사회적,정치적 분위기 등에서도 여러 영감을 얻어 베트남 전쟁의 참상과 반전(전쟁 반대)을 드러내는 여러 곡들을 쓰기도 하였다. 3번째 앨범인 Chicago III에서도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곡들을 일부 삽입하였다. 로버트 램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시카고 멤버들도 1970년엔 대부분 길거리를 다니며 시간을 보냈었다. 시카고는 거리를 다니며 얻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다음 앨범은 보다 진지한 주제를 바탕으로 한 음악으로 구성하기로 한다. 그렇게 해서 시카고는 녹음을 마치고 앨범 'chicago III'를 완성한다. 1971년에 세번째 앨범인 '''Chicago III'''를 발매를 완료하였고, 이 역시도 더블앨범이었다. 데뷔앨범부터 시작해서 3번째 앨범까지 모두 연속으로 더블앨범으로 발매한것을 보면 시카고가 초기에 얼마나 창작욕이 풍부하였는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시카고는 'chicago III'를 통해 다양한 음악을 보여주었다. [[펑크(음악)|훵크(Funk)]]와 [[재즈]] 사운드, [[컨트리]]풍 사운드도 일부 삽입하여 길거리에서의 아름다움과 외로움, 자유와 평화, 반전등의 정치적 메세지들을 일부 담은 연이은 곡들로 연출한 앨범으로 구성되게 되었다. 이 앨범에서도 chicago II의 Ballet for a girl in Buchannon과 같이 'Travel Suite'[* 이 부분은 총 6개의 곡들이 포함되어 총 22분 30초로 이뤄진다.], 'An Hour in the Shower', 'Elegy' 등의 여러 부제 파트로 구성된 대곡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앨범도 상업적으로도 성공하여 더블앨범임에도 빌보드 200 2위까지 달성하였고, 앨범 발매 한달 후엔 판매량 골드까지 인증받게된다.(1986년엔 판매량 플래티넘 인증) '''같은 해 4월 5일, 시카고는 뉴욕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선사하게 되었다.''' 이 공연에선 1집, 2집, 3집의 곡들을 연주하였고, 4월 10일을 끝으로 공연을 종료하게 된다. 이때 이 공연은 카네기 홀에선 처음으로 일주일동안 티켓이 매진되는 상황을 만들어준 최초의 록 공연이 되기도 하였다. 이와같은 관객의 뜨거운 호응과 폭발적인 성과에 따라 카네기 홀 공연을 녹음 진행하게 되었으며, 10월 25일에 시카고의 카네기 홀 공연 실황을 담은 라이브 앨범이자 4번째 넘버링 앨범인 '''Chicago at Carnegie Hall'''을 2시간 48분 33초의 재생시간을 담은 Lp 4장짜리 박스로 발매하였다. 카네기 홀 공연을 들어보면 색소폰,플루트 담당인 월터 페러자이더의 극도로 현란한 연주 활약이 매우 돋보이는 편이다.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1972년에는 5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Chicago V'''를 발매하였다. 3집까지 더블앨범 즉, Lp 2장으로 발매하던 시카고는 Chicago V를 처음으로 Lp 한장짜리로 발매하였다. 'A Hit By Varese','All Is Well' 등의 재즈 록과 'dialogue'로 선보이는 피터세트라와 테리 카스간의 연주속의 대화를 엿볼수 있는 센세이션한 노래들로 구성시켰다. 앨범은 [[빌보드 200]] 1위를 달성하여 첫 빌보드 200 1위를 안겨주었고, Chicago V의 수록곡인 로버트 램이 작곡한 'Saturday In the Park'가 [[빌보드 핫 100]] 3위를 달성하며 승승장구하였다. 그 후 1973년 6월 25일, 6번째 스튜디오 앨범 '''Chicago VI'''를 발매하였고 이 앨범부터 브라질 재즈 [[타악기]] 연주자인 라우 드 올리베이라(Laudir de Oliveira)가 함께하였고 1974년엔 시카고 정식멤버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Chicago VI'는 전 앨범들보다 로버트 램의 피아노 음이 더 많이 첨가되고 관악기의 비중이 전보다 살짝 줄어든 변화가 있었다. 제임스 팬코우, 피터 세트라가 공동 제작한 "Feelin' Stronger Everyday",팬코우 단독 제작인 "Just You 'n' me" 등이 싱글로 히트하였다. 앨범도 5주 연속 1위를 거두며 다시 한번 성공을 거두었다. 1973년 8월 19일엔 프로듀서 제임스 윌리엄 구에르치오가 감독을 맡은 영화 'electra glide in blue'가 개봉했는데, 이 영화에 시카고의 멤버 피터 세트라, 테리 캐스, 리 러프넌, 월터 페러자이더가 작은 비중의 역할로서 출연하였고, 영화 내에서 영화의 사운드트랙도 연주하는 등 영화에도 출연하게 된다. 로버트 램은 한창 작곡 능력면에서 꾸준히 여러 퀄리티 높은 풍부한 구성의 노래들로 정점을 보여주었고 이에 힘입어 1974년에 시카고 멤버 최초로 솔로 음반 "Skinny Boy"도 발표하였고, 타이틀인 Skinny Boy는 나중에 발표할 시카고 7번째 앨범인 Chicago VII에 관악기를 도입해서 재녹음하고 수록하였다. 1974년 3월 11일, 7번째 앨범인 '''Chicago VII'''를 발표하였다.(두 앨범을 거쳐서 다시 더블 앨범으로 돌아왔다.) Chicago VII는 [[재즈 퓨전]]과 [[소프트 록]] 등의 다양한 음악들로 구성되었다. 라우더 드 올리베이라가 정식멤버로 들어오면서 콩가 사운드가 더욱 강화되기도 하였다. 이 앨범에선 전 앨범들보다 더 완전한 재즈 사운드를 들려주게 되었고, 보컬파트가 대폭 사라진 곡들이 꽤 추가되었다. 피터 세트라와 프로듀서이자 매니저인 구에르치오는 이 재즈 프로젝트가 앨범의 상업적인 결과에 위험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시카고가 그동안 작곡했던 여러 곡들 중에 더 팝적이고 록킹한 곡들을 포함시켜 이와 같은 우려를 잠재우기도 했다. 수록곡인 'Call on Me', '(I've Been) Searchin' So Long', [[비치 보이스]]가 백 보컬로 참여한[* [[브라이언 윌슨]], [[마이크 러브]]를 제외한 알 자딘, [[칼 윌슨]], [[데니스 윌슨]]이 참여]]'Wishing You Were Here' 총 3곡이 히트하는 등 상승세를 잇는다. Call on Me는 리 러프넌의 첫 작곡 작품이었고 성공까지 하게되었다. 피터 세트라는 'Happy Man', 'Wishing You Were Here'같은 발라드 색이 강한 노래들을 작곡하여 빛을 보았다. 어찌보면 피터 세트라는 이때부터 발라드 작곡능력을 토대로 시카고의 음악적 변화를 점점 다가오게 한 것일 수도 있을것이다. 이렇게 발매된 Chicago VII는 더블앨범임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앨범 차트 1위를 달성하였고, 앨범을 발매한지 일주일밖에 안된 시점인 74년 3월 18일엔 판매량으로 골드 디스크까지 받으며 시카고의 능력을 보여주게 된다.(1986년엔 플래티넘 디스크도 받게 된다.) 시카고는 비치보이스와 일명 beachago 투어 활동을 1975년까지 이어갔다. || [[파일:chicago-1974-portrait-billboard-650.webp|width=n%]] || || 라우더 드 올리베이라가 밴드에 합류하고 1년 후인 1974년 7월 15일 8인조 시절의 시카고 || || [youtube(mQE9YazrmXQ)] || || '''시카고와 비치 보이스, 두비 브라더스가 참여한 프로그램 1974년 "New Year's Rockin` Eve". 카운트 다운 후 1975년을 맞이하였다.''' || 같은 해 8번째 앨범 '''Chicago VIII'''(다시 디스크 한장으로 발매)도 정치적인 부분을 담은 로버트 램 작곡의 '[[Harry Truman]]' , 팬코우 작곡의 'Old Days' 2개가 싱글로써 히트하였고, 비치 보이스와의 합동투어에서도 불리게 되었다. 같은 해 말엔 1집부터 7집까지의 히트곡을 담은 'Chicago IX: Chicago's Greatest Hits'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하여 이후 무려 500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역대급 대성공을 거둔다. 이로써 시카고는 6집, 7집, 8집, 9집(컴필레이션 앨범)까지 연속으로 전부 [[빌보드 200]] 1위를 달성하고 엄청난 성공을 이어가며 밴드의 저력을 보여준다. Chicago VIII 앨범에서도 피터 세트라가 작곡한 'Hideway'는 관악기 세션이 아예 들어가있지 않은 아주 록킹한 곡인데, 피터 세트라는 이 시기부터 자신이 작곡한 곡들은 거의 관악기 파트를 도입하지 않기 시작했다. 1976년에는 10번째 앨범 '''Chicago X'''를 발매하였다. 10집 작업에서는 특별한 결과물들이 존재하는데, 총 2가지로 나누어 서술하자면 이렇다. 첫번째는 트롬본 연주자 제임스 팬코우가 자신이 작곡한 수록곡 'You Are on My Mind'를 바탕으로 시카고의 음악 중 처음으로 자신이 단독 리드보컬을 맏게 되었다. 팬코우는 그동안 트롬본 파트와 백보컬, 작곡만을 이어왔으나, 이 곡은 직접 단독 리드보컬을 맡는것으로 결정이 난 것이다. 처음으로 맏은 보컬은 나쁘지 않았고, 후반 솔로 트롬본 파트에서 자신만의 실력을 한껏 내뽑는다. 두번째로는 이 앨범에서 피터 세트라가 작곡한 발라드 싱글 '[[If You Leave Me Now]]'가 [[빌보드 핫 100]] 1위를 달성하며 시카고에게 첫 싱글 1위라는 감격을 안겨주었고, 기타리스트 테리 카스가 이 노래의 녹음에 일절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발라드 음악인 이 곡은 앨범에 잘 수록되지 못하다가 결국 맨 마지막에 녹음이 되었는데, 이 노래가 첫 싱글 1위를 달성하게 된것이다. 테리 카스는 이 곡의 녹음에 일절 참여를 안했기에 당연히 이 노래에서 맏은 파트도 없었다. 그렇기에 Chicago X 앨범 투어, 무대에서 If You Leave Me Now가 연주될동안은 무대에서 항상 빠져있었다. 번외로 1976~1977년의 If You Leave Me Now 라이브 일부 영상에는 베이스 담당인 피터 세트라가 [[어쿠스틱 기타]]를 치고, 기타 담당인 테리 카스가 베이스를 연주(!)하는 희귀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새로운 부분들이 추가된 Chicago X는 발매된 해인 1976년에 판매량 골드와 플래티넘 인증을 모두 받은 시카고의 첫번째앨범이 되었다. 이후 이 앨범으로 그래미 상 후보에도 오르게 된다. 테리 카스를 비롯한 일부 시카고 멤버들은 재즈 록 음악이 아닌 발라드 [[If You Leave Me Now]]가 첫 [[빌보드 핫 100|싱글 차트]] 1위를 한것에 대해 그닥 좋게만 생각하진 않았다고 한다. Chicago VII 때부터 보였던 피터 세트라의 발라드 작곡능력이 이 노래를 통해 정점을 찍었고, 그 후부터 세트라의 발라드 작곡 능력이 본격적으로 시카고 앨범에 완전히 영향을 끼치게 된다. 발라드 If You Leave Me Now의 대성공은 나중에 시카고의 미래를 예견하는것과 다름이 없었다. || [youtube(32GdEFADy6s)] || || 1976년 If You Leave Me Now를 연주하고 있는 시카고의 라이브 모습 || 1977년 11번째 앨범인 '''Chicago XI'''에서도 피터 세트라가 작곡한 아름다운 멜로디를 가진 발라드 'Baby, What a Big Suprise'가 빌보드 핫 100 4위를 달성하게 된다. 앨범도 앨범차트 6위를 달성하였다. 연이은 발라드의 성공은 시카고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시카고는 70년대에는 앨범작업과 함께 여러 텔레비전 프로그램 출연과 영화 출현에도 참여하고 투어활동 등도 지속하며 여러방면에서 다양하게 활동도 하였다. === 1978 - 1980: 테리 카스의 갑작스런 사망과 침체기 === 1978년이 시작되며 밴드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제임스 윌리엄 구에르치오와 시카고 멤버들은 1977년 말부터 찾아온 창의성,투어 일정 및 재정 문제와 구에르치오와의 계약금 균등 분배 문제[* 1977년 말의 시카고와 구에르치오와의 계약금 분배 비율은 밴드 수익의 51%가 구에르치오에게, 나머지 49%는 밴드 멤버 8명이 동일하게 나눠 가진다는 내용이었다. 시카고 입장에선 계약상 밴드 매니저 겸 프로듀서가 수익의 절반 이상 가져간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불공정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던 것.] 등으로 인해 결국 오랜 사이를 마치고 밴드와 구에르치오는 서로 작별하게 된다. 그리고 테리 카스는 이때부터 자신만의 그룹을 만들기 위한 계획을 세워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밴드의 미래와 노선이 크게 흔들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해인 1978년 1월 23일, 원년 멤버이자 밴드의 큰 축을 담당해주었던 '''[[기타리스트]] 테리 카스(Terry Kath)가 어이없는 총기 오발 사고로 사망하여 한순간에 밴드의 곁을 떠나버린것이다.''' 사망 하루 전인 1월 22일에 테리 카스는 멤버 라우 드 올리베이라의 집에서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날인 1월 23일에 밴드 기술자인 돈 존슨의 집에서 파티가 열렸다. 파티에 참석한 테리는 취미 중 총기 사격을 즐겨했었는데, 그날 테리는 파티 종료 후에 리볼버 권총으로 실린더를 돌리며 자신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며 놀았다. 존슨은 카스의 행동을 보며 혹시 모르니 조심하라고 말했지만 이를 들은 테리는 다른 9mm 권총을 가지고 와서 존슨에게 총알도 들어있지 않은 총이라며 안심시키고 "이번엔 내가 뭘 할것 같아? 내 머리를 날려볼까?"라고 장난식으로 말하며 그 총으로 자신의 관자놀이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지만, 하필 재수없게도 총알이 탄창에 들어있었고 결국 총알이 그대로 발사되어 머리를 가격해 총기 오발사고로 어이없고도 비극적인 사망을 맞이한것이다. 이 오발사건은 신문, tv 프로그램들에서도 보도가 되어나갔고, 결성부터 함께한 멤버이자 친구얐던 테리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시카고는 슬픔과 절망에 빠졌다.[* 제임스 팬코우의 말에 따르면 테리 카스는 절대 자살할 사람이 아니라고 권고했다. 결국은 지나친 만용과 방심에 의해 발생한 사고사인것이다.] || [[파일:terry kath death news.jpg|width=n%]] || || 1978년 테리 캐스의 사망소식이 담긴 신문페이지 || 테리 캐스의 사망으로 인해 시카고는 밴드의 해체까지 강력하게 고려하였으나 당시에 자니 카슨 주연의 [[투나잇 쇼]]의 밴드 리더이자 밴드 시카고와 친분이 있던 세베린센(Doc Severinsen)이 테리 카스의 장례식 종료 후 시카고 멤버들에게 밴드를 해체하지 말고 계속 유지해달라며 격려하였고, 시간이 조금 지나고 마침내 시카고는 테리의 죽음을 겨우 극복하고 계속 활동하기로 마음먹는다. 이후 새로운 기타리스트 멤버로 도니 데이커스(Donnie Dacus)를 영입하고 12번째 앨범인 'Hot Streets'를 발표하여 활동을 이어나갔다. 이 앨범에서 죽은 테리를 추모하기 위한 싱글 "Alive Again"을 내며 활동유지를 알렸다. || [[파일:99bef00dfbc52056c303cef13ca77162--people-magazine-magazine-photos.jpg|width=n%]] || || 1978년의 시카고. 테리 캐스가 사망하고 난 후 도니 데이커스(밑줄 3번째)가 자리를 대신하였다. || 초기부터 같이 작업했던 프로듀서이자 친구였던 제임스와의 계약 문제로 인한 음악작업 마무리와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친구이자 밴드의 축이었던 테리를 하늘로 보낸 1978년은 시카고에게 있어서 정말 씁쓸하면서 비극적인 해였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침체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동안 성공가도를 쭉 이어가던 시카고는 1970년대 극후반부터 몇년간 음악적 침체기를 겪게 된다. 1979년 발표한 그동안의 시카고 음악과는 사뭇 다른 디스코 음악이 포함된 앨범 Chicago 13은 퀄리티 면에서 평론단의 평가가 좋지 못하였고, 판매량도 전작들의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10만장 밖에 달성하지 못하였으며 빌보드 200 21위를 달성하며 1집 Chicago Transit Authority의 17위 이후 가장 낮은 순위를 기록하였다. 싱글도 차트 진입에 실패하였다. 결국 기타리스트 도니 데이커스도 1980년 밴드를 떠나게 된다. 도니 데이커스가 떠나며 공석이 된 기타 포지션은 크리스 피닉(Chris Pinnick)이 세션멤버로 참여하며 메우게 되었다. 후에 1984년 Chicago 17이 발매될때 정식멤버로 승격하게 된다. 1980년 발표한 14집 chicago XIV가 [[빌보드 200]] 71위라는 역대 최저 기록을 달성하고, 앨범 판매량이 10만장에도 못 미치며 싱글도 차트 진입에 실패하는 등 바로 전 앨범보다도 더한 상업적 실패를 겪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1981년 Greatest Hits,Volume II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으나 역시나 빌보드 200 171위로 또 다시 실패하게 된다. 1968년부터 시카고와 계약해 온 음반사 "[[컬럼비아 레코드]]"는 이러한 시카고의 연속된 저조한 판매량과 실패를 보고 결국 시카고를 정식 해고함으로써 그들과의 계약관계를 끊게 된다.[* 2019년 다큐 필름인 "데이비드 포스터: 오프 더 레코드" 인터뷰에서 멤버 리 러프넌이 말하길, 컬럼비아 레코드사가 자신들을 해고하면서 "시카고는 이제 한물 간 밴드"라고 소문을 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시카고는 3년동안 음악적, 상업적으로도 연이은 실패를 겪었고 연이은 실패로 인해 멤버들끼리 서로 말도 잘 안할 정도로 사이도 소홀해지는 등 큰 침체기를 겪었다. === 1981 - 1982: [[데이비드 포스터]]와의 만남과 음악적 변화로 인한 갈등의 시작 === 1981년 컬럼비아 레코드사측의 해고 이후 침체기를 겪던 시카고는 여러 음악 산업에서 일해왔던 베테랑인 어빙 아조프에게 [[데이비드 포스터]]에게 프로듀싱을 받으면 어떻겠냐는 말을 듣고, 그 후 워너 브라더스와 계약한 시카고는 새로운 프로듀서 데이비드 포스터와 손잡게 되었다. 그때는 연속된 침체기로 인해 시카고를 부활시켜줄 수 있다면 어떤 프로듀서든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때부터, 시카고의 음악적 행보가 달라지게 된다. 1981년 말, 새로운 프로듀서와의 만남과 동시에 데이비드 포스터와 [[Earth, Wind & Fire]]의 After the Love Has Gone의 공동 작곡을 맏았던 빌 챔플린(Bill Champlin)을 영입하고 퍼커션 담당 멤버인 라우더 드 올리베이라가 밴드를 떠나게 된다. || [[파일:279097.jpg |width=n%]] || || 라우더 드 올리베이라가 탈퇴하고 빌 챔플린이 합류하여 다시 7인조가 된 1982년의 시카고 || 데이비드 포스터와 작업하기 전에 시카고는 chicago 16 앨범에 실을 노래들을 잔뜩 녹음해두었으나, 데이비드 포스터는 노래를 전부 듣고는 노래가 전부 최악이라며 마음에 들지 않아했다. 데이비드 포스터는 앨범 작업 시에 트롬본 담당인 제임스 팬코우가 포스터가 노래들이 대놓고 별로라고 말한것을 듣고 순간 "내가 노래 작곡하는 촉이 떨어진건가?" 라고 생각할 정도로 세게 나갔다. 결국 포스터는 앨범에 수록할 노래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자신이 중심이 되어 강경하게 밴드를 진두지휘하였다. 베이시스트인 피터 세트라도 앨범 녹음시에 포스터에게 베이스 파트가 별로라는 직설적인 말을 듣자 피터 세트라는 베이스 기타를 내려놓고 부스로 가서 포스터에게 다시는 그딴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충고까지 하는 등 초반엔 포스터의 공격적인 프로듀싱에 시카고 멤버들 모두 주눅들었다고 한다. > 로버트 램: 저희의 세상을 젊은 친구(데이비드 포스터)가 뒤엎고 있었어요. > 제임스 팬코우: (데이비드 포스터가) 갑자기 우리 노래들이 별로라 그러잖아요. 그럼 이런 생각이 들죠. '내가 작곡에 대한 감이 떨어진건가'? > 피터 세트라: 데이비드가 저희 노래를 듣고 스피커로 한마디 했어요. (데이비드 포스터가)'이건 아니에요 베이스 파트도 이상해요.' 그래서 제가 베이스 기타를 내려놓고 데이비드가 있는 부스로 가서 말했죠. (피터 세트라가)'다시는 그딴식으로 말하지 말라' 라구요. >---- >― 2017년 다큐 영화 데이비드 포스터, 오프 더 레코드에서 시카고와 피터 세트라의 인터뷰 그 상황속에서 포스터는 피터 세트라의 작곡 능력을 눈여겨보았고, 세트라와 포스터는 죽이 잘 맞게 되어 Chicago 16 앨범에 수록할 곡들의 대부분을 작곡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데이비드 포스터가 프로듀싱했던 앨범의 노래들은 신디사이저 음의 비중이 높아지는 대신 밴드의 대표적 특징인 관악기 파트가 과거 시카고의 대표 앨범들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줄었고, 베이시스트 피터 세트라(Peter Cetera)의 미성의 보컬을 전면에 내세운 더 대중적이고 감미로운 팝 록 밴드로 변화하게 되었다. 시카고의 작곡을 거의 도맡아 하던 로버트 램은 데이비드 포스터에 의해 이 앨범부턴 작곡비중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 Chicago 16 노래 중 'Hard To Say I'm Sorry'의 후반 짧은 브라스 파트인 'Get Away'의 피터,데이비드와 3인 공동 작곡 이외엔 전혀 로버트 램의 곡이 들어가 있지 않게 된다. 그래도 Get Away 파트로 시카고의 전성기 음악 색채를 어떻게든 남기긴 성공했다. 이전에 같이 일했던 프로듀서들과는 전혀 다른 데이비드 포스터만의 강압적인 프로듀싱과 악기 파트 일부 비중 감소 등으로 인한 멤버 일부 소외 등등으로 인해 멤버들의 불만이 이 앨범 녹음을 기점으로 눈에 띄게 보이기도 했다. 제작과 녹음에 우여곡절이 있었어도 1982년 6월 7일에 앨범 '''Chicago 16'''을 발매하게 되었다. 앨범은 발매 2개월 후에 음반 산업협회로부터 판매량 골드 인증을 받았고, 6개월 후엔 판매량 플래티넘 인증도 받게되며 4년간의 침체기를 극복하며 음반사의 저녁만찬에도 시카고 멤버들이 초대받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로버트 램은 밴드가 이와 같이 다시 상업적 활력을 되찾아 가던 와중에도 시카고의 음악적 방향에 대해 속으론 매우 갈등하고 있었다. 하지만 로버트 램은 자신이 아끼는 이 밴드를 떠나고 싶지 않았기에 하다못해 결국 이러한 데이비드 포스터의 진두 지휘와 음악적 변화를 수긍하였다 거기에 Chicago 16 앨범의 수록곡인 '[[Hard to Say I'm Sorry]]'가 [[빌보드 핫 100]] 2주동안 1위를 차지하는 오랜만의 싱글 대성공을 거둔 밴드는 다시 정상에 올랐다.[* 대한민국에선 시카고의 노래 중 Hard To Say I'm Sorry, You're The Inspiration, Hard Habit To Break 같은 감수성있는 파워발라드 곡들이 노래가 나온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잘 알려져있고, 유명하지만 그에 비해 시카고가 초중기에 추구한 브라스 록 음악들은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많이 낮다. 그러한 한국의 서정적인 음악적 특성과 그로인한 영향때문에 시카고의 발라드만 알고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카고의 일부 골수팬들은 시카고의 발라드도 좋지만 원래 결성부터 추구하던 멋지고 파워풀한 브라스 록, 즉 '진짜'를 모른다며 안타까워하기도 한다.(시카고 팬들 중 재즈 록,재즈 퓨전 시절과 파워 발라드 시절로 팬층이 나뉘기도 한다는것을 참고하자.)] || [youtube(1A0MPWseJIE)] || || '''6년만에 다시 탄생한 두 번째 빌보드 1위곡 Hard To Say I'm Sorry의 뮤직비디오. 1979년 Chicago 13부터 점차 시작되던 음악적,상업적 침체기를 다시금 극복하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 싱글 Hard to Say I'm Sorry의 인기는 대단하였고, 현재까지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미국 팝 록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이렇게 발표한 음반 Chicago 16이 초대박을 치면서 빌보드 싱글차트까지 석권하였고 밀리언 셀링까지 기록하였다. === 1983 - 1984: 앨범 "Chicago 17"의 대성공 === 1983년 중반부턴 새 앨범인 'Chicago 17'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Chcago 17 앨범의 녹음때에도 시카고 내의 불만은 여전히 존재했다. 앨범 녹음 당시에 키보드 담당인 로버트 램은 데이비드 포스터가 앨범 녹음 시 직접 키보드를 치는 빈도가 많아져 할 것이 없어져버린 램은 키보드를 치지 말라는 포스터의 말에도 어처구니가 없어하였다고. 램과 마찬가지로 제임스 팬코우, 리 러프넌, 월터 페러자이더는 데이비드 포스터의 노래 작업 스타일로 인해 관악기 파트가 확 줄어들어 버려 자신들의 담당이 아닌 신디사이저나 기타를 치게 되었고, Chicago 17의 수록곡 You're the inspiration의 뮤직비디오를 찍을때도 자신들이 관악기가 아닌 신디사이저를 아무말 없이 치고 있어야 했다. 제임스 팬코우는 Chicago 16을 시작으로 당시에 자신들의 관악기 파트가 전보다 대폭 줄어들어 버린것에 대해 속상해 하였지만, 자존심은 잠시 땅에 묻어두고 밴드의 유지를 위해 음악작업에 임하였다고 술회할 정도면 말 다한 셈.[* 프로듀서인 데이비드 포스터가 강하게 밀어붙여서 하긴 했지만 녹음 당시부터 로버트 램을 비롯한 일부 멤버들은 '이건 시카고의 음악이 아니야'라는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예전부터 작곡에 많은 비중을 담당하고 있던 제임스 팬코우와 로버트 램은 여전히 작곡의 비중이 거의 없다시피해졌다. 심지어 이전 앨범 'Chicago 16'보다. 로버트 램은 chicago 17 앨범 제작에서 노래 'We Can Stop the Hurtin'의 3명 공동 작곡자 중 한명으로만 들어가고, 팬코우는 앨범 마지막 트랙이자 관악기 파트가 많이 들어간'Once in a Lifetime'을 단독 작곡하여 수록하는데 성공하였다. > 제임스 팬코우: 데이비드는 작곡과 연주에도 관여했어요. 데이비드를 믿고 맡겼어요. 필요했으니까요. 데이비드는 정말 (음악 작업이) 빨랐어요. (데이비드 포스터가)'간주를 넣어야겠네요' (인터뷰에서 제임스 팬코우가 빠르게 혀를 굴리고 마구 손짓을 하며) 다 됐다는 거에요. 기가 막히더군요. 심지어 뮤직 비디오를 보면 저는 키보드 앞에 있고 리는 (자신의 담당도 아닌) 기타를 메고 있는데 어이가 없었죠. 금관악기 부분이 없었으니까요. >---- >― 2017년 다큐 영화 데이비드 포스터: 오프 더 레코드에서 시카고의 인터뷰 물론 당시에 반감을 가지던 멤버들도 '자신들도 귀가 달려있으니 데이비드가 만든 그 음악들이 좋은건 알았다'라고 했지만 예전의 밴드의 음악적 행보와 앨범들을 보면 그 음악들은 시카고가 그동안 지향하던 음악과는 상대적으론 거리가 먼 음악들이었기 때문이다. Chicago 16때는 위와 같이 밴드의 색채가 없어진게 확 귀에 들어왔으나, Chicago 17 앨범은 그나마 전작인 Chicago 16보다는 시카고의 원래 색채와 관악기 파트가 많이 추가되었다. 1984년 5월 14일, 시카고는 마침내 '''Chicago 17''' 앨범을 발표하였는데, 전 앨범인 Chicago 16보다 훨씬 높은 미국에서만 6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고 시카고의 앨범 중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되며 평가도 좋게 받는 등의 대히트를 기록하였다. Chicago 17은 You're the Inspiration, Hard Habit to Break, Stay the Night 등의 유명 히트곡들이 줄줄이 터져나왔다. Chicago 17은 1985년에 3개의 그래미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 [youtube(CRfy1yorkec)] || || Chicago 17의 수록곡을 싱글 컷한 노래들 중 하나인 You're the Inspiration의 뮤직비디오. 정작 관악기 파트를 맡아야 할 월터 페러자이더, 리 러프넌, 제임스 팬코우가 대부분 무표정으로 신디사이저를 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 === 1985 - 1989: 피터 세트라의 솔로 전향과 데이비드 포스터와의 결별 === 1984년 5월 chicago 17 앨범 발표 후, 시카고는 앨범 홍보를 위한 투어 스케줄이 많아 바쁜상태였다. 그 와중에 피터 세트라는 바쁜 투어 일정에서 벗어나고 솔로 활동에 더 집중하고 싶었지만 밴드와 레코드사는 앨범과 투어활동을 더 원하는 상태였다.그렇게 계속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결국 밴드,음반사와 세트라의 의견차이 및 투어 일정의 피로감으로 지친 피터 세트라는 '''솔로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1985년 여름을 끝으로 시카고를 탈퇴하였다.''' 1982년, Chicago 16과 싱글 "Hard to Say I'm Sorry"의 성공, Chicago 17과 여러 싱글들의 대성공과 함께 밴드 내에서 자신의 입지가 제일 높아지고 얼굴 간판이 되자, 다른 음악을 하고싶다고 마음을 완전히 굳히게 된것이다. 솔로 전향을 하기 위해 피터 세트라는 결국 밴드를 떠나게 되었다. 밴드를 떠난 피터 세트라는 데이비드 포스터와의 작곡 파트너를 유지한 채 앨범 "Solitude/Solitaire"와 싱글 "[[Glory of Love]]"를 1986년 발표를 시작으로 솔로가도의 성공을 이어나가게 된다.[* 1985년, 피터가 밴드를 떠난 이후부터 2022년 현재까지 시카고와 재결합과 합동 공연을 한번도 가진적이 없다(.....) 현재는 시카고 원년 멤버들중에선 로버트 램과만 연락하며 지낸다고 한다.] > 제임스 팬코우: 저희는 음악을 즐기는 밴드이고 싶었어요. 시작부터 밴드였으니까요. 개별행동을 하는 사람과는 함께하기 싫었어요. 피터는 말하자면 다른 드러머를 찾기 시작했고 데이비드를 만난 게 마음을 굳힌 계기가 됐죠. 솔로 나서기로요. 그래서.......(서로 갈 길을 가기로 했죠.) >---- >― 2017년 다큐 영화 데이비드 포스터: 오프 더 레코드에서 시카고의 인터뷰 80년대부터 밴드의 간판이었던 피터가 밴드를 떠나고 베이시스트 자리에 공백이 생기자 시카고는 피터 세트라의 공백에 대한 문제, 음악의 방향에 대한 문제, 현재까지 가지고 있던 대중적 인기 유지에 대해 다시 난감해진다. 그렇게 고민하다 시카고와 데이비드 포스터는 새 베이시스트 멤버인 제이슨 쉐프(Jason Scheff)[* 시카고의 베이시스트 중 제일 오래 밴드에 남은 멤버이다.]를 영입하여 탈퇴한 피터의 자리를 채우게 된다. 그리고 밴드의 간판이었던 피터 세트라가 나갔기 때문에 이를 의식한 시카고는 기존보다 더 앨범을 팝적인 노래들로 구성시키기로 결정한다. 이전의 앨범들인 Chicago 16.Chicago 17보다 시카고만의 사운드는 더욱 줄어든 셈이다. 그리고 그룹의 중심은 키보디스트인 빌 챔플린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제이슨 셰프는 밴드에 들어온 후 데이비드 포스터에게 보컬 스타일을 어떻게 표현할지 묻자, 최대한 피터 세트라처럼 해달라고 답변을 받았다. 목소리 톤이 세트라와 비슷했기에 시카고 18 앨범 중에 셰프가 리드 보컬을 맡은 노래들은 피터 세트라의 느낌이 나기도 했다. 기타리스트 크리스 피닉도 같은 해에 피터 세트라가 밴드를 떠난 후, 다음 앨범을 녹음하기 전에 밴드를 떠나게 되었다. 크리스 피닉이 떠나며 공석이 된 기타리스트 자리는 앨범 'Chicago 18'에서 세션맨으로만 채워졌고, 그 중 밴드 정식멤버로 승격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침내 1986년 10월 29일, 앨범 '''Chicago 18'''을 발매하였다. 한달 후에 발매한 앨범 수록곡 싱글 4개 중 "Will You Still Love Me?"가 3위를 기록하며 히트하였고, 이 앨범을 끝으로 프로듀서 데이비드 포스터는 시카고와 결별하게 된다. || [youtube(S80cOYR1OxY)] || || 1986년 Chicago 18의 히트 싱글인 Will You Still Love Me의 뮤직 비디오. 피터 세트라가 나간 후 영입된 제이슨 셰프가 피터의 역할을 대신하여 베이스와 보컬을 맏고있다. || 1988년에는 Chicago 19를 발표하여 싱글 '[[Look Away]]'를 히트시켰다. 1982년부터 1988년까지 80년대는 다시금 대성공을 하긴 했으나, 시카고에겐 있어서 밴드 정체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전형적인 80년대 팝 록 음악 히트 싱글들이었다. === 1990 - 현재: 점점 줄어드는 원년멤버들과 여전히 활동하는 시카고 === 90년대가 시작되며 1990년, 원년멤버였던 [[드러머]] 대니 세라핀이 의견 불일치로 인하여 밴드를 떠나게 되어, 그 자리를 트리스 임보든(Tris Imboden)이 이어받았고 시카고는 91년 앨범 'TWENTY 1'을 끝으로 소프트 록,파워 발라드 음악의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1992년에는 시카고가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음악 부문으로 입성하게 되었다. 1993년엔 앨범 '''Chicago XXXII: Stone of Sisyphus'''를 녹음하며 자신들의 주요 세션인 브라스 섹션을 다시 내세우고 70년대의 음악스타일로 일부 돌아오려 했으나, 레코드 회사의 개편으로 인해 바뀐 임원들은 앨범 발표를 거부하여 15년동안 정식발표되지 않고 논쟁 끝에 끝내 2008년에 정식 확장 출시되는 등의 웃지못할 상황을 직면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Stone of Sisyphus'앨범은 확장 출시 후, 비평가,팬들에게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고, 빌보드 122위 진입하였다. 다시 뒤로 가서, 1995년에는 '''Night & Day: Big Band'''라는 앨범명으로 기존에 유명했던 'Chicago','In The Mood' 등의 여러 재즈음악을 자신들만의 색깔로 커버한 노래들을 중점으로 앨범을 내었다. 이후부터 정규앨범 발표의 텀이 살짝 길어지기 시작했다. '''2003년에는 첫 내한하여 공연을 선사하게 되었다.''' [[SBS]]에 공연이 방영되었고 Ballet for a girl in bucannon, Hard to say I'm sorry, You're the inspiration, I'm man, dialogue 등의 노래를 연주하였다. [youtube(cI8CUE7dnnU)] 1996년 데뷔한 노래 'What Might Have been'으로 유명한 키보디스트이자 가수인 루 파디니(Lou Pardini)가 2009년, 시카고에 정식 멤버로서 합류하게 되었다. 원년멤버인 로버트 램이 키보드를 담당하였지만 루 파디니가 합류하게 되면서 시카고에는 두명의 키보디스트가 존재하게 되었다. '''2010년에는 2번째 내한공연을 선사하였다.''' [youtube(UNgp1_2plDo)] 2008년엔 상단에서 설명한 레코드 회사와의 논쟁으로 인해 15년동안 발매가 되지 못한 '''Chicago XXXII: Stone of Sisyphus'''를 마침내 발매하게 되었다. 2014년에는 정규앨범 '''Chicago XXXVI: Now'''를 발표하였다. 원년멤버 키보디스트 로버트 램은 시카고 초기에 추구했었던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곡을 이 이 앨범에 수록곡 "Naked in the Garden of Allah"를 통해 다시 표출하였다. 전쟁의 무서움과 평화에 대한 내용을 표출한다. 이 앨범은 80년대 이후 나온 시카고의 앨범 중 최고의 앨범으로 평가받았다. 시카고가 대 전성기를 이뤘었던 1980년대에는 1988년 앨범 Chicago 19와 앨범의 히트곡 [[Look Away]]의 1위 달성을 마지막으로 90년대,2000년대에는 앨범들의 평이 그닥 좋지 못하였고, 히트적인 면에서도 다소 부족한 면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앨범 'Now'로 시카고는 2006년 이후로 8년만에 [[빌보드 200]] 100위권 안에 진입한 셈이다. 빌보드 200 82위. 이후 4년동안은 거의 콘서트만 하며 활동하였다. 2015년 말, 시카고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 후보가 되었다. 후보자격은 1995년부터 있었으나 최종선정은 2016년이 되었다. 시카고는 이에 응하여 헌액 후 2016년, 전당에 입성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 후보자는 원년멤버들인 로버트 램, 테리 카스, 피터 세트라, 제임스 팬코우, 리 러프넌, 월터 패러자이더, 대니 세라핀 총 7명이다. 대니 세라핀은 1990년 밴드를 떠났기에 현 멤버는 아니지만, 명예의 전당 시상식에 참여를 하여 에너지 넘치는 수상 소감을 하였고, 테리 카스는 현재 고인인 상태라 딸인 미셸 카스가 대신 상을 전해받고, 수상소감을 전하였다. 피터 세트라는 불참하였으나, 로버트 램이 수상소감을 전하면서 세트라를 언급해주었다. 2016년 10월 25일, 31년동안 시카고의 베이시스트를 맡았던 제이슨 쉐프가 밴드를 떠나게 되었다. 18년동안 시카고 멤버였던 원년멤버 피터 세트라보다 13년을 더 밴드 일원으로서 함께한 것이다. 이로 인해 제이슨 쉐프의 대체 인원이였던 기타리스트이자 가수인 제프 코피(Jeff Coffey)가 쉐프의 뒤를 이어 베이시스트 정식멤버로 승격하게 되었다. 2016년엔 월터 페러자이더가 심장질환이 생기게 되어 2017년에 와서는 시카고의 공연 투어에서 은퇴를 하게 되었다. 1967년 결성부터 약 50년간을 시카고로서 활동했지만 질환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투어에서 은퇴하거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2005년부터 월터 페러자이더의 대체 세션이었던 색소폰,플루트 담당 레이 헤르만(Ray Herrmann)이 위에서 설명했듯이, 건강 문제로 투어 은퇴를 한 페러자이더의 뒤를 이어 같은 해 2016년에 정식 멤버로 승격하였다. 그러나 몇년 지나지 않은 2021년 4월엔 월터 페러자이더가 [[알츠하이머]] 판정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져 많은 팬들의 안타까움과 응원이 전해지고 있다. 2017년 2월 22일엔 제임스 팬코우와 로버트 램, 피터 세트라가 시카고 일원으로서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같은해 9월 17일에는 전 멤버였던 퍼커션 담당의 라우더 드 올리베이라가 고향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공연 도중 심장 마비로 사망하기도 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1978년 테리 카스의 사망에 이어 2017년, 올리베이라가 사망하며 시카고 멤버 경력의 인물이 2명이 사망하게 된 것이다. 2018년 1월 17일, 28년동안 시카고의 드러머를 맡았던 트리스 임보든이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아쉽게도 밴드를 떠나게 되었다. 결성 때부터 23년동안 시카고 멤버였던 원년멤버 대니 세라핀보다 5년 더 많이 밴드 멤버로 활동하였다. 트리스 임보든의 드럼 포지션은 퍼커션 담당이었던 왈프레도 레예스 주니어가 맡게 되고, 다니엘 드 로스 레예스가 새 멤버로 참여하여 퍼커션 자리를 채웠다. 다니엘 드 로스 레예스는 2018년 1월부터 5월까지 4개월간 활동하다 밴드를 떠났고, 또다시 공석이 된 퍼커션 자리는 라몬 "레이" 이슬라스가 밴드 정식 멤버로 합류하여 채워졌다. 같은 해에 베이시스트였던 제프 코피도 밴드를 떠나게 되었고, 코피가 떠나며 공석이 된 베이스 포지션은 브렛 시몬스가 새 멤버로 참여하여 채웠다. 시카고 헌정밴드 'Brass Transit"의 보컬리스트였던 닐 도넬이 시카고의 리드보컬로 정식 합류하게 되었다 2014년 앨범 발표 후 5년만에 2019년 10월 11일에는 정규앨범이자 크리스마스 앨범인 '''Chicago XXXVII: Chicago Chirstmas'''를 발표하였다. 앨범은 빌보드 홀리데이 앨범 판매 차트 1위를 달성하였다. || [youtube(z4QQRuH3fwM)] || || '''2019년 Chicago Chirstmas 앨범을 작업하는 시카고 멤버들의 영상이 담긴 메이킹 오프''' || 2020년에 10월 16일에는 시카고가 그래미 평생 공로상을 수상하게 되어 영광스런 명예를 얻게 되었다. 2021년 11월 15일에는 기타리스트 키스 홀랜드가 안타깝게도 팔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긴 회복기간을 갖게 되어 기타 연주가 회복기간동안엔 불가해졌고, 홀랜드는 이 회복기간을 다음 인생의 전환점으로 여기고 12월 1일에 시카고를 떠나게 된다. 키스 홀랜드는 26년동안 시카고의 기타를 맏았으며, 결성부터 11년동안 활발히 활동하다 사고로 사망한 원년멤버 테리 카스보다 무려 17년을 더 많이 활동한 기타리스트가 되었다. 키스 홀랜드가 떠나며 공석이 된 기타 포지션은 토니 오브로타가 시카고 정식멤버로 들어가면서 채우게 되었다. 2022년 1월 21일에는 13년동안 시카고에서 키보드를 연주했던 키보디스트 루 파디니가 밴드를 떠나게 되었다. 2022년 기준 69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파워풀한 목소리와 고음으로 보컬을 맏으며 로버트 램과 함께 키보드를 연주하던 그가 밴드를 떠나게 되었다. 그의 빈 자리는 로든 골드가 정식멤버로 들어오며 채우게 되었다. 같은 해 5월 6일엔 베이시스트 브렛 시몬스가 탈퇴하며 에릭 베인스가 정식멤버로 들어오며 베이스 포지션을 매우게 되었다. 2022년 여름, 정규 앨범 '''Chicago XXXVIII: Born for This Moment'''를 오랜만에 더블 앨범으로 발매하였다. 앨범은 빌보드 톱 앨범 세일즈 차트 21위를 기록하였다. 2023년 현재까지 해체 한번 없이 56년째 활동 중이다.원년멤버들 중 테리 캐스의 사고사와 피터 세트라의 솔로 전향, 대니 세라핀의 탈퇴와 월터 페러자이더의 질환으로 인한 은퇴를 포함해서 엄청나게 많은 횟수의 멤버 교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밴드는 한번도 해체된 적이 없이 리 러프넌, 제임스 팬코우, 로버트 램 총 3명의 남은 원년멤버들을 중점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 현재 멤버 == 멤버들이 곡 마다 달리 보컬을 하고 한 멤버가 다양한 세션을 맡는 것이 이 밴드의 특징이기도 하다. 초기엔 7인조로 활동했으나, 이후로 여러번의 멤버 교체와 추가영입으로 인해 2022년 현재는 10인조의 대식구 밴드이다.(정식 멤버로 들어왔을때의 년도부터 책정함. 창립 멤버는 '''굵은 글씨체''') * '''로버트 램(Robert Lamm)'''[* 1944년 10월 13일 출생] - 키보드 (1967~) * '''리 러프넌(Lee Loughnane)'''[* 1946년 10월 21일 출생] - 트럼펫 (1967~) * '''제임스 팬코우(James Pankow)'''[* 1947년 8월 20일 출생] - 트롬본 (1967~) * 왈프레도 레예스 주니어(Walfredo Reyes Jr) - 드럼 (2012~)[* 자신이 10대 때 처음 구매했던 앨범이 시카고의 1집 Chicago Transit Authority였고 시카고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하였다. 2012년에 자신이 좋아하는 시카고의 정식멤버로 들아와 2018년까진 퍼커션을 맏았으나, 2018년에 드러머 트리스 임보든이 밴드를 떠나게 되면서 2018년부터 드럼을 맏게 되었다.] * 레이 헤르먼(Ray Herrmann) - 색소폰, 플루트 (2016~)[* 원래는 2005년도부터 시카고가 공연을 다닐때만 월터 페러자이더의 대체 연주자로서만 참여했으나, 2016년에는 월터 페러자이더가 질환으로 인해 투어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자 그 자리를 이어받아 정식멤버가 되었다.] * 닐 도넬(Neil Donell) - 보컬 (2018~) * 라몬 이슬라스(Ramon Yslas) - 퍼커션 (2018~) * 토니 오브로타(Tony Obrohta) - 기타 (2021~) * 로렌 골드(Loren Gold) - 키보드 (2022~) * 에릭 베인스(Eric baines) - 베이스 기타 (2022~) == 이전 멤버 == * '''월터 페러자이더(Walter Parazaider)'''[* 1945년 3월 14일 출생] - 색소폰,목관악기 (1967~2017)[* 심장 질환으로 인해 2017년 투어에서 은퇴한 상태. 2021년 4월엔 알츠하이머 진단까지 받았다고 한다.] * '''대니 세라핀(Danny Seraphine)'''[* 1948년 8월 28일 출생] - 드럼 (1967~1990) * '''테리 카스(Terry Kath)'''[* 1946년 1월 31일 출생] - 기타 (1967~1978)[* 1978년 1월 권총 오발사고로 머리에 총상을 입어 사망.] * 피터 세트라(Peter Cetera)[* 1944년 9월 13일 출생. 창립 멤버는 아니지만 극초창기 원년멤버들중에선 1944년 10월 13일생인 로버트 램보다 1달 더 일찍 출생하였으며 연월로 따지면 최연장자라고 볼 수 있다.] - 베이스 기타 (1967~1985) * 라우더 드 올리베이라(Laudir de Oliveira)[* 1940년생] - 퍼커션 (1974~1981) * 도니 데이쿠스(Donnie Dacus) - 기타 (1978~1980)[* 1978년 테리 카스 사망 후 그 자리를 이어받아 영입되었다.] * 크리스 피닉(Chris Pinnick) - 기타 (1980~1985) * 빌 챔플린(Bill Champlin) - 키보드 (1981~2009) [* 1982년 Chicago 16부터 2009년까지 정식으로 함께한 멤버로, 출중한 키보드 실력과 허스키한 목소리의 메인,리드보컬을 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부터 해온 라이브에선 너무 지나친 기교를 넣은 보컬로 인한 탓인지 빌 챔플린이 보컬을 맏는것을 싫어하는 팬들도 꽤 있는듯 하다....오죽하면 2003년 시카고 한국 내한공연 당시 첫곡이었던 "Make me smile"에선 빌 챔플린이 리드 보컬을 맏고 노래를 하는데, 유튜브에 올라온 이 영상의 댓글엔 '경고! 첫 곡부터 빌 챔플린이 노래하니 주의하라(........)'는 뉘앙스의 댓글까지 달리고 답글로 인정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정도이다.... 물론 빌의 2000년대 보컬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도 많으니 참고하자.] * 제이슨 셰프(Jason Scheff) - 베이스 기타 (1985~2016)[* 1985년 피터 세트라가 탈퇴하고 난 후 그 자리를 이어 영입되었다. 밴드에서 제일 오래 활동한 베이시스트이다.] * 드웨인 베일리(Dawayne Bailey) - 기타 (1986~1995) * 드류 헤스터(Drew Hester) - 퍼커션 (2009~2012) * 트리스 임보든(Tris Imboden) - 드럼 (1990~2018)[* 1990년 대니 세라핀이 밴드를 떠난 후 그 자리를 이어받아 영입되었다.] * 제프 코피(Jeff Coffey) - 베이스 기타 (2016~2018) * 다니엘 드 로스 레예스(Daniel de los Reyes) - 퍼커션 (2018 1월~2018 5월) * 키스 홀랜드(Keith Howland) - 기타(1995~2021) * 루 파디니(Lou Pardini) - 키보드 (2009~2022 1월 21일) * 브렛 시몬스(Brett Simons) - 베이스(2018~2022 5월 6일) == 앨범 커버들의 시각적인 특징 == 시카고의 앨범은 표면적 특징이 뚜렷하다. 특이하게도 앨범명을 대부분 자신들의 그룹명 "Chicago" 글자를 토대로 로마숫자 넘버링을 통해 이름을 붙힌다. 예를 들면 시카고 5집은 Chicago V, 시카고 10집은 Chicago X.[* 허나, 원년멤버 테리 카스가 사망하고 난 후 발매한 1978년 12집 "Hot Streets"에서 일시적으로 앨범 디자인의 규칙이 깨졌다가 13집부터 다시 원래의 앨범 디자인 방식이 돌아왔다.]이들이 더 독특한 이유는 일부 컴필레이션, 베스트 앨범 및 라이브 앨범에도 메인 앨범과 이어져서 넘버링이 들어가는 경우도 잦다는 것이다. 예시를 들자면 3번째 앨범인 Chicago III에 이어 4번째로 발매된 1971년 카네기 홀 공연의 실황을 담은 Lp 4장짜리 박스세트인 "At Carnegie Hall"은 라이브 앨범이지만 넘버링에 포함되어 그 다음 발표된 정규 앨범이 Chicago V(시카고 5) 가 된다. 1975년 발매한 9번째 앨범이자, 컴필레이션 앨범인 "Chicago's Greatest Hits"도 넘버링이 된다. 앨범 커버도 정말 다양하게 디자인하고,사용하였다. 알루미늄 포장을 벗기다 만 글자가 새겨진 초콜릿, 그룹명 글자 모양의 고층빌딩, 지문속에 교묘하게 모양새있게 새겨진 그룹명, 돋보기로 투영된 그룹명이 새겨진 소형 전자칩 등등 창의성 있는것들이 많아 시각적인 재미와 예술성도 띄고있는 독특한 앨범커버를 디자인하였다. == 디스코그래피[* 넘버링에 포함되나, 컴필레이션 및 라이브 앨범인 것은 굵은 선 처리] == ||발매연도||제목|| ||1969||Chicago Transit Authority|| ||1970||Chicago|| ||1971||Chicago III|| ||1971||'''Chicago at Carnegie hall (Live)'''|| ||1972||Chicago V|| ||1973||Chicago VI|| ||1974||Chicago VII|| ||1975||Chicago VIII|| ||1975||'''Chicago IX'''|| ||1976||Chicago X|| ||1977||Chicago XI|| ||1978||Hot Streets|| ||1979||Chicago 13|| ||1980||Chicago XIV|| ||1981||'''Greatest Hits, Volume II'''|| ||1982||Chicago 16|| ||1984||Chicago 17|| ||1986||Chicago 18|| ||1988||Chicago 19|| ||1989||'''Greatest Hits 1982-1989'''|| ||1991||Twenty 1|| ||1995||Night & Day Big Band|| ||1997||'''The Heart of Chicago 1967-1997'''|| ||1998||'''The Heart of Chicago 1967-1998 Volume II'''|| ||1998||Chicago XXV: The Christmas Album|| ||1999||'''Chicago XXVI: Live in Concert (Live)'''|| ||2002||'''The Very Best of Chicago: Only the Beginning'''|| ||2003||'''The Box'''|| ||2005||'''Love Songs'''|| ||2006||Chicago XXX|| ||2007||'''The Very Best of Chicago: 40th Anniversary Edition'''|| ||2008||Chicago XXXII: Stone of Sisyphus|| ||2011||Chicago XXXIII: O Christmas Three|| ||2011||'''Chicago XXXIV: Live in '75 (Live)'''|| ||2013||The Nashville Sessions|| ||2014||Chicago XXXVI: Now|| ||2019||Chicago Christmas|| ||2022||Born for This Moment|| == 차트 == === 앨범 === ==== [[빌보드 200]] 1위 ==== * Chicago V (1972) * Chicago VI (1973) * Chicago VII (1974) * Chicago VIII (1975) * Chicago IX (1975) ==== 빌보드 200 2위 ==== * Chicago III ==== 빌보드 200 3위 ~ 10위 ==== * Chicago (1970) 4위 * Chicago at Carnegie Hall (1971) 3위 * Chicago X (1976) 3위 * Chicago XI (1977) 6위 * Chicago 16 (1982) 9위 * Chicago 17 (1984) 4위 ==== 빌보드 200 11위 ~ 20위 ==== * Chicago Transit Authority (1969) 17위 * Hot Streets (1978) 12위 * The Very Best of Chicago: Only the Beginning (2002) 20위 ==== 빌보드 200 21위 ~ 30위 ==== * Chicago 13 (1979) 21위 ==== 빌보드 200 31위 ~ 100위 ==== * Chicago XIV (1980) 71위 * Chicago 18 (1986) 35위 * Chicago 19 (1988) 37위 * Greatest Hits 1982 - 1989 (1989) 37위 * Twenty 1 (1991) 66위 * Night & Day: Big Band (1995) 90위 * The Heart of Chicago 1967 - 1997 (1997) 55위 * Chicago XXV: The Chirstmas Album (1998) 47위 * Love Songs (2005) 57위 * Chicago XXX (2006) 41위 * The Best of Chicago: 40th Anniversary Edition (2007) 100위 * Chicago XXXVI: Now (2014) 82위[* 현재까지 시카고의 마지막 빌보드 200 차트 진입 앨범이다.] ==== 빌보드 200 101위 ~ 200위 ==== * Greatest Hits: Vol.II (1981) 171위 * The Heart of Chicago 1967 - 1998 Vol.II (1998) 154위 * Chicago XXXII: Stone of Sisyphus (2008) 122위 * Chicago XXXIII: O Chirstmas Three (2011) 170위 === 싱글 === ==== [[빌보드 핫 100]] 1위 ==== * [[If You Leave Me Now]] (1976) * [[Hard to Say I'm Sorry]] (1982) * [[Look Away]] (1988) ==== 빌보드 핫 100 3위 ~ 10위 ==== * Make Me Smile (1970) 9위 * 25 or 6 to 4 (1970) 4위 * Does Anybody Really Know What Time It Is ? (1970) 7위 * Beginnings (1971)[* "Does Anybody Really Know What Time It Is ?"와 같이 순위 달성 날짜가 1969년이 아닌 각각 1970년, 1971년인 이유는 음반사가 1970년, 앨범 'Chicago'의 인기를 보고 69년 발매된 1집의 일부 곡들을 뒤늦게 싱글컷하여 발매했기 때문이다. 정작 시카고의 첫 싱글인 Question 67 & 68 는 1969년 1집 발매 당시에 바로 싱글컷되었지만 71위라는 낮은 순위를 달성했다. 그러나 2년 후인 1971년에 음반사가 다시 이 곡을 싱글로 발매하여 24위를 달성하게 되었다.] 7위 * Colour My World (1971) 7위 * Saturday in the Park (1972) 3위 * Feelin' Stronger Every Day (1973) 10위 * Just You 'N' Me (1973) 4위 * (I've Been) Searchin' So Long (1974) 9위 * Call on Me (1974) 6위 * Old Days (1975) 5위 * Baby, What a Big Surprise (1977) 4위 * Hard Habit to Break (1984) 3위 * You're the Inspiration (1984) [* [[도와줘! 리듬 히어로]] 크리스마스 스테이지에 수록되었던 그 곡 맞다. [[데드풀(영화)|데드풀]] 1편에서도 짤막하게 흘러나왔었다. 참고로 시카고 공식 채널에 업로드된 뮤직비디오보다 일반인의 모 채널에 있는 가사+음원 버전이 조회수가 3배 높게 나오는 노래다. 후자의 조회수는 1억뷰대.] 3위 * Will You Still Love Me (1986) 3위 * I Don't Wanna Live Without Your Love (1988) 3위 * You're Not Alone (1989) 10위 * What Kind of Man Would I Be (1989) 5위 ==== 빌보드 핫 100 11위 ~ 20위 ==== * Free (1971) 20위 * Wishing You Were Here (1974) 11위 * Harry Truman (1975) 13위 * Alive Again (1978) 14위 * No Tell Lover (1978) 14위 * Stay the Night (1984) 16위 * Along Comes a Woman (1985) 14위 * If She Would Have Been Faithful... (1987) 17위 ==== 빌보드 핫 100 21위 ~ 30위 ==== * Question 67 & 68 (1971) 24위 [* 마찬가지로 1970년 앨범 Chicago와 싱글커트 곡들이 성공하면서 2년 뒤인 1971년에 재발매를 한 것이다.] * Dialogue (Part I & II) (1972) 24위 * Love me Tomorrow (1982) 22위 ==== 빌보드 핫 100 31위 ~ 100위 ==== * Question 67 & 68 (1969) 71위 * Lowdown (1971) 35위 * I'm a Man (1971) 49위 [* 원래는 1969년 당시엔 싱글커트가 되지 않았고 1970년에 영국과 아일랜드에서만 발매를 했지만, 1970년 앨범 Chicago와 싱글커트 곡들이 성공하면서 2년만인 1971년에 미국에도 싱글로 발매된 노래이다.] * Brand New Love Affair (Part I & II) (1975) 61위 * Another Rainy Day in New York City (1976) 32위 * You Are On My Mind (1977) 49위 * Little One (1978) 44위 * Take Me Back to Chicago (1978) 63위 * Go Long Gone (1979) 73위 * Must Have Been Crazy (1979) 83위 * Thunder And Lightning (1980) 56위 * What You're Missing (1983) 81위 * 25 or 6 to 4 (Newly Re-Recorded Version) (1986) 48위 * Niagara Falls (1987) 91위 * We Can Last Forever (1989) 55위 * Hearts in Trouble (1990) 75위 * Chasin' the Wind (1991) 39위 [* 시카고의 마지막 빌보드 핫 100 차트 진입 곡이다. 91년 이후에 나온 싱글들은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는 전부 진입을 하지 못하였다.] * Here in My Heart (1997) 59위* [* 59위는 미국 라디오 음악 차트 순위이며, 이 노래가 시카고의 마지막 어덜트 컨템포러리 주간 차트 1위 곡이다.] == 여담 == 1967년 밴드 결성부터 2023년 현재까지 단 한번도 해체없이 활동하는 강철벽같은 밴드이다. 1978년 테리 캐스의 사망 이후 멤버 교체가 너무 잦아지긴 했지만, 그 와중에 밴드 해체 및 활동 중단도 한번 없었고 그로 인한 재결성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일부 노장 밴드들이 해체와 재결성 이력이 있거나, 원년멤버가 모두 탈퇴하여 밴드 이름만 전수받은채 아예 다른 멤버들이 활동하거나, 앨범발매를 중단하고 공연만 이어가거나 하는 등의 사례가 많으나 시카고는 56년동안 공식해체가 한번도 없고 오리지널 멤버 7명 중 일부도 현재까지 꽤 남아있으며(로버트 램,제임스 팬코우,리 러프넌,월터 페러자이더(심장질환,알츠하이머로 공연 투어 중단))2022년까지 앨범을 꾸준히 낸다는 것은 대단한 기록이다. 시카고의 발라드 시절 팬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시카고도 데뷔부터 70년대 초중반까지 낸 곡들 중에 유난히 재생 시간이 긴 Libertaion, Devil's Sweet 등의 대곡들이 많았다. 제일 긴 시간의 곡은 앨범 Chicago III에 포함된 파트인 무려 22분 30초의 'Travel Suite'이다.[* 6개의 곡이 각각 부제가 붙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곡처럼 연주된다.] 단일 곡으로선 1집 Chicago Transit Authority의 마지막 트랙인 Liberation이 제일 긴 시간의 재생시간을 갖고있긴 하다. 1978년 테리 캐스 사망, 1985년 피터 세트라 탈퇴, 1990년 대니 세라핀 탈퇴, 2017년 심장질환 및 현재 알츠하이머로 인한 월터 페러자이더의 활동 중단으로 인해 현재 시카고의 원년 멤버는 로버트 램, 리 러프넌, 제임스 팬코우 3명만이 활동 중이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했을 당시 밴드 최고의 히트곡을 만들어준 데이비드 포스터의 근황을 묻는 질문에 '''어딘가 살아있겠지. 연락 끊은 지 오래 되었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Hard To Say I'm Sorry'가 빌보드 싱글차트 1위곡이지만 콘서트에선 거의 연주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이건 자기들 스타일이 아니라는 거... 그런데 정작 피터 세트라 탈퇴 이후 내놓은 히트 싱글 Will You Still Love Me, [[Look Away]] 등은 발라드였다. 또 데이비드 포스터와 결별하고 다이안 워렌이 참여한 Chicago 19에서는 아예 16시절 사운드로 회기하여 빅히트하였다.] 원년멤버이자 기타리스트인 테리 캐스는 "록 음악 역사상 가장 과소평가된 기타리스트 중 한명"으로 불림과 동시에 "록 음악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기타리스트 중 한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60년대 말에 시카고가 Chicago Transut Authority로 활동하던 시절에 [[지미 헨드릭스]]가 [[로스엔젤레스]] 위스키 고고(Whisky Go Go) 공연에서 그들의 공연을 보고 월터 페러자이더에게 당신 밴드 기타주자(테리 카스)가 지미 헨드릭스 자기자신보다 더 낫다고 말한 바가 있다. 카스와 헨드릭스가 같이 담배를 듀오로 피며 웃는 사진도 존재한다. 제임스 팬코우와 로버트 램, 리 러프낸은 1967년 결성부터 현재까지 자신들의 밴드에 대한 열정이 아주 높기로 유명하다. 로버트 램은 어릴때부터 부모님의 재즈 음반 모음집을 접하며 자라왔고, 제임스 팬코우도 음악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트롬본을 배우기 시작한 영향도 있을것이다. 1980년대 중반에 시카고가 한창 발라드 곡들로만 최전성기를 맞이했을때, 밴드가 음악 스타일에 대한 갈등이 발생하였을때도 밴드를 떠나기 싫은 마음에 자존심을 잠시 내려놓고 자신들이 싫어하는 데이비드 포스터의 음악 스타일에 임했을 정도이다. 자신들이 말하길, 데이비드 포스터의 프로듀싱이 자신들과는 맞지 않은 음악 방향임에도 결국 발라드 위주의 음악으로 전향했던 것을 지금으로서 생각해보면 밴드의 미래와 굳건함을 위해선 옳은 결정이었던 것 같다고 생각하였다. 결성 원년멤버들의 출생년도가 1944년생(2명)부터 1945년, 1946년(2명), 1947년, 1948년생까지 순서대로 나열이 가능하다. 게임에도 이들의 곡이 실린 적이 있는데, [[락스타 게임즈]]의 [[Grand Theft Auto 5]]의 Los Santos Rock Radio에 'Chicago X'의 수록곡인 '[[If You Leave Me Now]]'가 실려있다. [[유비소프트]]의 [[와치독]]에서도 마지막 엔딩 크레딧에 앨범 'Chicago'의 수록곡인 'Wake Up Sunshine'이 나온다. 리듬게임에도 수록된 곡들이 많은데, 유비소프트의 [[Rocksmith]]2014의 DLC에 '25 or 6 to 4', 'Saturday in the Park'가 수록되어 있다.' 2010년에 출시된 리듬게임 Lips:I Love 80S에 'Chicago 17'의 수록곡 'You're the Inspiration'이 수록되어있고, Lips의 DLC에도 'Chicago 16'의 수록곡인 [[Hard to Say I'm Sorry]]', 'Chicago 17'의 수록곡인 'I don't Wanna Live Without Your Love', 'Hard Habit to Break'가 포함 되어있다. Rock Band 3 본편엔 'Chicago'의 수록곡 '25 or 6 to 4'가, DLC엔 'Chicago'의 수록곡 'Make Me Smile', 'Chicago VI'의 수록곡 'Feelin' Stronger Every Day', 'Chicago X'의 수록곡 'If You Leave Me Now'가 포함된다. [[도와줘! 리듬 히어로]]엔 'Chicago 17'의 수록곡 'You're the Inspiration'이 포함 되어있다. 2023년 개봉 영화 [[플래시(영화)]]에서 2집 'Chicago' 수록곡인 '25 or 6 to 4'가 삽입되었다. 배트맨의 저택에서 흘러나온다. 유튜브에 Leonid & Friends라는 슬라브계 멤버들이 모인 시카고 헌정밴드가 존재한다. 이들은 시카고의 여러곡들을 커버하였는데, 시카고의 히트곡들보다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노래들도 커버하였다.(Woman Don't Want to Love me, Hot Streets 등) 원곡의 느낌을 해치지 않으면서 커버했다는것이 특징이다. earth wind & fire나 Blood, Sweet & Tears, The Ides of March 같은 다른 브라스 밴드의 일부 곡도 커버한 바가 있다. 현재는 투어도 돌고있다. [[분류:미국의 록밴드]][[분류: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분류: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분류:1967년 결성된 음악 그룹]][[분류:1968년 데뷔]][[분류:재즈 록]][[분류:재즈 퓨전]][[분류:소프트 록]]캡챠되돌리기